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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가모의 페스트 외 - 옌스 페테르 야콥센 중단편 전집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49
옌스 페테르 야콥센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평점 :
베르가모의 페스트 외 /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엔스 페테르 야콥센 중단편 전집
여러 편의 중단편 작품들을 읽은 책이다. <베르가모의 페스트>는 첫 작품이었는데 매우 강열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전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공포와 위협, 인간성을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작품은 그 현장을 전해준다.
악덕이 창궐했다. 인간의 죄악이 모조리 발명된듯했다. 10쪽
죽음이라는 공포가 밀려온다. 보이지 않는 균과 전쟁을 치르는 인류는 어떤 양상을 보였던 것일까?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고스란히 보인다. 이 작품에서도 두 가지 부류의 인간들이 조명된다. 구두장이와 재단사라는 인물과 신성 모독을 체계적으로 퍼뜨리는 철학자 두 명이 단편적인 예가 된다. 선택의 길에서 선택한 것들. 탐욕스럽고 방탕한 삶을 추구하면서 시선을 잃어버린 눈들과 날카로운 눈들이 묘사된다. 대조적으로 한 무리가 보여주는 극적인 선택들과 행렬들의 움직임들도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독자들도 함께 주시하며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작품 속의 인물들뿐만이 아니라 현시점에서도 우리는 많이 목도하기도 한다. 작품이 곧 현실이며, 현실이 곧 작품 속에 등장한다. 그래서 작가의 시선과 작품은 특별해진다.
이 세상에서는 항상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굽힐 수밖에 없다. 85쪽
사랑의 질량도 잠시 떠올려보게 한다. 더 많이 사랑하고 있나요? 자신에게 묻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한다. 사랑이 없는 건조한 삶보다는 사랑이 흐르는 삶이 더 좋고, 사랑이 더 넘쳐서 먼저 굽히는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되묻는 시간도 가져보게 한다. 짧은 단편들이 이어지지만 가볍지 않고 묵직하게 여운을 남겨주는 시간이 되어준다.
다만 그리운 것이 있다면 그곳에서의 일상적 노동뿐이었다. 64쪽
일상적 노동을 그리워한다. 적어도 반복되는 일상적인 노동의 가치에 눈이 띄어서 소중하게 간직하며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삶도 단단해지고 콧노래도 부르면서 일상의 노동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문장을 마주하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오늘도 많이 움직이기. 나의 하루를 사랑하자라고 자신에게 대화를 하면서 시작하는 하루가 참 소중하다.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면서 가치를 마주하고 사랑하면서 땀 흘리는 일상의 노동을 이 작품의 문장에서도 마주할 수 있었기에 참 좋았다.
자연의 친구였다. 자연을 후원했고, 자연을 보호했다. 정원은 타락한 자연이나 다름없었다. 자연에는 양식이 있을 리 없었다. 자연은 구속되지 않는 존재이자, 타락하지 않는 존재였다. 자연상태는 보물이었다. 보배 같은 존재였다. 118쪽
자연을 좋아한다. 숲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하고 식물도 좋아한다. 새소리와 흐르는 물소리, 꽃향기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잠시 나열해보게 한다. 정원이 가지는 의미를 타락한 자연이라고 생각한 작품의 문장도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은 진정한 아름다움일까? 야경과 건물의 조형물을 보면서 멋지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척도가 다를 뿐이다. 저마다 느끼는 찬사가 다른 대상이기도 하다. 이 책에 소개되는 한 인물은 자연을 무한히 좋아하고 있었다. 파괴되지 않고 보존하는 자연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큰 가치가 된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는 놀라운 자연의 힘. 자연의 선물을 잠시 떠올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발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훼손되는 우리의 자연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회복되는 시간은 얼마나 더디게 찾아오는지 인간들은 너무나도 큰 어리석음으로 대응하기도 하기에 더 가치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잘 배우고 인지하는 교육도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소설이었다.
인위적으로 꾸민 전망 벤치나 언덕에서 보는 자연이 아니에요. 일상의 자연. 그런 자연을 사랑하세요? 171쪽
색깔 속에, 움직임 속에, 형태 속에, 그리고 형태 안에 사는 생명체 속에는 무언가가 있어요. 수액, 비 와해, 바람에 쌓인 모래, 소나기에도 뭔가가 있어요! 173쪽
인간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동물들, 보지 못하는 것일 뿐 이 세상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그러한 세상이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서 인지하게 된다. 바람과 비, 햇살 속에서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생명의 움직임들을 생각해 보게 한다. 이야기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작가는 진중하게, 어렵지 않게 작품으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두껍지 않고 어렵지 않은 소설이지만 소중하게 주워 담고 모았던 문장들이 제법 많았던 작품이다. 기억에 남을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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