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바라는 기도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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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제 마지막 작품인 문라이트 마일만이 남았다) ‘비를 바라는 기도는 제목만으로는 서정적이거나 감상적인 기분이 들게 만들지만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그동안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잔혹하고 비정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고, 현실-세상을 보여줌과 함께 음울한 결론으로 끝을 맺는 방식은 여전하기만 하다.

 

이전보다 좀 더 암울한 결론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가라, 아이야, 가라와 같이 논쟁적인 끝맺음을 보여주진 않고 있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보스턴에 대한 상세한 묘사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민한 시선을 보여주지 않고 있고,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는 읽는 이에 따라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쉽다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이야기가 갖고 있는 재미와 흥미가 부족하진 않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가라, 아이야, 가라가 전체적으로 큰 이야기 흐름을 보여주었기 때문인지 그와 같은 방식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들로서는 처음의 시작에 비해서 조금씩 이야기가 축소되고, 결국에는 한 가족의 문제로 최소화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제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일종의 가족 내부의 갈등의 무척 거대한 이야기처럼 확대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개입 속에서 기형적인 방식으로 해결되고 있는 결말이기 때문에 이런 결말에 대해서 좀 더 흥미로운 분석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비를 바라는 기도는 침울함과 피곤함이라는 정서로 가득한데, 작품의 중심인 패트릭 켄지는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부러진 인생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하기만 한다.

 

이렇게 좌절한-낙오된 정서 속에서 이야기는 진행되고 있고, 그의 피곤함으로 가득한 수사는 패배감 속에서도 자신이 정한 방식 속에서, 어떤 정당함 속에서 삶을 살아가려고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긴장을 통해서 비를 바라는 기도는 범죄소설이면서도 일반적인 범죄소설의 영역을 넘어서고도 있다.

 

개인적인 고뇌와 방황 그리고 계속되는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함께 그와 별개로서 점차 흥미와 궁금증을 더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두 개의 축으로 데니스 루헤인은 여러 가지를 탐구하려고 하고 있고, 그 시도는 무척 성공적이다.

 

누구도 의문부호를 보이고, 어떤 이들도 의미를 느끼지 않는 사건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집착하는 켄지의 모습과 그 열중으로 인해서 점차 밝혀지게 되는 진실들, 그리고 그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은 점점 더해지는 박진감과 함께 비를 바라는 기도가 탐구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눈치를 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에서의 반전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마지막의 지독한 쓰디씀이 좀 더 구원에 대한 열망과 의미,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한 이 작품에 가장 어울리는 결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좋은 정리를 보여주면서도 결국 사건은 해결되지만 해결됨과 함께 패배자가 된다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이야기 구성을 철저하게 따른다는 점 또한 인상적인 것 같다.

 

씁쓸함이 가득한 패트릭 켄지의 독백들과 함께 언제나처럼 개성이 넘치고 즐거움을 안겨주는 여러 등장인물들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단단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째서 켄지 / 제나로 시리즈가 현대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고전으로 통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삶에 대한 환멸로 가득하면서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패트릭 켄지의 노력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이 나 자신에게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게 되는 것 같다.

 

그가 느끼는 환멸과 좌절이 어쩐지 그만이 아닌 누구나가 느낄 법한 기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고, 그렇기 때문에 패트릭 켄지의 고민들과 괴로움들에 많은 이들이 설득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개인적인 고뇌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의문의 사건과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의 긴박감과 재미는 패트릭 켄지의 내면적 갈등과 정반대되는 외향성을 만들어 내면서 절묘한 균형을 찾아내고 있는 것 같다.

 

흔히들 말하는 문학적인 관심을 추구하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으려고 하는 시도가 성공한 보기 드문 작품이기 때문에 켄지 / 제나로 시리즈는 좀 더 정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흥미롭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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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 희망도 매력도 클라이맥스도 없는 낙원, 미국 문명 기행 산책자 에쎄 시리즈 3
장 보드리야르 지음, 주은우 옮김, 유진 리처즈 그림 / 산책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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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로 오랜만에 읽게 되는 장 보드리야르의 글이었는데, 이미 읽기 전부터 각오하고 있기는 했지만 역시나 무척 난해하고 알다가도 모를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누군가가 읽으리라 생각하며 글을 써내기 보다는 나중에 정리할 생각으로 즉각적으로 떠올려지는 생각들을 갈무리하지 않고 적어놓은 것들을 적당히 다듬어 낸 것 같은 글인데, 그나마 번역자의 상세한 설명이 있어서 읽은 다음 무엇을 읽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읽어내기가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힘겹다.

과연 언제가 돼서야 이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지도 않을 정도로 알다가도 모를 글이다.

 

기껏해야 소비의 사회시뮬라시옹정도만을 읽었기 때문에 장 보드리야르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고, 후기작으로 분류할 수 있는 아메리카가 장 보드리야르의 지적 작업들 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도 해설을 통해서나 알 수 있기 때문에 글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생각들과 번역자의 해설을 통해서 이해되는 거리감 사이에서 아메리카에 대한 생각은 정리가 될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기행문의 뼈대 속에서 글을 쓰고 있고, 뉴욕에서 시작해서 LA에서 끝을 맺는 공간적 이동-횡단 속에서 미국을 보고 느끼면서 떠올려지는 생각들을 전하고 있는 아메리카는 후반부에 있는 종합적인 평가를 제외한다면 이동-횡단 속에서 장 보드리야르가 접했던 것들을 통해서 미국을 얘기하고-분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미국만이 아니라 넓게 생각해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거대해지고 비대해지는 현대 문명을 바라보고 있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장 보드리야르는 그런 시선-바라봄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보다는 / 철저하게 분석해내고 있기 보다는 마치 버스-비행기-자동차에서 이동 중에 떠올려지는 생각들을 메모지에 남기듯이 글을 써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이해되기 보다는 이해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으로 글을 읽게 만들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영감으로 가득하고 통찰력이 느껴지는 글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르게 본다면 장황하고 난잡하게만 느껴지는 글로써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좀 더 정돈해줬으면 하는 기분이 앞서는데, 감각적인 글이기는 하지만 산만함이 느껴지고 그런 감정들 속에서 허무감과 피로감이 얼핏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 막연히 장 보드리야르는 그가 바라보는 것들을 이해하고 꿰뚫어보기는 하지만 그것을 변화시키기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현재를 무한히 낙관하기 보다는 일정하게는 긍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회의와 함께 어떤 비극-종결을 예감하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알 수 없는 의문만이 가득하기만 한 아메리카는 미국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보이면서도 그 한계와 이면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생각을 어떤 철저한 분석이나 고찰, 논리적 완결로 정리하기 보다는 세련된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라는 것인지 이해하지 말라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난해한 글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검토와 숙고를 통한 결론이기 보다는 순간적인 떠올림 속에서의 결론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장 보드리야르에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좀 더 후한 평가를 해주려고 하겠지만 아직은 장 보드리야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좀 더 이해해볼 수 있게 해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불평이 먼저 나오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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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2 밀리언셀러 클럽 47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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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되찾을 줄 알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틀어지게 된 이후 어떤 음모가 있었는지를 밝혀내게 되는 후반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라, 아이야, 가라’ 2권은 모든 것이 망쳐지게 되어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좌절감 속에서 일상을 보내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함께 뒤늦은 후회와 절망을 보여주며 피곤함 속에서 이야기는 이끌어지고 있고, 실망감과 함께 상실을 이겨내기 위한 각자의 노력들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던 중 이야기는 다시금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뒤틀린 어둠으로 향하고 있는데, 또다른 실종사건과 성도착자, 마약이 겹쳐지고 있고, 우연과 운명 그리고 약간의 실수를 통해서 조금씩 거짓을 벗겨내고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총격전과 분노 그리고 추악함을 보았음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까지 가라, 아이야, 가라는 이전처럼 켄지 / 제나로를 최악의 상황으로 향하게만 하고 있고,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만 있지만 그런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이겨냈던 그들이 마지막에 가서의 의견충돌과 어떤 식으로든 화해할 수 없는 선택으로 인해서 이별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감탄하게만 만드는 진행이었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 모든 진실이 밝혀짐과 동시에 그 진실에 대한 침묵을 하려고 하는 선택과 고통과 상처만이 남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하는 선택 사이에서 여러 고민들을 안겨주고 있는데, 누군가의 자의적인 선택 속에서 혹은 지나친 신념과 확신, 강요된 선택과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화 속에서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계속해서 고민해야만 하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거창하지 않고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다.

 

결국 패트릭 켄지의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선택이 서서히 다른 비극을 만들 것을 예감하며 끝을 맺기 때문에 이런 내용 구성이야 말로 하드보일드이고 범죄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방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향 감각이라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하드보일드나 비극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운명에게 최선을 다해서 도망치려고만 하고 이겨내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또다시 익숙하기만 한 깨달음을 다시금 접하게 해주게 되는 것 같다.

 

이제 끝으로 향하고 있는 켄지 / 제나로 시리즈인데, 남은 작품들도 이처럼 재미와 함께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는 풍부함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5번째 작품인 비를 바라는 기도를 곁눈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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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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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 / 제나로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며,

시리즈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영화로도 제작되어서 더 큰 인기-명성을 얻고 있는 가라, 아이야, 가라는 그동안의 시리즈가 담고 있던 주제와 문제의식 그리고 재미를 잘 유지해내면서 좀 더 논쟁적인 문제들을 건드리며 이야기가 이끌어지고 있다.

 

끝에 가서야 어떤 내용인지가 이해되는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가라, 아이야, 가라는 이전처럼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점차 거대한 음모를 알아가게 되어가는 이야기 구성에 그 과정 속에서 현재 미국 사회의 내부적 문제점들을 거론하고 들춰내며 사회적 문제의식을 갖도록 의도하고 있다.

 

약간은 고전들의 영향 아래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잠시 켄지 / 제나로에 휴가를 다녀오게 해주는 것 같던... 완만한 느낌이 컸던 3번째 작품 신성한 관계와 달리 다시금 보스턴-도체스터의 온갖 곳들을 떠돌아다니며 모험과 고난을 겪게 만드는 내용인데, 일종의 보스턴-도체스터에 대한 기행문-현장보고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범죄소설이고 사회소설이기 때문에 난해함으로 무장하거나 재미를 줄여서라도 현실감을 강조하기 보다는 재미와 재치 그리고 멋진 대사들이 가득하고 그렇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유아실종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현재 미국 사회의 가정문제-아동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재미만을 쫓는 작품이 아니라 좀 더 흥미롭게 읽혀지기도 하는 것 같다.

 

이미 영화를 통해서 먼저 접했기는 하지만 역시나 소설이 좀 더 긴 호흡으로 많은 것들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진행되고 끝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재미나게 읽혀지기만 하고, 언제나처럼 재치와 냉소 그리고 차가운 유머들이 가득하고, 거기에 더해서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해서 모든 것들을 말하려고 하는 데니스 루헤인 특유의 글쓰기와 묘사들이 매력적이어서 빠르게만 읽혀지게 되는 것 같다.

 

1권은 그들의 혹독한 모험의 중간정도에서 끝을 맺고 있고,

실종-납치-유괴된 아이를 되찾는 과정이 틀어지는 순간에서 끝나고 있기 때문에 이 긴장감과 초조함을 잃지 않고 2권을 읽기 위해서 빨리 글을 마무리하고 싶어지게 될 뿐이다.

 

여튼, 여전히 재미나고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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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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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리프킨은 항상 지금 이 순간이 과도기의-과도기를 위한 순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전과는 다른 큰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논의를 하고 있는데, ‘육식의 종말의 경우도 제목만을 통해서는 단순히 이제는 더 이상 고기를 먹지 말자는 식의 논의라고 오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여러 자료와 정보를 통해서 쇠고기와 관련된 역사와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대안을 논의하고 있다.

 

육식이라는 좀 더 폭넓은 범위의 제목이기 때문에 육식과 관련된 온갖 내용들이 담겨져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런 내용이 아닌 되도록 쇠고기에 국한된, 쇠고기 역사-산업에 한정된 내용들을 검토하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우리들을 설득하려고 하고 있다.

 

말은 안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채식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이라 고기를 좋아하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다지 끌리는 내용은 아니겠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들에서 단순히 고기를 먹음으로써 발생되는 개개인의 (건강 및 기타 여러 가지) 문제점이나 소를 키우고 도축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되는 여러 문제점들(위생, 질병 및 기타 여러 가지)만이 아닌 좀 더 포괄적인 입장에서 문제점들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차마 끊을 수는 없겠지만-힘들겠지만 되도록 줄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좀 더 문제점을 줄여야 할 방안을 찾아야 함을 깨닫도록 만들기는 한 것 같다.

 

우선 저자는 서구 문명에서 소가 어떤 존재였었는지 역사적인 검토를 하고 있고, 최초의 신성한 존재로서의 소와 지금 현재의 추락한 모습(우리의 배를 채우기 위한 고깃덩이)과 비교하고 있고, 소에 대한 과거의 인식들과 함께 어떤 의미와 관계들을 만들어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검토 이후 미국 및 아메리카 대륙이 어떤 과정으로 인해서 소로 가득하게 되었는지를 검토하면서 이런 변화가 생겨나는데 가장 중요한-중요했던 영국인들의 육식문화에 대해서 흥미로운 설명을 해주고 있다. 지금과 같이 지방이 많이 낀 쇠고기를 즐겼던 영국인들의 식습관의 특징과 함께(왜 하필이면 그랬는지는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식성으로 인해서 무척 중요한 변화(소를 먹이기 위한 곡식 생산과 소를 키워야 하는 목축의 결합)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데,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와 관련된 내용은 처음 접하기 때문인지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이면서도 꽤 흥미로운 관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북아메리카 대륙을 목초지로 활용하기 위한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과 비교될 수 있는 인디언 / 버펄로를 내쫓기 위한 울타리치기의 과정 속에서 벌어진 온갖 비극들에 대한 짧은 언급들과 거대한 평원에서 내쫓긴 인디언 / 버펄로를 대체하는 카우보이 / 소의 등장과 함께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한 노력(철도, 냉동기술, 자본유입 등등)을 알려주며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난 여러 추악함을 들려주고 있다.

 

일종의 산업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역사적 진행 이후 나중에는 포드주의에 영향을 줄 정도로 효율성과 합리성, 수학적인 결과만을 강조하는 도축과정의 과학화-자동화에 대한 논의와 함께 그로 인해서 발생되는 (최근 다시금 활발하게 논의되는) 위생-건강-질병 문제와 쇠고기라는 풍요의 상징을 위해서 쫓겨나고 굶주리는 사람들에 대한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빈부격차와 구조적인 문제까지 파고들고 있다.

 

쇠고기로 대표되는 육식문화의 문제점들과 함께 양극화-빈부격차의 문제점,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더욱 큰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는 생태계 변화-불안정(이런 문제는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고 거대한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에 대한 논의까지 사회와 생태계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 이후 정신적-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들까지 언급하고 있는데, 육식을 즐기는 이들의 의식구조에서 엿보여지는 남녀차별과 계급문제, 계몽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 비판되어지는 합리주의, 고속도로와 햄버거로 대표되는 현대 사회-문화의 등장과 비판까지 논의를 확장시키기도 하고 있다.

 

쇠고기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근대성 비판까지 가능할 줄은 몰랐는데...

그게 가능할 수 있기도 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여러 생각들과 흥미가 생기는 것 같다.

 

아마도 레비스트로스에 영향을 받은 것 같은 차가운 악과 뜨거운 악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쉽게 판단되어지고 인식되어지는 개별적인 문제점들이 아닌 구조적-체계적 문제점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이제는 더 이상 육식을 고집하지 말아야 하고 변화가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 변화가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게 되는 변화가 아닌 남성 중심 문화와 계급 차별 및 수많은 불평등과 관련되어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나치게 확장하거나 과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저자의 논리에 일정부분 동의하게 되기도 하고 설득력 또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동의를 하고 싶어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만으로는 아직까지는 공고하기만 한 육식-쇠고기 문화를 쉽게 끊어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점차 줄여나가야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결국에는 저자가 말하는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보게 되기도 하다.

 

그래봤자 결국 매일 어떤 방식으로든 고기를 즐기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만 하는... 좌절하게 되기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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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배군 2021-10-13 15: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