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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합본 특별판)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은 <섬에 있는 서점>에 등장해서 읽게 되었다. 작품의 초반부터 푹 빠져서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도 관심을 가지게 된 소설이다. 기차와 눈, 남동생의 죽음은 시작부터가 묵직하게 다가서면서 소녀가 훔치는 책 한 권은 이야기의 첫 단추가 된다. 기억조차도 없는 아버지에 대한 조각난 이미지는 공산주의자라는 낱말이 붙어있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은 생사조차도 모르는 순간으로 남겨지게 된다. 소녀를 키워주는 양부모들과의 첫 만남도 매우 이색적으로 그려낸다. 매일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녀의 곁에서 밤을 지켜주는 양아버지는 매우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죽음의 신에게도 그러하였듯이 작품을 읽는 모든 순간들에 양아버지가 보여주는 사랑과 말 한마디들은 특별하게 남는 순간들로 기억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들은 그런 파괴를 확대하는데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다. 162쪽
이 나쁜 새끼들... 이 예쁘장한 나쁜 새끼들... 내 속의 찰과상이 보여?... 나를 침식하는 게 보여?...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누릴 자격이 없으니까. 745쪽
독일이 배경이다. 히틀러와 유대인. 제2차 세계대전과 복종과 폭력, 전쟁의 상처들은 이 소녀가 생활하는 이 마을에도 매섭게 할퀴어가고 파괴할 뿐이다. 부자들의 거리와 가난한 사람들의 거리. 노란별과 유대인, 수용소로 향하는 유대인 행렬. 배급제와 지속되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나날이 배고픔들이 넘쳐흐르면서 마을의 배고픈 소년, 소녀가 비밀스럽게 행하는 도둑질도 등장하기도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녀는 학교에서 조롱과 비난을 받는다. 양아버지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둘만의 돈독한 사랑은 단단해진다. 그들만의 비밀, 그들만의 의리들. 폭격이 시작되면서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소녀는 책을 소리 내어 대피소에서 읽으면서 함께 공간에 있었던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말이 가진 것, 글이 가진 것, 책이 가진 힘은 위기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기회가 되기도 한다.
명령을 받고 싶은 자, 명령을 하고 싶은 자. 소우주가 적절하게 형성되기도 한다. 작가는 매우 촘촘하게 아이들의 무리에서도 인간이 유지하고자 하는 권력의 성격들을 매만진다. 제복과 행진, 명령까지도 소년단을 통해서도 보여준다. 가난의 냄새, 부자의 사치들을 양어머니의 노동과 소녀의 노동을 통해서도 놓치지 않는다. 부자의 집들은 어여쁘고 혐오스러웠다고 소녀의 시선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집들은 어여쁘고 혐오스러웠다. 743쪽
전쟁이 가지는 추한 모습들이 이 소설에서도 대면하게 된다. 부상병은 살아서 돌아왔지만 자신의 형의 죽음을 직접 목도하면서 힘겹게 살고자 하는 의지까지도 무너지게 한다는 것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혼자만이 경험한 처절한 경험들은 결국 스스로 죽음의 신을 부르게 한다는 사실 말이다. 더는 못 견디겠어요. (돌아온 병사.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 722쪽
전쟁이 자국민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피해를 남기는 것인지 작품의 가정들을 통해서도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 끝이 나는 것일까? 유대인 행렬이 지나갈 때 빵조각을 준 독일인에게도 행하는 폭력적인 군인의 모습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장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군대가 하는 짓이야말로 도둑질이지. 너희 아버지를 데려가고, 우리 아버지를 데려가는 거... 저 위의 모든 부자 나치들 692쪽
책도둑이라는 멋진 작품을 한 권으로 만난 양장본이다. 지루할 틈도 없고, 웃음을 남기는 내용도 있고, 감동을 주는 내용도 자주 만났던 소설이다. 거친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양어머니이지만 유대인을 숨겨주는 것과 살리려고 노력하는 모습과 남편이 살아서 전쟁에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 학교에 찾아와서 소녀에게 유대인이 깨어났다고 알려주는 센스 있는 장면까지도 모두 떠올리게 하는 여인이기도 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해준 멋진 작품 <책도둑>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도 만나볼 생각이다.
글쓰기가 무엇인지, 말과 글의 무게와 질량까지도 느끼게 해준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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