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놀 책세상 니체전집 10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 책세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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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책을 구입하려고 지갑을 열고 있을 때도 나는 이걸 과연 사야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가격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것을 읽어내는 과정에서 겪게 될 수많은 고통이었다. ^^;;;

 

심술쟁이 영감탱이가 얼마나 또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지 충분히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번 책을 통해서도 얻는 것도 있겠지만 많은 좌절을 안겨주리라 충분히 예상되었기 때문에 읽으려니 괴롭고 포기하고 싶으면서도 유난히 관심이 가고 매력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이 구입을 했고, 역시나 한달에 걸쳐서 읽으며 많은 괴로움을 수반한(게다가 날도 추워서 더 괴로웠다) 독서기간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책들을 몇권 읽었지만 이번에도 그에 대한 내 관심은 걷어차였을 뿐이었다.

알듯 말듯한 그의 글들에 좌절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가 쟁취하라는 삶에 대한 태도가 내 삶과는 많이 차이가 나고 그가 냉소하고 비판하는 삶이 오히려 나의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나는 새롭게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재확인하게 되었을 뿐이다.

 

'아침놀'은 다른 출판사에서는 대부분 '서광'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것으로 아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침놀'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고 멋지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솔직히 제목이 너무 마음이 들어서 구입을 했었으니까.

 

그는 여전히 철학으로 망치질을 하고 있으며 이번 망치질은 '도덕'과 '종교'를 중심으로 그외의 것들도 간간히 비판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 가끔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기도 하고, 때로는 국가와 인간의 이면의 것들(그는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간간히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비판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아침놀'을 읽기 전에 '도덕의 계보학'을 먼저 읽는 것이 보다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도덕의 계보학'도 그다지 쉽지는 않은 책이니...

 

짧은 잠언들처럼 이뤄진 니체 특유의 글쓰기는 '아침놀'에서도 경험할 수 있으며,

가끔씩은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지 두세번 읽어도 감을 잡기 어려워서 짜증도 나면서도 또 가끔은 어쩌면 이렇게 예리하게 통찰할 수 있을지 놀랍게 만드는 글도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는 힘들어도 항상 그렇듯이 나의 마음을 울리는 니체였다.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지금에 안주하지 말고 뛰어넘으라고 응원한다.

여전히 더디게 뛰어넘기를 시도해 보지만 성공하지는 못하고 넘어지기 일쑤인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나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나도 흔쾌히 응하고 싶다.

 

이번에도 힘겹게 읽어내었기 때문에 다른 니체의 책들은 나중에 읽어봐야겠다.

너무 유혹이 강해서 '짜라투스트라...'는 어딘가에 숨겨둬야지.

 

읽기가 힘겨울 것 같은 사람들은 뒤쪽에 있는 해설에서 보다 편하게 길잡이를 해주고 있으니 한번 읽은 다음에 본문에 도전하는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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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 옮김 / 까치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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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렇게 길지 않은 내용에도 불구하고(300페이지 분량)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직은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없지만 몇일이면 후기까지 읽을 수 있으니까 거의 2주 걸려서 읽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는 어려웠고 지루했다. 나름 도움이 되는 내용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읽으면서 잠이 오고 뭔소리인지 몰라서 계속 뒤적거리게 된 책이기도 했다.

역시나 나와 과학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동안 이것 저것 다양한 분야라고 말할 것 까지는 없지만 관심이 가는 분야들의 책들을 읽으면서 어쩐지 수학과 과학 쪽은 전혀 읽지 않은 것 같아서 하나 읽어볼 생각으로 잡았던 것이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인데, 앞으로는 절대 잡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어느정도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과학과 관련된 책들에 비해서는 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만드니... 편하게 읽던 분야들이나 읽어야겠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근의 과학, 철학 및 기타 다양한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책이기 때문에 한번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나를 포함해서 너도나도 사용하고 있는 용어인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지금과 같이 너도나도 쓰도록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에 비단 과학사나 과학철학 쪽만이 아니라 지금-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렵기는 하지만 어느정도 의미가 있는 책이며 전체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부분적으로는 많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는 기존의 과학사에서 다뤄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축적적인 발전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가 어떻게 진보하느냐에 대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의 내용들로 되어있지만 생각보다는 읽는데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과학쪽이나 수학쪽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산수는 할 수 있어도 수학은 여전히 못해먹겠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번역에 대해서 지적한 적이 없었는데(번역문제를 지적할 정도의 지적 수준은 아니다) 이번에는 번역문제를 지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1999년 초판 18쇄 발행판인데도 문장이 '뭔가 이상하게' 번역된 느낌이다.

번역가가 초반에 보다 읽는데 편하게 하기 보다는 원문의 맛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말이 있어서 어느정도 각오를 하기는 했지만 만약에 내가 영어를 어느정도 했으면 번역판을 읽기 보다는 원서를 읽는게 더 도움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

번역자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답시고 과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없으리라 생각했는지 아니면 일반인들이 대부분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판단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흔하디 흔한 번역자 각주도 하나 없는 책은 간만에 보는 것 같다.

 

번역자가 해설을 위해서 각주를 하는 경우 너무 많을 때는 오히려 읽는데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지만 이런 책에는 어느정도 길잡이기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번역만 했을 뿐 특별히 다른 것은 없는 책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다.

과학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의미있는 책이기 때문에 번역상태가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도전해 볼 수 있을만한 책이기를 바랬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권하기는 참 힘든 책이었다.

 

새로나온 개정판에는 어느정도 수정이 이뤄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읽은 '두산동아' 출판사 판에 있는 역사 서문을 보자면 별로 기대할게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동안 '패러다임'에 대해서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진보나 기타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도 보다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좋던 싫던 기존의 축적적이고 일방향적인 진보와 발전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패러다임'에 전환을 가져온 책이기 때문에 고생은 하겠지만 읽은 다음에는 무언가를 생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고, '패러다임' 관한 것 뿐만 아니라 그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좋은 인식의 틀을 제공해주는 책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에 관한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좁은 지식을 갖춘 나와는 달리 상식이 풍부한 다른 사람들은 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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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
스티븐 컨 지음, 박성관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이것도 물론 헌책방에서 구한 책이었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구해서 읽기를 반쯤은 포기한 상황이었는데 헌책방에서 우연히 보게 되어서 기분 좋게 구입할 수 있었다.

책을 구입한 것만 기분 좋은 것이 아니라 내용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물론... 많은 부분은 이해하지 못해서 알딸딸하게 만들었지만.


저자는 크게 두가지의 주제를 갖고 1880년에서 1918년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과 사회적 변화 등등을 풀어내려고 하고 있다.

그 두가지는 바로 ‘시간’과 ‘공간’인데 시간과 공간에 관해서는 최근의 인문학계에서 관심이 높아지는 주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다양한 철학자들이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말하고 있거나 그런 방식으로 그들의 말들을 해석하려는 연구자들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최근 공간과 시간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져서 큰 도움을 받게 된 책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호수의 여인’을 읽은 다음 거의 한달에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서야 책을 다 읽게 되었다. 분량이 크기도 하지만(700페이지가 넘는다) 분량을 떠나서 저자가 얘기하는 다양한 예들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시간에 관한 부분은 어느정도 알아먹을 것 같았는데, 공간에 관한 부분이 많이 어려웠다). 아마도 한가지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보다 작품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보다 편하게 읽게 하기 위해서 시간 / 공간으로 주제를 나누고 이전에 갖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인식과 다양한 변화(표준시간의 등장, 전화, 전차와 자전거의 등장으로 인한 속도감과 시간감각의 상대성, 영화의 등장, 테일러주의, 프루스트, 조이스, 베르그송 및 다양한 사회 / 철학자들의 논의 등등)를 통해서 어떻게 시간에 대한 관념과 감각이 변화하게 되었는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그다지 박학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저자가 풀어주는 많은 예들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지만 최대한 읽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게 자세하고 다양한 사례들 통해서 힘겹기는 하지만 재미나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저자의 박학다식함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기는 했지만 이처럼 수많은 예들을 찾아내고 정리한 사람은 몇 안되는 것 같다.


저자는 시간에 대한 변화를 설명한 다음 시간을 다양한 부분으로 나눠서 친절히 변화와 함께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지 알려준다. 프루스트와 조이스의 책을 주된 참고자료로 사용하고 베르그송의 철학과 니체와 기타 다양한 철학자들을 통해서 시간의 경험과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도 설명한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변화의 주된 원인이 과학과 기술발전으로 인하여 변화가 추동된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지만 저자는 분명히 이런 변화의 주된 원인이 과학가 기술발전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변화만으로는 당시의 다양한 분야에서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인식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고 싶어하는 것은 일종의 ‘흐름’으로서 변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그는 일종의 토대-상부구조론으로서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접근하는 것에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저자의 관점은 ‘공간’에 대한 논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전과 이후의 공간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화를 하게 되는지와 기술의 변화와 함께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수학과 과학에서의 변화이다.

특히 수학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업적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은 해주고 있는데... 산수나 좀 하지 수학은 꽝인 사람이기 때문에 거의 무슨 소리인지 대충만 알아먹게 되었다.


공간에 대해서는 건축가들도 중요하지만 세잔이나 입체파와 같은 미술가들의 업적에 대해서 보다 집중을 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후반부에서 입체파의 미술과 제1차세계대전이 그동안의 전술과 전략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심도있게 분석해주고 있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있었던 주제를 조금이라도 접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앞으로도 이런 분야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갖고 싶었는데 다른 책들도 구해서 보고 싶다.

물론... 언젠가는~ 이겠지만.


참고 :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사회를 바라본다면 아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공간에 대해서는 지식과 감각이 부족하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이 떠올리게 되지는 않지만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한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저자가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과정을 분석해주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시간관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내용이 어쩐지 한국의 상황과 어느정도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꽤 쓸만한 연구주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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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여인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4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챈들러의 네번째 장편 소설인 '호수의 여인'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유머러스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빅 슬립', '기나긴 이별'만 보았기 때문에 그다지 '유머'있다고 하는 부분이 뭘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아마도 팬들이 아니면 그렇게 큰 차이점을 느끼지는 못할 것 같다.

 

이번 작품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점은 아마도 필립 말로가 '도시 이외의 지역'에서 사건을 경험했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해설에서는 도시 / 산골(호수)를 이분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추악함과 순수함의 대립이랄까?), 이러한 이분법은 헐리우드 영화나 기타 다양한 방식으로 많이 얘기가 되었던 것이라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마도 이러한 방식으로 나누는 것은 그다지 챈들러답지 않은 방식인 것 같은데(챈들러의 인물들은 모두 문제가 있는 인물들이었고, 자신의 더러움과 추악함을 더러움과 추악함으로 덮으려는 인물들이었고 유일하게 추악하지만 자신의 더러움을 덮지 않으려는 인물이 필립 말로라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는 패튼 보안관이라는 노쇠했지만 분별을 갖고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보다 다른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이야기도 기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는 덜 무겁기 때문에 당시의 챈들러가 어떤 기분으로 책을 써냈을지 모르겠지만 여유있게 작업에 임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더러움과 우아함이 공존하고 있는 필립 말로의 독특함이 조금은 약해진 것 같다.

(생각보다 덜 더럽고 우아하다고나 할까?)

 

이야기 자체는 챈들러의 책을 몇권 읽은 사람들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구성되고 흘러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챈들러는 사건에 대해서는 무심하다는 평가는 적절할 것 같다.

그가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 다음과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진흙탕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필립 말로의 모습을 통해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리도 이들에 비해서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분명 단순한 범죄와 스릴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점점 거대하게 되어가는 도시의 이면을 까발리는 폭로자나 사회소설가라고 생각된다.

아쉽게도 이야기에는 부분적으로 공백이 있고,

보다 논리적이거나 짜임새 있는 구조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분명 '도시'라는 공간의 타락함과 이면을 가장 깊이있게 파악한 몇 안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필립 말로 또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낭 밑바닥과 가장 높은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은 몇 안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아쉽게도 보관하고 있는 챈들러의 소설이 이것 뿐이라서 그와의 만남은 기약할 수 없는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보다 챈들러의 작품을 음미해보고 싶다.

요즘에는 워낙 짬이 없어서(게을러서) 급하게 읽거나 끊어서 읽고 있는 중이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한동안은 아주! 두꺼운 책을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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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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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있는 세권의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들 중에서 두번째로 '빅 슬립'을 읽게 되었다.

이미 한번 읽은 책이기는 한데... 전혀 기억도 없고,

끝까지 읽어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 과연 이책을 진짜 읽기는 했던 것 맞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챈들러의 스타일에 감도 잡지 못하고 내가 예상한 것과는 조금은 다르기 때문에 실망스럽다느 생각도 있었을 것 같고, 예상과 다르니 읽는 둥 마는 둥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젋었기 때문에(혹은 보다 멍청했기 때문에) 필립 말로 / 챈들러가 보았던 세상에 대해서 어떠한 공감도 못 느꼈기 때문에 흥미없게 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어느정도 그들의 시선처럼 세상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은 없지만... 흥미롭게 추악한 도시의 인간군상들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다.

그만큼 나도 추악해졌다는 것일 수 있고(이전은 순수했다는 뜻은 아니다. 추악하다는 것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무지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자신이 악마인지도 모르는 악마가 있듯이).

 

아마도 재미를 못 느낀 이유는 '이야기 구조'에서 뭔가 못마땅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을 아주 재미나게 보았기 때문에 발빠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엘로이에 비해서 조금은 느슨한 진행(그렇지만 갑작스럽게 의문이 풀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챈들러의 장기이자 매력이다)이 영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더군다나 마무리에 가서 느닷없는 결론은 어느정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반감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챈들러에 대한 부당한 평가일 것이다.

그가 노리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죽었고, 누가 죽였나? 를 갖고 독자들과 함께 머리싸움을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만들려는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때문에 꽉 짜이고 촘촘한 완결성은 엘로이나 다른 작가들에 비해서는 약하다고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챈들러가 노리는 것은 어떠한 상황을 설정하게 만들어서 그를 통해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도록 하고, 사회에 대한 그의 시각과 생각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LA라는 도시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필립 말로'라는 인물을 통해서 얼마나 추악한 곳인지와 얼마나 그렇게 추악한 곳에서 얼마나 추악한 일들과 추악한 사람들이(추악 / 타락 등등은 챈들러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이다) 존재하는지에 대한 보고서와 같은 작품을 챈들러는 만들어 내었다.

그는 일종의 사회소설가이고, 미국의 발자크와 같은 존재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타락한 발자크이겠지만.

 

챈들러의 작품과 필립 말로라는 인물은 나눠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작품의 중심 인물이며,

항상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터프하고 거친 이미지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섬세하고 고독한 인물이다.

겉으로만 판단하기에는 그는 아주 복잡한 성격을 갖고 있는 인물로 느끼게 되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끝없이 자신의 생각을 독백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냉소적인 유머와 빈정거림은 읽으면서 감탄하게 되지만 꼭 써먹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도 써먹었다가는 무덤파는 꼴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는 기사가 필요가 없는 세상에 태어난 기사와 같은 존재이다.

그의 대사처럼 처음부터 기사는 게임에서 제외된 존재였고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필요없어진 세상에서 살아가는 추락한 영웅일 것이다.

자신이 필요할 곳이 없이 살아가는 그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는 살아가기 위해서 무언가와 타협한다.

별 수 없이 타락하게 되고 추악해졌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품위를 지켜나가며 살아간다. 아마도 그가 최소한을 지켜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경멸하고, 최소한을 지켜나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최대한 존중을 하는 이유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예의와 품위를 어떻게 지켜나가는지에 대한 평가일 수 있을 것 같다.

 

첫 작품인 '빅 슬립'부터 마지막 작품으로 평가되는 '기나긴 이별'까지 세상에 대한 필립 말로 / 챈들러의 시각은 변함없으며 보다 진지하고 감상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냉소적이었다면, 후기에는 쉽게 단정내리기 보다는 보다 고민한다고나 할까?

 

'빅 슬립'은 단순한 범죄소설을 넘어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와 같은 위력을 지녔다. 그정도로 챈들러 / 말로가 보았던 세상은 그들이 자신들의 시각에 어느정도 확신을 가졌을지 몰라도 핵심을 파악했다고 생각된다.

 

내가 챈들러의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다.

말로가 보았을 때 나는 그의 경멸의 대상일까? 존중의 대상일까?

아무래도 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나도 최소한을 지켜나가고 싶다.

까다롭다기 보다는 느슨하고 조금은 구성이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지독한 매력을 가진 챈들러의 힘을 느낄 것이다.

 

깨끗한 것은 없다.

문제는 얼마나 더러워 졌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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