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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 - 죽음 관련 톨스토이 명단편 3편 모음집 ㅣ 현대지성 클래식 4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우섭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3월
평점 :
『주인과 일꾼』은 이 소설의 두 번째 소설이다. 바실리 안드레이치라는 주인과 순종적인 니키타라는 일꾼과 말이 가장 인상적으로 자리잡는다.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던 누군가의 명령에 순종만 하는 인물들이 니키타와 말이다. 짧은 소설이지만 톨스토이는 이 두 인물을 통해서 보여주는 죽음이 두드러진다. 누군가를 섬기다가 그 자체에 익숙해진 니키타를 주목하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 희곡에서 주인과 하인의 모습과도 다르지가 않다. 하인은 생각을 멈춘지 오래된 하인이었듯이 이 소설에서의 니키타도 다르지가 않다. 명령과 복종이 이들의 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주인은 숲을 사겠다는 의지로 폭설이 내리며 사납게 날뛰는 러시아의 눈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이 계약하여야 하는 숲은 돈과 욕망일 뿐이다. 위험한 날씨에 걱정하는 주변의 우려를 모두 무시하는 주인이다. 더불어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하인과 말이 주인의 곁을 지키며 동행한다.
순종적인 말은 가야 할 곳이 전혀 아닌데로 자기를 모는 것을 알면서도, 분부에 따라... 달렸다 132
따뜻하고 밝은 살림방에서 어둡고 춥고 바람이 울부짖고 흔들리는 문틈으로 눈이 날리는 통로로...어두운 마당으로 나왔다. 128
주인은 일꾼을 기만하는 인물이다. 니카타도 주인의 그런 모습을 알고 있지만 순종만 할 뿐이다. 따뜻한 밝은 집을 뒤로하고 어둡고 차가운 폭설이 몰아치는 밖으로 향하는 이들의 여정은 순탄하였을까? 숲을 계약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게 이들을 지켜보게 한다. 계속 같은 곳을 맴도는 어두운 밤의 이들의 여정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다르지가 않다. 단편소설이지만 상징성이 뛰어난 작품이 된다. 길을 잃고 도착한 마을에 사는 노인과 노부인이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 떠나라고 하는 권유를 받아들일 수 있는 통찰력을 주인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오늘 밤 숲을 계약해야 한다는 의지와 욕망뿐이다. 눈에 파묻혔다는 것을 알리는 깃발을 설치한 하인 니키타는 어떤 심정일지 작품은 전한다. 그는 죽음이 찾아왔지만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는다. 그저 죽음의 길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일꾼의 모습과 주인이 눈속에서 하인을 버리고 말과 함께 탈출하겠다고 선택하는 그의 모습도 낯설지가 않은 모습으로 전해진다.
삶의 목적, 의미, 기쁨과 긍지를 이루는 것들을 내내 떠올렸다... 돈을 얼마나 벌었고, 더 벌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벌었고, 소유하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들이 어떻게 벌어 왔고 벌고 있는지를, 남들처럼 아주 많은 돈을 더 벌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140
이 약함은 그에게 불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느껴보지 못했던 특별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159
하인이 빠졌던 골짜기에 말이 다시 빠지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같은 날 일어난다. 주인은 왜 제자리에서 맴도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였을까? 그의 모습은 어리석은 현대인들을 향하는 모습으로 투영된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만 살고자 하였던 이유들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아내도 무시하며, 농민을 비난하였던 인물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오히려 주인의 아둔함이 두드러진다. 눈앞에 있는 이윤만을 추구하며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대명사가 되는 주인의 모습이 소설에 등장한다.
눈에 파묻혀서 죽어가는 하인을 구하고자 주인은 하인 위에 누워서 자신의 코트를 덮는다. 체온을 올리고자 주인은 노력한다. 그에게서 볼 수 없는 갑작스러운 반전의 모습에서 그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특별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그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 장면이 대변해 준다. 타인을 위해 한 번도 친절하지 않았던 주인이다. 타인을 위한 사랑과 배려도 찾을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의 삶은 그가 얼어주어가는 동안 고스란히 후회 속에서 보여준다.
언제나 농부들이 우둔하고 배운 게 부족하다고 비난해왔으므로 140
짧은 소설이지만 작가는 마을에서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한 가족을 등장시킨다. 이 가족에게도 가족 간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문장에 눈길이 머무르게 한다. 늘 그렇듯 그 집에서도 여자들 사이에서 시작된 무언의 내적인 불화가 이미 시행되고 있었고, 그것은 곧 분열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122쪽) 분가를 희망하는 아들 부부를 향하는 노인의 생각들도 예의주시하면서 읽는 작품이다. 폭설이 내리는 밤 친절을 베푸는 젊은 농부인 페트루슈카가 눈에 들어온다. 축복기도를 하는 젊은 농부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타인을 위해 위험하지만 기꺼이 밤길에 길 안내를 하는 인물이다. 노인 가족들도 다르지가 않다. 주인이 폭설 속에서 동사하는 사건은 그의 삶과 선택이 예고한 결과로 보인다. 그가 눈속에서 죽어가면서 문득 깨닫는 것을 소설에서 만나게 된다. 그가 추구한 돈과 백만장자는 왜 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진짜 중요한 것을 몰랐던 그가 죽으면서 깨닫는 것은 너무 늦은 깨달음이 될 뿐이다. 진짜 중요한 것을 자문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하게 한다. 대문호의 작품은 그렇게 지긋하게 우리들에게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살아가라고 말한다. 늦지 않기를, 지금 깨우치기를 말하는 작가이다.
그는 돈, 상점, 집, 매입과 매도 그리고 백만장자를 떠올린다... 그 모든 일을 왜 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지를 몰랐던 거야. 162
자기 이익, 평판, 체면과 부를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점점 더 그를 압도했고,... 후회가 모든 생각을 지배하고 모든 생각에 뒤섞였다. 147
하인은 다시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바라본다. 용서를 구하고 아내를 용서한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아들과 며느리를 위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세 번째 작품에서의 젊은 아내의 모습과는 상반된다. 그 아내의 모습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만을 생각하는 모습만 보이기 때문이다. 인물들을 종합해서 매만지는 시간도 유익하게 한다. 죽음을 더욱 선명하게 인지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어떻게 살아아야 할지, 어떻게 잘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사는 것이 진짜 즐거움인지 보여주는 두 번째 소설이다.
특별히 불쾌할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불쾌하지 않았던 것은, 자기 일생이 기쁜 날의 연속이 아니라 오히려 끝없는 힘든 일의 연속이었기 때문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