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 소설인 비카스 스와루프의 ‘Q & A’는 현재 인도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즉, ‘재미’에 충실한 소설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가나 괜찮게 읽었다며 추천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인해서 대부분의 독자들이 영화를 통해서 줄거리를 알게 되어 원작 소설을 접하리라 생각하지만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원작 소설은 주인공이 퀴즈쇼에 출연한다는 것과 몇몇 설정들이 동일할 뿐이고 대부분의 내용은 원작과 다른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호감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이 다르다는 것에 실망을 할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실망하기 보다는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원작 소설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불만스럽게 느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은 원작을 읽으면서 어째서 원작을 그대로 각색하지 않고 독립적인 이야기로 진행되었는지 의아스러울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는 애초부터 몇 가지의 설정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을 뿐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가 원작을 재구성하는 것에는 관심 없고, 몇 가지의 설정만을 가져온 다음에 찰스 디킨스의 작품처럼 이야기를 꾸미려는 의도였다는 것에 더욱 확신을 갖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속도감 있으면서 보다 단순명쾌하게 꾸며질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원작이 갖고 있는 인도의 사실감 넘치는 묘사와 다양한 종교와 계급에 대한 작가의 시각은 누락되고 특히 작품에서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집단주택단지의 인간 군상에 대한 모습들은 다뤄질 수 없게 되었다.

영화로 만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다양한 인물들과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묘사가 사라지고 가난한 하층민이 퀴즈쇼에서 어떻게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인지와 그의 사랑에 모든 초점을 맞추게 되었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원작 소설의 장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다양한 묘사와 함께 원작에서 보여주는 권위에 대한 조롱과 위선에 대한 냉소 그리고 사랑과 우정, 믿음 중 사랑과 관련된 부분만 남겨져서(혹은 부풀려져서) 원작이 갖고 있는 중요한 부분을 많이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도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다양한 종교(대표적으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와 계급과 신분 그리고 사회 계층들의 복잡한 구성을 경쾌하게 짜놓고 있고, 이야기도 각각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도 갖고 있는 흔히들 말하는 액자식 구성이면서도 전체적인 짜임새는 탄탄하고 다양한 반전이 있기 때문에 꽤 흥미롭게 읽혀지는 것 같다.

 

소설은 주인공 람이 경찰들에게 연행되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일련의 모든 상황이 끝마쳐진 다음까지 이야기는 숨가쁘게 진행되고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슬프고 가슴 아프게 진행된다. 한마디로 주인공 람과 함께 정신없이 인도를 여행한 기분이랄까? 여행이 끝난 다음에는 조금은 정신없고 어질어질하지만 충분히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하게 된다.

 

몇몇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접했을 뿐이었고 단순히 경제 발전이나 정치적인 부분 혹은 관광을 위한 정보로만 알고 있었던 인도에 대해서 단순히 그곳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람과 함께 인도의 구석 구석을 직접 보고 느끼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겉으로만 들어난 인도의 모습이 아니라 인도의 실생활과 밑바닥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 열화당 미술책방 6
손세관 지음 / 열화당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어쩐지 약간은 거창한 느낌의 제목으로 인해서 뭔가 고리타분한 얘기를 하리라 생각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책을 읽게 된다면 주거 형상의 역사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과 큰 거리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먹고 자며 생활하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를 보였는지에 대해서 시대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고, 건축 관련 전문 서적의 내용다운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일반인들도 그 읽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다.

 

글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지 많은 도면과 그림이 첨부되어 있어서 변화의 모습과 함께 그 변화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전공서적이면서도 교양서적의 역할에도 충실했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서구 사회의 주거의 역사(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스/로마 시대, 중세/르네상스 시대, 산업혁명 시대, 20세기 주거환경)를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한국 주거의 역사와는 거리감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한국의 (도시) 주거문화가 대부분 서구사회의 영향으로 변화되었고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결국 서구 자본주의사회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한국의 주거문화가 서구적으로 변화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인문학 또는 사회학에 대한 영향을 일정부분 수용했기 때문인지 시대적 변화를 잠시 되짚은 다음에 그 시대적 변화로 인해서 어떤 주거문화와 건축양식에 변화가 되었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주거공간의 변화를 자세한 도면과 함께 세세하게 알려주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있고 중요한 점들을 잘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와 공간 그리고 주거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을 채워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서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대적 변화와 그 시대적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했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 변화들을 조금은 축약해서 담아내고 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저자가 그것을 사회학 또는 인문학자가 아니라 건축 전공영역에 이런 시각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으로도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수용하는 과정에서의 다양한 쟁점들과 변화되는 과정은 저자가 들려줘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찾아내고 다른 것들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생활하는 공간이 어떤 변화로 인해서 주어진 공간인지를 알 수 있으면서도 어떻게 변화가 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야할 것 같다.

전체적인 내용을 통해서는 주거공간의 변화가 대체적으로는 보다 위생적으로 청결하며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는데, 이와 관련된 다른 책들도 읽으면서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을 쫓는 아이 (개정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를 책으로 접하지 않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로 먼저 접한 사람들은 원작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꽤나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를 먼저 보았고 영화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스럽게 작품을 감상했기 때문에 우연한 기회로 손에 잡은 원작 소설을 읽기 직전까지도 이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가뜩이나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내게 있어서 정말로 무의미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호세이니의 원작 소설은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괜찮은 작품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한번쯤은 추천하고 싶어지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이런 원작을 그따위로 만들어버린 영화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소설은 이야기의 흐름과 구성에서는 영화와 큰 차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소설이 보다 풍부한 에피소드와 주인공 아미드의 추억과 독백 그리고 세심한 묘사를 통해서 과거에 대한 가슴 아픈 추억을 아주 잘 살려내고 있다. 또한 단순히 과거에 대한 추억만이 아니라 이슬람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인 가부장 적인 사회구조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전통에 대한 권위 그리고 주인공 아미르와 하산으로 대표되는 신분제에 대한 문제점 등 다양한 것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진행되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한번쯤은 생각하도록 권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의 아프가니스탄과 관련된 일련의 소식들 덕분에 조금은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많은 것들을 모르고 있는 탈레반과 실제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상세하지는 않지만 소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라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도 그렇지만 소설에서도 주인공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가 가장 인상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것 같다. 작품의 말대로 전통을 존중해야 할 것은 존중하지만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무시하기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누군가가 정한 규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정한 삶의 규칙대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단순히 권위적인 아버지로만 볼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의 인물로 나타나고 있다.

그에 비해서 주인공 아미르는 전형적인 부르주아 집안의 나약한 성향의 인물로 묘사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작품의 흐름과 구성을 위해서 그런 존재로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그가 성장해가며 지난 과거를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게 된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게 캐릭터가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미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하산이라는 인물을 너무 전형적인 존재로 묘사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온순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고 그럴 필요도 있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캐릭터 자체가 너무 밋밋해서 조금은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서구인들이 보기에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 적인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은 충격적인 내용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슬람 사회에 대한 약간의 상식을 전달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 구성되다.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음미할만한 문장들이 곳곳에 있어서 오랜만에 꽤 괜찮은 성장소설을 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의 후반부가 조금은 작위적인 느낌(지나치게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려는)을 지울 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영화가 워낙 엉망이었기 때문인지 소설이 훨씬 괜찮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이나 이슬람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접하기는 (앞으로도) 힘들 것 같은 이런 식으로라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 - 맥루한 1
마샬 맥루한 지음, 박정규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디어와 관련된 수많은 소식과 일련의 상황들(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은 상황들) 덕분에 미디어와 관련된 책을 한권 읽어보려고 했는데, 정말 엉뚱하고 뜬금없는 책을 고르게 된 것 같다. 나름대로 연관이 있다면 있겠지만...

 

마셜 맥루한의 대표작인 ‘미디어의 이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문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저 문장을 인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부분만 읽고 나머지 부분은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도 하다. 왜냐하면 ‘미디어의 이해’ 첫 번째 장인 ‘미디어는 메시지다’ 이후의 내용에서는 위의 내용과는 별도로 문화와 사회 그리고 문명에 대한 맥루한의 다양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데, 그것과 관련된 인용이나 의견을 찾아보기는 꽤나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각과 의견이 워낙 도발적이고 난해하다는 뜻일 수 있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지나칠 정도로 인상적인 위의 말만 머리에 남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미디어의 이해’를 끝까지 읽었다면, 이 책이 단순히 미디어라는 것에 대해서만 논의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맥루한의 다양한 의견에 대해서 한번쯤은 귀를 기울이고 생각에 잠기게 될 것 같다.

 

맥루한은 기본적으로 ‘미디어’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포괄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단순히 신문, 방송 등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의사소통 및 사회형태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그에게 화폐, 자동차 등등도 모두 미디어다).

맥루한의 시각으로서는 미디어와 미디어가 아닌 것의 구분은 명확하지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시키고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물론, 그럼으로써 본연의 의미는 더욱 애매해지겠지만.

그리고 맥루한은 어떠한 미디어든 사용자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의미와 조건이 일정부분 존재하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예를 들어서 TV는 바보상자가 될 수 있기도 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상자가 될 수 있기도 한다는 말은 맥루한으로서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TV의 기본적인 성격은 어떠하고 그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미디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매우 논쟁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의 장들에서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논의를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다양한 미디어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읽어나가면서 그의 논의가 단순히 미디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 대한 논의로 넓혀지고 있으며 언어학과 문자문화와 구술문화에 대해서 자주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학에 대해서(특히 구술과 문자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의 생각에서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미디어의 이해’에서의 맥루한의 논의는 매우 산발적이고 흩뿌려져있다. 마치 케이블 TV에서 본방송과 광고가 혼재되어 있는 것처럼(혹은 수없이 다양한 케이블 방송 채널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의 논의는 흩뿌려져있고 뒤섞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읽어나가면서 그의 논의를 따라가기는 매우 어렵고 집중하기가 힘들다.

 

또한, 맥루한은 미디어와 사회에 대해서 상세하고 세밀한 분석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미디어와 사회의 밑바탕인) ‘사회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자신의 ) 논의를 밝히고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단순히 기술의 발달로(만) 미디어가 다양하고 확장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하나의 사회체제가(즉, 근대 자본주의 체제가) 보다 폭발적으로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언어학부터 시작해서 문명에 대한 생각까지 논의하는 맥루한의 다양한 관심이 어째서 사회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회피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기술의 발달 대부분을 긍정적으로만 묘사부하는 듯이 하고 있는데(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고 있지 않지만 꽤나 흥미롭고 흥분되는 어조를 숨기지 않는다), 그로 인해서 발생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기술 발달을 경험하게 되는 격차(선진국 후진국 간의 혹은 계급간의 격차)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그냥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회피했던 것일까?

 

어쨌든 ‘미디어의 이해’는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그 의견이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한번 읽게 되면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고 : 도대체 한글로 ‘맥루언’의 정확한 표기법은 어떤 것일까? 하도 여러 가지로 번역되는 그의 이름이라 검색하기도 귀찮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베카 동서 미스터리 북스 26
뒤 모리에 지음, 김유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뒤 모리에의 레베카를 접하는 방법은 두가지 정도일 것 같다.

첫 번째는 다양한 책을 접하다가 그녀의 책을 알게 되는 방법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히치콕의 영화를 통해서 이 소설을 알게 되어 원작도 읽어보기 위해서 접하는 방식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방식을 통해서 ‘레베카’를 일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접하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 ‘레베카’는 히치콕의 영화와 이야기 구성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몇몇 설정들과 전후관계가 조금은 다르기는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로서는 소설을 읽으며 큰 차이점을 느끼지 않고 쉽게 이야기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

다만 원작에서는 결말 이후의 상황을 보여준 다음에 과거를 회상하며 작품을 시작하고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 덴버스 부인에 의해서 모든 것이 불타올랐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일어난 것인지 (약간은) 모호하게 말하고 있다.

 

또한 원작은 600페이지에 가까울 정도로 내용이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고 작품의 주인공 ‘나(그녀의 이름은 다뤄지지 않고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의 심리적 갈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조금은 느슨해진 기분으로 읽게 될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주인공 ‘나’가 영화에 비해서 보다 어리숙하고 레베카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고 있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초반의 여성이 20살 이상의 연상의 남자와 아무것도 모르는 체로 결혼을 해서 전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거대한 저택의 여주인이 되었다는 것과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의 부담감, 그리고 쌓여져만 가게 되는 오해로 인한 혼란을 소설을 집요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연기와 짧은 몇 마디의 대사를 통해서 전해지는 것보다는 세밀하면서도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영화를 몰랐다면 꽤나 흥미롭고 기묘한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을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직전에 벌어지는 속도감과 긴박감은 영화에 비해서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영화의 팬도 그리고 뒤 모리에에 관심이 있는 독자 모두 만족감을 느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