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발표 당시 이렇게까지 길게 이어질 줄 몰랐으리라 생각되는 잭 리처 시리즈의 2번째 이야기 탈주자는 지금 봐서는 아직은 덜 자리 다듬어졌다는 느낌만 가득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통해서 지금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음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아직은 설익기만 했다. 그래도 잭 리처는 잭 리처니 적당히 읽어낼 수 있었다.

 

잭 리처가 겪는 모험 중 이번의 경우는 한정된 공간(마을, 도시 등)에서 사건에 끼어들고 해결하는 것이 아닌 꽤 다양한 지역을 이동하고 있고 별의별 상황들을 겪고 있다. 최근의 모험들에서 볼 수 없는 나약해지는 순간이나 약점들도 보여주기도 하고.

 

전편 <추적자>에서 작가 리 차일드는 조지아 주 마그레이브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다루면서 플롯의 작은 재미들을 많이 보여주었다면, 이번 <탈주자>에서는 미국 전역을 무대로 한 블록버스터 적인 스케일과 액션을 보여준다.”

 

처음의 기묘한 상황에 비해서는 점점 지루함이 느껴질 정도로 재미를 잃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주 실망하진 않고 있다. 또한, 발표된 2008년 당시보다 지금 시기에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음모이론에 빠져든 과대망상자에 극우주의 과격분자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를 치는지 볼만하게 보여주고 있다.

 

잭 리처는 분명한 영웅이다. 그는 맨손으로 서너 명의 사내들은 가볍게 제압하고, 최고의 저격수를 가리는 윔블던에서 최고점을 받은 만큼 저격 총이 쥐어져 있다면 십수 명의 군인들과도 일당백으로 대치할 수 있으며 제압을 당한 상황에서도 적과의 심리학과 주위 사물을 통해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리처가 전 세계 하드보일드 스릴러 독자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받아온 이유는 그의 이러한 액션 영웅적 면모와 함께 보여지는 안티 히어로적 측면이 더욱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리처는 자신이 최고인 것을 알고 있으며 어떠한 상황에도 적에게 밀리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리처는 그에게 다가오는 이 모든 위급상황들을 태평하고 느긋하게, 그리고 사회가 판단하는 정의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헤쳐 나간다. 이번 탈주자에서 리처는 정부와 민병대의 싸움에 본의 아니게 말려들지만, 그의 기준은 정부가 옳다’, 혹은 민병대가 옳다가 아니다. 전작 추적자와 마찬가지로 그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불행에 처한 사람이다.

물론 잭 리처 시리즈 자체가 하드보일드 스릴러이며 본격 상업 소설을 표방하기 때문에 보다 사상적이고 이념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추적자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리 차일드는 시원스럽고 페이지 터닝의 상업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면서도 특히 그 소재만큼은 분명히 사회 비판적인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비단 이 두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을 꿰뚫는 공통적인 요소다.

바람처럼 유유자적하게 세상을 여행하며 사건이 해결되면 미련 없이 또 다른 장소로 떠나는 쿨한 매력, 600페이지에 가까운 두꺼운 분량을 부담 없이 한 번에 읽어내려가도록 하는 속도감, 그리고 하드보일드 스릴러 장르 자체의 파워풀한 박진감.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안티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한 잭 리처 시리즈니 그냥 재미 차원에서 읽을 걸 찾는다면 이것만큼 적당한 것도 없을 것이다.“

 

아직은 군더더기가 느껴지는 이 시리즈가 어떤 식으로 현재와 같은 모양새가 되는지를 생각하며 읽는다면 뭐가 더해지고 뭐가 덜어졌는지를 찾게 된다. 잭 리처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적당하게 즐길만한 이야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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