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디트 - 의적의 역사
에릭 홉스봄 지음, 이수영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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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의 ‘밴디트 - 의적의 역사’는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그리고 앞으로도 어떻게 다뤄질지 논쟁적인 부분이 많은) ‘산적’과 ‘의적’(물론 둘의 구분은 모호하다)에 대해서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그의 중요 저작(혁명 / 자본 / 제국 / 극단의 시대)에 비해서는 대작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읽어낼 수 있겠지만 홉스봄 본인으로서는 많은 애착이 있는 저작인지 새롭게 많은 내용이 추가되고 비판을 받았던 부분에 대해서 해명과 보완을 하기도 한 작품이다.

 

기본적으로 당시 사회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서 풀어내는 ‘산적 / 의적’에 대해서 홉스봄은 자본주의로 변화되는 시대적 맥락과 함께 그들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단순한 범법자들로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결과물로서 다뤄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었지만 그들을 통해서 일반인들이 느끼고 있었던 열망이 어떻게 해소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풀어내며 지금 대중들이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며 해소하는 심정과 그들을 바라보던 당시의 사람들의 시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다.

 

몇몇 부분에서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다른 방식으로도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분석들을 제시하기 때문에 단순히 ‘산적 / 의적’에 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서 이 심연과 이면에 있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보다 의미있게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기도 하고,

반론을 제시하고 싶기도 하겠지만... 역시 홉스봄! 이라며 감탄하게 만든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정의 없이 살아갈 수 있겠지만, 희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문장이 유독 기억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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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보엠
앙리 뮈르제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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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오페라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명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무식한게 자랑이 아니고,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도 자랑이 아니기 때문에 오페라와 연극에 대해서 문외한인 내가 라보엠을 읽는 다는 것은 썩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오페라 라보엠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원작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적절한 비교는 힘들 것 같다.

오페라 라보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은 읽어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하지만 그것을 떠나서도 소설 라보엠은 꽤 흥미로운 작품이다.

최근에 자유분방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자주 쓰이는 ‘보헤미안’에 대해서 그들이 어떤 생각과 삶의 방식을 갖고 있었는지 가장 적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원제가 ‘보헤미안의 생활정경’인 이유는 심심해서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니다).

 

지금은 멋스럽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처럼 다가오는 보헤미안들이 원래를 얼마나 (보는 이에 따라서) 구질구질하게 살아가고 별것도 아닌 것들이 젠체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책에서 보여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네명의 주요 캐릭터를 통해서 보헤미안의 삶과 그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로 꾸민 이 작품은 단편들로 이어졌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으며 (그다지 비극적인 느낌은 들지 않지만) 로돌프와 미미와의 슬픈 사랑도 작품의 말미를 장식하며 시종일관 유쾌하며 서글픔이 감도는 그들의 삶에 보다 다채로운 색채를 가미하게 만든다.

 

최근에 와서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되는 보헤미안들의 삶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오페라 라보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은 작품이 될 것 같으며 사랑과 삶 그리고 예술에 대한 자유분방한 삶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괜찮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런 것들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그런 작품으로 다가오지만.

그래도 간간히 삶과 사랑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은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참고 : 그럼에도 한국에서 자기가 보헤미안이라고 생각하면서 까불거리는 것들을 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은 여전하다. 겉멋만 잔뜩 들어간 인간들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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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3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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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정도만 읽어봤기 때문에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에 대해서는 전혀 사전 지식이 없이 읽게 되어서 제대로 작품을 파악하지는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책을 읽기 전에 예상한 것과는 다른 내용이기 때문에(책에 적혀있는 ‘러시아의 조지 오웰’이라는 말은 최대한 무시하고 작품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조금은 의욕을 잃고 읽게 되었다.


광고 문구는 그저 광고 문구이기 때문에 조지 오웰이라던지 디스토피아와 같은 단어에 눈길이 끌려 책을 읽게 된다면 조금은 지루함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스탈린 시대의 소련 사회가 어떠했는지,

점점 더 폐쇄적이고 경직되어가는 사회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플라토노프의 책은 소중한 선물이자 자료가 될 것 같다.


사실주의... 라고 말하기에는 덜 건조하고 작품 전체에 조금은 독특한 느낌을 갖게 만들고 있기에 역자 해설에서 번역을 하기 힘들었던 부분에 대한 내용이 이해가 가게 되었고 번역자의 힘겨운 노력은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탈린 시대의 소련 사회에 대해서 특별히 알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하지만 당시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작품의 제목이며 중요 배경이기도 한 (작업현장을 말하는) 구덩이가 어떻게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이상을 말해주고 있고, 작품이 진행되면서 그 이상이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를 느낄 수 있으며 마지막에 자신들의 이상을 그곳 깊은 곳에 묻으며 그들의 이상과 좌절 그리고 실제 소련 사회의 이상과 좌절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플라토노프는 사회와 자신의 작품을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있으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작품을 읽는 도중 그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문학이 사회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게 될 때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는지 말해주는 좋은 사례인 것 같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우울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읽은 나로서는 당황스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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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리콘 - 노먼 린지 일러스트판
페트로니우스 지음, 강미경 옮김, 노먼 린지 그림 / 공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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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부터 ‘사티리콘’과 페트로니우스에 대해서 알고 있지는 않았다.

단순히 책 표지가 마음에 들고 어쩐지 갖고 싶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구입하게 되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설이나 풍자와 해악의 원형으로 불리는 책이라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단순히 겉보기에 마음에 들어서 구입하기는 했지만 책을 읽어보니 꽤 쓸만한 책을 구입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책을 출판할 때 미적인 감각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일까?

 

작품은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기승전결의 구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매력을 느끼기 힘들지도 모른다. 소실된 부분이 많은데, 오래된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작품이 갖고 있는 노골적인 조롱과 야유 그리고 성적인 내용 덕분에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은 엔콜피우스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을 경험하며 그들의 모습을 가식 없이 과감하게 다루고 있다. 작가 페트로니우스는 모든 이들을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불쾌함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의 글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을 조롱하고,

성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성에 대한 개방성이 지금보다 더 크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작품 주인공이 우선 양성애자이기도 하고(초반 부분에는 동성애 동료도 있었다), 그가 성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은 지금보아도 꽤 흥미롭다고 말하게 만든다.

현대 작가들 중에서도 몇이나 양성애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그는 조롱을 하면서도 때로는 진지한 얼굴로 삶에 대해서 바라보기도 한다는 점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증오하던 이의 죽음을 경험하며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고 말을 건네기도 하면서 그의 작품은 웃고 떠들기만 하는 작품이 아닌 삶에 대한 통찰력도 보여주고 있다.

 

조롱과 풍자

냉소와 비판

그러면서도 삶에 대해서 별 수 있냐는 듯한 씁쓸한 시각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시선이다.

 

역사로서의 로마가 아닌 삶으로서의 로마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순간을 선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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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발간 40주년 기념 한정본 (양장본)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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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광장’은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었지만 딱히 읽고 싶은 마음을 실행에 옮길 정도로 관심을 갖게 만들지는 않았었다. 운이 좋게 40주년 한정판을 구하게 되어서 읽게 되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중에 읽겠다며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 같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문학적 성취이자 (아마도) 최고의 문학적 성취이기도 할 것 같은 이 작품에 대해서 수많은 평론과 분석이 이뤄졌고, 한정판에는 최인훈 본인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과 개작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해주고 있으며, 그의 작품에 대한 분석과 개작에 대한 분석을 두명의 평론가가 해주고 있기 때문에 보다 깊이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최인훈 본인과 평론가들의 분석을 통해서 작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들로 인해서 해석의 자유가 많이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지적을 제외하고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 말을 하면 될 것 같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와 전쟁 이후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회상에 잠기는 주인공 이명준의 시각을 전지적 시점에서 다뤄지고 있다.

 

읽은 다음에 느낀 점은 과연 우리는 얼마나 주인공 이명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가? 이다.

우리는 이명준이라는 사람이 느꼈던 고민과 좌절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보다 더 현실에 수긍하고 고민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지만.

 

자본주의 / 사회주의 사회에 비판과 개인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이명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짜임새 있게 풀어낸 최인훈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크게 변화되지 않는 사회구조는 여전히 이 작품이 지금 현재에도 유효한 질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양쪽 사회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최인훈의 통찰력을 느낄 수 있으며 이명준 개인의 고뇌와 방황에 대해서는 무언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그와 동일한 고민이 아닐지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심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명준의 행동을 보면 조금은 애매한 느낌도 들게 만든다.

그는 기본적으로 현실에 대해 냉소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실과의 긴장과 현실과 이상에서 좌절을 겪게 되었을 때, 그것을 이겨내기 보다는 회피를 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회피의 수단을 최인훈은 ‘여성과의 사랑’을 통해서 회피하도록 만든다.

 

결국에 그가 선택한 ‘죽음’이라는 것을 비극적이거나 허무적인 죽음으로 풀어내기 보다는 열린 결말과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풀어내려고 하는 것 같지만... 그다지 적절한 평가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중립국을 선택한 그 순간이 이미 그가 분단된 한국의 현실에 대한 냉소와 함께 자멸에 빠지는 결말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중립국을 선택한 순간 결정된 결말이었다.

 

남한에서 살아갈 때 대화를 나눴던 교수와 북한에서 아버지에게 토해내듯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장면은 여전히 흥미롭고, 그가 그들에게 말했던 현실에 대한 분노가 결국 아무런 변화 가 없고 좌절에 빠지게 되었을 때의 상황은 그가 제기하는 문제와는 다르지만 지금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로 울분을 토하며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느낌이 들 것이다.

다른 문제를 지적하겠지만...

 

개작을 거듭하며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최인훈 개인의 노력도 대단하겠지만, 여전히 이 작품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효한 고민과 질문을 해주고 있다.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뒤늦게라고 읽게 되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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