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이후 프런티어21 13
테리 이글턴 지음, 이재원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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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도중 책을 잃어버려 무척 안타까웠었고 그런 경험 때문에 언젠간 꼭 다시-제대로 다 읽겠다는 다짐을 했다가 이제야 읽게 된 이론 이후는 처음 읽던 적에 비해서는 덜 인상적이지만 그럼에도 무척 의미 있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자 하는 테리 이글턴의 문제작. 인간은 결국 '이론'을 통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로소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논리를 치밀한 문화이론을 바탕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그 굴곡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테리 이글턴은 이론의 죽음-무의미를 말하는 세상에서 이론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포스트 어쩌고를 말하는 모든 이들에게 과연 그들의 생각이 옳은지 묻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 연유를 따져보고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글턴은 진리와 객관성부터 죽음과 악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육체를 지닌 종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존재 조건에 근거해 근본적으로 재해석한다. 이런 주제들에 그렇다면 왜 '이론'을 들이대야만 하는가. 그것에 대해 이글턴은 이론이란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불편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남들이 스리슬쩍 말하기를 꺼리고 있는 순간에 테리 이글턴은 이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용감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를 옹호하고 싶어진다.

 

모든 시대, 위대한 사상과 이론이 풍미하기 마련이다. 20세기 역시 수많은 사상가들이 다양한 철학적 탐구를 비롯한 많은 이론들을 쏟아냈다. 자크 라캉, 미셸 푸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루이 알튀세르 등을 비롯해 위르겐 하버마스, 레이먼드 윌리엄스, 자크 데리다 등 실로 거장들의 이름을 수없이 거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난 20세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간 시기였다고 규정할 수 있다. 거대담론은 해체되었으며 합의는 압제적인 것이고, 연대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획일성으로 치부되었다. 즉 어떤 총체로서의 사회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헌신짝처럼 내던져졌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금 '이론'의 중요성을 각인시키고자 하는 테리 이글턴의 문제작이 출간되어 결국 인간은 '이론'을 통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비로소 자신을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논리를 치밀한 문화이론을 바탕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그 굴곡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문화이론이 등한시했던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제들 진리, 객관성, 도덕, 토대, 본질, 평등, 사랑, 무관심성, 죽음, 악 등 에 대해 좀더 치밀한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은 이미 다 알려져 있는 것들이 아닌가 라고 치부되기 십상이다. 굳이 이런 것들을 '이론'이라는 틀로서만 이해하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론 이후는 단지 이론에 관해서만 다루는 것이 아닌 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 말고도 다른 것들에 대해서 좀 더 폭넓게 다루는 부분들도 있어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논의를 해주고 있다. 과연 이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맞는 것인지 조금은 의구심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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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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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당시 이렇게까지 길게 이어질 줄 몰랐으리라 생각되는 잭 리처 시리즈의 2번째 이야기 탈주자는 지금 봐서는 아직은 덜 자리 다듬어졌다는 느낌만 가득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지금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음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아직은 설익기만 했다. 그래도 잭 리처는 잭 리처니 적당히 읽어낼 수 있었다.

 

잭 리처가 겪는 모험 중 이번의 경우는 한정된 공간(마을, 도시 등)에서 사건에 끼어들고 해결하는 것이 아닌 꽤 다양한 지역을 이동하고 있고 별의별 상황들을 겪고 있다. 최근의 모험들에서 볼 수 없는 나약해지는 순간이나 약점들도 보여주기도 하고.

 

전편 <추적자>에서 작가 리 차일드는 조지아 주 마그레이브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다루면서 플롯의 작은 재미들을 많이 보여주었다면, 이번 <탈주자>에서는 미국 전역을 무대로 한 블록버스터 적인 스케일과 액션을 보여준다.”

 

처음의 기묘한 상황에 비해서는 점점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로 재미를 잃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실망하진 않고 있다. 또한, 발표된 2008년 당시보다 지금 시기에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음모이론에 빠져든 과대망상자에 극우주의 과격분자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를 치는지 볼만하게 보여주고 있다.

 

잭 리처는 분명한 영웅이다. 그는 맨손으로 서너 명의 사내들은 가볍게 제압하고, 최고의 저격수를 가리는 윔블던에서 최고점을 받은 만큼 저격 총이 쥐어져 있다면 십수 명의 군인들과도 일당백으로 대치할 수 있으며 제압을 당한 상황에서도 적과의 심리학과 주위 사물을 통해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리처가 전 세계 하드보일드 스릴러 독자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받아온 이유는 그의 이러한 액션 영웅적 면모와 함께 보여지는 안티 히어로적 측면이 더욱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리처는 자신이 최고인 것을 알고 있으며 어떠한 상황에도 적에게 밀리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리처는 그에게 다가오는 이 모든 위급상황들을 태평하고 느긋하게, 그리고 사회가 판단하는 정의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헤쳐 나간다. 이번 탈주자에서 리처는 정부와 민병대의 싸움에 본의 아니게 말려들지만, 그의 기준은 정부가 옳다’, 혹은 민병대가 옳다가 아니다. 전작 추적자와 마찬가지로 그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불행에 처한 사람이다.

물론 잭 리처 시리즈 자체가 하드보일드 스릴러이며 본격 상업 소설을 표방하기 때문에 보다 사상적이고 이념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추적자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리 차일드는 시원스럽고 페이지 터닝의 상업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면서도 특히 그 소재만큼은 분명히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비단 이 두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을 꿰뚫는 공통적인 요소다.

바람처럼 유유자적하게 세상을 여행하며 사건이 해결되면 미련 없이 또 다른 장소로 떠나는 쿨한 매력, 6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분량을 부담 없이 한 번에 읽어내려가도록 하는 속도감, 그리고 하드보일드 스릴러 장르 자체의 파워풀한 박진감.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안티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한 잭 리처 시리즈니 그냥 재미 차원에서 읽을 걸 찾는다면 이것만큼 적당한 것도 없을 것이다.“

 

아직은 군더더기가 느껴지는 이 시리즈가 어떤 식으로 현재와 같은 모양새가 되는지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뭐가 더해지고 뭐가 덜어졌는지를 찾게 된다. 잭 리처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적당하게 즐길만한 이야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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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개정판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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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지는 꽤 됐지만 어쩐지 읽기를 계속 미루다 이제야 읽어봤다. 항상 게으름이 말썽이다. 저자의 책을 구할 수 있으면 곧장 사고 읽어왔지만 감염된 언어는 이상할 정도로 손이 잘 가지 않았었다. 다른 책들에 비해서 조금은 학술적인 성격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개의 풍경화를 부제로 한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주로 다루는 것은 소위 `언어순결주의`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다. '인류문화의 역사는 감염의 역사이며 그 역사를 실어 나르는 언어의 역사도 감염의 역사'라는 레토릭으로 대표되는 지은이의 언어관은 언어순결주의에 대한 비판, 보다 더 나아가서 언어의 보편성, 언어의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담지하고 있다.

지금도 종종 논란에 오르곤 하는 영어 공용화 문제, 한자 문제, 언어 민족주의 문제에 대해 이 에세이집은 출간된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곱씹어볼만한 생각꺼리들을 제공한다. 그 성찰을 실어나르는 지은이의 명료한 문체를 맛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묘미다.”

 

저자는 언어의 순수성에 대해서 의문스러운-부정적인 입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어에 대한 순수함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반대를 말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한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짧게 알려주기도 한다.

 

영어공용어화에 대한 생각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적당히 수긍하게 되고 뭘 말하고 싶은지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영어공용어화에 대해서는 조금은 다른 의견을 내놓고 싶어지게 된다. 조금은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섞임과 스밈이라는 언어에 대한 생각을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인지 흥미롭게 읽혀졌다. 한자에 대해서나 다른 나머지 내용에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었고.

 

한국어 혹은 언어를 다룬 저자의 다른 책들보다 좀 더 인상 깊은 내용들이 많았다. 어디선가 저자 본인도 자신의 여러 책들 중 이걸 추천했던 기억도 나고. 저자에 관심 있다면, 그리고 언어/한국어에 호기심이 있다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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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 붙자, 맞춤법! - 현장 실무자를 위한 어문규범의 이해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변정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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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싸구려 느낌의 제목 때문에 살짝 읽기가 꺼려질 순 있어도 실제로 읽게 된다면 알기 쉽게 어문규범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충실하면서도 술술 읽혀져 나중에도 다시 펼쳐볼 수 있게 잘 보관하고 싶어지게 된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평소 메신저나 SNS 등에서 편한 문자 생활을 하다가 '각 잡고' 글을 쓸 일이 생기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맞춤법이다.” 읽을 때는 고민되지 않지만 직접 쓰려고 하면 난감하고 뭐가 맞는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저자는 그런 독자들이 어문 규범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한다. “편협한 표준어 중심주의, 완고한 규범주의에서 벗어나 "의사 전달의 효율성""표현의 적절성"에 집중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규범들을 설명하며 "무조건 지켜야 돼"라고 주장하지 않고, "규범이 왜 이럴까?"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맞춤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보단 '맞춤법에 대한 책'이라는 설명이알맞을 것이다.

 

“100회 넘게 진행된, 편집자 대상의 맞춤법 교육을 갈무리한 내용이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문규범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수월하게 읽혀지진 않았다. 그래도 맞춤법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할 때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 부분들을 잘 짚어주고 있어 부담이 조금은 덜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멋대로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무작정 편해지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의 주관이 필요함 또한 느끼게 된다. 어쨌든, “‘규범이 이러저러하게 규정하고는 있지만, 그 취지를 이해한다면 지나치게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주고 있다.

 

글을 쓰거나 특히나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건 작건 어문규범의 막연한 압박을 받으며 까다로운 문법 용어가 난무하는 일방적인 규정에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어 문법에 대한 이론적 전문지식을 갖추지 않은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그 까닭을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으니 글쓰기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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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페어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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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날 정도는 아니지만 항상 고만고만한 재미가 있는 잭 리처 시리즈 중 어페어는 잭 리처가 군대에서 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을, 다시 말해서 과거를 다룸과 동시에 어째서 반강제적으로 전역을 하게 된 연유도 알려주고 있다. 그것도 그렇지만 길고 긴 이 시리즈의 시작인 추적자와도 연결되어 있어 이 시리즈를 즐기고 있는 사람은 이것저것 흥미를 끌만한 구석이 좀 있다. 몇몇 반가운 사람들도 잠시 나오기도 하고. 시리즈에서 간간히 언급되었던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이유가 어떤 사건이었는지 알게 되지만 다른 시리즈에 비해서는 어정쩡한 완성이라 크게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그래도 잭 리처 시리즈니 읽기 지루할 정도는 아니었다.

 

미시시피 북동쪽에 위치한 카터크로싱에서 벌어진 세 건의 연쇄 살인 사건. 피해자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모두 여자였고 비슷한 또래였으며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셋 다, 예리한 칼로 목이 베어진 채 처참히 살해당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켈햄 소속의 군인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가운데 군 당국에서는 리처가 아닌 다른 소령을 기지로 내려 보내 사건의 수사를 명하고, 리처에게는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마을 상황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기지 밖에서는 연이어 납득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기고, 리처는 살인 사건을 무마하려는 거대 권력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사건에 끼어들면서 어떤 음모를 직감하고, 더 파고들면 본인에게 좋을 것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진실을 파헤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 잭 리처고 그가 분노하게 되는 몇몇 과정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흥미를 잃게 하지 않지만 앞서 말했듯 상대적으로는 재미가 덜하고 이야기도 엉성한 점 많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밋밋했다.

 

그래도 뭐, 기본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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