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의 하드웨이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참고 : https://namu.wiki/w/%EC%9E%AD%20%EB%A6%AC%EC%B2%98%20%EC%8B%9C%EB%A6%AC%EC%A6%88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책표지지만 그래도 손에 쥐고 읽게 한다. 왜냐면? 잭 리처 시리즈니까.

 

범죄 소설이기보다는 액션 소설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고, 그 과정에 조금은 촘촘한 구성이 있지만 결국에는 세계관 속에서 절대자인 잭 리처가 모든 것들을 싹 쓸어버리는 이야기라 사람에 따라서는 이걸 뭐하러 읽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읽는 이유는? 그냥 재미나니까.

 

평화롭게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애쓰던 잭 리처는 카페에서 우연히 창밖으로 펼쳐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납치 사건의 중심에 들어간다. 실마리를 풀기 위해 그에게 사건 해결을 의뢰한 사람은 특수부대 출신(SAS)의 부하들을 거느린 민간 군사조직의 보스 에드워드 레인. 누군가에게 레인의 부인과 딸은 백화점에 쇼핑을 하러 나갔다가 납치되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범인들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숨 막히는 거래가 시작된다.

한편 노련한 수사관 리처는 5년 전에도 레인을 둘러싸고 이와 매우 흡사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레인의 전부인 앤의 납치, 살인 사건. 이 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리처는 전직 FBI 요원이자 사립탐정인 로런 폴링과 함께 비밀스러운 내막을 밝혀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이들의 납치는 단순히 돈과 관련된 문제일까? 5년 전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특수부대 출신의 부하들에게 둘러싸인 레인의 정체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이 모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인질극이 있고

뭔가 심상찮으면서 아리송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잭 리처가 사건을 풀어간다.

당연히 액션이 있고 궁금하던 부분이 풀려가고 멋진 (연상의) 여인과 사랑도 나누게 된다.

 

전형적인 구성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끌어가고 있고 의외로 상황이 커져 영국까지 건너가기도 하지만 다른 시리즈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내용이고 결말이다. 전형적인 점을 그리고 진부함을 말하면서도 꾸준히 이 시리즈를 읽는 건? 그럼에도 재미나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잭 리처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고만고만하다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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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란 무엇인가 - 농담과 유머의 사회심리학
테리 이글턴 지음, 손성화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웃음과 관련된 여러 책들 중에서 기억할만한 책이라고는 프로이트의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정도가 떠올려질 뿐 특별한 관심도 알아볼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비슷하다 할 수 있을만한 것이 고작 (관련성은 지극히 떨어지지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슬라보예 지젝이 그의 저서에서 논의를 전개할 때 자주 농담을 예로 드는 경우가 생각날 뿐이니 정말 관심이 없()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테리 이글턴은 꾸준히 관심이 가는 학자고 책 제목부터 아주 읽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별다른 생각 없이 펼쳤지만 그런 생각으로 시작해서인지 대충 이해하게 될 뿐인 것 같다. 너무 건성으로 읽은 것 같다.

 

“‘유머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 책은 유머의 본질과 기능을 파고든다. 유머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며, 다양한 철학적 개념을 도입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 책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탁월한 유머로 가득 찬 이 책은, 그러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에 관한 인류 정신의 발달 과정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유머가 부조화에서 기인한다거나, 유머가 타인에 대한 가학적인 형태의 우월감을 반영한다는 등의 다양한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또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퀴나스, 홉스, 프로이트, 바흐친에 이르는 광범위한 인용을 통해 수세기에 걸친 유머의 사회적·정치적 진화 과정과 그 기저에 깔린 정신분석적 기제를 살펴본다.”

 

웃음에 관해 진지한 접근을 한다는 것부터 이미 틀린 방식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웃음을 좀 더 여러 가지로 따져보고 있어 그럭저럭 읽어낼 수 있었고 이런 걸로도 무척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뭐든 너무 단순하게만 생각해선 안 된다는 뻔한 깨달음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준다.

 

1. 웃음에 관하여

2. 비웃는 자와 조롱하는 자

3. 부조화

4. 유머와 역사

5. 유머의 정치학

 

인생이 연극이라면 절반은 비극이고 절반은 희극이다. 그래서 희극과 유머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이 가지는 의미의 나머지 절반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유머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잠깐의 쉼과 즐거움을 주는 작은 오락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테리 이글턴의 책은 이런 통념을 뛰어넘어 웃음’, ‘우스움’, ‘우스개와 그 주변 현상(희극, 위트, 풍자, 아이러니 등)에서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 유머라는 보물을 찾기 위해 테리 이글턴은 과거와 현재의 지도를 펼치며, 철학자, 사상가, 작가 등이 걸어갔던 길을 따라가 보며 겹치고 갈라지는 다양한 지점을 확인한다.

인간에게 유머와 웃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현상이지만, 그 존재 이유는 여전히 신비의 베일에 가려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부터 시작해서 근대의 걸출한 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유머와 웃음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고 부정적 혹은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학 비평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테리 이글턴의 이 책은 특히 철학자 및 사상가 중심의 기존의 유머학 저서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부분을 문학을 통해 보완해주고 있다. 이로써 이 책은 유머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웃음을 학문적으로 다가가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읽어볼만하고 흥미로운 구석 있었다.

 

웃음, 비웃음, 부조화를 키워드로 설정한 다음 역사 속에서 유머가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지, 그리고 유머가 정치 사회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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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 박권일 잡감
박권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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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감 - 루쉰은 짧은 에세이를 잡감이라 불렀다. 잡감은 논문이나 문학, 즉 학()이나 문()이 아니라 지적으로 여과 처리된 감()과 촉()이다.

 

 

 

 

 

소수의견 Dissenting Opinion - 소수의견은 다수결로 최종결정이 이루어지는 기관에서 다수를 점하지 못해 폐기되는 의견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대법원의 판결이 있다. 소수의견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단지 폐기된 의견이 아니라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수의견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88만원 세대를 통해서 알게 됐지만 그것 말고는 따로 접해보진 않았었다. 이곳저곳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고, 그것들을 모아 이런 책으로 발표된 것도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읽어보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88만 원 세대> 저자 박권일이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시사IN', '한겨레' 등의 언론에 쓴 사회 비평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저자는 이 책의 이름을 소수의견이라 짓고 박권일 잡감이라 불렀다. 박권일은 노무현 정권과 함께 기자가 되었고, <88만 원 세대> 저자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명박 정권과 함께 칼럼니스트로서 삶을 시작했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고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애도에서 시작해 이명박 시대를 되돌아보는 기록물이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명박 정권만 비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연결되는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태평성대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그리고 루쉰)의 말처럼 소수의견()이나 문()이 아니라 지적으로 여과 처리된 감()과 촉()“으로 된 글이고 그래서인지 짧은 내용으로 채워졌지만 날서있고 예리함을 잃지 않고 있다. 10년이 넘은 글에서 지금도 해당되는 문제의식과 여전한 문제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연결되는 역사성을 더 절실하게 느끼고 계속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10년 전 글이지만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읽게 되니 기분은 그리 좋지 않다. 과연 조금이라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기분으로 읽게 만든다. 뭐라도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도대체 뭘 해야 할지는 딱히 떠올려지지 않는다. 마냥 답답한 기분으로 글을 읽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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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권력 도시 - 일본 식민 지배와 공공 공간의 생활 정치
토드 A. 헨리 지음, 김백영 외 옮김 / 산처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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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7151646

 

 

 

 

 

 

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는 것 없었지만 어쩐지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제목부터 어떤 방식의 논의를 할 것인지 알 것 같아 읽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예상대로 미셸 푸코의 영향 속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를 인상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토드 A. 헨리의 <서울, 권력 도시>.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19101945) 서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한양은 서서히 일본적 근대의 전시장으로 전환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식민 지배를 위한 새로운 무대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공공 공간 중에서도 특히 경복궁 터, 남산의 신토(神道) 신사, 그리고 근린 위생 캠페인의 장소 등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충성스럽고 근면하며 공덕심을 지닌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는 폭력적이고 논쟁적인 '동화 정책' 과정의 핵심적인 현장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시기 서울의 이런 공공 공간의 분석을 통하여, 일제의 식민지 동화 프로젝트가 전개된 구체적 양상을 정신적(spiritual), 물질적(material), 공중적(civic)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식민지 근대'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당시 서울이라는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이 보고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어 흥미롭다.”

 

강점기 시대를 다루는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해외 학자의 글을 접한 건 처음이었고, 그래서인지 조금은 다른 시선을 혹은 놓치고 있는 부분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다만, 저자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쩐지 달리 볼 수 있다는 입장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저자의 논의를 아주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충분히 수긍하게 만들도록 생각을 정리해주고 있다.

 

토드 A. 헨리의 서울, 권력 도시: 일본 식민 지배와 공공 공간의 생활 정치(Assimilating Seoul: Japanese Rule and the Politics of Public Space in Colonial Korea, 1910-1945는 일본의 식민 지배 시기(19101945) 서울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조선 왕조의 수도였던 한양은 서서히 일본적 근대의 전시장으로 전환하면서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식민 지배를 위한 새로운 무대로 만들어졌다. 서울의 공공 공간 중에서도 특히 경복궁 터, 남산의 신토(神道) 신사, 그리고 근린 위생 캠페인의 장소 등은 식민지 조선인들을 충성스럽고 근면하며 공덕심을 지닌 일본 제국의 신민으로 만들려는 폭력적이고 논쟁적인 동화 정책과정의 핵심적인 현장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시기 서울의 이런 공공 공간의 분석을 통하여, 일제의 식민지 동화 프로젝트가 전개된 구체적 양상을 정신적(spiritual), 물질적(material), 공중적(civic)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식민지 근대의 실상이 무엇이었는지를 당시 서울이라는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이 보고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어 흥미롭다.”

 

저자는 권력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통치하려고 했는지 살펴보고 있고, 무단통치-문화통치-병참기지화의 과정 속에서 지배의 방식을 그리고 그에 대한 적극적-소극적 저항 혹은 아예 그게 먹혀들지 않는 모습까지 여러 가지를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은 서울의 역사를 다룬 해외 연구서로서는 단연 독보적인 학문적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20세기 한국사를 다룬 해외 한국학 저서들 중에서도 단연 빼어난 학술적 성취를 달성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뿐만 아니라 서울학이나 한국학의 협소한 범위를 넘어서 근현대 일본이나 동아시아의 사회·문화사나 도시·지역사 연구자에게도 큰 지적 자극을 주고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다년간 국내외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이슈가 되어온 식민지 근대문제를 재조명하는 독창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어, 연구자들은 물론 양식 있는 일반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역사의식을 고양시킬 것이다.

이 책에서는 무단통치-문화통치-병참기지화(또는 황민화)’로 이어지는 통념적인 정치사적 시기 구분을 깨고, 1920년대 중반을 중요한 분기점으로 설정하는 도시사 혹은 사회·문화사적 관점에서 새로운 시기 구분법을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1910년에서 1925년까지, 1925년에서 1937년까지, 그리고 1937년에서 1945년까지 등 이 세 시기를 경성의 공공 공간을 탐사하는 시간적 좌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 책의 주된 연구 대상은 정책이나 추상적인 제도가 아니라 도시민들의 삶이 펼쳐지는 길거리, 전시장, 마을, 집 안과 같은 일상생활의 현장, 살아 있는 공간이다. 특히 저자는 식민지 시기에 지배 권력의 동화주의 프로젝트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의 공공 공간이 새롭게 출현했으며, 그 공간에서 다양한 도시적 주체들이 마주치고 뒤섞이는 접촉 지대(contact zone)’가 형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공공 공간에서 벌어진 접촉의 구체적 양상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침울했던 민족사의 암흑기’, ‘일제의 억압과 수탈’, ‘친일과 반일의 유혈적 드라마로 통념화되어 있는 지배와 피지배의 식민지 시기 역사적 서사를, 각양각색의 인생 군상들이 빚어내는 예측불가의 왁자지껄한 스펙터클로 그려낸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총독부 당국자들, 재경성 일본인 유력자들, 친일파 조선인들, 민족주의 지식인들, 잇속에 밝은 각종 장사치들과 모리배들로부터 게이샤와 기생들, 샐러리맨과 소시민들, 학생들, 빈민들, 고아들, 소매치기와 날품팔이꾼 등이 비중 있게 등장한다. 저자는 이 다양한 주체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이들이 애써 의식적으로 연출한 표면적 행태의 이면에 감춰진 그들의 주관적 체험과 내면 정서까지 포착해내고 있어, 역사 연구서의 성격과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역사 교양서의 흥미로운 시각에서 스토리텔링이 발휘되고 있다.”

 

간단하게 어떤 식으로 조선이 쇠망하였고 일본의 지배가 이뤄졌는지 알려주면서 정신적 물질적 동화 정책과 청결과 위생 개선에 관한 정책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준 다양한 영향과 반응에 대해서 여러 방식으로 살펴보고 있어 그 시대를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는 식민지 동화 프로젝트라는 하향식 일방통행 정책이 결코 의도대로 관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동화 프로젝트에 의해 창출된 공공 공간에서 이루어진 실제 양상은 제각기 다른 속셈과 아비투스를 지닌 각계각층의 다양한 주체들이 속고 속이는 역동적인 한 편의 다중상황극을 연출하고 있는데, 이는 식민지 동화주의 정책이 그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서는 대개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식민지 통치성은 한계에 직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나게 입중하고 있다.

이 책은 광복 이후 반공반일을 국시로 하여 등장한 대한민국 정부가 그들의 통치 이념을 현대 서울의 도시공간에 새겨 넣는 과정에서 벌인 (그중 일부는 여전히 진행형인) 국가주의적 프로젝트들이 과연 일본 식민주의자들이 한양경성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저지른 만행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혹은 얼마나 닮은 것인지 성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세기 한반도가 경험한 격동과 풍파의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그것이 현대 서울에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심대하고도 복합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탈식민주의적 문제 제기가 새로운 것은 아닐 수 있지만 글로벌 초거대도시로 성장한 현대 서울의 심장부에 도사리고 있는 유형·무형의 식민지 유산의 문제를 예리하게 겨냥하여, 친일과 반일, 식민지 수탈론과 근대화론과 같은 익숙한 선악 이분법적 역사관을 뒤흔들고 있다.”

 

또한, 식민지 시대에 있었던 통치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 광복 이후에도 비슷한 식으로 반복되었는지, 다른 점과 닮은 점에 대해서도 알아봄으로써 단순히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닌 좀 더 고민해보며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여운을 주기도 한다. 그런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여러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1부 경성 건설하기: 식민지 수도의 불균등한 공간>에서는 조선총독부가 어떻게 한양/황성이라는 왕도(王都)/제도(帝都)를 일본의 식민지 수도로 전환시켜갔는지 그 궤적을 추적한다. 초기 식민지 계획자들은 대한제국 시기(18971910) 지도자들에 의해 추진되었던 근래의 변화를 무시하고, 메이지 일본(18681912)에서 끌어온 도시 개혁이라는 자신들 나름의 재공간화 프로그램을 추구했다. 하지만 사람과 상품의 순환을 용이하게 하려고 도로를 격자로 만들고 로터리를 설치하려는 그들의 시도는 이 도시의 원래 동맥 구조에서 그저 작은 부분만을 바꿨을 뿐이다. 이러한 시구개정(市區改正)의 시도는 공익의 추구라고 치장되었지만 토지 몰수라는 손이 많이 가는 정책을 필요로 했으며, 공덕심을 지닌 주민들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일련의 노력을 깎아내렸다. 1장 후반부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의 도시계획운동이 토지구획 정리와 수익자부담금과 같은 최신 방법을 도입하는 한편, 조선인 거주자와 같은 새로운 대상에 주목하면서 어떻게 도시계획의 범위를 넓혀갔는지를 검토한다. 하지만 재정적인 제약과 계속되는 저항으로 인해 경성은 고도로 불균등한 방식의 발전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으며, 순환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논리 또한 이 도시의 주요 간선도로만을 관통하는 데 그쳤다. 다른 식민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간선도로는 조선총독부의 과잉된 주권적 권력을 구현하게 되었는데, 이는 특히 태평로를 따라 늘어선 건축양식들을 통해 잘 드러난다.

<2부 정신적 동화: 남산의 신사와 제전>에서는 신토 신사와 이들의 문화적 활동이 천황가에 대한 충성의 감정을 주입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최근까지도 식민지 신사 연구자들은 1937년의 신사참배 강요가 그 이전 시기에도 특징적이었다고 가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런 전시(戰時) 현상에 대해서, 식민지 신토의 내적 모순들을 이용하려는 사회적 행위자와 문화적 대행자들 사이에 갈등과 경쟁이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전개되어왔으며, 그 역사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정신적 동화 프로젝트가 1925년 조선신궁이 건립되기 이전 경성의 유일한 신사 건축이었던 경성신사의 일본인 관리자들이 고안한 잠정적인 조치에서 시작된 것임을 보여주는데, 이들이 이런 조치를 마련한 것은 총독부의 동화주의 레토릭을 따라서라기보다는 이들의 제전(祭典)에서 식민지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컸음이 드러난다. 1925년 이후에야 식민지인 주민들은 참배를 위해 조선신궁을 방문했다. 하지만 많은 조선인들은 여전히 숭배의 장소보다는 관광의 장소 정도로 취급했다. 2장 후반부는 신사에 대한 이와 같은 색다른 관행이, 갈수록 경쟁적으로 되어가는 신토 정치의 분위기를 어떻게 반영하게 되는지 밝혀낸다. 총독부가 어떻게 규모가 작은 경성신사의 대체물로 남산 위쪽에 매머드급 신사인 조선신궁을 설치했는지를 묘사함으로써, 이 두드러진 전환을 설명한다. 경성신사의 일본인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대한 이와 같은 유례없는 도전에 맞서, 종속적인 조선인들을 자신들의 제전에 훨씬 더 빈번하면서도 훨씬 더 선별적으로 포섭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식민 국가에 대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ㆍ강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몇 가지 새로운 전략들 중 하나였다. 이처럼 신토 신사들이 식민화된 주체들을 일본 혼의 이상화된 형식을 구현하도록 이끌었다.

<3장 물질적 동화: 경복궁과 식민지 박람회>에서는 옛 경복궁 터(조선총독부 건물이 신축된 터이자 두 차례의 중요한 박람회가 개최된 장소)를 통해 물질적 동화를 검토한다. ‘물질적 동화라는 용어를 통해 식민지 관료들이 제국 일본의 내부에서 조선 경제의 불균등한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박람회는 조선인 방문자와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근대적 진보를 드러내 보일 뿐 아니라, 근면, 성실, 검소와 같은 부수적인 윤리를 이들에게 심어주는 데에도 중심 역할을 했다. 가령 1915년의 박람회에서 주최자들은 서구 건축물과 기계라는 보편적인 표현 양식을 통해 근면성의 이미지를 고취시켰는데, 이들 서구 건축물과 기계는 시대착오적인 궁궐의 공터와 신중하게 병치됨으로써 강력한 발전의 상징으로 작용했다. 물론 일부 교육받은 조선인들은 이런 근대화의 비전을 제대로 읽어내고 조심스레 수용할 수 있었지만, 엘리트가 아닌 이들 중에서는 박람회를 오락과 상업의 흥미로운 세계와 결부시키려는 경향이 훨씬 더 강했다. 1929년 대공황 기간에 개최된 조선박람회는 원래는 조선총독부 시정(施政) 15주년을 기념해서 1925년에 열릴 계획이었던 행사였는데, 식민지의 발전상을 전시하여 관객들에게 감명을 주려는 의도가 강했다. 동시에 주최자들은 한반도의 발전이 제국의 경제 내부에서 보다 제대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랐으며, 이를 범아시아 블록과 같은 자급자족적 형태로 생각하려는 패턴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형성되었다. 부분적으로는 식민 모국에서 온 일본인 관광객을 매혹시키려는 목적으로 디자인되었던 이 1929년 박람회의 하이라이트는 행사장 중앙 대로를 따라 늘어선 전시 홀들이, 이를 만든 건축가들이 순수 조선 스타일이라고 부르길 좋아했던 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궁궐과 흡사하게 만들어진 이러한 구조물들은 새로운 동서(東西)의 축을 만들어냈는데, 이 축은 남북 방향이었던 궁궐의 원래 공간성을 바꾸어버렸다. 이처럼 뻔뻔스러운 경복궁의 재공간화와 모조품 미학의 재창조는 이를 식민지 폭력이자 문화통치의 책략이라고 규탄했던 민족주의 논자들이 거세게 비판했다. 이들의 날카로운 비평에 따르면, 이런 조선 스타일을 수긍하려는 움직임은 부의 분배에 관한 차별적 논리를 은폐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일본인 실업가들과 결탁한 조선총독부가 지휘ㆍ조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박람회는 농촌의 가난한 조선인들에게 이처럼 큰 비용이 드는 기념행사에 참여하도록 설득하고 심지어 강요하기도 했으며, 이는 식민주의의 빈곤화 효과를 악화시킬 따름이었다. 산업박람회가 이들에게 식민지적 진보의 착취적 논리를 받아들이도록 북돋우었다.

<4장 공중적 동화: 주민 생활의 청결과 위생>에서는 경성 주민들의 삶에 주목하면서, 계절별 정화(淨化) 및 기타 지역 캠페인들이 개인 신체의 건강을 어떻게 보다 큰 공동체의 건강과 연결시키려고 지향했는지 살펴본다. 특히 위생 규칙과 관련한 경찰의 단속 활동과 값비싼 서양의학 처방 및 그것의 환영받기 어려운 결과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초기 경성(19101915)에서 공중위생이 성공적인 체계로 정착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했다. 일본인 식자층들은 한때 경성을 조선의 똥의 수도라고 경멸했는데, 실제로 경성은 1920년대 후반부에서 1930년대 초반 사이 제국의 병든 도시라는 수치스런 명성을 떠맡고 있었다. 당시의 의학 리포트를 통해 지금도 확인할 수 있듯이, 재조선 일본인들은 이른바 비위생적인조선인들보다도 훨씬 더 전염병 발병률이 높았으며, 치사율도 훨씬 높았다. 또한 이 장에서는 위생적 근대성을 둘러싸고 일본인 식민주의자들과 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이 경합하면서 추진된 의제들이 어떻게 도시 위생과 공중 복리라는 정치적으로 비난받는 문제와 더불어 수렴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식민주의자와 민족주의자 어느 쪽의 캠페인도 이 병든 도시를 치유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서로 결합하여 경성의 거주민들을 가로질러 권력의 그물망을 더 넓게 펼치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하층민들조차도 이 값비싼 그물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했다.

<5장 황국신민화: 전시체제기 도시 공간의 재편>에서는 태평양전쟁(19371945)의 개시와 더불어 이처럼 서로 달랐던 동화의 프로젝트들과 장소들이 한데 뭉쳐지면서 이 도시의 공간성에서 유래 없는 순간을 낳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천황가에의 충성을 확인하려는 새로운 압력들은 공공 공간의 사용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내며,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전시 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예컨대 갈수록 군사화되어가던 남산 신토 신사의 엄숙한 공간적 영역은 가미다나(神棚. 집 안에 두는 작은 신사)를 설치하고 이세신궁의 부적(符籍)을 보급함으로써 조선인 가정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이러한 수단들은 물론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 했지만, 조선인들이 천황이 주도하는 전쟁에 더욱 강력하게 일체감을 갖도록 강요했다. 1940년의 기념행사는 일본국 탄생 26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무대이기도 했는데, 조선인들을 고취시켜 이들 대다수가 후방에 남아 있더라도 태평양전쟁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성화(聖火) 봉송이나 대경성박람회 같은 이벤트들은 대동아 신민이라는 상상된 공동체의 창출을 꾀하고 있었다. 한반도 전역을 가로질러 여러 장소에서 열린 이러한 제의들은 전시(戰時) 제국이라는 압축된 지형학(topography)을 창출해냈다. 이를 통해 식민지 인민들로 하여금 그들이 속한 지역과 가족에 대한 소속감을 제국 신민으로서의 전망에 종속시키도록 유도했다. 군대와 긴밀한 관련을 맺은 일부 조선인은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을 전환하기 시작했지만, 말기의 식민 국가는 그동안 진행되어온 동화 프로젝트의 완성에 도움이 될 법한, 민족, 계급, 그 밖의 다른 차이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일은 추진하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들은 말기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다민족적 수사학 속에 전략적으로 재통합되어갔지만, 점증하는 죽음의 위협이 엄습하는 전쟁의 최후 몇 년에 이르기까지도 이러한 차이는 황국신민화의 작동방식을 결정하는 변수로 작용했다.

<에필로그 제국의 소멸 이후: 식민 이후 서울의 공공 공간 다시 만들기>에서는 식민 지배 35년 이후 1945년에 해방을 맞고 한국인들이 식민지 시기 경성의 대다수 상징 공간들을 '부분적으로는 일본인 당국자들로 하여금 남산의 조선신궁을 파괴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민족의 반식민주의적 기념물로 대체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다시 만들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해방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1995년에 식민 통치 시대를 상기시키는 옛 총독부 청사 건물을 제거했다. 그전까지 이 건물은 중앙청(19481986)과 국립박물관(19861995)으로 사용되었다. 총독부 청사가 철거된 자리에 오늘날에는 절반쯤 복원된 경복궁이 들어서 있는데, 이것은 값비싼 탈식민화 프로젝트의 산물로, 복원 공사는 2030년이나 그 이후에 완성될 예정이다. 이 궁궐터는 국내외 방문객들에게 조선왕조의 상상된 영광을 상기시키는 데 그 주된 목적이 있다. 그럼으로써 이 공간은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과 마찬가지로, 경쟁하는 두 개의 체제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용도로도 부분적으로는 사용되어왔다. 현대 서울의 설계자들은 이러한 낭만적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서 제국 일본의 당국자들이 조선의 왕도(王都)/제도(帝都)를 일본적 근대성의 전시장으로 폭력적으로 재창조하려고 했던 시기를 계속해서 건너뛰려고 하고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은 한반도의 전근대사의 흔적을 최소화하려 했던 식민지 시기 그들의 선배들의 시도와 닮아 있다.“

 

옮긴이의 글을 통해서 이 책에 대해 너무 잘 설명해주고 있어 특별히 덧붙일 건 없을 것 같다. 식민지 시대에 관해 조금은 특별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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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 20주년 개정판
승효상 지음 / 느린걸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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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1996년 출간된 승효상의 첫 저서 <빈자의 미학>은 건축가 승효상의 자기 선언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정신이다. 1996, 대한민국은 성장팽창으로 내달리던 시기였다. 그런데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을 통해 비움절제라는 시대를 앞선 화두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이 발표한 빈자의 미학이 얼마나 큰 화제가 되었고 울림이 있었는지는 지금으로선 정확하게 알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책에 적혀져 있는 (아래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꽤 여파가 있었던 것 같다.

 

”‘빈자의 미학은 건축가 승효상과 동의어이다. 1996년 출간된 승효상의 첫 저서 빈자의 미학은 그가 지난 20여년 간 일관되게 말하고 실천해온 건축 철학의 밑그림이자 동시에 삶의 선언이었다. 건축학도들의 교과서이자 인문독자들의 숨은 고전인 책. 빈자의 미학은 건축서로는 드물게 15천 부 이상 판매되었고, 절판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중고서점에서 10만원을 호가하며 경매에도 등장한다. 책을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저자인 승효상에게는 한 권도 없는 희귀본이기도 하다. 초판을 발간했던 미건사에는 찢어진 책이라도 구하고 싶다라는 문의도 이어졌다. 출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복간 자체가 뉴스인 책”“이라는 여러 일화들 때문에 어떤 권위가 느껴지기도 한다.

 

100쪽 분량의 얇은 부피지만 일반적인 책의 구성과는 조금은 다른 모양새라 짧게라도 거기에 대해서 짧게라도 말해야 될 것 같다. ”텍스트는 한글과 영어가 같은 면에 펼쳐져야 한다는 의도는 어떤 생각 속에서 나온 것일까? 국내만이 아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혀지길 원했던 것일까? 그것 보다는 아무래도 해외에 방문하거나 뭔가에 참여했을 때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잘 소개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같다.

 

마치 다짐과도 같은 혹은 독백과도 같은 저자의 글을 읽으며 조금은 불편한 기분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너도나도 졸부의 꿈을 이루려 염치도 버리고 정서도 버리고 문화도 버리고 오늘날의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냈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고, “적당히 불편하고 적절히 떨어져 있어 더 많이 걷고 나눌 수밖에 없는 건축이 좋은 집이다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저자의 입장에 곧장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선언의 성격이 강한 글이고 짧은 글 속에 깊은 고민이 느껴져 빨리 읽히지만 어쩐지 속도를 늦추며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좀 더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것은 건축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삶의 혁명선언이다. 사람은 선언으로 산다. 그의 첫마음이 써낸 결정적인 말. 그것은 생을 건 약속이다.”라고까지 거창하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뭔가 큰 결심을 느끼게 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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