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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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흐름의 궤도에 올라타지 않고 한 번의 큰 충격으로 전진하는 삶을 그려내지는 않았는지 보게 한다. 한 번도 아닌 여러 번의 충격이 지나가면서 그때마다 큰 충격들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전진했던 지금보다 젊고 어린 자신을 마주하게 한다. 큰 충격은 삶을 무너지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정과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편견과 관습을 흐트러지게 한 큰 태풍이다. 태풍 후 찾아오는 잔잔하고 따스한 평온이 온몸을 감싸준다. 기회였음을,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주는 큰 충격을 두려움 없이 감당한 니나를 만난다.

 


니나의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 그때와 다른 진폭이다. 구원은 자신의 의지와 다르지가 않다. 정신적으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 의지와 함께 삶을 감당한 여성의 이야기는 놀라웠고 새로웠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의 생경한 느낌이 오랫동안 뜨거웠기에 다시 재독을 하며 스치듯이 지나친 문장들을 발견하며 여러 날을 이 소설과 함께한다.

 


글쓰기가 불어넣는 고유한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작가의 시선을 온전하게 보게 한다. 화자의 관찰과 대화 기록들의 유용성, 주변인들의 대처하는 태도와 성향들을 파악하며 기록한 글은 철학적이고 인문학 접근으로 삶을 대처하게 해 준다. 이 소설의 사건들은 회피하지 않고 감당하며 스스로 깨닫고 관습에 갇히지 않는 사고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무엇에 갇힌 사회적 교육의 산물이었는지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프란츠 카프카의 <돌연한 출발> 단편선도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작가의 실제 삶의 패턴에 자리한 글쓰기가 얼마나 치열하였는지 보게 한다. 이 소설의 니나도 글을 쓰는 시간과 대화의 진폭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수많은 대화와 니나의 인생을 다시 펼쳐보아도 또 새롭기만 하다. 화자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에 문학이 가진 예리한 촉을 주시하게 한다. 휩쓸려 살아가지 않아야 하는 정신력에 횃불을 밝혀주는 인물들이다. 글쓰기가 가진 위력과 소설의 소용돌이에 온몸을 던지게 해준 작품들이며 작가들이다.

 


우울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정신까지도 예민함으로 무장하게 만든다. 나치 시대의 우울함이 소설 속의 상황들과 니나가 집필한 작품 속의 소설이라는 이야기에도 묵직하게 흐른다. 피폐해지는 사회적 상황들 속에서도 용기와 강인함으로 무장한 여성이라는 인물, 니나를 통해서 편안한 선택의 길을 가지 않으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내밀한 관찰력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이겨내고 있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작가가 경험한 삶의 궤적을 이 소설에서도 접점을 만나게 한다. 혼돈의 시대에 사유하며 살아간다는 것, 견디는 것과 버티는 것의 위력을 보여주는 작가적 삶을 보여준다.

 


두 아이의 엄마였던 니나. 두 아이의 아빠가 달랐던 상황들과 사건들도 예의주시하게 한다. '자신의 아이'라고 말하는 첫째 아이와 '그의 아이'라고 말하는 둘째 아이는 확연한 분별성으로 나누어진다. 니나의 대화들은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여성의 몸에서 태어나는 두 아이이지만 한 아이는 자신의 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둘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분명하게 명시하다. 자유의지에 의해 사랑해서 태어나는 아이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의의 의지에 의해서 생긴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니나는 말한다. 그의 아이들에 상처받고 인생을 놓쳐버린 수많은 여성들이 지나가게 한다.

 


죽음까지 각오하면서 낙태를 시도하였던 그녀이다. 니나는 두 아이의 엄마 역할까지도 혼자의 힘으로 모두 해낸다. 한부모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루를 보내면서도 소설 작품도 쓰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살아가는 의지를 보여준 여성이다. 감옥 속에서도 그녀는 눈빛이 빛나고 있다고 작품은 전한다. 그녀의 눈은 약간 움푹 파이고 그늘이 지긴 했지만 여전히 광채가 났다. (360쪽) 15년이라는 감옥생활이 쉽지 않을 테지만 그녀의 눈빛은 절망의 눈빛이 아닌 광채가 빛나고 있다고 전한다.

 


자유를 갈망하였던 그녀의 결혼생활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결혼생활이 불가능할 상황이지만 결혼을 감행하는 남편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그녀를 힘들게 한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타인 앞에서 보이는 따뜻함은 위선임을 작품 속에서 보여준다. 만약 우리가 한 길에서 막혀버릴 경우 그걸 항상 인정해야만 한다는 거야. (132쪽) 그녀가 왜 자살을 시도하였는지도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그녀는 죽음을 각오하고 시도하지만 살아나게 된다.

 


그녀는 분명히 말한다. 삶의 의지를 살려낸 사람은 자신이라고. 자신이 살아야겠다고 느꼈으며 그 순간 글을 썼다고 말한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서도 그녀는 글을 썼다. 그녀가 글을 썼다는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이다. 니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꿈의 종착역은 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말하며 그녀는 그 꿈을 향한다.

 


자유를 갈망하였던 니나는 인생을 피하지 않고 직접 경험했던 인물이다. 결혼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두 발로 걸어들어가서 두 손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니나는 성숙해졌고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 여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운명이 없어. 그런데 그것은 그들 탓이야. 그들은 운명을 원하지 않거든. 단 한 번의 큰 충격보다는 몇 백 번의 작은 충격을 받으려고 해.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거야. 131

이 지역과 도시 전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이런 감정을 거져본 적 있어? 지긋지긋해지는 것, 갑자기 아주 지긋지긋해지는 일 말이야. 하루라도 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방과 집과 거리 모두가 말이야...밉고, 참을 수 없이 적막하고, 적의를 품은 듯 보이게 돼. 그러면 떠나야만 하는 거야. 정말 떠날 때가 된 거야. 자기도 모르게 이미 우리는 이 모든 사물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끄집어냈던 거야. 사물들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보니가 사는 거야.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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