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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과 망각
김용진.박중석.심인보 지음 / 다람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친일과 망각 : http://815.newstapa.org/#/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해진 것이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뉴스타파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활동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후원을 했었는데, 언론이 지금처럼 망가진 상황에서 대안적인 언론조차 없으면 정말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후원을 시작했었다.
절박함을 느낄 정도로 세상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진 않았지만 뭐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하게 되었는데,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행동도 아니었지만.
뉴스타파의 보도를 굳이 찾아보거나 건성으로 대강 제목만을 읽고 마는 한심한 후원자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큰 화제를 몰게 되는 보도를 접하거나 사람들이 뉴스타파를 언급하는 경우가 있을 때면 후원하는 보람을 느끼게 되어서 더 좋은 활동을 지켜볼 수 있길 기대하게 된다.
가끔씩 어쩌다 저런 어이없는 모습을 보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될 때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점점 그런 잘못들을 줄여가면서 더 좋은 독립언론이 되길 바라게 된다.
오랜 후원 때문인가?
뉴스타파의 이름을 내건 책을 발표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특별한 공지 없이 뉴스타파에서 책을 보내줘서 조금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오랜 후원자들에게 순차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 같은데, 제목부터 무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
무겁고 답답한 기분은 풀려지지 않았지만.
친일
친일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사회적으로는 명쾌한 부정적 입장과 잘못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라는 합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극우-수구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에 한해서 정당화하거나 합리화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등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해괴한) 입장이 있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친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명확하게 부정적이고 비난어린 시선이 대부분이고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온갖 방식으로 친일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고 다른 이유들을 들먹이며 어쩔 수 없음을 말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어왔다. 그보다 더 나쁜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아예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은폐하고 부정하려는 시도 또한 많이 있어왔다.
이승만 정권에서 있었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당했던 권력의 압력과 온갖 조직적인 방해와 폭력까지 동원한 철저한 은폐 시도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일 것 같고, 그때 제대로 과거에 대한 진실과 폭로 그리고 청산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친일에 대한 문제는 불거지게 되는 것 같고 그 관련자-부역자들이 지금 한국 사회의 중심에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있었던 시도들도 막으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는 제대로 된 청산과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해서 권력의 앞잡이가 되는 것에 주저하지 않게 되었으며, 자신의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다.
특정한 개개인을 거론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이 충분히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인 구조나 잘못된 인식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친일에 대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충성하고 부역했던, 개인의 이기심을 위해서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서 밝혀내고 폭로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어려움들로 가득했는지 해방 이후의 한국의 현대사는 너무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사례들이 있었던 것 같다.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확인할 수 있지만, 많이 알려졌고 알 수 있지만 우리들은 삶의 고달픔 때문에 그런 내용에 대해서 많이 모르고 있거나 알게 모르게 모르려고만 해왔던 것 같다.
진실은 이미 있어왔지만 그 진실을 피하고만 있어왔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지 못하고 밝혀내지 못하면서 한국 사회는 발전해 왔고 가끔씩 과거를 되돌아보며 왜곡되고 잘못된 역사의 흐름의 시작점을 찾는 과정에서 친일에 대한 문제는 항상 거론되었고 그 계속되는 지적과 인식 속에서 친일에 대한 문제는 덮어지려고 할 때마다 다시금 꺼내지게 되었고 그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기만 했다.
역사란 그런 것 같다. 정상적으로 완결되지 않는다면 결국 다시 다뤄지게 되는 것 같다.
친일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흑백논리의 입장에서 벗어나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쓰는 또한 좀 더 성숙한 입장과 시각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친일과 망각’은 그 시도부터 조사의 과정까지 분명 지금까지의 친일에 대한 접근과는 조금은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있고 밝음과 어둠 모두를 다뤄냄과 동시에 어떤 식으로 해야만 이 과거의 잘못을 지금의 시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용서할 사람들의 생각보다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들의 뻔뻔함에 답답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친일 청산이 어떻게 지금까지 엉망진창으로 진행되었는지에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진행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우선은 ‘친일...’은 알려주고 있으며, 친일에 대한 옹호와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어떤 허황된 궤변을 내놓고 있고 해괴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지를 다뤄낸 다음 그런 정당화를 내세우는 이들이 어떤 정신구조 속에서 그러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개개인들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생각을 단순하게 손가락질해야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사실과 잘못된 기억을 어떤 식으로 바로잡아야 하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려고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순순히 잘못된 점들을 인정하고 뉘우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모든 것들을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만 하고 있다. 그 부정하고 불인정하는 사람들이 아마도 이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에 대한 가장 큰 문제점 아닐까?
친일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제의식에 편승하려고(만0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그릇된 모습과 반대로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교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전후처리의 과정 속에서 어떤 방식을 보여주었는지를 비교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보여주었던 제대로 되지 않은 과거에 대한 정리가 어떤 식으로 문제를 계속해서 만들게 되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문제가 점점 더 부풀어지고 커져가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친일에 대한 후손들에 대한 제대로 되지 않은 청산 혹은 진실 파악 덕분에 어떤 식으로 유리함을 얻게 되었는지를,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유리함이 어떤 식으로 대물림될 수 있었는지를, 후손들이 어떻게 이후의 삶을 혹은 직업과 사회적인 선택을 여러 직업적, 경제적인 혜택을 누렸는지를, 반대로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들의 후손들이 어떤 식으로 핍박과 굶주림 그리고 빈곤에 허덕였는지를 악순환을 대물림 받게 되었는지를 비교하는 내용들을 읽을 때면 무거운 마음과 갑갑함 속에서 그들의 삶을 함께 추적하게 되고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라는 생각만 들게 된다.
그리고 친일에 대한 문제만이 아닌 친일에 대해서 점점 관대한 시선을 갖게 하려는 조작들과 그런 시도들이 성공하면서 아무런 문제점을 점점 말하지 않게 되면서 그 이후에도 개인의 이득만이 앞세우고 있고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는 인식이 점점 더 팽배해지게-강해지게 된 사회적인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은 반박할 수 없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점의 중심을 알려주는 것 같아 여러 생각들을 하도록 만든다.
‘친일...’은 지금까지의 친일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식 그리고 여러 문제점들을 검토하며 지금과는 다른 시도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만 할 것인지 좀 더 구체적이면서도 단순한 논리를 넘어선 세심한 논의를 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새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단순하게 처리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라는 새로운 물음과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지금 우리들의 삶과 사회에서 어떤 식의 고민이 필요할까?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고 누군가가 나서기를 바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된다면 결국 지금 이 사회도 친일로 가득했고 부역자로 가득했던 그 이후에는 독재에 순응했던 그때 그 시절과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이라도 더 자기 생각을 다듬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