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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68940288
이미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았기 때문에 덜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원작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이 작품은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아무래도 원작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는데, 역시나 원작은 영화보다 더 주인공 미하엘의 심리적 변화에 집중을 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혹은 못했던) 부분들을 소설에서는 보다 명확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의문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약간이나마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개인적으로 가장 의문스러웠던 부분인 ‘어째서 한나가 미하엘을 사랑하게 되었는가?’ 에 대해서는 소설에서도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미하엘도 다양한 이유를 찾아보지만 그런 생각은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저 그녀를 만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미하엘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봐도 별다른 소득은 없을 것이다. 그냥 그걸 받아들여야 이 작품을 이해가 가능할 것이니까. 영화를 얘기하면서도 말했지만 그것도 사랑이고 사랑이라는 것이 특별한 절차나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도 그저 사랑인 것이다. 그게 슬픈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도, 혹은 그들의 사랑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도 그들은 그 사랑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소설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미하엘과 한나가 우연히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누고 짧은 행복을 경험하는 시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갑작스런 그녀의 부재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미하엘의 심정과 그것을 잊게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1부에서 미하엘은 과거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과 육체적인 매력으로 인해서 한나에게 큰 끌림을 느끼고 점점 더 그녀에게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육체적인 관계와 함께 그런 관계 이외에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가 소년에게 부탁하는 ‘책 읽어주기’를 통해서 그들의 관계는 보다 더 발전된 관계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결국 숨겨야 한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점점 더 파국을 향해가고 그들의 관계에서 고통과 사랑 그리고 수많은 감정들이 함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에 따라서 30대 중반의 여성과 10대 소년이 육체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는 설정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이런 사람들에게는 소설을 다 읽고,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려줘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설정만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자세하게 그들의 육체적 관계를 묘사했냐고 되묻는다면 따로 해줄 말이 없다.
한나가 사라지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1부에서는 전반적으로 미하엘이 그녀를 통해서 행복을 그리고 사랑을 알게 되어가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소설의 모습을 갖고 있다.
왕성한 성적 욕구와 함께 그녀에 대한 집착과 여성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의(남녀관계와 모자관계가 약간은 섞여 있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 작가는 적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10대 소년이 갖고 있을 성적 욕구와 성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2부에서는 한나가 사라진 다음에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로 인해서 괴로워하는 미하엘의 모습과 우연히 선택한 학과(법학)와 이를 통한 세미나로 인해서 다시금 한나와 재회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과거 나치 친위대였으며 이로 인해서 그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한나를 만나게 된다. 아마도 원작과 소설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내용은 2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용이 달라진 이유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2부에서의 대부분의 내용이 미하엘이 한나가 재판을 받는 모습을 보며 그녀에 대한 과거와 그리고 수치라고 생각했던 나치 시대에서의 그녀의 모습으로 인해서 갈팡질팡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시대에 대한 거부감의 뒤섞여서 점점 더 미하엘은 혼란스럽게 되어가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점점 더 혼자만의 세계에 머물게 된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보다 더 극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소설은 긴장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극적이기 보다는 냉정하게 이끌려고 하고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어째서 아버지에 대한 묘사를 전혀 담지 않았는지 궁금했었는데, 역시나 원작에서는 미하엘과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그렇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이 내용을 통해서 미하엘이 아버지의 관계가 어땠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색다른 부분은 영화에서는 크게 부각되었던 세미나를 진행하는 교수와 동료 학생들의 관계를 소설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교수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고, 영화에서 동료 학생들과의 논쟁들도 전혀 다루지 않고 있어서, 아마도 소설에서의 미하엘의 생각의 흐름들과 고민들로 인한 결론이 영화적으로는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그런 식으로 보다 외향적으로 처리했던 것 같다. 또한 재판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수용소에서 한나가 소녀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말했다는 증언 부분에서 한나가 미하엘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재판 도중 뒤를 돌아보며 그를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서 처리하고 있는데, 영화는 그렇게 처리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하엘의 태도일 것이다. 영화는 그의 모습에서 조금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소설은 그가 보다 고립된 느낌을 갖게 만들고 그의 고민들을 보다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은 한나와의 사랑만이 아니라 그들의 과거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기 때문에 보다 복잡하게 다가온다. 여전히 독일인들의 머리 안에서 깊이 남겨져 있는 나치 시대의 기억과 그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어려움을 이 작품에서 설득력 있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어느정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들과 그 고민들에 대한 미하엘의 선택에 대해서 동의할 사람들도 있고 반박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건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하는 것이지 원작에 대해서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별로 소득이 없을 것 같다.
한나는 결국 종신형을 선고 받고 그렇게 그들의 만남은 다시금 헤어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3부로 이야기는 넘어가고 재판 이후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와 삶을 살아가던 미하엘의 모습들과 그가 어떻게 법제사를 선택하였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어쩌면 3부의 내용들은 조금은 길고 긴 에필로그처럼 느껴지게 되는데, 내용이 조금은 허탈한 결말로 인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을 맞지 않게 되리라는 혹은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그와 그의 딸의 관계를 통해서 미하엘의 고립감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이미 그의 독백과 심리적 갈등으로 그런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딸에 대한 내용은 미안함을 갖고 있다는 방식으로 아이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인해서 가슴 아프다는 내용으로 단순하게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한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다시금 그녀를 위해서 책을 읽고 그것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그녀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그리고 숨겨왔던 마음을 표현하고 그녀도 이를 통해서 글을 배우고 그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가서 어째서 미하엘이 계속 한나와의 만남을 미루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미하엘이 사랑하는 그녀의 모습이 변화될 것 같다는 두려움에 혹은 과거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서 바뀐 그녀의 모습을 보기 싫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짧은 만남과 그녀의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한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괴로움을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짧은 분량의 소설이면서도 꽤나 복잡한 내용들이 많기 때문에 쉽게 읽으면서도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는 부분들도 많은 것 같다. 게다가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서 읽어가며 간간히 멍하니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지 않을까?
번역가가 말하듯이 이 작품은 은유적으로 나치 시대의 과거를 끌어안기 위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읽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일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나치 시대와 유대인 학살 부분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이 작품을 읽고 그것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전혀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고 생각하니까.
나치 시대에 대한 몇몇 책들을 접하고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자료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점점 더 그 시대에 대해서 말을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원론적인 혹은 누구다 대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답을 하라면 그건 무척 쉬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고,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유대인 학살 문제와 나치 시대에 대한 문제는 특히나 대답하기 힘들다. 혹은 곤혹스럽다.
쉽게 대답하는 사람에게 혹은 그걸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한나가 재판장에게 물었듯이 ‘당신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해주고 싶다.
그것에 대해서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서 여전히 그 시대와 그 수많은 것들은 내게 있어서 답을 미루고 싶은 문제로만 남겨져 있다. 나 자신도 과연 그것에 대해서 내 자신의 품위를 타인을 존중하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건 솔직히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존엄함을 갖고 살아가기란 생각 이상으로 힘들다.
사랑과 사랑에 대한 추억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집착과 같은 개인적인 감정과 함께 역사에 대한 혹은 시대에 대한 입장까지 이 작품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잘 버무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그 짧은 사랑이 그들의 삶에서 큰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또 얼마나 그 추억들을 통해서 행복을 느꼈는지 알고 있기에 이 작품은 여전히 내게 있어서는 소중한 작품일 것 같다.
참고 : 지금껏 아우슈비츠는 독일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에 있다고 한다. 내가 무식하다는 것을 또 이렇게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