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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평점 :
책표지 디자인이 강열하게 각인되었던 책이다. 책의 바탕을 전혀 모른 채 읽었다. 아니 에르노 소설들은 그렇게 한 권씩 같은 패턴으로 늘 궁금함으로 펼쳐들게 된다. 이 소설도 작가의 자전적 소설임을 잊지 않게 한다. 작가의 첫 문단이 이 작품을 정리하게 하는 하나의 맥이 된다.
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 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9
프랑스 문학을 읽다 보면 그들의 문화를 마주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문화들을 만나다 보니 차분히 작품을 만나게 된다. 작가의 솔직함과 그 당시의 감정들과 질투를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상황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감정들과 질투로 거의 광기에 가까운 상황들을 글쓰기로 기록하면서 우리들이 가지는 감정을 투영해 보는 작품이 되고 있다.
그 시기에 가졌던 욕망, 감각, 행위들을 추적하여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내가 겪은 대로의 질투를 써나가고 있다. 38
글쓰기를 통해 나의 강박증과 고통을 여기에 노출하고 있는 행위 43
여기에 기록되는 것은 더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그저 질투이며,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한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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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자신의 욕망과 질투를 '욕망'과 '질투'라는 감정으로 조명하면서 글쓰기라는 작업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분명히 전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놓쳤던 본질적인 감정을 느지막이 느껴보면서 그 고통에서 힘겨워하였지만 그 고통을 제대로 직시하며 더 좋았다고 집필한 작가의 사유까지도 놓치지 않게 한다. 글쓰기라는 작업은 자신이 놓친 것을 찾게 해주며 불행만이 가득한 것이 아니었음을 찾게 해주는 작업이라는 것도 이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된다.
그 고통이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 더 좋았다... 청소년기 이래 시야에서 놓쳐버린 본질적인 것에 몰두하게 된 듯했다. 50
이건 너무 파괴적이야... 고통이나 광기라고 할 만한 것이 내 안에 있었다. 65
질투를 하면서 경험한 것들이 얼마나 자신을 피폐하게 변화시켰는지도 작가는 솔직하게 많은 상황들을 나열해 준다. 그리고 고통으로 무너지는 자신과 광기에 가까운 상황까지도 작품에 고스란히 펼쳐놓는다. 질투라는 감정이 멈추는 시간이 도래하게 된다. 자신이 느낀 고통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 그녀에게 찾아오는데 그 순간의 깨달음도 작품을 통해서 전해준다. 자신이 느꼈던 고통과 질투는 진짜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수도원 기도하는 한 남자. 소리 내어 기도. 나의 고통은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 60
상대방과 다른점은 모두 열등한 것으로 바꾸어놓으며 자아를 지워버리는 질투라는 감정을 겪으면서, 나의 육체, 나의 얼굴뿐만 아니라 나의 활동, 내 존재 전체가 평가절하되고 있었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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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내용이 두껍지가 않다. 하지만 글쓰기를 향하는 작가의 깊은 의도는 이 작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전해지고 있다. 작가의 글쓰기라는 작업과 작품은 그래서 특별해진다. 질투라는 감정이 얼마나 자신의 모든 것들을 평가절하했는지 작품을 통해서 전해주기 때문이다. 질투가 보여준 감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광기스러운지, 자신의 깊은 내면까지도 마음껏 휘갈기고 있었는지도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집착> 제목만큼이나 책표지와 속지의 색상이 전하는 느낌을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작지만 단단한 책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글쓰기와 질투라는 감정을 펼쳐놓으며 이해할 수 있었던 진지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