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1 - 김지혜 대본집
김지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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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으로 구성된 대본집이다. 드라마를 인상깊게 시청하면서 대본집을 기대했는데 역시나 출간되어서 한 권씩 차분히 읽는 시간을 가져본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선명하게 다시 되살아난다. 대본집은 드라마와 또 다른 문학으로 다가선다. 내레이션으로 휘발되어버린 많은 대사들이 다시 살아나서 여러 번 일겅도 좋은 문장들로 다가선다. 그렇게 38살 정수, 43살 부정, 27살 강재부터 만나본다. 


흑백으로 가득히 채운 두 주인공 인물의 사진이 떠오른다. 그리고 두 사람의 내레이션들은 빠르게 다음 장으로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두 주인공은 남다른 존재로 다가선 인물들이다. 두 배우들의 친필 메시지도 책에 있다. 연기자들이 연기한 수많은 날들과 호흡한 순간들을 되감기 하면서 읽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좋았던 대본집이다.

정수 38살

억척스럽게 나를 키우는 엄마. 25년 된 25평 아파트. 내 명의. 내내 별로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어른이 되었다 20

드라마 전부에 흘러넘치던 정수의 마음들이 그려진다. 정수의 어머니도 기억 속에 되살아난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이 어른이 된 정수를 떠올려보게 한다.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아파트 명의가 그를 대변해 준다. 반면 그의 아내인 부정의 오피스텔 마련은 다른 그림으로 그려지게 된다.

누군가는 쉽게 가지면서 시작하는 인생이 있고, 누군가는 힘들게 치열하게 살아내어야 가져볼 수 있는 것이 있다. 정수와 부정은 부부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흐르는 동안 부부라는 느낌을 가져볼 수 없었다. 곁돌고 있는 부부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남편은 아내를 다 이해하지 못하고 읽지 못한다. 아내도 남편에게 자신의 모든 말들을 다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들을 만나게 되는 드라마이다. 이들의 교집합은 어디로 휘발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부정 43살

좋은 작가 되고 싶었던 대필작가. 조금씩 간격을 벌리며 더 안전한 곳으로 올라서고 싶었다. 나만 참으면 모두가 좋은 그것. 그게 세상을 열심히 사는 것, 치열하게 사는 것, 결국 잘 사는 것이라 굳게 믿었다 12

꿈을 가졌던 부정은 자신의 꿈과는 다른 존재로 현재에 서 있을 뿐이다. 그녀의 표정, 뒷모습, 홀로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는 모습 등이 떠오른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자신만 참으면 된다고 믿었던 그것은 그녀를 무너뜨린다. <사실은 단 한 사람이면 되었다> 소설에서도 참아내는 주인공 인물이 등장한다. 참는 것만이 해결이 아님을,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소설은 전하고 있다.

<번아웃의 종말> 인문학 도서도 떠오른다. 열심히 하다가 소진된 부정의 모습이 안타깝게 작품내내 흘러넘긴다. 더 안전한 곳으로 올라서고 싶었던 부정은 자신의 꿈과는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감지하게 되면서 소진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기 시작한다.


강재 27살

아무튼 부자가 되고 싶은... 역할 대행 서비스 운영자. 최저 시급 10만원. 가파른 오르막길 앞에서 방향을 잃어가는 얼마전까지 소년이었던 남자. 엄마 애인처럼 가난하고 불쌍하고 착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냥 부자의 생활을 손에 넣을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처럼.

완벽한 친구, 완벽한 가족, 완벽한 애인, 완벽한 남편이란 현실 세계의 일상에서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다. 꼭 필요하지만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그것. 그 역할을 잠시나마 대신해 주는 일. 마치고 좀스러운 앞뒤를 잘 아는 아름다운 단편소설 같은 삶. 내가 만들어낸 삶의 개수가 곧 통장의 잔고가 되는 비교적 정직한 삶. 마음을 파는, 진짜 마음은 없는 삶. 18

어쩌면 다른 인생,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람에게 뭔가를 바라고, 믿고, 또 아파하는, 그런 정말 꿈같은 꿈을 가끔 떠올린다. 18


가난하고 불쌍하고 착하게 사는 엄마 애인처럼 살지 않을 강재. 부자의 생활을 손에 넣을 거라고 말하는 강재이다. 방향을 잃어버린 강재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완벽한 애인, 가족, 친구가 되어주는 역할 대행 서비스. 비교적 정직하다고 말하는 강재의 마음을 읽게 된다. 진짜 마음은 없는 삶이 가져다주는 공허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를 그 절벽 끝으로 몰아간 것들도 떠올려보게 한다. 그리고 길을 잃어버린 강재의 그 발걸음들을 따라가면서 읽게 되는 대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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