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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1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수치스러운 것은 그들이 그에게 살도록 강요한, 그들 모두에게 살도록 강요한 방식이었다. 308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발표가 나면서 그의 작품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3작품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펼친 작품이다. <낙원>은 두께감은 중간 정도이지만 활자 크기가 작고 꾹꾹 눌러서 담긴 느낌을 받게 한다.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작품은 도입부터 충분하게 설레게 하였다. 그리고 잰걸음으로 읽게 하였다. 무심하게 스칠 수 없었든 문장들이 무수히 안겨졌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까지 기대감을 머금게 한 소설이다. 읽다가 여러 번 멈추면서 작가에 대한 소개글을 찾아서 읽게 했다. 빠르게 읽지 못했던 이유들을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빼곡한 문장들이 답해준다. 그 문장들을 무수히 여러 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여러 날 많은 순간들이 이 작품과 함께 거닐었던 시간들이었다.
위험이 도사리는 순간 앞에서도 동요 없이 신을 찾는 상인이 여러 번 등장한다. 아저씨라고도 불리기도 하며 주인님이라고도 불리는 거상이다. 그가 건네는 동전들을 기다렸던 소년이 있다. 그 동전이 주어진 의미, 소년에 투영된 아저씨 상인은 온전한 참모습이었을까? 하나씩 벗겨지는 진실들에 놀라움을 멈출 수 없었던 작품이다. 투자와 채권자, 빚진 부모들과 어린 자녀들. 신을 향하는 목소리와 습관적인 기도들은 진정한 기도였을까? 부모에게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갖게 되는 상실감과 좌절감, 무력함은 어떻게 치유되고 보상받을 수 있을까?
당신이 우리를 소유하듯 사람들을 소유하는 것도 잘못이었습니다. 315
약자를 못살게 구는 자들이 여전히 사람을 깔고 앉아 더러운 방귀를 뀌어대는 한... 292
당신은 그분의 노예였잖아요....... 지금도 그분의 노예고요... 자유를 준다고 할 때 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죠? 291
저 안에 있는 사람이 이것보다 더 자유로운 것을 나한테 줄 수 있겠니? 292
자유는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야. 292
생명이 있는 어린아이가 거래된다. 이유도 모른 채 유린되는 여자아이의 모습과 갇힌 새장에 살아가는 속박된 노예들의 삶이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등장한다. 주인이 있고 그들의 노예가 존재한다. 법으로 규정하지만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 모순적인 사회의 법도 언급된다. 자유를 주겠다는 주인의 제안에 자유를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묵묵히 일하는 정원사 노인의 대화는 놀라움을 전한다. 하지만 곧 낙조하는 현실이 되는 문장도 마주하게 한다.
저들이 행복해하는 걸 봐라. 물가로 가는 어리석은 짐승 무리 같구나. 우리 모두는 저렇다. 무지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편협한 존재들이다. 저들이 뭣 때문에 흥분하는지 아니? 174
돈을 주고 여자들을 데려왔고. 그들과의 사이에 아이들이 백 명이나 태어났다는 소문... 그 숫자도 정확히 알지 못했던 게 틀림없어... 그 많은 어린 왕자들 때문에 걱정... 그 자신도 솜에 친척 한두 명의 피를 묻힌 사람이지. 그들의 술탄이 그런 것들을 다 하고도 명예만을 얻었는데 그들이라고 안 될 이유가 뭐야? 175
<페스트의 밤>, <족장의 가을> 작품이 떠오르는 장면들도 있었다. 인물들이 목도하며 경험하는 것들과 함께 대화하는 장면들도 매우 인상적이다. 어리석은 짐승, 편협한 존재들이라고 말하는 이유들을 짚어보게 하는 작품이다. 겹겹이 쌓여가는 우리들의 역사는 기억되고 사유되어야 하는 것이다. 유명한 작가들이 작품에서 토로하는 것들의 이유를 이 작품에서도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그의 부모... 자신들의 자유를 위해 수년 전에 그를 버린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그가 그들을 버릴 차례였다. 305
속박된 자신의 삶을 벗어나고자 유수프는 여러 인물들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들에게서 듣는 대답들도 기억하게 한다. 그들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끝없이 비교되며 부족했던 유수프의 모습은 서서히 자신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의 한 자락이 된다. 무책임한 부모들이 연거푸 작품에 등장한다.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삶을 견디고 감당하기에는 힘겨운 이야기들이 짐작된다.
자신의 비겁. 개들은 똥을 먹고 사는 자를 보았을 때 즉각 알아보았던 것이다. 322
총과 전쟁, 유럽인들의 무자비에 대해서도 작품은 다루고 있다. 역사를 들쳐보고 있노라면 부와 성장을 거듭한 강대국들의 흔적에는 오점처럼 남겨진 짙은 흉터들이 기억되고 추억된다. 그 역사들은 문학에서도 비켜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경고하며 지켜내고자 한 것들이 무엇인지 이 작품을 통해서도 보게 한다. 마지막 장면의 개와 서로 마주 보는 인물의 깊은 사유가 압도적이다. 그 장면에 떠올리는 깨달음이 우리 사회를 향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주인님의 손을 잡고 찬양하는 노예의 몸짓과 울림들에 무언의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붙잡혀 있는 것으로부터 그들이 느꼈던 안도감은 이제 끝났다. 그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고자 했다. 자유롭게 평원을 돌아다니면서 그들한테 들러 그런 삶을 시작하도록 어려운 교훈을 가르쳐준 것에 고맙다고 할지도 305
유수프의 비상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국과 독일의 전쟁의 소용돌이가 감도는 상황까지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유수프 청년이 기억하고 경험한 많은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소설이다. 멋진 작품이며 수상한 이유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장편소설 <낙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