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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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여러 니체의 저작들을 읽어왔지만 언제나 읽는 과정은 더디고 힘들기만 했던 것 같다.

 

한번이라도 쉽게 읽혀지거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인지 항상 관심을 갖게 되고 읽고 싶은 의욕을 갖게 되면서도 막상 책을 펼치게 되면 그런 기분들이 순식간에 식어지게 되는, 항상 어려움을 느끼고 괴로움으로 가득한 책읽기가 되는 것 같다.

 

섬광처럼 번쩍거리고

쉼 없이 생각을 망치질하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또한 어렴풋하게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을 뿌리까지 쫓아가 흔들어 놓기는 하지만 정작 읽는 도중에는 그가 말하려는 생각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어리둥절해 하면서 추측하게만 만들 뿐이다.

 

나약해지지 말고 강해지도록 자극받고

흔들림 없이 의지하기를 독촉당하지만

정작 어떻게 극복해내야만 하는지 그리고 무엇에 충동질을 당해야 하는지는 막연하게만 느껴지게 된다.

 

그나마 읽기 편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글들이라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알기가 쉽지는 않고 이해되는 것도 부분적이기만 할 뿐이다.

 

다만 간혹 느껴지는 깊은 통찰력 때문에 그의 글을 여전히 읽고 싶고 이해하고 싶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는 가슴 속 깊이 그의 논의와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날이 쉽사리 찾아오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그걸 떠나 그의 글은 읽고 싶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바로 그런 힘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의 글을 계속해서 찾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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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5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5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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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식채널 e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46280149

지식 e 1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62204719

지식 e 2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59385713

지식 e 3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59385783

지식 e 4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60443657

 

 

 

 

여전히 방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지식 e 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무척 짧은 시간으로 꾸며진 내용을 통해서 가슴을 울리고 생각을 깨우쳐준다는 점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도 아니고 주제들도 아님에도 보편적인 설득이 가능하게 만드는 울림을 전한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떠올리게 만드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워낙 인기를 모았기 때문에 방영된 내용을 책으로 묶어 만들어지게 되었고, 부지런하게 챙겨보는 사람이 아닌지라 따로 이렇게라도 방송을 통해서 전해주었던 주제-내용들을 알고자 하고 싶었기 때문에 한동안 열심히 책으로 출판된 지식 e 시리즈를 읽었었는데, 갑자기 딴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읽지도 않고 다른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왔다.

 

오랜만에 쌓여진 책들을 뒤적거리다 읽다가 미뤄둔 5권을 찾게 되어서 단숨에 읽어버리게 되었는데,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이지만 여전히 여러 생각들을 해보게 되고 가슴을 울리게 만드는 내용들이 많아서 감정적인 벅차오름을 느끼게 되었다.

 

지식 e 를 통해서 방영된 내용들과 함께, 그런 내용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들의 인터뷰로 꾸며진 5권은 시사적이고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주제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무척 민감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지식 e 에서 다뤄냈던 이야기들 대부분이 오늘의 우리들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서 만족스러운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람과 삶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관한 내용들인 지식 e 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큰 울림과 뒤돌아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하게 찾으며 무엇을 말해왔는지를 확인하게 될 것 같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혹은 놓치고 잊고 있던 것들을 조심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무척 소중하고

중요한 방송이었다.

 

여전히 달라짐 없이 이어지길 바라게 된다.

 

이성적 설득도

감정적 설득도

빼어나게 성공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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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용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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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로 항상 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어째서 그런 평가가 따르고 있는지 작품을 읽어나갈 때는 그다지 느낄 수 없었는데, 작품이 마무리 되는 과정을 통해서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 어쩐지 무덤덤한 기분으로 마지막까지 읽어나갔으니까.

다만, 군더더기 없고 부족함 없는 결말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의견을 내놓을 생각도 없다.

 

각기 다른 이유에서 외딴섬에 모인 10명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면서 생겨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관한 작품인 그리고...’ 는 각각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개성과 여러 사연들 그리고 서서히 조여들어오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인상적으로 담아내고 있으며, 작품이 결론으로 향해가면서 만들어내는 암울함과 극한의 두려움으로 인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서로를 범인으로 오해하는 과정은 감탄하게 만드는 솜씨였다.

 

게다가 의문으로만 가득한 끝맺음에 이어지는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는 내용에서 만들어내는 섬세한 완결은 탁월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지금이라면 범인의 계획과 실행이 사이코패스의 모습이라는 말을 쉽게 꺼낼 것 같기는 하지만(이제 그런 등장인물들은 어쩐지 지겹겨 느껴질 정도다) 생각해보면 최초에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지만 점차 죽음과 살인에 대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살인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좀 더 극적으로 담아내거나 상세하게 논의를 했어도 꽤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간결하고 간략하게 그런 내용을 설명함으로써, 좀 더 공포와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전체적인 구성에 알맞지 않았나? 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을 맞추기 위해서 골몰하며 읽지는 않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범인이었고, 나름 정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어서 이처럼 만족스러운 끝맺음도 몇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신선하다 못해서 충격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결론이고 범인이었을 것 같다.

 

군더더기 없는 진행과 점차 조여드는 긴장감 그리고 강렬한 마무리와 깔끔한 마무리까지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다.

 

하나, 둘 내 구두 버클을 채우고

 

셜록 홈즈

브라운 신부

그리고 에르큘 포아로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3대 명탐정으로 꼽히는 포아로는 애거서 크리스티에 의해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등장인물-주인공이고, 그가 등장하는 많은 작품들 중에서 하나, ...’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추리소설을 읽는 것인지 영국의 도시와 농촌의 풍경을 산책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완성된 것인지 쉽게 판단되지 않는 느낌의 내용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딱히 읽은 것도 없지만) 약간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건을 만들어 조금은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도록 만들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사건의 진행은 어쩐지 더디게만 느껴지고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도 딱히 만족스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평가에 너무 야박하고 적절하지 못한 평가라고 말하겠지만 별 수 없이 개인적인 취향이 그렇기 때문인지라 영 마땅치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흥미를 느끼기 못했기 때문에 건성으로 읽기도 했고, 조금은 지루한 기분이라 전체적인 이야기의 모양새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느슨한 진행의 이어짐 이후 갑작스러운 사건과 조금씩 확인되고 의심되던 부분들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구성은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구성이면서도 에르큘 포아로의 성격과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해서 포아로의 팬이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팬들이라면 나쁘지 않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간간히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서(그리고 그들의 대사-대화를 통해서) 점차 발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의 갈등들과 그런 갈등에 대한 극단적-급진적 해결을 모색하는 인물들과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인물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의 모습과 풍경을 찾아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느릿하고 느슨한 느낌이라 크게 관심을 갖고 읽게 되지는 못한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에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얼마나 염두에 두면서 써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의도에서 완성된 작품이라면 그 결과물은 충분히 의도한 결과물인 것 같다.

 

단지 내가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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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지점: 초기 근대 철학에서의 응시와 신체 슬로베니아 학파 총서 2
미란 보조비치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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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구해서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엉망으로 읽어낸 암흑지점은 좋은 내용이고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평소 관심이 없던 분야이기 때문인지 조금은 어렵게 읽어낸 책이었다.

 

겨우겨우 읽어냈다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로 무언가 넋이 빠진 채로 읽은 기분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건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써내는 끄적임이 될 것 같다.

 

슬라보예 지젝으로 대표되는 슬로베니아학파는 딱히 어떤 입장으로 내세우기 보다는 (단지 슬라보예 지젝과 미란 보조비치의 책만 읽었을 뿐이지만) 기존의 관점에 새로운-신선한 해석을 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미란 보조비치의 경우 (슬라보예 지젝도 마찬가지지만) 기존의 철학적 관점에 어떤 다른 관점으로서 바라볼 수 있을지는 검토하고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6개의 논문으로 이뤄진 암흑지점의 경우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근대 초기의 시선-입장-관점들을 다시금 검토하고 있는데, 근대 이전의 신의 시선을 어떻게 근대에 와서는 인간이 그 시선으로 변형시켜 바라보려고 하는지 혹은 그런 입장으로 올라서려고 하는지를 느슨한 방식으로 근대 이전부터 근대로 거슬러 올라오며 검토하고 있다.

 

첫 번째 논문에서는 스키티아 사람들이 믿는 신에 대한 사례를 검토하며 신이 갖고 있는 혹은 신이 보여주고 있는 비일관성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과 만약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어떤 감정-욕망을 담고 있는지를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이해되지 않는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보답에 대해서 논의를 마친 다음 두 번째 논문에서는 곤충에 대한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여러 시각들을 살펴보며 어떤 의미들을 부여하는지와 탄생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와 죽음과 탄생의 무의미한 구분을 알아가며 근대 초기의 철학자들의 입장들과 함께 다뤄내고 있다.

 

아리송하고 무슨 논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이런 분석들이 이뤄지는지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암흑지점인데, 세 번째 논문을 읽으면서 그 난해함은 더욱 심해진다.

 

라캉의 입장을 통해서 사랑을 말한 다음 라캉의 입장과 스피노자의 입장을 상세하게 검토하는 세 번째 논문은 사랑과 증오와 같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스피노자의 정교한 분석을 다시금 되짚고 있는데, 어째서-어떤 맥락에서 이런 정교한 검토가 이뤄지는 것인지가 의문스럽고 그 검토가 혹시나 사람의 감정까지도 철저하게 뜯어보고 분석해야만 하는 근대의 시각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곤혹스러움은 네 번째와 (이어지며 읽어야하는) 다섯 번째 논문을 통해서 괴로움으로 번지게 되는데, 말브랑슈의 입장에서 신과 신체 그리고 정신과 육체에 대한 지루할 정도로 정교한 이해를 설명해주며 신과 신체가 어떻게 분리되어 있으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논의들의 이어짐 이후 마지막은 미셸 푸코를 통해서 익숙한 제러미 벤담의 논의를 통해서 조금은 혼란스러움이 줄어들게 되는데, ‘감시와 처벌을 이미 약간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파악하려고 하는 제러미 벤담의 (판옵티콘을 통한) 의도와 목적이 어떻게 신적인 시선으로 향하려고 하는지를 이해시켜주고 있으며, 제러미 벤담이 생각하는 세계관 속에서 범죄와 처벌 그리고 교정과 예방이 어떤 정교한 구분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신이 인간을 바라보던 심술궂은 시선과 인간이 인간에게 향하는 불신과 지배의 시선이 어떤 긴밀한 관련성이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저자가 암흑지점을 통해서 말하려는 의도가 과연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이해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건 결국 내 능력 탓이겠지만,

부족한 이해력 때문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불평도 하게 만든다.

 

결국 모든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일정한 부분들을 가져오며 내 생각에 끼워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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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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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천명관의 고래에 대해서는 이미 읽기 전부터 많은 사연들이 있어왔다. 그걸 어떻게 하나씩 꺼내야 할지 고민되기는 하지만 이 작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걸 떠나서 이 작품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로 인해서 이미 고래는 쉽게 잊기 어려운 작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처음 출판된 후 많은 (여전하기도 한) 화제와 호의적인 평가 속에서 고래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지만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은 책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 작품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언급들만을 접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붉은... 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커다란 단풍잎과 같은 색깔의 책표지가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기억에 남게 되었는데, 우선은 재미나다는 말을 다들 꺼내놓아서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그런 기억은 좀처럼 오래 간직하지 않기 때문인지 쉽게 잊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읽어봐야겠다는...

지나치다 누군가가 읽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도 또다시 나중으로 미루게 되는...

그런 이어짐만이 이어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헛된 다짐들도 이어지기가 멈춰진 다음에야,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소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내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딱히 떠올려지지 않았을 때, 그 막연한 막막함 속에서 어수룩하게 소녀에게 꺼낸 말은 최근에 읽은 책이 있느냐는 한심하기만 한 질문이었고, 소녀는 마치 단답형 질문에 대한 대답과 같이 고래를 읽었다고 짧게 대답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어떤 내용인지에 대한 물음도 없었고, ‘고래에 대한 소녀의 간단한 감상도 없었던... 묻고 대답하고 그걸로 끝이었던 대화였기 때문에 그건 당연히 잊게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인지 여전히 기억에 남겨지게 되는 책이 되어버렸다.

 

과연 소녀는 고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제는 그 대답을 들을 수는 없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이런 딱히 기억할만한 기억들이 아니기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되풀이해서 기억나고 생각되는 고래(반드시까지는 아닌... 별 수 없다는 말을 꺼낼 정도는 되는...) 읽어()야만 하는 책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은 순간이 되어서야 고래는 읽어야만 하는 책이 되어버렸고, 그 이유가 어떤 약속의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충분히 의미심장한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무의미한 생각들은 어차피 불필요한 감수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러 엇갈림 끝에 손에 쥐게 된 고래는 더더욱 빨리 읽으라는 뜻인지 그전에 읽고 있던 책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좀 더 빨리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다시 되찾기는 했다), 그런 빠른 쥐어짐과 맞물렸는지 흥미진진하고 생각 이상의 몰입을 만들어내며 그동안의 한국 소설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진귀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개인적인 소감으로 덧붙이자면 근자에 가장 재미나게 읽은 소설 중 하나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만큼이나 재미나면서도 이상한 감수성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요즘 자주 논의가 되고 있는 글을 통해서 영상을 접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시나리오를 소설로 만들어낸 느낌도 들게 되고, 재미를 만끽하다가도 갑작스럽게 묘한 감수성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어쨌든 이런 온갖 사연으로 가득했던 고래에 대한 얘기를 되도록 짧게 해보련다.

 

엄청난 작품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분명 대단한 작품이라는 것에는 동의하게 되지만 막상 고래에 대해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무척 머뭇거리며 그저 재미난 책이라고 말하게 되기만 할 것 같다.

 

도무지 정리가 쉽지 않은 이야기의 펼쳐짐 때문에 이런 멈칫함을 느끼게 되는데, 온갖 이야기들로 가득하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이 제멋대로 뿌려지기도-뻗어나가기도 하면서 갑작스럽게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정리가 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뻗어나는 과정을 그저 즐기게 될 뿐이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단지 간간히 불필요하게 뻗어나가는 경우도 느껴지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 쓸데없이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군더더기조차도 고래가 갖고 있는 묵직함을 손상시키진 못하고 있다.

 

고래를 읽으면서 느낀 기분은 막연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비슷한 분위기 혹은 정서가 느껴진다는 기분이었는데, 어떤 부분이 어떻게 그런 식의 기분을 만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저 이미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은 사람으로서 그런 기분이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말만 꺼내게 될 것 같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고래가 온갖 문화들의 영향 속에서 완성된 느낌을 갖게 된다는 말을 함께 꺼내게 될 것 같다. 소설과 문학, 영화나 음악 그리고 다른 수많은 것들이 하나의 작품에 뒤섞여 있다는 기분이 들게 되는데, 그건 단지 고래에서 영화관이라는 장소가 갖고 있는 중요성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만약 고래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거들 듯이 말을 건넨다면 단지 소설과 문학만을 즐긴 사람들은 고래가 만들어내는 재미들에 무척 부분적으로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얘기하게 될 것 같다.

 

고래의 구성은 결국 노파와 금복 그리고 춘희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중심인물 속에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사연들과 이야기들 그리고 수다들일 것 같은데, 이야기는 언뜻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역사적 경험(일제강점기, 해방, 전쟁, 독재로 얼룩진 근현대사 등등)을 비스듬하게 언급하고만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어떤 배경을 갖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그 시대적 배경을 뭉개듯이 고래에 가져와 마음껏 배치하고 구겨 넣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일반적으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이야기 흐름이나 세계관이 아니기 때문에 묘하게 겹쳐져 있고 일부러 약간은 어그러져 있도록 의도한 것 같기 때문에 시간관념이나 세계관 그리고 실제 한국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조금씩 틀어지게 만들어놓고 있어서 작가의 생각에 따라 조금씩은 구불거리고 몇몇 순간들을 겹쳐놓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거기에 헐리우드의 서부영화와 기타 여러 문화적인 영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는 무국적 적이라는 생각도 들게 되는 것 같다.

 

포스트모던을 꺼내들어 작품에 대해서 말하게 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굳이 그런 틀을 꺼내면서까지 고래(이야기로서의) 날뜀을 말하고 싶어지는 않게 된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보아서는 이야기를 위해서 역사를 제멋대로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비난을 내세우기 보다는 저자의 시각이 기본적으로는 정치적 올바름의 시선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에(혹은 냉소와 싸늘함 시선 속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평가를 조심스럽게 미루고 싶어지게 된다.

 

특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온갖 문장들이 옛말과 현대어 그리고 비속어와 외래어가 난무하고 함께 겹쳐져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읽기를 경험하게 되었고, 변화무쌍한 이야기의 진행 덕분에 흥겨움을 느끼게 되기는 하지만 결국 비극으로 가득한 이야기 속에서 어떤 슬픔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런 비극의 가득함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면(‘고래에서 찾아낸다면) 계속해서 어떤 법칙들을 나열하고 알려주는 문장을 통해서 알 수 있기도 한데, 온갖 운명들과 숙명들로 가득하고 그것에서 벗어남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알 수 없는 운명의 가혹함에 내몰려지는 모습들과 함께 장난스럽고 퉁명스럽게 던져지는 법칙의 나열이 각각의 인물들이 겪게 되는 슬픔-운명과 숙명을 축약해서 알려주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노파와 금복 그리고 춘희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진행이기는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마도 금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노파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짧고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있고, 춘희의 경우도 중심인물이라고 말하기에는 이야기의 흡인력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되고(이야기가 부족해서 이야기를 쥐어짜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녀의 고난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걸 중심으로 놓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기에(어쩌면 길고 긴 후일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금복이라는 존재가 중심을 잡으면서 나머지 인물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연결되고 이어지는 느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노파와 춘희는 세상과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고립된-고독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금복은 세상과 싸우고 이겨낸 존재로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결말은 셋 모두 비극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고래가 어떤 특정한 개인-등장인물을 내세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할 것 같다. 이 작품은 특정 개인이 중심이 아닌 온갖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있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펼쳐지고 접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뻗어나감과 모여짐을 즐겨야만 좀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각각의 인물들이 어떻게 등장하고 사라지는지를 그리고 다시금 나타나는지를 이해해야만 할 것 같다.

 

한편의 복수극이라고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면 여러 편의 우화들을 합쳐놓은 것 같은 고래는 어떤 법칙들로 가득하지만 그 법칙들의 비극성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그리고 다시금 일어서는 더러운 팔자()에 대한 이야기들이겠지만 그 이어지는 슬픔 속에서도 삶에 대한 끈질김을 보여주는 모습들로 인해서 더욱 강렬하게 기억되기도 하는 것 같다.

 

결국 이야기는 계속되고... 삶도 계속된다.

 

거대함을 동경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혹은 행복을 꿈꾸지만 그 행복과는 멀어지기만 하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고래는 단연 최고라고 말하게 되지만 이 능청스러운 수다에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가능하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저 감탄하며 이 놀라운 작품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참고 : 1.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금복이 아닌 이 될 것 같다.

2. 쓸데없고 정리되지 않는 생각 한 가지. 근데, 과연 고래를 한국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고래는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한국의 역사적 경 험을 비스듬하게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한국 소설이기 보 다는 좀 더 다른 방식으로 보아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국제소설과 아시아소설과 한국소설 중에서 어떤 식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바보스러운 구분을 하게 되지는 않지만 단지 무언가 좀 더 요란스럽게 고래가 펼쳐놓고 있는 온갖 이야기들을 평가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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