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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ㅣ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평점 :
아니 에르노 작품들을 계속해서 읽게 된다. 이 책은 책 디자인도 작고 두께감도 두껍지가 않다. <사건>이라는 책 제목과 책표지 디자인은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작가의 작품인 <빈 옷장>과 그 외의 작품들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학시절 임신중절을 한 경험을 다른 작품에서 읽었기에 이 작품은 그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짐작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여성의 몸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한다. <시녀 이야기>을 바탕으로 한 <핸드메이즈 테일>시리즈를 보면서도 많이 질문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임신중절을 법으로 규제하는 세상을 살아간 여성들이 있고 지금도 있다. 여성의 몸을 법으로 억압한 역사 속에는 죽음까지도 각오하면서 비밀스럽게 혼자의 힘으로 낙태를 강행한 여성들이 존재한다.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의 작품에서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한 이 책은 역사 속의 여성들을 무수히 연결하게 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나는 은밀하게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36
뜨개바늘. 내가 하려는 일을 이미 수많은 여성들이 해 왔다는 사실 38
늘 그래 왔듯 임신 중절이 나쁘기 때문에 금지되었는지, 아니면 금지되었기에 나쁜지를 규정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우리는 법에 비추어 판단했고, 법을 판단하지는 않았다. 32
우리가 법을 어길 수밖에 없었던 모든 것이 대해서 72
여성이 몸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은 갈림길이 된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큰 거울이 된다. 작가의 작품들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들로 채워져서 독자들과 호흡하는 작품들이라 쉽게 잊히지 않는 작품들이 된다. 이 작품은 더욱 놀라움으로 읽은 작품이었다. 길을 잃고 수습하고자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는 젊은 여대생이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불법이었던 임신중절을 비밀스럽게 진행하고자 노력한 순간들과 도움을 주는 돈과 주소의 의미, 의사들의 대응 태도, 무지한 상황에서 아이의 탯줄을 자르는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지나게 된다.
나는 짐승이었다... 우리는 조용히 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말로 표현 못 할 장면이다. 희생의 장면. 65
일본. 중절된 태아를 미즈코, 물의 아이라고 부른다. 65
스스로를 짐승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리고 그 현장에 있던 두 여대생은 조용히 울고 있으며 중절된 태아를 물의 아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또 한 번 무너지게 된다. 너무 슬픈 장면이며 슬픈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여성이 감당하는 육체와 생명과 죽음의 순간들이 되기 때문이다. 함께 사랑한 상대는 그녀 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롯이 홀로 여성이 감당할 고통이며 슬픔이며 죄책감으로 오랜 시간 기억 속에서 자리 잡을 몸의 역사가 된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오랜 시간 그리워하고 미안해하며 힘겨운 날들을 숨죽여 보내는 여성들이 존재하기에 이 작품은 큰 의미가 되는 기록이 된다.
성당. 고해. 신부. 범죄자 일 뿐이었다. 성당을 나오며 나는 종교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았다. 76
임신 중절이라는 개인적 사건에 작가는 예리한 질문을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한다. 법이 온전히 합당한 것이었는지 판단하지 않았던 시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해를 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범죄자라는 종교의 관점에 그녀는 종교의 시대는 끝났음을 인지하게 된다. 종교가 가져야 할 모습과 반하는 모습을 그녀는 자신의 고해라는 사건을 가져다 놓고 모두가 되짚어보게 한다. 예수의 기도와 예수의 가르침을 함께 상기하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범죄자가 아니라 법을 어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 이것은 모든 여성을 향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누구도 예외가 아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성의 목소리는 높게 외치는 아우성인 세상에 살고 있다. 여성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그들의 노력도 우리는 목도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녀가 노벨문학상 수상하면서 인터뷰한 내용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읽은 그녀의 작품이다. 왜 이 작품을 쓰고 있는지, 그녀에게 글쓰기가 가지는 의미와 그녀의 삶의 진정한 목표를 이 작품에서 듣게 될 것이다.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79
그녀의 작품들에는 언제나 그녀의 사회적 계급이 언급된다. 노동자 계급과 세대의 차이에서 그녀가 홀로 감당한 그 사건에는 분노와 슬픔, 고통과 고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녀의 글쓰기의 지표가 된 분명한 작품세계를 이 작품에서도 이유를 찾게 해준다. 임신 중절이 진행되는 세부적인 상황들을 이 작품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환자가 다급하게 질문하며 의사에게 간청하는 순간에 그녀가 들었던 고함소리도 기억에 남는 대화이기도 하다. "나는 빌어먹을 배관공이 아니야!" 젊은 외과 의사. 소리를 질렀다. 질문하며 간청하는 환자에게. 세계와 나의 계급을 나누고,... 의사들은 노동자들과 중절한 여자들에게서 분리시키고, 지배자들과 지배받는 이들을 분리한다. 68~69
노동자와 소상공인 기정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첫 번째 수혜자 22
그때 내 안에서...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 22
많은 소설들이 임신 중절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 일이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까지는 세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27
<초현실주의 문학에서 여성의 역할>논문. 형태가 없는 관점 74
임신 중절을 하고 위험한 상황에 있었던 사건과 이후 그녀가 자유롭지 못했던 정신적 상황까지도 쥘 베른의 소설 <달나라 탐험>의 개의 시체와 아기 인형은 심적으로 힘겨워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임신 중절이라는 수술이 얼마나 큰 고통을 감당하는지도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외에도 신체의 신비는 언제나 놀랍게 한다. 임신 중절을 하였는데도 젖이 도는 이야기도 놓치지 않고 기억에 남는 내용이 된다.
작고 하얀색의 아기 인형이 떠다녔다. 쥘 베른의 소설 <달나라 탐험> 속 우주 비행사들을 계속해서 쫓아다니며 하늘에 떠다니는 개의 시체 같았다. 74
자연은 부재 속에서도 기계적으로 계속 일을 했다. 젖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