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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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이다. 『인생』 소설을 읽고 작가를 알게 되었다. 8년 만의 신간소설이 출간되어 머뭇거림 없이 펼친 장편소설이다. 장강명 소설가의 추천글에도 기대하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장의 손에서 탄생한 가장 '위화적인 순간'을 만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독한 한파에 돌도 안 된 딸을 안고 동냥젖을 먹이고자 언제나 엽전 한 닢이 놓인 오른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던 한 사내가 있다. 인간 세상과 동떨어진 듯 아무 표정이 없었던 린샹푸이다. 어떤 사연이 있어서 엄동설한에 한파 속에서 낯선 마을에 서 있는 것일까? 그가 찾아다니는 원청이라는 마을을 찾을 수 있을까? 왜 그 마을을 찾아다니고 있을까?

책장은 전혀 무겁지 않게 빠르게 쉼 없이 넘어가는 소설이었다. 어느새 이 소설의 마을에 머물게 된다. 깊게 빨아들인 원청 소설에 며칠 동안 소설의 배경과 시대에 머물렀던 날들이었다. 출간 1년 만에 150만 부가 판매되고, 전 세계 20개국 판권 계약이 된 장편소설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소설이다.

위화 소설임을 이 소설에서도 만나게 된다.

궁합과 운명이 잘 맞나 봐요 82

딸을 낳을까 봐 걱정. 성별을 바꾸는 방법 78~79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떠나갔다... 그 모든 게 인연이고 운명이라고 결론지었다. 67

다 운명이지 536

운명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대의 문화들도 등장한다. 전족, 남존여비 사상, 민며느리, 데릴사위,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여자, 구박하는 시어머니, 민며느리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시대의 문화에 흡수되어 순종하며 순응한 이들이지만 누가 이들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을지 생각하게 한다.

가난이라는 묵직한 무게는 그들이 인생을 알기도 전에 민며느리와 데릴사위라는 제도로 이용하며 도구로 사용된 존재가 되고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시아버지도 데릴사위였지만 아내를 공경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아들은 글을 가르쳤고 민며느리인 샤오메이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남존여비 사상이 얼마나 여성을 무력하게 하였는지 작품에서도 만나게 한다. 이 며느리가 사라지자 이 집안의 늙은 시부모는 온전하게 생활을 하지 못한다. 장사도 예전같지 않으며 점점 병환이 깊어지게 된다. 며느리가 이 집안의 살림과 요리, 장사까지도 모두 하였음을 소설은 전한다.

샤오메이는 글자를 읽을 줄 몰랐다. 407

민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욕먹고 얻어맞는 건 시진에서 아주 흔한 일... 견디다 못한 민며느리가 목을 메거나 우물에 뛰어든 일도 8년 동안 몇 번이나 보고 들었다. 455

6년 만에 처음으로 시어머니한테 사랑을 받은 듯해 소리 없이 울었다. 432

결혼식 날. 부모와 형제들은 ... 그들 다섯 명은 낯선 사람처럼 왔다가 낯선 사람처럼 떠났다. 428

음식에 관해 신나게 떠들면서... 계속 생선과 고기 요리에 관해 떠들었다. 그들의 낡고 오래된 초가 429

달걀 열두 개... 아이를 ... 순조롭게 낳는다는 의미 428

데릴사위. 시아버지. 가난한 집안. 남존여비가 당연한 시대. 아내를 무척 공경했고. 신문 읽기. 충실한 독자 413

작품은 독자들에게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가축을 읽고 울부짖는 사람들과 가족의 죽음에는 평온하다고 대비를 시키는 장면이 그중의 하나이다.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비통함에는 무게감도 상이하다. 그들이 울부짖는 이유는 배고픔과 생존과도 연결이 된다. 그 시대의 불안한 세상을 떠올리면서 읽게 한다.

가축을 잃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비통함과 달리 가족을 잃은 슬픔은 평온해 보였다. 35

청나라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설립, 군벌의 혼전과 토비의 난무, 총기 매매까지 도탄과 파탄의 시대에 작품은 우리들을 초대한다. 이 난세에는 농사를 지으면 토비한테 약탈당하거나 죽고, 토비가 되면 약탈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367쪽)

토비가 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잔혹성에 몇 번을 경악하게 된다. 이들의 고문 방식과 전투 장면은 <아웃랜드 시리즈> 넷플릭스의 전투 장면과 채찍질을 당하는 고문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인간은 무엇인지 늘 질문을 놓치지 않게 한다.



악함의 정도는 짐작하는 수준을 언제나 넘어선다. 오랜 역사의 기록물에서도, 서대문 형무소의 전시실에서도 고문의 방식과 도구들은 섬뜩하다. 이 작품에서도 사실적인 묘사와 참혹함에 아픔을 느끼게 된다. 외귀 병사들의 용감한 희생과 장렬한 죽음들이 작품에 등장한다. 반면 살고자 도망가는 사람들도 작품은 놓치지 않고 집필한다. 그들의 죽음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왜 죽어야만 했는지는 외귀 병사들과 희생된 많은 인물들의 이유들을 조목조목 살피게 한다.

묘비명. 민병단 병사. 장렬하게 전사 302

어떤 사람들은 짐을 메고 있었다. 도망가려 했던 사람들 300

유언비어가 퍼졌다. 더 많은 사람이 물에 빠지고 더 많은 사람이 가라앉았다. 살려달라는 다급한 울부짖음 187

외귀 병사. 용감한 희생 296

장도끼 토비. 무척 포악한 성격 375

장도끼. 7년 동안 아내를 일곱 명 두었고 7년 동안 아내를 일곱 명 죽였다. 289

토비였던 장도끼라는 인물은 놀라웠다. 잔혹함은 상상을 넘어섰다. 그리고 대조적인 인물인 천융량이라는 인물이 아들과 나누는 대화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아들이 토비 두 명을 다 죽이자는 말에 그는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구하려는 거라고 아들에게 가르친다. 잔인무도한 토비니 둘 다 죽여요. (아들) 절대 안 돼. 우리는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구하려는 거야. (아버지) (333쪽)

왕 선생과 장 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된다. 남의 위기에 자기와 관련 없다는 표정으로 행동하는 모습까지도 작가는 놓치지 않고 소설에서 다루기 때문이다. 무자비한 인간 군상도 많이 등장하지만 따뜻함이 변함없이 흐르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스님의 어머니의 모습, 평안을 기원하면서 붉은 끈을 묶어주는 사람, 5년 동안 친구였던 당나귀를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순간에 보여주는 따뜻한 모습과 행동, 한파에 젖을 먹여서 살린 100여 집의 사람들, 엄동설한에 죽을 대접한 천융량과 리메이렌의 친절함, 마을 사람들을 토비에게서 구하고자 장렬하게 전사한 외귀 병사들이 그러하다.

100여 집의 젖을 먹고 자라서 린바이자입니다. 린샹푸 딸의 이름 의미 134

천융량의 진솔함과 리메이렌의 친절함 122

엄동설한에 죽이 어떤 의미... 자신의 목숨 일부를 그에게 나눠준 거였다. 123

5년동안 당나귀가 친구 93

장 선생은 자기와 관련 없다는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며 떠났고 245

남의 위기나 노리는 놈 같으니 245

평안을 기원. 붉은 끈을 묶어주었다고 233


아프게 읽은 소설이다.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약탈하고 살육하며 술과 음식, 여자를 대접받는 이들이 등장한다. 토비와 군인들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아이의 죽음에 자신의 몸을 던지며 지키려고 울부짖는 많은 이름 없는 여인들도 소설에서 만났다. 이들의 죽음은 덧없는 허망한 죽음으로 기록된다. 작품으로 끝나는 역사가 아님을 알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편도 작품 인물들에게 등장한다. 아편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했는지 숨은 의도는 무엇이었는지는 <동물, 채소, 정크푸드>책에서 읽었기에 이 내용까지도 떠올리면서 이 작품의 인물들이 아편을 접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장면이기도 하다.

기녀들. 피를 흘리기도 하고 탈골되기도 했으며 숨이 간당간당하기까지 했다. 198

소대장들과 분대장들. 사병들

사병 대부분은 홑옷만 입고 있었다. 한파. 194

전쟁으로 참혹해지는 많은 이들, 희생된 많은 이들의 이야기이며 일어나서는 안되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도 전쟁이 일어나고 일으키고자 욕망에 눈이 먼 지도자들이 넘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바짝 다가서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품의 고문 방식, 전투 장면, 무고하게 희생된 많은 평범한 농민과 사공들, 상인들이 곧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기녀들의 희생에도 아프게 읽은 작품이다. 무엇도 귀하지 않게 대하는 이들이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지, 명령도 쉽고 복종도 쉽고 살인도 쉽게 저지른 이들이 소설에 자리한다. 그들에게 희생된 무수한 이들의 묘비명을 기억해야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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