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 - 상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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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의 섬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51426435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은 고작 살인자들의 섬만 읽었을 뿐이고,

그의 최고작들이라고 하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전혀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인자들의 섬이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성향을 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로 인해서,

데니스 루헤인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어서 그에 대한 생각은 쉽게 정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최근작 중 하나인 운명의 날또한 그가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작품들과는 다른 성격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 읽으면서도 어떤 평가를 하기 보다는 과연 이전에는 어떤 작품들을 발표했기 때문에 탁월한 범죄소설가로서만이 아닌 지금과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되는지 궁금하게 생각될 뿐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고 있는 운명의 날은 책표지 뒷면에 적혀진 홍보용 문구처럼 20세기 초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규모가 큰 역사소설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보스턴 경찰 파업을 전후로 한 시기를 배경으로 경찰내의 노사갈등과 흑인과 백인 그리고 온갖 인종들 사이의 갈등과 차별, 남녀 간의 사랑과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받은 미국 내의 진보-좌파들의 정치적인 활동과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이 더해지면서 무척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 소용돌이 속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그 거대한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지를 담아내고 있다.

 

운명의 날의 특징을 꼽으라면 대부분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하면서 온갖 다양한 갈등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 함께 실존했던 인물들을 간간히 등장시키면서 좀 더 사실적인 느낌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베이브 루스의 경우는 별도의 이야기로 진행되고 있을 정도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베이브 루스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상권에서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뭔가 그를 통해서 그 시대의 또다른 풍경을 알 수 있도록 만들고 있기도 한 것 같다.

 

절반의 흐름만을 보이는 상권이기 때문에 아직은 읽어야 할 500페이지(하권)가 남아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 되어갈지 섣부르게 예측할 수 없기는 하지만 운명의 날의 가장 큰 장점은 긴 호흡의 작품이면서도 지루하게 만드는 순간이 없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물론, 이런 뜻이 아주 재미나고 박진감이 넘친다는 말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계속해서 읽어내게 만들고 있고 어떻게 끝날지 읽고 싶어질 정도의 재미는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재미와 이야기 진행이라는 것에 쉽게 동의할 것 같다.

 

크게 보아서는 보스턴 경찰 파업을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그 시대를 바라보도록 만들고 있고, 그 시대의 여러 문제점과 지금 이 시대를 연관시켜 생각해보도록 의도하고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이런 생각은 추측일 뿐이고 그저 인종갈등과 궁핍하기만 한 삶을 살아가던 당시의 대부분의 민중들의 삶,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의 여러 모습들을 등장인물들의 경험들을 통해서 엿보게 하고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 같다.

 

하권의 이야기가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는 1/3 정도만 읽어냈기 때문에 더는 말할 수 없지만 어떤 결론일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이야기를 큰 흐름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게 되고 있다.

 

얼마나 대단한 결론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실망스러움을 느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지 궁금해 하면서 끝까지 읽어보게 될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운명의 날은 엄청날 정도로 재미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 작품을 계속해서 읽어낼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은 갖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1,0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라 이런 꾸준함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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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문화
배리 글래스너 지음, 연진희 옮김 / 부광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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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거부감 혹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제목을 강하게 정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는 궁금증을 내용에서는 생각만큼 만족시켜주질 못하고 있고, 흥미롭게 느끼도록 만들거나 관심을 채워주진 못하고 있었다.

 

배리 글래스너의 공포의 문화는 우리가 이미 혹은 익히 알고 있는 문제들을 좀 더 상세하고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반박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려고 하고 있으며 오해를 바로잡아주려고 하고 있다.

 

지나친 과장

왜곡된 정보

그릇된 통계

잘못된 편견

정확하지 않은 근거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서 우리-대중들은 불필요하게 혹은 지나치게 모든 것에 대해서 공포와 불안감, 두려움을 느끼고 있고, 피해의식 속에서 권력의 혹은 왜곡을 통해서 이득을 얻기 위한 자들의 의도에 따라 생각-행동하게 되고 오해와 편견 속에서 무언가를 선택(정치적, 사회적, 경제적)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여러 문제들 중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 언론과 총기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미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저자의 논의를 접하기 전부터 익숙한 논의들이었기 때문에 접근이 신선하진 않은 들기도 했다(물론, 이런 접근이 틀린 접근이라고 생각하진 않다).

 

저자는 터무니없는 근심을 제공하는 이들(언론, 정치, 경제)에 대해서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고, 그들이 제공하는 터무니없는 근심 속에서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의 오해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런 과장을 통해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되고 그 문제들로 인해서 연쇄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겨나는지와 그 과장을 통해서 어떤 이들이 어떤 이득을 얻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는 않고 있어서 약간은 아쉽게 느껴졌다.

 

어떤 오해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오해들이 얼마나 그릇되었는지는 무척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 이상의 내용이 담겨져 있기를 바라고 있었는지 조금은 싱겁게 논의가 마무리되고 있는 느낌이다.

 

저자가 도덕적 불안을 자극하고 제공하는 이들이 막대한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주장에 대해서 쉽게 동의할 수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막연하거나 추상적으로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인지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원하는 사람으로서(혹은 저자가 그릇된 오해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수많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통계와 자료를 제시하듯이) 결론이 부족하기 보다는 부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자주 지적하듯이 진정한 원인은 감추고 대중들의 시선이 진정한 원인에 대한 접근과 논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눈-시선-원인을 돌리도록 만드는 미스디렉션 Misdirection 이라는 마술사들의 기술을 예로 들어 설명-분석하고 있는 내용은 흥미가 들기도 했다.

 

그리고 공포의 문화가 이런 분석과 결론에 대한 발표된 당시의 미국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들과 그 문제들이 어떻게 왜곡되고 오해되어 있는지에 대한, 권력의 마술에 대한 숨겨진 원인을 밝혀내는 것에 집중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 목표가 이뤄낸 내용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우리가 얼마나 권력의 의도 속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들을 제대로 보질 못하고 오해하고 편견 속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저자는 알려주려고 하고 있고, 그 다양한 사례들과 내용 속에서 한국 사회와는 조금은 다른 내용이라 어울리지 않은 것 같기도 하겠지만 저자의 관점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서 한국 사회에서는 어떤 권력의 의도에서 그릇된 공포와 불안감 그리고 두려움이 과장되고 과잉되어 버리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끔은 꿈보다 해몽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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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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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져만 가지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막연하게만 느껴지게 된다. 그저 다양한 건축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런 저런 건축과 관련된 책들을 통해서 그 감상을 더욱 음미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만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

어떤 구체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어떤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침묵으로서 말한다는 것

건축이 공간에 그리고 공간이 건축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조금씩은 느끼게 되지만 아직까지는 그걸 제대로 알아간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그렇다는 것을 알아가고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건축에 대한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막연한 이해도 결국 책을 통해서 얻었거나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알게 된 지식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내가 느끼게 된 생각이고 어디서부터 책을 통해서 얻게 된 생각인지는 솔직히 알 수 없다.

 

그저 건축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가고만 있다는 것이 유일한 진실인 것 같다.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 대해서 알게 된지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아마도 앞으로도 현대 건축의 대가들 중 한명으로 다뤄질 것이 거의 분명한 건축가이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접함은 무척 부족하기만 할 뿐이고, 그나마 그에 대한 지식은 최근에 읽게 된 몇몇 책들을 통한 약간의 언급이 전부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손쉽게 잡게 된 그의 첫 자서전이라는 홍보 문구가 인상적인 ,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안도 다다오가 어떻게 건축을 시작했고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뻔하고 뻔한 내용이리라 생각되었는데, 그 자신이 어떻게 건축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지금의 그가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구성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건축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줌으로써 건축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단지 건축만이 아닌 삶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가치와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무척 의미 있고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그동안 건축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되고 책을 통해서 얻게 된 그리고 내 자신이 생각하던 건축이 무엇을 담아내야 하고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안도 다다오는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그리고 간결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가 생각하는 건축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고, 건축에 대한 안도 다다오의 입장은 쉽게 설득과 공감을 하게 되고 동의하게 되며 그의 입장을 옹호하게 된다.

 

단지 건축가의 자서전으로서 읽기 보다는 건축에 대한 여러 고민들과 그 고민에 대한 어떠한 자신만의 대답과 함께 삶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통찰력으로 가득한 시각은 어떻게 하면 저런 경지까지 올라설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꼭 한번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지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건축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것이라고는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의 특징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인터넷을 통해서 그의 작품들을 검색한다면 좀 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이들을 통해서 그의 건축에 대해서 더 자세한 설명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니 그것으로 그의 건축에 대해서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굳이 그의 건축의 특징을 몇 가지 꼽으라면 우선은 콘크리트일 것 같고, 다음으로는 간결함과 단단함 그리고 강인함과 같은 단어들이 떠올려지게 될 것 같다.

 

글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그의 기질과 건축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생각한다면 건축을 통해서 그 자신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드러내놓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안도 다다오 본인은 이런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독학으로 건축이라는 세계에 발을 내딛고 수많은 다툼과 분투의 이어짐 속에서 그 자신만의 건축을 이룩해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기자랑이 아닌 건축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더 느껴지게 되고 건축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 속에서 큰 감명을 받게 되기도 했다.

 

안도 다다오는 우선은 자신의 사무실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건축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째서 건축가는 게릴라가 되어야 하는지를 또한, 조금씩 건축을 통한 도시와의 겨룸과 다툼을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하게 해야 할지를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알려주며 지금 현재의 자신의 업무 처리 방식과 규모에 대해서 덧붙여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어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여행을 통한 경험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건축을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고 건축을 통해서 사회와 대결하고 투쟁하기로 선택하는 과정을 개인적인 이야기와 함께 하나의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생각해보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작품처럼 다뤄지는 스미요시 나가야에 대한 여러 논쟁들에 대한 안도 다다오 개인의 생각과 함께 시작되는 스미요시 나가야에 대한 내용은 무척 인상적인 시작이었고, 사진을 통해서 접했을 뿐이지만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놀랍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홀로 주변의 모든 것을 견뎌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되는데, 당시에는 그 자신도 명확하게 인식하진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입장 속에서 그리고 의도 속에서 그런 건축이 이뤄졌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게 되면서 안도 다다오 스스로 어떤 입장과 태도, 철학을 갖고 건축을 하고 있는지를 매우 솔직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있다.

 

스미요시 나가야가 말없이 안도 다다오의 생각을 웅변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 말없는 웅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언급하고 있었던 도시게릴라, 극단적인 제약 속에서의 풍부한 공간에 대한 고민,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주거와 공간, 가혹하고 냉혹한 자연을 받아들임, 편리함의 희생, 의도적인 공백과 여백, 완강한 버팀, 금욕적, 자연의 끌어들임과 자연으로의 들여보냄 등 안도 다다오가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스미요시 나가야를 통해서 접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다뤄져야 할 건축이었던 것 같다. 이것인 단지 스미요시 나가야가 그의 첫 번째 작품이기 때문만이 아닌 안도 다다오의 작품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 속에서 안도 다다오는 숱한 다툼과 타협 없음, 일관성, 완고함, 강인함, 사회와의 어긋남과 갈등, 악조건의 극복의 연속 속에서 자신만의 건축을 그리고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에게 묻는 질문들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자신의 작품들을 예로 들며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스미요시 나가야에 대한 논의 다음에는 단순힌 건축이 아닌 도시에 말을 건네는 건축으로 논의를 확장시키면서 어떻게 건축에서 도시를 고려하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다음으로 안도 다다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도시와 상업건축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상업건축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무척 중요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경제적인 고민 속에서 일정정도의 공공성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논의가 이어지며 이런 이어지는 생각들을 통해서 사회 비평으로서의 건축에 대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함께 거품경제의 일본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건축을 지켜나갈 수 있었는지를 얘기해주고 있다.

 

잠시 안도 다다오는 주제를 바꿔서 어째서 콘크리트로 만든 건축물들을 고집하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답과 함께 그가 어렵사리 완성하게 된 록코 집합주택을 통해서 어떻게 건축이 지역성을 담아낼 수 있는지와 규제와 관료제와 싸워냈는지를 알려주며 건축으로서의 한계와 그 한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의도하는 건축을 완성하는 과정 속에서 겪는 제도와의 다툼 중 무엇이 더 힘들었을지 궁금하게 생각될 정도로 두 개의 한계를 뛰어넘어 위대한 걸작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무척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이런 수많은 시행착오와 힘겨운 경험을 통해서 안도 다다오는 단순한 건축이 아닌 누구를 위한 건축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공적-공공공간에 대한 좀 더 깊어진 사유,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더해지고 있고, 이를 통해서 건축에 대한 새롭고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그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다.

 

결국 본질을 찾아내야 한다는 말로 압축해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공공시설과 건축들을 만들면서 생겨나는 건물의 쓰임새에 대한 수많은 고민은 그 고민에 대한 어떠한 대답으로서의 그가 완성한 건축들을 통해서 약간이라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안도 다다오는 생산과 소비만의 공간이 아닌 살아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고, 그 노력이 결국은 참 된 공공정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논의 뒤에 잠시 방향을 틀어서 건축가에게 필요한 건축주에 대한 입장과 오사카 출신으로서 지구화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해외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해주며 지역만의 특색의 필요성과 고유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서 건축가가 아닌 인문학자의 입장처럼 생각될 정도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그가 지금 현재 갖고 있는 고민들인 어린이를 위한 건축과 환경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는 시대에서 건축이 무엇을 해내야 할 것인지를, 어떻게 지을 것이고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지를, 고베 대지진을 통해서 어떤 충격을 받았고 재건을 통해서 어떤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지를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계승이고 그 자신의 건축에서 과연 일본적인 정체성이 있는지를, 새로운 일본의 정체성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최악의 조건 속에서 완성한 빛의 교회를 완성하는 과정 속에서 느끼게 된 건축이라는 직업에 대한 긍지와 빛과 그늘을 얘기하며 나름대로의 삶의 깨달음을 알려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뭔가 어정쩡한 마무리이기는 하지만 그의 건축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어색한 마무리는 당연하기도 한 것 같기도 하다.

 

안도 다다오는 자주 자신이 독학으로 건축의 길을 걷게 되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로 어려움이 무척 컸을 것이고 여전히 어려움들이 간혹 생겨나겠지만 반대로 어떻게 본다면 안도 다다오가 지금의 안도 다다오가 되는데 있어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그 덕분에 좀 더 생각의 자유와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기도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어쨌든 ,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앞서 말했듯이 단순히 유명한 건축가의 자서전으로서 읽기 보다는 건축이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지를 그리고 건축을 통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고 주장을 펼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읽게 된다면 무척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 같고 여러 생각들을 이어지게 하고 옮기면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들을 실제로 접해보고 싶다. 그의 말대로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으로 접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면서 그가 말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 싶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그래보고 싶다.

 

 

참고 : 너무 좋은 내용이고 글들이라 안도 다다오 본인이 직접 써내려간 내용인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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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 한길 히스토리아 3
조르주 뒤비 지음, 정숙현 옮김 / 한길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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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계속된다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11340454

중세의 결혼 - 기사, 여성, 성직자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55867605

 

 

나는 단지 그 시대 사람들이 보았던 그대로의 세계를 보도록 시도하고 싶을 뿐이다.

 

 

 

 

조르주 뒤비의 책을 몇 권 읽지는 못했지만 항상 그는 중세시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며 그 시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그리고 그 시대를 말해주면서 겸허함을 보이며 진심으로 그 시대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모습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의 글을 통해서 중세시대를 접하게 될 때에는 좀 더 그 시대 속으로 접근하는 것 같고, 그 시대에 머물며 그들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듯이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게 되는 것 같다.

 

조르주 뒤비의 대표작들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그가 중세시대-봉건사회를 접근하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통해서 추측한다면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듯이 중세시대와 봉건사회에 대해서 논의하고 설명하기 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혹은 다른 역사가들이 비교적 관심을 덜 갖는) 계급이나 집단, , 생활상 등을 통해서 그 시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고 그런 구체적인 모습들을 통해서 사회구조와 특징,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감수성이나 삶의 태도와 방식을 탐구하고 있는데, 대단하지 않은 것들로 생각되던 혹은 그런 것들을 굳이 분석하고 검토하며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가 의문스럽던 주변부에 머물던 것들을 통해서 그 시대를 이해하고 바라본다는 점은 무척 대단하고 흥미로운 것 같다.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또한 중세시대-봉건사회의 가장 위대한 기사로 꼽히는 윌리엄 마셜의 생애를 통해서 그 시대의 중요한 축이었던 기사계급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기사계급의 삶을 통해서 그 시대가 어떤 구조와 구성으로 되어 있는지를, 그 구조-구성 속에서 어떤 방식의 삶의 태도와 방식을 엿볼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 있다.

 

단순히 윌리엄 마셜의 태어남과 삶 그리고 죽음이라는 일반적인 흐름으로 논의를 진행하기 보다는 각각의 내용들에서는 다뤄지는 시기가 겹쳐지면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중세시대와 봉건사회에 대해서 약간은 알고 있어야지 난해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조르주 뒤비는 기사라는 계급을 재구성하려고 하고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계급 중 하나인 기사계급을 좀 더 이해하려고 하고 그런 이해 속에서 그 시대를 바라보려고 하고 있는데, 이런 접근을 위해서 어째서 윌리엄 마셜의 생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이후에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의 죽음부터 다루고 있는 첫 번째 장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죽음을 깊이 염두에 두고 있던 중세시대-봉건사회의 특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고, 죽음의 과정 속에서의 엄숙함과 장엄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조르주 뒤비는 중세시대-봉건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그 생각의 틀과 범위 내에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되고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항상 강조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단순히 문명화가 덜 되었던 이들이 아닌 지금의 우리들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간 이들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조금은 다른 삶의 태도가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은 태도이고 이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내비치고 있다.

 

어쨌든, 윌리엄 마셜의 죽음과 그 이후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을 길게 설명한 다음 그의 삶의 시작부터 되짚고 있는데, 조르주 뒤비는 그의 삶을 바라보기 보다는 그의 삶을 통해서 중세시대-봉건사회의 기사계급의 삶을 바라보려고 하고 있고, 기사계급의 세계가 어떤 특징과 이해관계 속에서 계급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조르주 뒤비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던 그대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런 자신의 이해함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 이해의 과정 속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자신도 확신을 갖지 못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겸손하고 솔직한 인정은 그의 분석이 갖고 있는 한계를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좀 더 그의 논의에 관심을 갖고 그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

 

중반부에서 지배계급 사회-세계의 특징에서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다른 저서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가정 속에서 논의가 진행된 것 같아서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조르주 뒤비 본인도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만 머물 뿐 더는 파고들지 않는 부분도 있어서 내용을 읽다가도 책을 덮고 간간히 생각에 잠기게 되기도 했다.

 

무엇을 암시하는 것 같기는 한데, 더 이상의 단서가 없어서 포기하는 것 같은데, 좀 더 많은 연구와 검토가 있게 된다면 언젠가는 이해되지 못했던 부분들이 좀 더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낟.

 

윌리엄 마셜의 삶을 통해서 조르주 뒤비는 중세시대-봉건사회의 가족의 구성, 기사계급의 특징, 그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의 존재에 대한 논의, 계급상승에 대한 논의, 왕과 기사의 관계, 전쟁의 의미, 결혼의 의미 등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고, 이런 논의를 종합한다면 결국 중세시대-봉건사회를 기사계급을 통해서 접근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하나의 계급을 통해서 그 시대를 바라본다는 방식이 얼마나 우수한 방식이고 탁월한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흥미로운 방식이며, 그들의 삶을 탐구함으로써 지금 이 시대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조르주 뒤비는 기사계급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윌리엄 마셜의 삶을 통해서 그의 삶과 기사계급을 이해해보려고 하고 있고, 그들이 어떤 이해관계와 삶의 태도와 방식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변해버리는 시대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어쩐지 그의 글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졌는데, 이제는 더는 그들을 실제로 만날 수 없다는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참고 : 조르주 뒤비는 중세시대-봉건사회가 마치 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시대인 것처럼 이해하고 있는 우리들의 선입견을 깨트리기 위해서인지 반복해서 그 시대에도 돈이 무척 중요했던 시대였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그 중요성에 대한 입장이 지금처럼 돈 자체에 대한 무한한 욕망이거나 혹은 돈-권력으로서의 입장이 아닌 돈이 없음으로 인해서 생길 수 있는 치욕-무력감을 경험하지 않으려는 이유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런 논의를 통해서 지금 시대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기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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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 사이코패스 -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
로버트 D. 헤어 지음, 조은경.황정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하는 범죄와 관련된 주제의 책들에 대해서 무척 관심이 크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중고서점에 꽂혀 있던 진단명 사이코패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들어오지 않았겠지만 쉽게 눈이 들어와 골라잡게 되었고, 그다지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고 논의였기 때문에 금방 읽게 되었다.

 

저자인 로버트 D. 헤어는 사이코패스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하지만 그 권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 얼마나 권위가 있는지 그리고 그의 논의가 얼마나 그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에 담겨진 내용으로서만 판단한다면 꽤 중요한 위치에 있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에는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마치 일상용어처럼 되어버렸을 정도로 쉽게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각해 본다면 사회적으로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쓰게 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이고, 그것의 제대로 된 의미도 잘 모르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그저 또라이나 미치광이의 좀 더 세련된 형태의 혹은 전문가적 용어나 유행어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 제목부터 사이코패스를 달고 있는 진단명 사이코패스도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시라는 단어를 반복하면서 / 번갈아가면서 걸핏하면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 일러두기를 통해서 간단하게 다루고 있었어도 명쾌하게 이해되지도 않고 있고, 희미하게만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은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이것을 읽었다고 사이코패시와 사이코패스에 대해서 뭔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해시키기 위해서 무척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그 노력이 많이 빛이 바랜 것 같다.

 

저자가 진단명 사이코패스에서 목표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시에 대한 보다 올바른 이해와 함께 그 판단과 구별을 좀 더 과학적인 방식으로서 이해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모색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내용을 다 읽었음에도 깨우침이 부족한지 사이코패시가 좀 더 넓은 의미로서 사이코패스가 좀 더 좁은 의미와 구체성을 갖고 있는 의미로서만 이해가 되고 있을 뿐이었고, 좀 더 이에 대한 논의를 해준 뒤 내용이 진행되었으면 좋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어쨌든, 저자는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시에 한해서 자신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그들의 여러 특징들과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어떤 존재들인지를 이해시켜주고 있고, 그들과 뭉뚱그려서 다뤄지는 다른 정신질환 혹은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과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를 알려주며 좀 더 명확하게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시를 정의하려고 하고 있고 구분을 주려고 하고 있다.

 

그들의 특징과 구분, 정의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책들을 통해서 조금씩은 접하기는 했지만 진단명 사이코패스는 다른 책들에 비해서 좀 더 넓은 범위로서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시를 정의내리고 있다는 점이 그동안의 연쇄살인범에 한해서 정의를 내리려는 일반적인 접근과는 다른 점인 것 같고, 지나치게 범위를 넓혀서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도 저자가 상세하게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시의 특징들을 다루면서 그 특징과 구분 속에서 다양한 방식의 사이코패스와 사이코패시의 모습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언론과 대중문화를 통해서 접하게 된 선입견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만들어주고 있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내용은 후반부에 많이 있었는데,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에 대한 내용은 특별할 것이 없기는 했어도 일상에서 어떻게 그들을 만나게 되는지를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으며, 이어지는 그들의 언어 사용에 대한 논의는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들의 특징과 일반인들과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되었다.

 

저자는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그들을 구분하려고 하고 있고, 그들을 어떤 식으로 사회적인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단순히 탐구하고 연구로서의 대상이 아닌 좀 더 실천적인 접근과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본보기가 될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고, 어떤 극단 속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다양한 고려 속에서 자신의 결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저자는 무언가 뚜렷한 답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을 하는 듯이 현재로서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고 그들의 유전적인-태생적인 문제와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이라는 삶의 과정에서의 문제 모두가 고려의 대상이며 어떤 방식으로도 그들은 쉽게 그 잔인성을 제어시킬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런 약간은 허무하고 조금은 아쉬운 대답에 흐지부지한 마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바로 이런 결론이 지금의 한계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점점 더 사이코패시와 사이코패스가 활동하기 좋아지기만 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인데, 바로 그런 존재들이 지금 이 시대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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