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진중권 지음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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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발언들은 조금은 선정적이고 과격한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다지 틀린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가 표적으로 삼는 사람들은 분명히 기분 나쁘게 듣게 될 것이고, 그의 생각에는 동의해도 그의 발언이 조금은 격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그의 발언에 조금은 민감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가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 그의 말투에 그다지 기분 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혈기가 넘치던 2002년에 발표한 ‘폭력과 상스러움’은 그가 여전히 악에 바친 듯이 싸우고 있는(때로는 진흙탕인줄 알면서도 그는 뛰어든다) 수구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여전히 사회에 대한 권력을 움켜잡고 있는 조선일보의 만행들과 박정희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세력 그리고 그런 세력에 기생하고 있는 자유주의라고 자처하는 보신주의자들에 대해서 그는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있고, 다양한 곳에 기고한 글들이라 조금은 통일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단순히 각각의 사안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참여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사회가 그리고 지식인이 보여주어야 할 모습들에 대한 모색과 자신만의 결론도 내세우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체형성과 정체성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짧은 분량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놓기도 하기 때문에 그의 다양한 시각들(에세이스트와 저널리스트로서의 시각과 학자로서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

 

이후의 그의 저작들이 미학에 관한 책들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지만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국인은 어떻게 권력에 의해서 자기 자신을 구성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후의 그의 관심들을 조금은 엿볼 수 있기도 하다.

 

그의 주된 비판세력은 수구기득권 세력이라고 불리는 자들인데, 그들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넘어서서 유사 파시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그는 큰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이 세력이 현재 모든 곳에서 권력일 움켜잡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성이 없다는 것을 그 자신이 우선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되도록 그는 비슷한 주제의 글들을 묶어두고 그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을 취해서 보다 통일성을 만들어내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이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논의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에 관한 장이 가장 인상 깊었다.

 

홍세화, 진중권, 김규항, 박노자 등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2000년대 초부터 그들의 발언과 의견들에 조금씩 힘을 얻기 시작했지만 그들이 지적하는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고 보다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것에서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고, 사회가 보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불편하지만 타당한 그들의 의견에 조금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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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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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또는 사회와 정치적인 영역에서 고종석의 위치는 참 애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흔히(또는 쉽게) 사람들이 분류를 하고 있는 우와 좌로 분류하기가 (한국에서는) 애매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보다도 더 강하게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왼쪽에 있는 사람들이 호응을 할 수 있는 발언도 곧잘 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둘 모두에게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남겨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의 자유주의 이전에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현실적이고 합리주의자이며 개인주의적인 그의 정서 때문인 것 같다. ‘나를 내버려두라’라는 입장을 갖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고, 현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의 의견은 타당하거나 혹은 수긍할 수 있는(동의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다른 문제이지만) 생각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그의 여러 의견들 중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마리화나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있기도 하지만 그의 경제에 대한 혹은 사회에 대한 시선에서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그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의 날카로운 분석과 의견에 비해서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로움을 느끼기 힘들었고, 지금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구석이 강해서 발생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짐짓 모르는 척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혹은 그런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내버려 두거나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계급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합리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다른 보수적인 사람들의 의견들에 비해서는 꽤나 수긍할 수 있고 이해가 가능한 발언들을 하고 있다. 이런 인물이 한국의 보수주의 사회에서 전혀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한심한 노릇이기는 하지만 그의 의견들에는 꽤 흥미로운 부분도 있고, 경직적이고 돌려막기 식으로 같은 말만 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의 의견에 비해서도 꽤 날카로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심을 갖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참고 : 아마도 이런 방식의 에세이 책들 중에서 자신의 글과 함께 추가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드물었던 것 같다. 고종석은 추가 정보 혹은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식으로 내용이 정리되어서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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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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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생각하기 싫어서 소설이나 읽자고 생각하며 펼쳐든 책이지만...

이 작품은 그리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딱히 읽는데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내용을 읽어나가는 것보다 등장인물 이름을 외우기가 더 힘들기도 했는데도, 이상하게 이 작품이 쉬운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을 우선 하게 된다.

왜 그럴까?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다보면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활기와 유머가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의 세계에 침잠되어만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결국 많은 경험과 그로 인한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결국 자신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만 가고 있다.

 

작품은 때로는 세상을 비틀어서 가져오고,

라틴 아메리카의 슬픈 역사를 은유적으로 들려주고 있기는 하지만 책을 전체적으로 읽은 다음에 들게 되는 기분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고독만이 남겨질 뿐이다.

운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혹은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씁쓸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물들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사랑하고 싸우고 그리고 죽음에 이르며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남겨진 것을 말 그대로 고독일 뿐이다.

 

마르케스는 지속적으로 근친상간의 유혹과 욕망 그리고 죄악과 터부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관심을 넘어서 집착에 가까운 마르케스의 근친상간에 대한 그의 시각을 다른 작품들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집착은 유독 읽는 내내 신경 쓰이게 만든다.

 

만약 남미의 여름을 그리고 생각이상으로 춥다고 하는 그곳의 한기를,

그리고 지독하다고 말하는 폭우를 경험했다면 이 작품을 보다 풍부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보다 풍성하게 읽기 위해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그들의 삶을 바라봐야 할 것 같다.

 

환상과 현실, 괴로움과 성적인 유혹 그리고 삶의 고독을 담아내고 있다.

비극적인 듯 하면서도... 비극보다는 저주스러울 정도로의 고독을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무슨 고독이냐... 라고 말을 하다가도 이것이야 말고 고독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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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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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강가에 앉으려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번개를 맞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을 하고

누군가는 버튼을 만들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그냥 엄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아쉽게도 영화 ‘벤자빈 버튼...’의 가장 멋진 대사 중 하나인 위와 같은 문장을 피츠제럴드의 단편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에서는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쉽게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화와는 다른 내용들로 피츠제럴드는 재즈 시대를 담아내고 있으니까.

 

영화 덕분에 피츠제럴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항상 그렇듯이 그러한 관심은 짧은 기간일 뿐이다. 마치 재즈 시대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질 뿐이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은 항상 그렇듯이 봄과 여름을 느끼게 되고, 낭만적이면서도 때로는 날카로울 때가 있다. 술에 취한 듯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다가도 순간적인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물론 술기운에 들려주는 통찰력이라 사람에 따라서는 무시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갸우뚱 거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피츠제럴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통찰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순간도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그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작품이면서도 그의 기본적인 성향은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형적인 피츠제럴드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젤라빈’으로 시작해서 소동극처럼 재즈 시대의 젊은이들을 담아내고 있는 ‘낙타의 뒷부분’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인상적이라고 말하고 있고, 동의하게 만들고 있는 중편 ‘노동절’은 흔히들 말하는 영화적인 구성이면서도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피츠제럴드 특유의 비극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읽다보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정리하게 만드는 그의 능수능란한 솜씨는 감탄하게 만들고 ‘자기와 핑크’와 같은 작품은 항상 그렇듯이 그의 뛰어난 글재주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스타일과 이야기들 때문에 단편집이면서도 각각의 작품들이 완성도의 편차가 많이 커서 피츠제럴드 본인도 꽤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단편집을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이야기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그는 정돈하였다.

 

‘리치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는 느슨하고 몽환적이면서도 마치 마크 트웨인의 ‘아더왕과 양키’를 이상하게 변주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야기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르면서도 이상하게 유사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영화로 인해서 가장 알려지게 되었지만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보여준 낭만적이고 멜로드라마적 구성에서 벗어나 그의 우화적이면서도 삶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 다시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관계와 그로 인해서 벤자민 버튼이 삶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행복이 남은 자리’였는데,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여성과 그 여성을 바라보는 남편의 친구 그리고 그들의 애정과는 다른 말 그대로 서로 간에 갖게 되는 호의까지 피츠제럴드는 가끔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그를 나는 사랑할 수 있어요.

내가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나요?

 

.

.

.

 

이들 두 사람에게 삶은 빨리 와서 빨리 지나갔으며,

씁쓸함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연민을 남겼고,

환멸을 남가지 않았지만 오직 아픔을 남겼다.

 

 

재즈 시대를 즐기고 흥청망청 거리기만 했을 것 같은 사람이 가끔은 그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강렬한 여운으로 인해서 그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의 초기 작품들이 많이 담겨져 있어서 보다 구성이 허약한 부분도 있고 앞에서 말했듯이 작품의 완성도도 편차가 커서 사람들이 호감을 갖기에는 약간은 부족한 면이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멋진 순간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즐긴 것으로 나는 만족하게 된다.

 

참고 : 초판본을 읽다보면 글씨체가 다른 부분들이 계속 눈에 뜨이는데, 일부러 문장에서 중요한 단어들을 강조하기 위해서 피츠제럴드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오타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펭귄에서 그렇게 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단어도 아닌 듯 하고.. 뜬금없는 부분에서도 발견되는 단어들이 몇 개 있기 때문에 애매하게 생각된다.

출판사에 문의를 하려고 했는데, 이메일 문의도 회원을 가입하라고 하니... 문의를 하려다가 그냥 때려쳤다. 그딴 것도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면 알려줄 필요도 없는 출판사다.

 

페이지 번호는 아래와 같다.

 

40, 43, 45, 54, 67, 106, 121, 125, 131, 139, 140, 142, 144, 152, 155, 159, 168, 185, 192, 197, 202, 207, 213, 214, 227, 252, 253, 254, 256, 257, 258, 271, 274, 281, 292, 299, 303, 304, 315, 320, 322, 341, 345, 346, 364,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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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 양장본
앤서니 기든스 지음, 한상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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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제3의 길을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를 넘어서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최근 한국의 정치적 상황들 때문인 것 같다.

 

토니 블레어로 대표되는 제3의 길과 중도좌파 혹은 중도라는 정치적 입장은 결과적으로는 말장난에 불과하고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 이념이고, 그것을 지향한 집단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을 지지하던 지지자들이 전부 등을 돌리게 만드는 정책을 펼쳤고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기존의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정책들을 일관적으로 혹은 더 무모하게 밀어붙이는 성향도 보이는 등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인식하지도 못했다.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을 추구한다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실적이기만 했고 이상은 말로만 했을 뿐이었다. 혹은 머리 속에서만 남겨져 있었거나.

그런 제3의 길 혹은 중도좌파의 이론적 토대가 되고 그들의 문제의식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짧은 분량이면서도 제3의 길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주 말하고 있는 문제점과 그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안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든스의 문제의식은 분명 적절하고 날카로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일반론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여성과 가족, 환경문제와 세계화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세밀한 면이 부족한 것 같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최대한 간략하게 논의를 진행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점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는 제3의 길이라는 이념이 보여주는 해답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에 실망스러운 기분도 든다.

 

그리고 제3세계의 빈곤문제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는 수준이지 직접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토대로 하게 된다면 기든스의 제3의 길은 결국 유럽의 시각에서만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든스가 유럽중심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글에서는 특별히 세계화에 대해서 보다 풍부한 시각을 엿보기도 힘들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본인도 인정하듯이 그는 과거의 케인즈와 비슷한 일종의 개량주의 혹은 수정주의자라고 볼 수 있는데, 케인즈와는 다르게 보다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처방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입장에서는 그의 논의는 학술적이고 이론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고 직접적이지도 않은 논의일 뿐이며, 새롭고 신선한 무언가를 원하는 정치인들에게나 즉각적인 영감을 안겨주고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여지만 많다고 생각하게 된다.

 

기든스는 말미에서 토니 블레어 정권에 대해 말뿐인 공허함 보다는 보다 알찬 결실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건 블레어만이 아니라 그에게도 필요한 말이었다. 어쨌든 그의 지적대로 제3의 길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새롭게 보이기는 했지만 그건 수사적인 새로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제3의 길을 써먹고 실패했다고 제3의 길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부분적으로 기든스의 논의 중에서 분명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할 필요성이 있는 부분도 있고, 그의 분석을 지속적으로 언급할 부분도 있기 때문에 쉽게 묻어버리기도 아까운 구석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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