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을 입은 여인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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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크리스티앙 보뱅의 신간도서라 펼친 도서이다. 출판사의 책들을 좋아해서 무조건 만남을 가진 시간들이다. 기대보다도 더한 것들을 펼쳐놓는다. 몇 번을 멈추었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작가의 문체에 여러 번을 읊조리며 거닐게 한다. 19세기 미국 시인이었던 에밀리 디킨슨을 만나는 책이다. 그녀의 죽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마지막도 그녀의 죽음으로 마무리가 된다. 『밤을 채우는 감각들』 세계시인선 필사책을 통해서 이 시인을 조금이나마 아는 정도였기에 이 한 권을 통해서 그녀의 삶을 앨범의 사진을 넘기듯이 만나게 된다. 시간적 흐름이 아닌 사건들의 흔적들을 펼치면서 작가만의 유려한 문체와 시적인 통찰로 그녀를 마주하게 한다. 그녀의 집, 그녀의 정원, 그녀의 생강빵이 담긴 바구니, 그녀의 종이와 펜, 글을 쓰는 그녀를 만나게 한다.



19세기 미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의 직업과 가치관, 생활방식들까지도 책에서 전해진다. 청교도적인 삶이 주는 극심한 규율과 통제들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아버지의 철도를 향한 애정, 종교적 관념들이 그녀의 눈에 고스란히 담기기 시작한다. 어린 소녀이지만 그녀는 남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녀가 경험한 이모집에서 생활의 추억과 피아노도 놓치지 않게 한다. 에밀리가 학교생활 중에 보이는 당찬 소신도 주목받게 한다. 그녀의 확고한 신념의 원천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서 흘러가고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서 하나둘씩 만나게 된다.

소학교의 어둠 속에서 에밀리는 책들이 지니는 부활의 힘을 발견한다. 55

죽음과 어둠을 직시한다.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감정도 관통하고 있다. 자신의 집과 정원이라는 공간에서만 생활하였던 그녀의 수많은 날들은 부족함이 없었다. 오히려 풍족함으로 넘친다. 일반인들의 사고범위와는 확연히 다름을 보인다. 허용된 공간도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공간에서도 충분히 사유하고 삶을 이해하고 어둠을 직시한다. 사회가 규정한 교육보다도 그녀가 스스로 정원을 돌보면서 깨우치는 놀라운 발견들은 그녀의 시를 통해서, 글을 통해서 충분히 전해진다. <기러기>메리 올리버 시선집과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떠오르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삶을 꾸준히 살피고 있는 에밀리를 보게 된다. 정원에서 꽃과 나비를 무심하게 바라보지 않았던 그녀이다. 그녀 창문으로 보이는 죽음의 행렬들도 놓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녀의 집'이라고 명명하는 그곳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하는 그곳도 의미를 부여한다. 두 집이 가지는 차이점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녀가 보았던 것들이 그녀의 사고를 확장시켜주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녀의 시집이 무척 궁금해진다. 이 책에 담긴 그녀의 문장들은 그 갈증을 충분히 채우지 못할 정도이다. 크리스티앙 보뱅 시인이 펼쳐준 그녀의 이야기는 충분히 찬사를 받게 된다. 저자만이 전하는 고유한 문체에 다시 빠져들었던 시간이다.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잰걸음으로 천천히 하나의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부여잡게 한다. 문장들이 가져다 놓은 에밀리라는 그녀를 더욱 밀착해서 알아가게 한다. 그녀의 시간들로 채워진다. 그녀가 보는 광경들, 그녀의 시선들이 온전히 느껴지기 시작한다. 냉소적으로 대비되는 세상의 삶과 가치들이 절대적인 것인지 질문하게 한다. 무()가 가지는 의미를 에밀리라는 그녀가 전하는 음성으로 만나볼 수 있다.

에밀리의 삶은 눈에 띌 만큼 우리의 시야를 벗어난다. 모든 구경거리는 스스로 권태를 몰아낸다고 믿지만 실은 그 권태 속에서 죽어 간다. 싫증이 나지 않는 유일한 광경은 어떤 마음의 풍경이다. 너무도 순결해... 세상 무엇도 침투할 수 없는 마음. 150

청교도적 엄격주의의 덫에 걸려 그 스스로 장님이 되고 만 것이다. 74


자식들이 최근에 지은 잘못을 탐욕스럽게 열거한 뒤

그날의 시편을 읽는다...

그녀는 모든 걸 보았고 기록해 두었다. 29


단죄하는 눈. 상대를 탐색. 판단.

그건 상대를 전혀 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구약'의 눈이다. 19

아버지 집에서는 세 아이가 있었다. 두통에 시달리는 어머니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 이유도 책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그들의 부재가 무엇을 의미하였는지 저자는 전한다. 에밀리는 자신의 오빠를 돌보며, 여동생은 에밀리를 돌본다. 삼남매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부모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갔던 것일까?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이들이 부모로 사회적으로 자리한다. 아버지가 끊임없이 쫓아간 것들, 어머니가 끊임없이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에밀리라는 그녀를 통해서 작가는 질문한다.



친구가 찾아와도 목소리만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에밀리이다. 통념이 사라지게 한 그녀이다. 그녀의 사고가 던지는 것들이 무수히 많았던 내용들이다.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무수히 펼쳐진다. 시간적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에밀리와 인연이 있었던 다수의 인물들도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뇌리를 크게 흔들어 놓았던 에밀리라는 그녀. 그녀가 얼마나 침잠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왔을지 짐작하게 한다. 매일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의 의지. 죽음과 신을 향한 기나긴 여정은 고된 순간들임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가족 중에는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오직 에밀리뿐이라고 여동생은 말한다. 그녀가 하는 일은 생각하는 것이었다. 여동생의 눈에도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의미 있는 것인지 전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하인이 보였던 모습도 떠오른다. 생각을 멈추었던 하인은 이 작품의 다른 가족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생각을 끊임없이 하였을 에밀리의 생애를 만날 수 있었다. 특유한 문체로 매료시키는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이라 더욱 의미 있었다. 더 깊게 관조하게 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저자의 시선과 에밀리의 광폭적인 수직적인 삶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수평적인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책에서 전한다. 그것과 다른 수직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 에밀리를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보는 자가 되는 길을 택한 건 아니다. 이 재능은 은총이기에 앞서 십자가다. '갈보리의 여제' 호칭 106


질투의 뱀들이 기어 다닌다.

낮엔... 꽈리를 틀고,

밤엔... 몽상의 풀들 사이에서 일렁인다.

30년이 지난 뒤에도 그것들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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