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보라 - 1920년대 경성의 밑바닥 탐방
아카마 기후 지음, 서호철 옮김 / 아모르문디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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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부르면 인간은 게을러진다.

배가 고프면 인간성은 황폐해진다.

이것이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된다.

배고픈 자에게 지금 무슨 말을 들려준들,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배불리 먹고 싶다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없으니까...

어쨌든 그날그날의 생활에 쪼들리지 않는 사람은 남의 일도 생각해 줄

여유쯤은 있을 테니까,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자기들의 세계 이외의 것도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배부른 자들이 배고픈 자의 괴로움과 애달픔을

좀 알아주었으면 하고, 이 책을 쓴다.

 

 

 

도시는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을 갖는다. 한편에는 우뚝 솟은 건물들, 차량과 인파로 붐비는 거리, 쇼윈도를 장식한 최신 유행의 상품들, 거리를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볼거리가 넘치는 화사한 도시의 얼굴이 있다. 그것은 자연을 극복하고 이룩한 인공낙원, 모던의 상징이다. 그러나 뒷골목이나 산동네, 다리 밑으로 대표되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은 빈곤과 굶주림, 범죄, 유혹과 타락 같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빈부의 차이는 있을 테고 돈으로 사고 파는 쾌락과 만족의 뒷면에는 상품화된 노동과 성의 비참함이 있겠지만, 도시에서는 빛이 선명한 만큼 그늘도 더욱 짙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혹은 후기와 소개를 찾아보고 읽어보다가 알게 된 대지를 보라는 여러 가지로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해 보였기 때문에 무척 관심이 갔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보다는 이른 시기에 읽어보게 되었다.

 

평소였다면 기억만 해두거나 나중에서야 그런 책이 있었는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경성-서울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여러 방식이 있겠지만 대지를 보라처럼 독특하고 특별함을 보여주는 책은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를 것이고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이런 내용을 다룰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어떤 과정 속에서 저자는 이름 모를, 지나쳤을 뿐인 삶을 살펴보게 되었을까?

 

저자는 일본인이고

기자 출신이며

극우까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우익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되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인 우익적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보다는 온정적이고 동정적이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도 생각과 관심도 궁금하지만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것 자체가 가장 궁금해지고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무관심하게 생각하고 지나쳤을 이야기들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고, 무척 이상하다고 싶을 정도로 관심과 (기자 출신 때문인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었던 것일까?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만 그런 궁금증과는 별개로 대지를...’는 충분히 인상적이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그 당시의 풍경과 밑바닥사람들의 삶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고 글자 그대로 탐방하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멀고 먼 과거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옛 이야기도 아니고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도 아니라고 생각되고 저자가 지켜보고 몰래 찾아가 보게 되는 모습들을 조금만 달리 생각하고 지금 시대에 맞게 생각한다면 그리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도 아니고 많이 생소한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서글프고 고달픈 삶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삶이란 이처럼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다지 달라지지도 않은 것 같다.

 

다만, 저자가 보려고 하고 있고 들려주려고 하는 이야기는 어떤 학문적 관심이나 직업적인 사명 등이 아닌 (쉽게 말해서) 팔릴만한 이야기를 찾고 있기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저자의 관점 자체가 그런 식인지) 어떤 경우는 우스꽝스럽고 조금은 차별적인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고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들을 다뤄내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는 어떤 관점에서 아우르려고 했던 것인지 헷갈려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도색 잡지에 실릴만한 싸구려 이야기도 있고 신문 사회면에 다뤄질 실태 보고와 같은 내용들도 있는 이것저것 관심이 가는 것을 제멋대로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번역자의 머리말처럼 때로 그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면서 ... 사회의 인식과 반성을 촉구하기도 하지만, 어떤 대목은 꽤 선정적인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를 생각하면서 글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흥미 위주의 읽을거리를 좀 더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면 저자의 호기심이 원래 그런 식이었거나.

 

분명한 것은 저자와 이 책의 성격이 한 가지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복잡한 만큼, 읽는 재미는 더 쏠쏠하다.”

 

1920년대 경성-서울의 하층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이것 말고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다면 이런 내용이라면 탐사보도나 기획취재로 아주 나쁜 수준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기괴하고 엉뚱한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책만 가지고 연구를 하다 보니 그 논의가 현실과 잘 들어맞지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엉뚱하고 기발한 방식이 오히려 좀 더 그 당시의 현실과 실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실마리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고 현실과 실상을 최대한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대상이 아닌 인류학적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과거에 속하는 낯선 사회로 치부하는 시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경성이라는 도시의 어둡고 그늘진 면에 주목하고 현장에서 하층민의 삶을 밀착취재해서 그 실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이 책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감으로 가득하고 현실감이 넘쳐난다.

 

동정과 냉대 그리고 배제에 대한 분노보다는 기구한 신세에 대한 한탄, 가난함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신기하고 낯선 추하고 성적인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관음증이면서도 흥미롭기만 하다.” 그리고 그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인 낯선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개성 있고 독특한 방식으로 밑바닥의 삶을 훑어보는 저자의 관점과 방식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하게 만들지만 그러면서도 번역자에 대한 얘기 또한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온갖 자료들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들의 부족한 부분을, 저자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을 통해서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과 정보들을 소상하게 알려주면서 그 사실감과 현장감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번역자는 어떤 의미에서 공동 저자에 가깝다고 말해야만 할 것 같다.

 

저자의 감각과 노력은 돋보인다.”라고 번역자는 말했지만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번역자 또한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과는 다른 사회구조와 성별분업, 권력관계가 몸에 새겨져있는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고 두루 둘러보면서도 저자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런 비참한 하층세계의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도 무자비한 자본주의와 함께 배후에서 이런 비참함을 빚어내는 결정적 모순이 식민지 지배라는 것을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거꾸로 이런 생각도 해야 할 것 같다. 저자처럼 자극과 선정적인 방식은 아닐지라도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의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꾸준히 지켜보고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걸 알려주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노력이 있기나 한 것일까? 혹은 그런 노력에 우리들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런 여러 물음 또한 떠올려지게 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련한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생각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나 또한 무언가를 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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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 돌베개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조류독감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6610&cid=51007&categoryId=51007

스페인 독감 : https://ko.wikipedia.org/wiki/%EC%8A%A4%ED%8E%98%EC%9D%B8_%EB%8F%85%EA%B0%90

스페인 독감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35661&cid=40942&categoryId=32799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통해서 국내에 많이 알려졌는데, 그는 우리들에게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혹은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있었던) 주제와 문제의식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것이 얼마나 시급하고 위급한 사안인지를,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하고 안이하게 받아들였는지를 강조하며 그게 어떤 식으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 있을지를 경고하려고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마이크 데이비스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서 괜한 혼란과 위기의식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불안을 조장하고 부풀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거나 부분적으로나 제한적으로 접해왔던 주제를 전반적-전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좀 더 심도 깊은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그것이 단순한 문제가 아닌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규모의 심각한 수준의 사안이며 지금 시대의 사회구조-체제가 어떤 식으로 문제를 더 커져버리게 만들었으며 좀 더 폭발성을 만들었는지를,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은폐시키거나 축소시키려고 함으로써 해결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그 주제를 단순하게 분석하는 것이 아닌 폭넓은 방식으로 논의들을 가져오고 있고 구체적이면서 구조적인 접근과 분석을 통해서 일시적이고 단순한 골칫덩이가 아닌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이 함께 진지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국제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을 제시하는 종합적인 접근과 분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게 읽게 만들고 있고 누구나 설득할 수 있는 문제점과 제안을 내놓고 있다.

 

제목처럼 저자는 최근 들어 빈발하고 있는 조류독감과 관련된 문제를 파고들어 우리들이 얼마나 일상적인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흔히 스페인 독감으로 알려진) 1918년을 휩쓸고 지나갔던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독감 이후 한동안 두려움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재앙이나 전염병으로 생각되지 않던 독감이 어떤 식으로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대재앙을 예감하는 근거가 되어버렸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지구화라고 손쉽게 말하는 과거와는 정말로 달라진 근본적인 시대적 전환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

도시화와 밀집화의 가속화와 빈곤지역(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지역)의 확대

그에 따른 전염성의 발생할 가능성의 확대와 급격한 전염 가능성의 확대

여러 조건들이 겹쳐지면서 근본적 위기와 대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의 확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던 혹은 중요시하지 않던 질병이 어떤 식으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과 결합해서 확대되고 ()생산되는지를 인상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조류독감은 저자의 다른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특정한 원인이 문제가 아닌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생각처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경제와 환경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재편되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들의 진화와 종간 전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도시화와 세계 경제, 그리고 자연 환경이 맺고 있는 광대한 상호 연계망을 개념화속에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관료적 태만과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있을 뿐이며, 국가들의 이기주의 및 기타 여러 문제들로 인해서 해결의 가능성 보다는 침울한 지적으로 결론짓게 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최선을 다해서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과 다양한 학문-논의들을 받아들이고 있고 좀 더 종합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저자의 접근과 시각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재앙을 막기 위한 노력을 섣부른 위기의식으로만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좀 더 귀를 기울이고 함께 고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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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투모로우 : All You Need is Kill - 개정판
사쿠라자카 히로시 지음, 김용빈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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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123683708

라이트 노벨 : https://ko.wikipedia.org/wiki/%EB%9D%BC%EC%9D%B4%ED%8A%B8_%EB%85%B8%EB%B2%A8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시간여행-반복을 소재로 꽤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낸 영화였다. 공상과학-SF 이면서도 나름대로의 설득력과 사실감을 살리는 작품이었는데, 끊임없이 동일한 시간을 반복한다는 설정을 내용으로 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영화는 아무래도 사랑의 블랙홀이 생각나지만 엣지...’는 그런 낭만적인 작품이 아닌 외계 생물과의 전투와 인류의 생존이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지나친 심각함 없이 장르의 법칙에 충실하면서 재치 있고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엣지...’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 영화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것도 일본의 라이트 노벨이 원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꽤 놀라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일본의 라이트 노벨이 헐리우드로 향하게 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영화보다 그리고 소설보다 그 과정이 더 흥미진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신기하기도 하고 영화로 제작된 원작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기도 해서, 게다가 라이트 노벨이라면 읽기가 어렵진 않을 것 같아 (저렴하기도 해서) 중고서점에 들렸을 때 눈에 들어와 읽어보게 되었다.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All You Need Is Kill’(작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 번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비교적) 신인 시절에 발표했다는 점과 많은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평가와 성공을 거뒀다는 것 정도만 알게 되었을 뿐, 내용이나 구성에서 여러 패러디들을 즐길 수 있기도 하다고() 하지만 이쪽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그렇구나 하는 기분만 들었다.

 

영화를 접하고 원작을 읽게 된다면 조금은 난감한 기분이 들지도 모를 것 같은데, 영화와는 달리 원작은 흔히들 말하는 라이트 노벨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사춘기적 소년 소녀의 감수성을 내세운 여러 특징들) 영화와는 많이 다른 느낌으로 읽게 될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영화만의 원작은 원작만의 재미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원작 보다는 영화가 더 괜찮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기는 한데, 라이트 노벨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개성 있는 분위기나 특징들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원작이 맞나? 라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화와 원작은 특정 설정들만이 동일할 뿐 무척 다른 모양새로 완성되어 있는데, 어떻게 본다면 영화는 영화가 추구하는 재미와 장르의 규칙-법칙을 잘 이해하면서 매력적으로 (영화적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원작을 철저할 정도로 무시했다고 거꾸로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하다) 원작은 영화를 떠올리지 말고 (그러기는 어렵고 불가능하겠지만) 원작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특징들을 즐기는 것이 가장 괜찮은 방식의 책읽기가 될 것 같다.

 

어차피 진행되는 이야기 구성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영화를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세부적인 설정들이나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못했던 자잘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반복되는 시간이라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면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을 갖게 만들 것 같다.

 

반복되는 시간으로 인해서 내면의 변화-성장과 풋내기가 어떤 식으로 전투기계가 되는지, 그러면서 소년이 어떤 식으로 성장-성숙하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이미 그 과정을 겪었던 소녀와의 만남과 계속되는 반복 속에서 단 하루지만 하루의 반복이 엄청난 시간으로 쌓이게 될 때 그 쌓여가는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그저 새로운 하루를 경험하고 있을 뿐인 사람이 느끼게 되는 묘한 감정의 흐름과 그 이후의 슬픈 결말까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과 각도에서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은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고 사춘기 소년 소녀의 이야기라고 핀잔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를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실망하게 될 수 있겠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한다면 다른 재미를 찾게 될 수 있기도 해서 꽤 괜찮은 느낌이었다.

 

라이트 노벨을 즐겨 읽는 사람들이라면 좀 더 재미나게 읽게 될 것 같다.

 

 

 

 

참고 : 아마도 가장 형편없는 책읽기는 영화를 통해서 원작을 접하는 방식이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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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샷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영화 잭 리처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494448521

 

 

톰 크루즈가 출연한 (주인공 잭 리처를 연기한) 영화 잭 리처는 생각보다 근사한 완성도의 수사물이고, 그래서인지 원작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시리즈가 끝날 가능성은 없지 않을까? 리 차일드가 죽는다면 몰라도) 시리즈 중 어떤 작품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는 시리즈가 끝나서야 정리될 수 있겠지만 영화 잭 리처의 원작인 원 샷은 지금까지 발표된 잭 리처 시리즈들 중에서도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이미 영화를 접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지만) 기대감 속에서 읽게 되었고 영화에 비해서는 좀 더 꼬여진 이야기와 느슨한 진행 때문에 다소 밋밋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이미 영화를 접했던 사람들이라면 어떤 식으로 원작과 영화가 다른지 그리고 어떤 점들이 (둘 중에서) 더 만족스럽게 느껴지는지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되겠지만 둘 모두 (당연한 말이지만) 장단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면 소설 또한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읽게 될 것 같다.

 

반대로 소설을 만족스럽게 읽었다면 (원작에서의 잭 리처에 대한 묘사와는 전혀 다른) 톰 크루즈가 연기한 잭 리처의 모습에 당장은 황당한 기분이 들기는 하겠지만 분노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고 좀 더 너그러워진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소설에 비해서 월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더 멋지고 똑똑하며 날렵하게 다뤄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만능이고 완전무결한 사람처럼 보여준다. 영화니 그러려니 하면서 생각하면 그만일 것 같다) 원작을 만족스럽게 영화로 옮겨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원작을 압축시키고 좀 더 간결하게 만들어서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고 그건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서 괜찮은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른한 금요일 오후 느닷없는 무차별 총격

갑작스러운 무차별 총격으로 인해서 충격을 받은 시민들

이유모를 죽음을 당한 사람들

신속하게 사로잡은 범인

묵비권을 행사하며 유일하게 꺼낸 말은 잭 리처를 데려와 달라는 한마디

비밀스러우면서도 강인하고 어떤 난관과 어려움도 사소하게만 느껴지는 잭 리처의 모습

 

스스로 문제에 끼어들고 빠져들면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기는 하지만 잭 리처가 겪게 되는 어려움은 다른 하드보일드-범죄소설에서 다뤄지는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에 비해서는 예행연습처럼 느껴질 정도로 잭 리처가 보여주는 강함은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내리라 생각되고 별 것 아닌 문제처럼 느껴지게 된다.

 

잭 리처와 대적하게 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현격한 차이와 강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일방적인 모습에 어떤 남성성을 혹은 힘을 느낄 수 있었는데, 지루하거나 진부하다고는 생각되지는 않아서 이런 절대적인 강함과 힘에 독자들이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되고 명확하게 떠올려지지 않았던 (찾고 싶었던) 남성성을 확인하고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범행이 낱낱이 밝혀진 상황에서 시작하는 원 샷은 갑작스러운 시작과 진행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의심할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증거들이 조금씩 의심스러워지고 실마리를 만들어내게 되는지를 (잭 리처와 함께) 찾아내는 과정이 흥미로우며 그 과정 속에서 잭 리처의 개성과 매력 그리고 뛰어난 능력을, 고독하면서도 냉소적인 건조한 독백과 대화들을 통해서 하드보일드-범죄소설의 매력 또한 잘 살려내고 있다.

 

벌어진 상황에서 실마리를 갖고 있는 조각들을 찾아내며 사건을 풀어낸다는 점은 동일한 방식이지만 원 샷은 그걸 풀어내는 방식에서 이미 확정적이고 명백한 결론을 뒤집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떤 완벽함을 재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석연치 않은 미세한 뒤틀린 부분들을 갖고 무언가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특징적이고 인상적인 것 같다.

 

추리와 액션을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추측하고 증거들의 약점들을 파고들어가는 과정에서의 흥미로움은 생각 이상의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와는 다르게 500쪽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조금은 느슨하고 좀 더 사실적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좀 더 신속한 전개를 기대했던 사람들이라면 느리다고 불평할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잭 리처의 개성과 다른 등장인물들의 개성들이 잘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워낙 길고 긴 시리즈이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을 읽을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때때로 잭 리처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읽어보고 싶어진다.

 

썩 만족스러운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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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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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살던 시대의 문화와 계급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미시사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다가 언뜻 미시사에 대한 논의를 잠시 접했던 기억은 나지만 그다지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었다. 기존의 역사에 대한 접근과는 다른 접근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호기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멋대로 읽기만 하고 있었고, 관심이 이리 저리 달라지고만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있구나 하는 수준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좀 더 아날 학파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단순히 미시사를 얘기할 때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하고 있는 치즈와 구더기는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대표작이며 집요한 탐구와 다양하고 해박한 지식을 통해서 메노키오라는 한 방앗간 주인의 삶을 통해서 16세기의 이탈리아와 그 시대를,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닌 그 시대의 전체적인 모습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과 그 내면까지를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파악해내고 있다.

 

저자는 대담과 서문을 통해서 어떤 문제의식과 접근을 하려고 하는지를, 무엇을 알려고 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 알려고 하고 있는지를 자세하게 말해주며 지금까지의 역사를 다뤄내는 방식과 견해들과는 조금은 다른 생각을 말하려고 하고 있고,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게 되었는지를 메노키오의 사례를 통해서 자세하게 밝혀내려고 하고 있다.

 

전형적인 농부라고 말할 수 없는 메노키오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돌출된 모습을 통해서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더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판단한 저자는 그 시대의 풍경과 시대의 내면을 파악하려고 하고 있고, 신선하지만 무척 의미 있으며 그리고 무척 해내기 어려운 연구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한 개인을 역사적으로 결정된 환경과 사회에 연결시키는 다양한 통로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메노키오의 삶을 통해서 시대를 이해하고 파악하며 그 시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그리고 지배계급-집단의 삶만이 아닌 (종속된 존재-계급인) 민중들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내려고 하고 있으며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통해서 (그 실마리들을 통해서) 전체적인 윤곽을 알아내려고 하고 있다.

 

실마리

상상력

 

저자는 역사의 작은 실마리를 통해 그 관계의 망을 넓혀 보다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역사적 진실에 도달하려고 하고 있다.

 

한 개인을 통해서 이런 식으로 온갖 것들을 알아내고 검토하며 무언가를 결론짓는 것에 감탄하게 되기도 하고 신기함을 느끼게 되기도 했는데, 저자가 특별한 수준의 뛰어난 연구자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자신의 생각을 입증해낼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있는 이탈리아 역사가들의 많은 연구 성과들 또한 놀라게 되기도 했다.

 

벽화를 보게 되는 것 같은 거대한 이론이나 논의들과는 많이 다른 접근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이고 조각나진 실마리들로 추측해내고 유추해내는 저자의 빼어난 솜씨에 흥미롭게 읽혀지게 되고 독특한 성격이고 존재였던 메노키오라는 인물로 인해서 좀 더 매력과 관심을 갖게 되기도 했다.

 

역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치즈...’는 역사와 시대 그리고 문화, 집단과 개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가며 읽어낼 수 있으면서도 재미와 다양한 지식들을 접할 수 있기에 생각날 때마다 자주 뒤적거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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