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건축을 묻다 - 예술, 건축을 의심하고 건축, 예술을 의심하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9년 7월
평점 :
지어진 건물들은 모여 도시를 만든다. 공간에 시간이 더해지면 장소가 되고, 시간에 공간이 더해지면 사건이 된다. 장소가 모이면 도시가 되고, 사건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 도시는 시간이 결합한 공간의 집합인 것이다. 도시는 역사의 필연을 갖고 있다. 그 역사는 건물로 증언된 시대의 목격담이다. 역사를 다시 동질성이 있는 사건들로 묶으면 시대가 된다. 건축은 그 시대와 사회의 목격자며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건축가 서현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그가 만들어낸) 건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없지만 책을 통해서 글로써 그를 알게 되었고 그 글-생각들이 마음에 들어 꾸준하게 그의 이름을 내건 책들을 찾게 된다.
강연회를 통해서 알게 된 건축가 서현이 강연 도중 작심을 하고 썼다고 말했던 ‘건축을 묻다’는 직접 책-글-생각을 읽어보니 그런 표현이 그리 과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지한 자세로 건축을 묻고 대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 스스로 내린 결론과 입장에 대해서 이견이 있거나 반박하거나 덧붙여 말할 것들을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만하면 충분히 깊은 고민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아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것들을 따져 묻고 검토하면서 어렵사리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저자는 무척 단순한 물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건축은 무엇인가?
어떻게 본다면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무슨 식으로 대답을 해야 할지 무척 난감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물음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이어서 건축이 예술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 또한 내놓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곤혹스러움을 안고 하나씩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저자의 질문은 어떤 대답을 찾으면서 새로운 질문도 계속해서 더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대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지만 어떤 대답을 찾을 때는 그 대답에 대해서 많은 확신도 느껴진다.
예술이 어떤 식으로 체계를 하나의 세계-세계관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서 그 세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 어떤 식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었는지를 확인하면서 건축 또한 최초에는 얕잡아 보였지만 점점 체계-세계-세계관을 만들면서 하나의 학문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 과정을 신중하고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다.
건축가라는 직함에는 어울리지 않게 (혹은 무척이나 어울리게) 저자는 단순한 순수하게 건축에 대한 입장에서 검토하는 것이 아닌 철학적 사회적 역사적 검토를 시도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건축이라는 영역 속에서 건축을 파악하려는 것이 아닌 건축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를 시도한다고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보다 알맞은 책읽기가 될 것 같다.
칸트
쇼펜하우어
헤겔
니체
이런 이들의 생각을 차례대로 가져오고 있으니 쉽게 읽혀지진 않게 되지만 그래도 저자가 다루고 있는 물음과 답을 찾는 과정은 흥미롭고 충분히 인상적이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주목을 받는 건축들과 현대의 건축들을 통해서 건축이 무엇인지 그리고 건축에서 (다른 분야와는 다른) 어떤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며 가장 큰 특징으로써 용도와 기능을 주목하고 있고 (나중에는 공간을 추가한다) 그것에 대해서 좀 더 깊숙하게 의미를 파고들려고 한다.
기능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드디어) 저자는 (조금은 익숙한 이름의) 현대 건축가들을 거론하는데, 그동안 우리가 자주 접해왔던 건축가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이런 건축가들의 특징과 건축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건축이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고 있고, 기술과 직업, 재료의 변화 등등 시대적인 변화와 발전으로 인해서 건축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공간
저자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생겨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고 있고 여러 가지를 검토한 이후 조금씩 깨닫게 된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고 있는데, 건물과 건축에 대한 구분, 의미에 대한 고민, 사회적 존재 가치에 대한 이해로 생각을 확장시키면서 건축이 갖고 있는 의미와 중요성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하고 있고 대답을 내놓고 있다.
어렵게 읽게 만들고 조금은 서서히 고민에 대한 대답을 내놓고 있는 과정이지만 저자는 자신의 고민에 대한 대답을 찾을 때마다 단호하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놓고 있다.
앞서 말했듯 그 판단과 생각에 대해서 다른 입장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아주 흠을 잡을만한 잘못됨을 느끼진 않게 된다.
그 고민의 흐름에 충분한 설득을 느꼈기 때문일까?
건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고 고민어린 탐구를 하고 있는 ‘건축을...’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읽다보면-읽어보니 의미 있는 시도였고 흥미로운 과정이었으며 인상적인 대답이라고 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