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옷장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너 당했어. 나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그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부르주아들, 그 좋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지금 뱃속에서 내 수치심의 조각들을 힘겹게 꺼내는 것이라면, 나를 증명하기 위해, 구별되기 위해, 이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었다면... 임신 그러니까 그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214~215쪽

처음 책을 읽기 전에 책표지를 본 느낌과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책표지를 한동안 바라보는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책 제목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책표지 디자인의 여인의 모습과 책표지의 색감이 가지는 채도의 의미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작가의 이야기들은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그 공간에 함께 머무르면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 사람들의 소음, 생활이 주는 냄새, 분주함과 어수선한 식료품점과 카페의 동선들, 오고 가는 손님들이 주고받는 대화들과 시선들과 특이한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옷장이 있다. 그 옷장에 넣어야 할 옷들은 과연 있었던 것일까? 왜 빈 옷장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그곳을, 그 사람들을, 손님들을 떠올리는 것이 역겹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세계에 있지 않으며, 그들과 어떤 공통점도 없다. 50쪽

그녀는 사립학교에 보내졌다. 준비된 학용품들과 옷을 입고 학교에 매일 아버지의 자전거에 타고 오가는 길. 걱정도 많았던 부모님은 딸을 사립학교에 보냈다. 거주하는 곳에 사는 이웃들은 공립학교를 다녔다. 그녀가 다녔던 학교에서 그녀가 경험하는 것들은 풍습도 달랐고,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도 달랐다. 그들의 부모도 달랐고 사유하는 모든 것들이 달랐기에 그녀는 혼돈과 모욕도 당하면서 스스로 하나씩 새롭게 깨우쳐야 했다. 그녀가 스스로 정한 목표들을 하나둘씩 이루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는 만점을 받는 1등 학생이 된다. 그녀는 여전히 지각을 하지만 학교 선생님은 성적이 만점이기에 그녀를 부드럽게 포용해 준다. 그녀의 이중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현실 세상과 학교생활은 크나큰 간극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무수히 현실 세상의 부모님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 부모들을 이해하기도 한다. 그녀의 가게를 확인하러 오는 학교 학생들 앞에서 숨어들어간 그녀의 감정들을 전혀 읽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생생하게 소설에는 그려진다. 그녀는 혼자서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이중생활을 계속 이어간다.

전학생 이름이 뭐지? 선생님이 묻자...

낙태 시술자는 내 이름을 묻지 않았다. 57쪽

이야기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흐르는 그녀의 임신과 낙태에 대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야기된다. 무수히 자신을 향한다. 그리고 성장한 환경들과 영향력을 주었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상기한다. 작품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녀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품을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들 중에서 두 번째로 읽었던 작품이라 더욱 밀접하게 작품을 읽었던 것 같다. 너무 사실적이라 놀랍고 감정들까지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작품은 놀라운 흡입력으로 책장을 넘겼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그녀의 옷장이 비었던 이유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짙은 채도로 책표지가 말을 건네고 있다. 어두운 밤거리에 홀로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빈 옷장>이라는 작품으로.

나는 벗어나기 위해 눈을 감아야만 했다. 먹는 척, 읽는 척, 어딘지 모르는 호텔에서 자는 것처럼 해야 했다. 무엇보다 보기 흉한 것, 더러운 것, 너덜너덜한 것을 보지 말아야 했다. 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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