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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과 문학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W. G. 제발트에 대해서는 (아마도) ‘아우스터리츠’ 정도만 소개받았을 뿐 특별히 알고 있던 작품은 없었다. ‘아우스터리츠’도 지나가다 듣는 정도 수준이었기 때문에 스쳐지나가는 작품처럼 기억날 뿐이라 제대로 된 앎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제목이 인상적이었고,
약간은 호기심을 갖게 되는...
그런 작품이었고, 작품을 언뜻 들었던 기억만이 날 뿐이라(찾아 읽지도 않았었다) 제발트를 온전하게 알고 있다고 말할 수준도 아니고 기억하고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트위터를 통해서 ‘공중전과 문학’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제목부터 흥미를 끌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분량이 크지 않았고, 강연회 내용을 토대로 한 글이라 어려운 내용도 아니었다), 문제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답게 읽어가는 도중에도 이런 식의 시각을 보여주는 내용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면서 무척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공중전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폭격,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있었던 독일에 대한 무차별 폭격에 대한, 종전 이후의 재건의 과정에서의 망각-잊음에 대한 여러 접근으로 가득한 ‘공중전과 문학’은 무차별 폭격에 대한 내용을 거의 접하지 못했었기 때문에(이것 말고도 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딱히 업는 것 같다) 그가 진행시키는 논의들은 신선하면서도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게 만드는 무척 의미 있는 내용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진행된 독일에 대한 무차별 폭격에 관한 언급은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에서도 접하지 못했었고, 그나마 하워드 진과 같은 진보적-양심적 학자 정도나 그 사실에 대해서 다뤘을 뿐이기에(하워드 진의 경우도 본인이 실제 폭격에 참여했던 경험을 토대로 논의했다는 점에서 분석적인 논의이기 보다는 경험에 근거한 감정적-공감에 의한 설득-논의였다고 볼 수 있다) 제발트의 다방면의 접근은 논쟁적인 부분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그가 지적하는 부분들을 통해서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으로만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작이라고 볼 수 있고,
아마도 앞으로도 쉽게 정리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고 본다.
제발트는 엄청난 수준이었던 (독일을 말 그대로 초토화 시키려 했던) 무차별 폭격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며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대해서 그리고 폭격으로 인한 참상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고, 그런 시작에 이어 어째서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했음에도 독일인들은 그것에 대해서 침묵하기만 할 뿐이고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를 분석하고 있다.
망각과 재건
제발트는 그 두 가지가 함께하고 있다는 점과 어떻게 생각한다면 망각과 재건은 반성을 통한 극복으로 미화시킬 수 있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기억하지 않으려는... 그 기억을 지우려고만 하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회상에 대한 철저한 거부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정신적 외상과 같은 그 기억에 대한 의식적-무의식적 회피-기억의 공백을 어떻게 생각해야만 할지를 고민하려는 것 같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가해자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닥쳤던 피해를 말할 수 없다는 논리는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생각될 수 있기도 하지만 그 폭격이 어떤 수준이었는지를 알게 된다면(파괴를 위한 파괴였던) 그리고 폭격을 실행했던 이들의 광기 또한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조건적인 침묵에 대해서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는 제발트의 입장을 어떤 식으로 평가해야 할지 조심스럽기도 하고 고민되기도 하는데, 그런 그의 대답하기 까다롭기만 한 지적과 함께 독일문학이 그것에 대해서 어떤 문학적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성급하게 어떤 대답을 내놓기 보다는 치열한 고민들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침묵에 대한 강요보다는 치열한 논의-논쟁을 통한 성찰이 좋을 것이라는 당연한 결론을 찾게 되기는 하지만 불편한 기분으로 본다면 뜬금없는 논의라고 외면할 수 있을 제발트의 물음에 독일이 갖고 있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일종의 의도적-의도하지 않던 기억의 공백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제발트의 문제의식은 조금은 잔인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요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바로 그런 치열함과 집요함이 보다 성숙한 시각을 갖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하지만 그런 집요함이 어떤 식으로는 약점을 파고들고만 있을 뿐이고, 어두운 기억들을 끄집어내고만 있을 뿐인 악의적인-악취미일 뿐이라는 비판에 어떻게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그에 비해서 ‘공중전과 문학’과 함께 수록된 ‘작가 알프레트 안더쉬’는 좀 더 복잡한 기분으로 읽게 되는데, 알프레트 안더쉬가 독일 문학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고, 그에 대한 제발트의 논의들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도 애매하게만 느껴지지만 오직 제발트의 논의에 대해서만 얘기를 한다면 알프레트 안더쉬가 갖고 있는 (인간적으로서의) 이중성과 그의 작품이 갖고 있는 (작가와 작품으로서의) 이중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가 갖고 있던 야심과 함께 그 야심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결과물을(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스스로 토마스 만과 비교를 하려고 하니 그에 대한 평가는 야박해지게 된다) 독일이 갖고 있던 광기와 (제발트가 그것을 의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논의만이 아닌 알프레트 안더쉬라는 개인이 보여주었던 삶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더해지면서 작가의 삶과 작품을 떼어놓고 생각해야만 할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생각해야만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혹은 그 부분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좀 더 논쟁적인 논의가-생각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옮긴이가 자세히 전체적인 내용과 적절한 결론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더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내용을 읽게 된다면 충분히 의도를 알 수 있고,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약간은 감춰져 있었고 다루기를 꺼려하던 것들이 꺼내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하고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되기도 한다.
무능력...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력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알게 되는 기회였고, 흔치 않은 기회였다.
좀 더 이쪽 방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