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 - 그림의 길을 따라가는 마음의 길
장요세파 지음, 김호석 그림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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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세파 수녀, 김호석 화백 수묵화의

은유, 여백, 정신성을 탐사하는 세 번째 여정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사물,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지 않는 화백의 그림을 만났다. 그리고 장요세파 수녀의 깊은 관조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몇 번을 놀라워하면서 그림을 다시금 살피게 한다. 그림을 관찰하는 힘, 관찰하는 시간의 온전한 흐름을 이 책을 통해서 여러 번 배운 듯하다. 세 번째 여정이라는 소개글에 앞선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도서에도 관심이 쏠린다. 하나의 그림이 가진 여백과 그림이 건네는 의도를 오롯이 느끼는 시간을 가져보게 한다. 그리고 저자의 음성도 귀 기울여 보는 멋진 하모니와 같은 책 한 권이다.

낯선 나라의 여행지에서 우연히 지나가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나이가 든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화려한 건물과 조명의 관광지보다는 변방의 여인처럼 묵묵히 살아가며 하루를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은 매우 인상 깊게 뇌리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그림들도 그러하다. 무엇 하나도 가볍지가 않아서 그림들마다, 글들마다 꾹꾹 담아 가는 시간들로 채워지는 순간들이었다.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해 밤 8시에 불이 커질 때까지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수도하는 수녀의 삶을 이 책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상에 대한 은유와 해학이 화풍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화백의 그림들은 여백의 의미와 터치의 의미, 생략된 이미지의 의미 등을 여러 번 관조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빨대. 2020>화백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빨대가 풍기는 눈물 냄새'라는 소제목은 아프게 그려지는 많은 사건들의 파노라마였다. 수많은 노동자들과 종업원들의 눈물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가슴 한구석이 아팠던 그림이었고 글이었다. 세찬 바람 속에서도 잘 견디고 잘 버티면서 모두가 살아남기를 기도하게 되는 책이다.

의료계, 금융계, 건축업계 온갖 산업분야에서 행방이 묘연한 눈먼 돈이 아무개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그 눈먼 돈이란 대체로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왔겠지요. 거기에 빨대를 꽂는 사람, 기업은 얼마나 될지 하느님만 아시겠지요. 발전의 그늘에 숨은 수많은 노동자, 업주의 갑질에 눈물짓는 수많은 종업원 그들에게 꽂힌 빨대가 이제 빠질 때도 되었습니다. 아니 빨대 자체를 아예 없애야 합니다. 219


또 하나의 작품도 기억에 남는다. <두 개의 혀. 2022>'뼈를 녹이는 혀'라는 소제목으로 만나게 된다. 말과 언어에 대한 기본이 무너진 세상, 현실을 저리도 왜곡하나 싶은 정치인의 교묘한 말장난의 홍수(62쪽)와 침묵의 중요성(62쪽)에 대한 글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맑은 언어, 맑은 생각, 상처를 보듬는 마음에서 나온 말, 자기희생의 언어 등을 열거하는 저자의 깊고도 깊은 음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

책장에서 다시 꺼내어 읽었던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책의 침묵이 다시금 떠올랐다. 기도와 침묵을 더욱 밀접하게 떠올리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길의 등불이 되어주는 책이었고 그림들이었다. 두 사람의 조합이 이렇게 멋지게 독자의 마음을 휘어감을 수 있어서 기억에 남는 책이 된다.


글은 길지 않다. 바쁜 일상 중에서도 책을 펼쳐서 그림 한 점을 감상하면서 한 뼘씩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책이다. 화백의 그림을 혼자서 보았다면 많이 부족했을 관람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이 있어서 그림을 더욱 바라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림의 언어를 찾는 기나긴 시간을 기꺼이 할애할 생각이다.

수묵화 화백인 김호석 님은 초상화의 권위자라고 소개된다. 성철 스님, 법정 스님, 한국 불교의 큰 스님들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작업으로 화제를 일으킨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책 이 책을 펼쳤는데 좋은 작품들과 글들을 만나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들이 되어준 책이다.

분별하며 살아가는 힘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도록 자극이 되어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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