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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과 나의 사막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0월
평점 :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전쟁을 하면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에 살고 있는 랑과 로봇 고고의 만남부터 떠올려본다. 랑이 10살 때 사막 모래 속에서 로봇을 발견한다. 그때는 4873년이다. 로봇의 정체를 알지 못하여 우려스럽지만 랑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기뻐하면서 로봇의 전원을 켠다. 고고와 랑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쟁시대에 만들어진 고고라는 것만 알기에 살인 로봇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을 내내 간직한 고고이다. 하지만 고고에게서는 그러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고고라는 이름을 지어준 랑과 오랜 시간 함께 한다. 랑의 엄마인 조의 죽음도 함께 하였듯이 갑자기 랑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고고는 당황스러워한다. 그때 찾아온 지카는 랑의 오랜 친구 사이이다. 떠돌이 생활을 한 지카가 랑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고고의 시선을 통해서 보여준다.
푸르른 지구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오염시키며 환경을 파괴하는 인류의 멀지 않은 모습이 이 소설에 등장한다. 로봇을 만들고 전쟁을 하며 파괴된 지구는 온전하게 남아있지가 않다. 사막뿐이다. 생존한 인류의 막막한 생활이 사막에서 펼쳐진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파괴된 지구는 인류의 파멸과 다르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랑은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끊임없이 고고와 나눈 대화들은 기억 메모리에 저장되어 랑이 죽고 나서도 고고는 재생하면서 랑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고고가 무수히 반복한 재생 영상은 그리움으로 남겨진다.
사막 폭풍의 경고음이 울린다. 3단계, 5단계 강도 크기에 따라 더욱 처참해지는 미래 인간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소설이다. 제대로 된 집도 없고 모래로 가득한 사막뿐이다. 사막에 생존한 사람들의 무리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랑이다. 죽은 시체 한 구를 들고 가는 일행들에게 친절하지만 언제 다시 찾아와 랑을 죽일지도 모를 인간이기도 하다. 그것을 감지하는 로봇 고고의 생각과 랑의 생각은 다르다. 파괴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얼마 남지 않은 인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함보다는 악함으로 피와 살을 식량으로 대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일행 숫자는 처음에는 어느 정도였는지, 앞으로 얼마나 줄어들지 짐작하는 장면에 섬뜩해진다.
사막에 길을 만드는 로봇에게 고고는 자신의 팔을 하나 내어준다. 랑과 조개껍질 2개 중에 하나를 고르면서도 마음에 드는 것을 상대에게 서로 건네는 두 인물의 모습에서도 로봇 고고를 지긋하게 바라보게 한다. 로봇 고고는 전쟁시대에 살인 로봇이었을까? 고고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내내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랑에게 사막은 어떤 존재이기에
그토록 원망하고 분노하며 하염없이 바라보았을까. 20
사막과 바다는 어떤 것도 토해내지 않고
끊임없이 집어삼킨다는 점에서 닮았고 33
발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이
내가 가야 할 방향임을 확인한다. 50
중요한 건 결과보다 행위입니다. 106
대홍수가 일어난 시대이다. 파괴되어 소실된 문화적 유물들은 미비하여 바다, 나무까지도 그림으로만 알고 있는 시대이다. 5년 동안 '과거로 가는 땅'을 찾아다녔던 지카는 랑이 죽고 나서 다시 떠난다. 바다로 함께 가자는 지카의 제안을 거절하는 로봇 고고이다.
로봇 고고는 과거로 가는 땅을 찾고자 한다. 왜 떠나는지 이유는 분명해진다. 그리움으로 가득해진 랑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고고는 길도 없는 사막에서 자신의 발끝만을 보면서 과거로 가는 땅을 찾아 나선다. 그 여정에 만나는 '버진'이라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인간도 만나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버진을 통해서 로봇이 만들어진 이유를 듣게 된다. 다정함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초래한 사태를 사막이 대변해 주는 소설이다. 마지막 인류로 남겨져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나약하고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고발하는 이야기이다.
이 사막도, 사막인 적 없던 이 땅도
인간에게 화가 났음을
침묵으로써 표현하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60
이 마을 하나쯤은 사라져도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라고 착각하며 85
사막에 길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 로봇의 주인인 카일의 의도를 보게 된다. 사막에는 길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코 생겨나지 않는 길이다. 무모한 명령을 내린 인간 카일. 이 명령을 주고 떠난 주인 카일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그가 살아온 삶이 무언 속에서도 고스란히 그려지기 때문이다.
인간도 아닌 정체성이 모호한 살리를 만나게 된다. 사막의 폭풍 속에서 깨어난 고고는 살리에 대해서 서서히 깨닫게 된다. 살리는 고고와 함께 떠나고자 제안을 한다. 그 제안은 고고에게 희망적이지만 수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거로 가는 땅을 선택한다. 그 선택의 이유와 그에게 유리한 조건들을 살리는 세팅해 주는 선의를 선물 받게 된다. 고고가 선택한 랑과의 만남이라는 기회가 그려진다.
고고에게 들리는 과거로 가는 땅에서 들리는 소리들 중에는 고고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도 비밀들이 밝혀진다. 고고가 전쟁시대에 했던 일과 버진이라는 인물과 나누었던 대화에서도 힌트를 얻게 된다. 인류가 지금도 멈추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간과하는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 미래를 파괴하는지도 보여주는 사막으로 독자들을 데려다 놓는 소설이다.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파괴되는 지구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경고음을 전하고 있고 파괴된 환경에 우리는 무서운 질병에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다. 멈추어야 하는 것들을 열거해 보게 된다. 사막처럼 바뀌어버린 곳에 우리가 랑이 될 수도 있고, 조가 될 수도 있으며, 지카와 버진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하게 하는 작품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다정한 존재이길 바라면서도
끝내 그 몫을 다른 존재에게 떠넘기고 마는 것 같다.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