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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과 성서의 예언자들 - 아담에서 예수까지, 성서의 예언자들은 꾸란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최영길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1. 꾸란을 만나기까지
꾸란이라고 불리기보다는 흔히들 코란이라고 불리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의 경전인 꾸란을 읽게 된 이유는 특별할 것 없다. 무슬림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도 무슬림을 이해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서 읽고 싶었고, 읽었다고 말하기 보다는 대충 훑어봤을 뿐이라 딱히 무엇을 읽었고 어떤 것을 알게 되었는지를... 어떤 기분인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읽기는 했으니... 나름대로 애써보긴 한 것 같다.
도대체 이런 걸 왜 읽으려고 했는지는... 꺼낼 말이 없다.
그냥 읽어보고 싶어서 읽었을 뿐이다.
위대한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통해서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 신청을 하면 우편으로 한글로 번역된 꾸란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렇게 구해서 읽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 언젠가는 구해서 읽어보겠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자주 찾던 헌책방에서 양장으로 제본된 꾸란이 있어 구입을 할까 망설이다가 다른 이가 먼저 손에 쥐게 되어서 또다른 나중으로 구하게 되는 기회를 미루게 되었는데, 결국 꽤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금 구하게 될 수 있긴 기회가 생겨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구할 수 있었다.
양장본은 호기심으로 구하는 사람이거나 익명으로 구하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것이 아닌 실제 무슬림들에게만 제공되거나 이슬람사원-모스크에만 비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확인할 방법을 몰라서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만 싶다.
이것도 나름대로 알라께서 어떤 이유로 나에게 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 일은 없지만.
2. 꾸란을 읽은 후
성경도 읽어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도무지 기억나는 내용이 없어서 읽었다고 말하기가 민망하기만 한데, 마찬가지로 꾸란도 3주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읽었는데(성경보다는 짧은 기간에 읽어냈다. 성경은 별 것 아닌 분량인데도 4주나 걸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지루해서다. 난 아무래도 신을 믿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최소한 믿을 자격은 없는 것 같다), 1,300쪽에 가까운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분량 중에서 기억나는 내용도 없고 그렇다고 깊은 인상을 주는 순간도 없어서 그저 읽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만족하게 된다.
허무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딱하기도 하다.
일종의 선입견처럼 꾸란과 성경은 크게 다를 것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알고 있었고,
구약은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고, 예수 이후의 내용에서부터 무척 달라진다는 말을 마치 사실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읽어보니 꾸란은 성경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구약과 신약 이후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쉽게 이해되도록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이 이어진다고 말하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어떤 일관된 이야기의 흐름을 담고 있기 보다는 알라의 말씀 혹은 선지자 무함마드의 말씀들이 가득할 뿐(물론, 그밖에도 예수, 노아, 모세 등등에 대한 내용이 반복해서 다뤄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슬림이 갖고 있어야 할 믿음, 생활방식, 태도 및 기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 상황들과 경험들 속에서 무슬림이 지켜야 할 덕목들을 나열한 느낌이 더 커서 읽어본 사람만이 어떤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지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는... 무슬림으로써 살아가는-살아가기 위한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꾸란을 온전히 읽어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구약과 신약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고 일정 이상의 앎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읽은 사람들은 꾸란에서 구약과 신약이 좀 더 풍부하게 해석되고 논의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종교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감히 말할 수 있는데) 유대교-천주교-개신교들은 되도록 구약과 신약과 함께 꾸란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클 것 같고, 반대로 무슬림 또한 꾸란을 좀 더 상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과 신약을 읽는 것은 필수일 것 같다.
과연 얼마나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인지 모르겠지만...
구약, 신약, 꾸란 모두를 읽어봤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데,
읽었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모두 다 읽지 않는다면 무척 부분적으로만 이해될 것이고 그것이 신에 대한 믿음을 훼손시키진 못하겠지만 충분히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결국... 읽는 것으로 신을 말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신은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읽었느냐 읽지 않았느냐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그것 모두를 읽는다면 상대방을 적대적으로 생각하진 않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모든 것을 읽어보기를 권하게 된다.
아마도 (본문이 아닌) 각주 어딘가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꾸란은(마찬가지로 성경도) 복음과 경고로 채워는 내용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은 여러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반복해서 곱씹을 것 같기는 한데, 꾸란을 읽고 근본주의자가 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는 읽기 전이나 읽은 다음이나 여전히 쉽게 이해되진 않고 있다(당연히 구약과 신약을 읽은 다음에도 유대교-천주교-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었다).
여러 가지에서 꾸란을 읽는 기간은 좋지 않은 시기였고, 그렇기 때문에 읽는 기간이 더 늘어지게 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결국 읽어냈고 읽어냈다고 해도 크게 깨달은 것도 이해가 커진 것도 아니라 실패한 읽음일 뿐이라 그 실패를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예상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아쉽기만 하다.
그렇다고 한번 더 읽어볼 생각은...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