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판 키드의 추억
신현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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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쓴이처럼 하나의 추억을 얘기하면서 얘기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저자에 대해서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음악평론이나 여러 매체-지면을 통해서 문화평론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수업을 통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저자가 연구교수로 재직하는 그 대학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도 교수님이라는 기억이 더 강한 것 같다.

 

수업을 통해서 나름대로 여러 대화들을 나눴었고, 이런 저런 방식으로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는 많이 귀여움을 받았기 때문인지 좋은 기억만 많을 뿐이지만 결국 짧은 인연이었고 긴 인연으로 이어지진 못했기 때문에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때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면 어땠을까? 라는 뒤늦은 아쉬움을 말해봤자 어떤 의미가 있겠나?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후회하고 늙어가는 것 같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인지 글을 통해서 저자를 만나는 것은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반가움도 함께 느끼게 된다. 결국에는 추억을 하게 되고 옛 순간들을 기억하게 되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게 되지만.

 

저자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발표한 글들과 함께 가장 치열한 시대를 예민한 감수성으로 가득한 시절에 (흔히들 말하듯 온몸으로) 경험했던 기억들과 음악과 관련된 여러 기억-경험-생각이 맞물려지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는, 음악과 관련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고, 그리고 그 삶을 되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하고 있으며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어떤 식으로 이어가고 있는지를 솔직하게 들려주고 있는 빽판 키드의 추억은 어떤 의미에서는 운동권 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세대 중에서 조금은 독특하게 자신의 시대를 살아간 이의 삶을 엿보게 되는 경험일지도 모르고, 단지 시위하고 투쟁하는 사람들만 가득했던 시절이 아닌 감수성 충만하고 다른 재미들도 가득한 때였다는 것을 알게 해주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되도록 자신의 추억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돌려서 말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능청스럽다가도 조심스럽게 감추려고도 하는 등 복잡한 기분 속에서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그 자신과(혹은 오직 저자와) 관련된 이야기는 어려움 없이 얘기하려고 하지만 기억-추억이 자신만이 아닌 시대와 약간은 밀접함을 보일 때는, 혹은 여러 사람들이 관련되었을 때는 되도록 말을 아끼려고 하거나 좀처럼 말하기가 껄끄럽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려고 해서 더욱 궁금증을 만들기도 하고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음악에 관한 책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음악과 관련된 혹은 음악을 둘러싼 여러 추억-기억들이 버무려진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빽판...’은 지금처럼 온라인을 통해서 쉽게 음악을 구해서 들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닌 때때로 큰 각오를 해야만 들을 수 있는 (혹은 구할 수 있는) 시절을 살았던 저자가 겪었던 경험들과 함께 그 경험들을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조금은 학문적인 방식으로 살펴보려는 시도가 겹쳐져 있으며,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이나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독특한 세대인 저자의 세대(흔히 386 세대라고 말하게 되는 한때는 승리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이제는 좌절과 회의로 가득한 것 같은, 하지만 여전히 단단하고 견고함을 보여주는 바로 그 세대)가 어떤 식으로 자신들보다 앞선 세대들의 문화를 바라보았는지를 그리고 자신들의 문화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마지막으로 이후의 세대들의 문화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는지에 저자의 경험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문화라는 것이 혹은 음악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전파되었고 발전되었는지, 그 과정 속에서 저자는 어떤 식으로 그것들을 경험했는지에 대해서 흥겹게 썰을 풀어내고 있는 내용과 (굳이 그걸 하나로 엮자면 TV 방송의 발전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듣기 위해서 혹은 녹음과 기타 여러 잡다한 경험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 (음악) 장비들을 만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 이런 저런 식으로 집착하고 몰두하게 된 과정들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경험일 것이고 저자와 같이 엄청난 공을 들이진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그 경험을 공감하기 때문인지 좀 더 저자에게 다가서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그걸 경험과 추억 정도로만 생각하는 (그리고 그걸 쉽게 잊었던) 나와는 다르게 저자는 좀 더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접근하려고 하고 있고 자신의 경험을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고 그건 엄청나게 다른 점이기도 할 것 같다.

 

음악을 저장하는 혹은 보관하는 방식 중 가장 오래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음반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저자는 온갖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LP 음반을 경험하지 않은(혹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인지 그런 내용들은 무척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지고만 있다.

 

LP를 음악을 듣기 위한 수단이 아닌 조금은 고급스럽게 혹은 독특한 방식으로 수집-보관-기념품으로 간직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들은 재미난 추억들이기는 하지만 쉽게 공감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게 결국에는 세대의 차이일 것이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 이후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 중 가장 격렬하고 강렬하게 기억되는 공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고, 그 자신의 청춘을 뒤돌아보는 논의까지 향하면서 저자는 신나게 얘기하던 모습에서 조금은 머뭇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고, 그 갑작스러운 변화는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앞선 내용들에서 언뜻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인지 충분히 이해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혹은 그것 말고도 여러 인연과 우연 때문에 평론가가 되어버리는 과정과 평론가라는 위치를 넘어 좀 더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학문적인 접근을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음악이 어떤 식으로 한 사람에게 질기게 달라붙는지를, 어떤 식으로 음악과의 질기고 질긴 인연이 이어지게 되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고, 하나의 집착이 어떤 식으로 (되도록) 좋은 (갈등과) 화해를 보여주는지를 알게 되니 조금은 놀랍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과연 어떤 것에 저런 깊은 애정을 간직하며 지낸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기도 한다.

 

딱히 대답할 것이 없기에 쑥스럽기만 하고 부끄럽기만 한 것 같다.

 

나는 음악에 영화에 혹은 책에 어떤 애정과 각별함이 있는 것일까? 어떤 우연과 추억들이 기억들이 간직되고 있는 것일까? 그걸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험들이 있었던 것일까? 혹은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나 한 것일까?

 

좌절하고 뒹굴고 있을 뿐이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고 싶진 않다.

결국 어떤 것도 남기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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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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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일종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지는 않지만(하지만 개인적으로 호밀밭...’은 몇 번 읽었어도 이상할 정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무덤덤한 기분으로 이렇다 할 감동이나 재미없이 그저 그런 기분만 들었을 뿐이다. ‘호밀밭...’에 깊은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면 무척 궁금하게 될 때가 있다. 왜 그 작품이 좋은 것일까?), 어쩌면 좀 더 깊은 감동을 남기기도 하고, 만약 이 작품을 이미 읽었다면 무언가를 생각하게 될 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약간이라도) 동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앵무새 죽이기는 여전히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고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고 충분히 그럴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을 발표하고 은둔하듯이 살아가고 있는 (‘호밀밭...’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도 그렇지만 첫 작품의 거대한 성공에 어쩔 줄을 모르며 난처한 것인가? 능력 이상의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견뎌낼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성공이었던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미국 작가의 이상한 수줍음일까? 딱히 다른 국가의 작가들 중에서 단 한편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혹은 하퍼 리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처럼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작가는 없었던 것 같다) 하퍼 리의 또다른 작품이 발표되기 직전의 상황이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 다시 읽게 된 앵무새...’는 처음에 읽었을 때 보다는 좀 더 흥미롭게 읽혀지고 있고 놓쳤거나 아예 생각나지도 않던 내용들도 있어서 다시금 읽기 보다는 처음 읽는 느낌으로 읽혀지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인지 좀 더 흥미롭게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로 읽는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는 앵무새...’는 단순하게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혀질 수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읽을수록 여러 생각들이 떠올려지게 되는 것 같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 앵무새...’는 성장소설의 틀 속에서 개인적인 이야기-기억-추억들을 끄집어내면서 그런 이야기와 함께 보편적인 공감-설득을 만들어내는 사건을 함께 더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수한 상황-사건에 어떤 식으로 보편성을 함께 더할 수 있는지-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매력적인 (혹은 빼어난 수준의) 대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품의 관찰자이며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소녀 스카웃의 시선으로 소녀의 오빠인 제롬과 아빠인 애티커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내고 개입되는 사건들을 통해서 여러 이야기와 생각들 그리고 고민들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작품 속에서 중심이 되는 사건을 통해서도 다양한 논의들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면서 그런 논의들이 어떤 식으로 여러 편견과 선입관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잘못들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만들고 변하게 만드는(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을지를 고민하게 해주며 작품은 꾸며지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화에 대한 생각을 갖도록 만드는 힘을 여전히 잃고 있지 않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반대로 지금의 현실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변화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기도 한 것 같다.

 

앵무새...’가 이야기의 구성이나 진행에 있어서 완벽하다고 말하거나 어떠한 틈새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기 보다는 작가의 첫 작품이 갖고 있는 허술함이 그리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많은 것들이 들쭉날쭉하게 이어지고 겹쳐져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그것들이 불만스럽거나 불편하기 보다는 결국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걸로도 충분하고 더할 수 없는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의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 같다.

 

신념과 정의

공정함

존엄과 존중

타인에 대한 배려

인종이 아닌 인간으로서 바라봄

(인종차별만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차별에 대한 비판

 

하퍼 리의 신작인 파수꾼때문에 앵무새...’에서 다뤄진 내용들이 무척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조금은 충격적인 변화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앵무새...’에서 등장했던 이들을 재평가하게 만들고 재해석하게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파수꾼을 함께 엮어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는 것이 크게 틀린 이해는 아닐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수꾼때문에 마치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듯이 앵무새...’가 재해석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서 좀 더 다양한 논의-논란이 벌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된 평가-판단이 필요하게 되기는 했지만 그러기에는 조금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모든 평가-판단은 결국 (혹은 대부분)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과연 실제로 어떤 인물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에 집중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인지 혹은 결국에는 그렇지 않은 입장이면서 온정적인 입장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여러 논쟁-논란이 벌어지게 되는 것 같고, 그건 파수꾼을 통해서 폭로되듯이 혹은 불거지듯이 얘기되고 있는 것 같은데,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니 뭘 그렇게 난리법석인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파수꾼앵무새...’ 이전에 완성된 작품이었고(다만 발표가 이처럼 미뤄졌을 뿐이었고), 여러 시행착오 끝에 앵무새...’가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파수꾼앵무새...’ 보다 이후의 시기이지만 미발표된 작품이었고 여러 가지로 새로운 조합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런 성격적인 변화 혹은 달라짐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퍼 리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갈등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을 뿐이지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라는 인물을 어떤 식으로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입장은 아니었을 것 같다. 다만, ‘파수꾼뒤늦은 발표로 인해서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에 대한 큰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충격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는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개인적으로 파수꾼에서 앵무새...’ 내용들이 어떤 식으로 언급이 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게 된다. 출판을 위해서 여러 내용들이 뜯어고쳐졌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완성 속에서 과연 과거가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다뤄지고 있고 기억되고 있기나 한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좀 더 입체적인 인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고 그를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성숙한 사람이고 존경받고 본받을만한 사람으로 다뤄지는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어떤 비난을 혹은 비판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럼에도 그에게서 어떤 긍정적인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게 더 괜찮은 방식이지는 않을까? 오히려 앵무새...’의 모습이 비현실적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앵무새...’만을 놓고 봤을 때, 지금과 같은 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지만 앵무새...’는 미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미국에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주목하고 활발하게 얘기되는, 흔히들 말하는 미국적인 정신(부정되고 반박당하며 위선으로 가득하다고 비난되는, 말뿐이고 주장하듯이 행동하지 않는다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폭로-비난-비판받는 미국적인 정신을)을 잘 살려내고 있고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고, 미국 남부가 배경이기 때문에 좀 더 미국이 갖고 있는 특수한 상황과 사건을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그 특수함 속에서 보편성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인상적인 작품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앵무새...’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스카웃과 젬 그리고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를 통해서 많은 본받을 점과 배움을 찾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주변적인 생각일 뿐이 되는 것 같다.

 

(거듭해서 말하게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고 있듯이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인물이면서도 과연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인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비현실적인 인물이면서도 (그걸 알면서도)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를 현실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인물이 되는 것 같다.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부재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람을 찾게 된다. 그 이상한 희망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지게 된다.

 

그가 보여주는 여러 모습들은 계속해서 다양한 논의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존경스러움과 본받음을 찾게 되는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항상 잊지 않고 떠올리게 되는 인물 중 한명이 되는 것 같다.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는 여러 가지로 두고두고 논의되게 만드는 인물이 될 것 같고, 그를 통해서 좀 더 다양한 논의를 끄집어내고 싶게 된다.

 

이런 생각과 소녀 스카웃이 경험하는 여러 사건-상황들 덕분에 앵무새...’는 더더욱 주목하게 되는 소설이 되는 것 같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작품이 되는 것 같은데, 널리 알려진 소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아직 읽지 못한 사람들에게 무척 좋은 작품이니 한번 속는다는 생각으로 읽어보기를 권해보기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는 것 같다.

 

미국 문학이 갖고 있는 매력과 개성 그리고 그들이 간직하고 이어가려고 하는 정신이 어떤 것인지 아주 일부분만을 확인할 수 있을지라도 무척 잘 살려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읽어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이 갖춰야 할 모습-태도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한 작품이기에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계속해서 언급되는 작품이 되는 것 같다.

 

 

 

참고 :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여러 소품-물건과 사건 그리고 대화들을 통해서 어떤 시대가 배경인지를 알 수 있게 되면서도 간혹 그 시대와 조금은 동떨어진 모습들 또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과연 하퍼 리가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것인지 헷갈려지게 되기도 한다. 그게 아니면 실제로 미국 남부는 과거와 현재가 이상할 정도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던 공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여러 논의들을 들춰보기에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명성이 워낙 단단하기 때문에 결국 그런 논의들은 흠집을 위한 논의 이상이 되지는 못하게 될 것 같다. 이미 이 작품은 그런 논의들을 만들어내기에는 너무 높은 자리로 올라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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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몸의 역사
자크 르 고프 지음, 채계병 옮김 / 이카루스미디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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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 유럽의 중세 시대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지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지금까지도 중세는 무척 관심을 갖게 만들고 여전히 주목하게 되는 시대인 것 같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 관심을 갖기에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일반인이 관심을 갖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대라고 볼 수 있고, 그 분야에 대한 전문가나 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허튼 생각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을 들어도 딱히 반박할 수 없기는 하지만 과거에 대해서 혹은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여전히 잃지 않는 이유는 아무래도 과거-역사를 통해서 지금과 다른 무언가를 혹은 지금이 어떤 방식으로 지금으로 되어버렸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하게 될 것 같다.

 

물론, 그중에서 특히나 유럽의 중세 시대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당연하 아날 학파의 여러 연구들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아날 학파의 연구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역사적 흐름을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척 다양하고 복잡하게 혹은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사건에 주목하기도 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전후 관계와 함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때문에 무척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고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

 

단순히 과거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그 감수성과 삶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파고들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만드는데, 그 시대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닌 그 시대로 빠져들어가고 있고 그 시대 내에 머물려는 느낌까지 들기 때문인지 더더욱 아날 학파에 관해서 관심을 갖고 여러 책들을 찾게 되고 읽게 되는 것 같다.

 

생존하고 있는 아날 학파를 대표하는 연구자들 중에서 가장 명성 있는 연구자 중 하나인 자크 르 고프는 그의 여러 저작을 통해서 다양한 근거를 갖고 흥미로운 논의를 전개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중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감수성과 사고구조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무척 깊이 있게 파고들고 분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었고 되도록 그의 저작들을 많이 읽어보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그의 글을 읽게 되니 여전히 독특한 관심과 분석을 보여주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하지 않고 관심을 끌지 못했던 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악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세 몸의 역사는 중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몸에 대해서 어떤 이해를 갖고 있었는지를, 기독교가 장악한 시대정신은 어떤 식으로 몸을 중세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고 받아들이게 했는지를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해보려고 하고 있다.

 

연구서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가볍게 글을 써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데, 정교하고 치밀한 전개를 위한 다양한 근거와 논의를 펼쳐나가기 보다는 기존의 논의를 간략하게 검토-설명하면서 본인()의 생각을 덧붙이며 충분한 이해를 혹은 동의를 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읽어낼 수 있을 것 같고,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생각들에 어느 정도 이해와 동의가 있다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생각했던 몸에 대한 이해와 함께 지금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몸에 대해서 어떤 이해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비교하며 생각할 순간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중세 시대의 시대정신과 고정관념 그리고 기독교 정신이 몸의 구성에서 어떤 긴장감과 은유를 만들어내고 있는지가 논의의 중요한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해와 편견, 고정관념, 정서, 감수성, 태도, 관습 그리고 중세 시대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독교 정신은 어떻게 몸을 이해했으며 몸에 대해서 중세 이전 과거의 이해와 다른 방식으로 대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중세 이전이 어떤 식으로 중세에 영향을 미쳤으며 중세는 그 나름대로 어떤 식으로 몸을 대했는지를 그리고 그 이후 시대는 과거에 어떤 영향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또한 몸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몸을 둘러싼 수많은 것들을 (관습, 제도 등등) 함께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갖고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 거대한 구조가 변화되어 새로운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그 구조의 변화에서 주목하면서 눈여겨 볼 것은 어떤 것인지를 여러 방식으로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읽게 된 것 같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읽다보면 흠뻑 빠져들게 되는 아날 학파의 그리고 특히나 관심을 갖고 있는 자크 르 고프(그리고 니콜라스 트뤼옹)의 논의이기 때문에 즐거운 기분으로 읽어낼 수 있었고, 몸을 통해서도 무척 다양한 논의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는 사실에, 중세 시대의 몸에 대한 복잡한 이해관계를 생각하며 지금 현재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의 몸은 또 어떤 것들로 둘러싸여져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항상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날 학파 그리고 중세 시대에 대한 논의는 아주 쉽게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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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김도언 지음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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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황홀 : http://blog.naver.com/ghost0221/60181838241

 

 

 

작가 김도언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무척 이상한 방식이었다.

, 아주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작가였지만 그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작가일기라고 이름 붙여진 에세이-산문 모음인 불안의 황홀이었고, 꽤 독특한 감수성과 시선-생각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관심이 들어 그의 소설을 구해두기는 했지만 항상 그렇듯 지겨울 정도로 귀찮음으로 가득한, 모든 것을 나중으로 미루기만 하는 게으름 때문에 구하게 된 동시에 책장에 꽂혀 있었을 뿐이었는데, 어쩌다가 갑작스럽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제나처럼 뒤늦게 읽게 되었다.

 

저자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는 내용이 끝난 다음에 읽도록 준비한 작가의 말과 평론가의 작품 해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별다르게 덧붙여서 설명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워낙 인상적인 제목 덕분인지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는 내용을 접하며 일상의 모습을 그리고 사소한이라는 표현을 붙이게 되는 우리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야릇하기도 하고 몽환적인 느낌도 들게 되는 제목 때문에 실제로 읽기 전에는 어떤 내용인지 좀처럼 생각나지 않던 이토록...’은 도시의 변두리를 배경으로 여러 등장인물들이 겪고 있는 일상의 각박한 삶에 대한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사소한 일상과 큰 사건 없이 이끌어지는 이야기 때문에 심심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무런 내용이 없다며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소함 속에서 약간의 갈등과 사건이 그리고 변화들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눈여겨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짧게 잘게 나눠진 이야기 진행과 긴 호흡 없이 쓰인 글 때문에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는데, 여러 이야기들이 겹쳐져 있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선재를 중심으로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갈등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결국 선재의 내면을 그리고 그가 겪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과 그들의 삶을 생각해보고 비교해보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순간은 웃음을 짓게 만들지만 때때로 안쓰럽게 만들기도 하고 도망칠 수 없다는 곤혹스러움에 그 괴로움을 공감하게 되기도 하는데, 여러 등장인물들을 잘 다뤄내고 있으면서 각각의 인물들에 개별적인 개성과 차이를 충분하게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들의 조합이 그리고 구성이 만족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끝맺음을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아닌 전체의 과정 속에서 어떤 순간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있고, 살펴보게 만들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되고, 어쩌면 지루하고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지루함과 대단찮음은 결국 우리들의 삶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갑갑하기만 한 삶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잠시금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위악적이거나 악취미에 대한 탐구를 보이고 있는 저자라고 알려진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그리 위악적이지도 않고 악취미로 가득하지 않기 때문인지 그냥 저냥한 심심한 기분으로 밋밋하고 팍팍함으로 가득한 삶을 잠시 함께한 기분이다.

 

나쁜 기분은 들지는 않는 소설이었다. 누군가에게 추천하기는 머뭇거려지겠지만.

 

 

참고 : 1. 멜랑꼴리의 올바른 표기는 멜랑콜리라고 한다. 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심하기는.

2. 200871612쇄로 인쇄된 책을 읽었는데, 230쪽과 231쪽에 오타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서 눈에 거슬렸다. 소설을 읽을 때는 오타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어쩌다가 그런 실수가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230쪽 아래에서 3째줄 '호준이 그렇게 말하자 소라는..' '호준이 그렇게 말하자 미진은...' 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고, 231쪽 위에서 9째줄 '선재가...' ' '호준은...' 으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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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나남신서 29
미셸 푸코 지음, 오생근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은 워낙 널리 알려진 저작이고 이름 높은 책이기 때문에 (흔히들 말하는 인문학 필독도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미 대학생 시절 읽어보기는 했지만 앎이 깊지 못하고 부족하기만 한 이해력 때문인지 읽었음에도 읽은 느낌이 들지 않고 무슨 소리인지 대략적으로만 알 것 같다는 생각만 가물거리듯 들기만 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좀처럼 손에 잡게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책을 마주할 때 느끼게 되는 괴로움이 두려워 계속해서 피했던 것 같다.

어째서 그러냐고 묻는다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고 난해하게만 느껴지니까.

그게 솔직한 마음일 것 같다.

읽고는 싶지만 읽어내는 과정이 너무 힘겨워서 피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감시와 처벌을 읽어본 사람들은 알고 있듯이 감시와 처벌은 무척 다양한 사례들과 근거를 통해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이론적으로만 몰두하거나 추상적인 논의들로 가득하지는 않기 때문에 꽤 읽는 재미가 풍부하고 집중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쉽지 않게 읽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선은 푸코의 논의가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의 논의가 그동안의 일반적인 생각-시선과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어렵게만 느껴지게 되는 것 같다.

 

전복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전혀 다른 자리로 옮겨놓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떤 식으로든 읽기가 쉽지는 않지만 읽게 된다면 그 읽음의 과정 속에서 많은 재미와 다양한 논의들 그리고 지금 시대의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많이 떠올려지기 때문에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푸코의 논의를 다시금 살펴보게 되는 것 같다.

 

근대 이전 시대, 고전주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시대는 범죄인들에게 어떤 방식의 처벌이 이뤄졌었는지, 신체형이라고 일컬어지는 처벌의 가혹함과 잔혹함이 어떻게 근대시대로 접어들면서 변화가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으로 시작하는 감시와 처벌의 논의는 감수성의 변화, 사회(구조)의 변화, 권력의 변화, 지배방식의 변화, 자본주의 사회로 향하며 권력이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처럼 어떤 새로운 지식-관계를 생산하게 되었는지를, 어떤 인간-존재-주체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고, 그 독특함 속에서 감탄하게 만들고 생각지도 못했던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처럼 새로운 방식의 생산을 시작하는 과정을 들여다보게 되는 기분이 들게 된다. 그 일부를 지켜보게 된 기분이다.

 

일종의 폭로라고도 말할 수 있는 수준인데, 약간은 현란한 논의라고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지만 휩쓸고 지나가듯 머릿속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구경거리로서의 처벌이 어떤 식으로 제도화되고 인간화가 되는지를, 어떤 것들이 사라졌으며 어떤 것들이 새롭게 생겨났는지를, 시대의 변화와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시대정신이 어떤 식으로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빼어난 방식으로 탐구하고 있는 감시와 처벌은 내용이나 논의의 방식이나 다루고 있는 사례들이나 모든 것들이 생소하고 색다르기 때문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것 같다.

 

권력이

시대가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고, 어떤 것들을 숨겨내고 있는지를, 우리들은 어떤 식으로 새로운 존재-주체-대상이 되어버리게 되었는지를, 수많은 것들의 구성과 인과관계가 결국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다양하게 그리고 폭넓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논의의 깊이나 넓이가 거대하게만 느껴지게 되고 그렇기 때문인지 쉽게 책장을 넘기게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무척 색다른 방식으로 탐구를 하고 있고, 다양한 논의들로 가득해서 읽어내기가 쉽진 않았지만 참을성 있게 푸코의 논의를 따른다면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생각이 많이 변화되기도 하고,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지금 시대가 어떤 정신을, 어떤 존재-주체를 만들어내길 원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어떤 장치-시설들이 필요했는지를 생각해보며 읽게 된다면 더 흥미롭게 읽혀질 수 있는 감시와 처벌은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생각들을 해보게 만들고 있고,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게 읽혀지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것 같다.

 

감시와 처벌에 관한 훌륭한 논의들이나 설명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어설프게 이해했을 뿐이라 무언가를 말하기 보다는 얼마나 탁월한 책인지(에 대해서만) 강조하게 되는데, 읽어보지 못했다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고, 읽어본 사람들에게는 한 번 더 읽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권하고 싶어지게 된다.

 

오랜만에 푸코의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좀 더 그의 다른 논의들도 접해보고 싶은 생각이 다시금 들게 되었는데, 한동안은 푸코의 책들을 조금씩이라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참고 : 무언가 새로운 것을 읽기 보다는 읽었던 것들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만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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