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거룩함 - 에세이 고종석 선집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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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라는 작가(혹은 기자)에 대해서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트위터를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는 짐작만 할 뿐이다.


어쩌다가 알게 되었고 어떻게 하다가 그의 (트위터의 글들이 아닌)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트위터를 통해서 접하는 글들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의 글들이라 조금은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었다.


트위터를 통해서는 정돈되어 있지 않은 글들이었다면 책을 통해서는 무척 정돈되어 있고 간결하게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글을 썼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괜한 자책이 들었을 정도였다. 탁월한 문장가로 손꼽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그 평가에 당연히 공감했다.


트위터를 통해서는 여러 가지로 논란을 만들고 소란스러운 모습만을 봤다면 책을 통해서는 정갈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말끔함을 보게 된다.


뛰어난 글쟁이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그의 책들을 구할 기회가 생긴다면 곧장 구해서 읽게 되었는데, ‘사소한 것들의 거룩함’ 또한 우연하게 손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읽어보게 되었다.


최근에는 절필을 선언하고 지금까지 발표한 글들을 정리하거나 강연과 강의 내용을 책으로 묶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그리고 여전히 트위터를 통해서 시끄럽게 굴고 있다는 소식도 듣고 있다), 이 선집 또한 작가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발표한 글들 중 에세이라는 테두리 속에 들어갈 수 있을 글들 중에서 골라진 글들이다.


워낙 뛰어난 글쟁이라 뭐든 잘 써냈겠지만 그런 글들 중에서도 따로 모아둔 글들이기 때문에 좀 더 잘 읽혀지고 그 빼어난 솜씨에 감탄하며 읽게 된다.


그의 글을 읽을 때면 항상 그 글을 닮고 싶고 내 글에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그런 기웃거림은 기껏해야 얄팍한 흉내 이상을 보여주진 못하기 때문에 그저 글을 읽으며 참 잘 쓴다는 생각을 그리고 조금이라도 본받기를 바랄 뿐이다.


시기적으로 이미 많은 세월이 흐른 글들이 대부분이고 여러 방식으로 발표된 글들이라 조금은 산만하게 읽혀질 수 있지만 어차피 3권의 책으로 나눠져서 발표된 글들이 모여진 것이기 때문에(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도시의 기억, 고종석의 여자들 그리고 우수리라는 이름을 붙인 여러 방식으로 발표된 글들까지) 그 어수선함에 눈살이 찌푸려지진 않는다.


때때로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하거나 속마음을 꺼내고 있고 어떤 생각에 대해서는 그와는 조금은 달리 생각하게 될 때도 있다. 간간히 어느 정도 이상으로 생각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동의는 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이해나 납득은 가능한 생각을 말해준다.


스스로에 대해서 조금은 야박하게 말하고 있는 버릇이 있는데, 약간의 웃음거리로 혹은 때묻고 지저분해져버린 중년의 모습을 냉소와 허탈의 기분으로 말하면서 여러 주제들을, 전혀 모르거나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내용을 다루기도 하는 등 에세이 형식으로 발표된 글들 중 도드라진 글들이 모아져서인지 글 하나 하나가 좀 더 흥미롭게 읽혀진다.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들을 혹은 감정을 겹쳐놓은 글들이 많아 작가 개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고, 주제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조금은 거리를 갖으려고 하면서도 가끔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는 등 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 책도 작가의 다른 책들처럼 때때로 다시 펼쳐보게 될 것 같다.


좋은 글들을 읽을 때면 그 뛰어남에 감탄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부족한 능력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하다. 질투 아닌 질투도 느끼지만 그 질투를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더욱 한심스럽게 보일 것이다. 수준이 너무 다르니 그런 감정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느끼게 된다.


특히 이렇게 좋은 글들을 읽을 때면 아무리 노력해도, 열심히 읽고 써도 압도적인 재능을 쫓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그게 진실인 것 같다.


그래도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싶고 조금은 나아지고 싶은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이 갖게 된다.


그러니... 계속해서 무언가를 읽어보고 써보게 된다.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좋겠다.


좋은 글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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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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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자는 이런 유형의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 피로에 지친 간부였다

 

 

 

 

그동안 존 르 카레의 작품들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고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생각으로만 머물고 있을 뿐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어쩐지 다가가기가 어렵게 느껴지고 뭔가 피하고 싶은 기분이 컸다. 긴장감 보다는 느슨하고 지루할 수 있다는 평을 많이 접해서 읽기가 머뭇거려졌다.

 

그나마 존 르 카레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경우는 (영화라는 이점 때문에) 부담 없이 찾아볼 수 있었지만 어쩐지 책을 통해서 접하려고 하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짓눌린 피곤과 지쳐 있는 모습들을 읽어내기가 싫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모스트 원티드 맨을 읽어봤고 영화와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였고 이야기도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되진 않았지만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존 르 카레를 추켜세우는지를 잘 알 수 있었고 읽어볼만한 작가라는 것에 동의하게 됐다. 그리고 다른 대표작들도 읽고 싶어졌다.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존 르 카레가 작가로서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후의 대표작들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소박하고 허전하게 느껴지는 완성이지만 존 르 카레 특유의 글쓰기 특징들과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많은 점에서 그만의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고 음미할만한 되새겨볼만한 감수성으로 가득했다.

 

존 르 카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비관적이면서 피곤함과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런 점에 매력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꾸준하게 존 르 카레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점점 더 늘기만 하진 않을까?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 또한 많을 것 같다.

 

존 르 카레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 중 그의 첫 소설인 죽은...’에서부터 등장하고 있고 그의 여러 소설들에서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 (작가가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애착을 느낄만한) 조지 스마일리가 등장하는 죽은...’은 전체적으로는 스파이 소설이라는 모양새를 보여주지만 이야기 구성이나 진행에 있어서는 스파이 소설의 특징보다는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의 분위기가 더 많이 묻어나고 있다.

 

스파이 혐의가 있는 외무부 직원과의 면담 이후 외무부 직원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그 이후 전체적인 상황을 적당하게 정리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자살의 동기와 이유에 대한 의심이 커져가고 그런 의심 때문에 진실을 뒤쫓던 중 연이어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찾아지면서 사건의 배후를 파헤쳐 간다는 줄거리의 죽은...’은 마치 추리소설과 범죄소설처럼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조금씩 파고들면서 점점 더 거대한 음모와 숨겨졌던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특징과 개성을 잘 만들어내고 있고 느슨한 진행이기는 하지만 여러 반전들을 배치하는 등 대중소설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표현과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의 내면적 갈등과 독백을 통해서 냉전시대의 사람들의 일그러지고 불안감으로 가득한 정신 상태와 너무 예민하고 민감해서 정신적인 피로로 가득한 황량한 내면의 풍경을 잘 이해시켜주고 있다.

 

이야기가 갖고 있는 재미와 매력도 부족함 없지만 역시나 존 르 카레의 글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다림에 지쳐버린 것 같은, 잔뜩 피곤해서 뭐든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지기만 하는 정서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고 있는데, ‘죽은...’에서도 영국 정보부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의 무덤덤하면서도 무표정한 겉모습과는 다른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정신적 피곤함과 불안감을 흥미롭게 다뤄내고 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는 항상 느슨하게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갑작스럽게 속도를 내도록 만들어 집중하지 않고 읽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죽은...’도 마찬가지로 지루한 진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대충 읽다보면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빠른 진행을 보여서 조금은 어리둥절해지게 될 수 있으니 등장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사건을 접근하게 되는지 잘 확인하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렇게 느껴지게 되는 이유는 사건의 진행과정 속에서 등장인물들(‘죽은...’에서는 조지 스마일리)을 통해서 여러 감정적 복잡함과 정신적이고 정서적은 혼란들, 사건 외에도 자신에게 놓은 여러 개인적 복잡한 사정들을 사건과 함께 다뤄내고 있기 때문에 사건 자체에 대해서 집중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촘촘한 진행과 긴장감 가득하고 속도감 있는 진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존 르 카레의 글에서는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많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중심 줄거리가 갖고 있는 재미들도 충분하지만 보다 복잡하고 잔뜩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등장인물들이 전달하는 짙은 피곤과 패배감으로 가득한 모습들에 더 관심을 가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구성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죽은...’에서는 영국 정보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보원들이지만 우리들의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들을 알려주기 보다는 관료사회에서 서류더미와 온갖 절차적인 문제들에 피곤해 하는 모습들을, 진실을 밝혀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게 적당하게 처리하려는 모습과 내부적으로는 주어진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골몰하는 모습들 등 어떤 화려함을 확인하기 보다는 회색빛으로 채워진 지루함이 스며들어 있는 모습들로 읽혀지게 만든다.

 

아마도 그게 더 현실적인 모습일 것이고 그 당시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지만 스파이 소설이라는 장르로서 생각한다면 조금은 엉뚱하고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라 환상을 (철저하게) 깨트려놓기도 한다.

 

끈질긴 기다림과 조그만 빈틈을 통해서 파고들어가는 모습들이 진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겠지만 좀 더 자극적이고 박진감 있는 상황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 밋밋해서 읽기 싫어진다는 말도 할 것 같다.

 

스파이 소설이기 보다는 다니기 싫어도 월급 때문에 다니고 있는 피곤 가득하게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될 정도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팍팍하고 지루한 일상을 담고 있다지만 그들이 정보부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관여하는 사건이 조금은 특별해지고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긴장과 불안함을 더욱 강조되는데,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은 더욱 황폐하고 황량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계속되는 기다림과 틈새라도 찾아내려는 집요함 그리고 계속되는 긴장과 불안은 멀쩡한 사람도 강박과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냉전이라는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시대였음을 독특한 방식으로 존 르 카레는 폭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존 르 카레의 글을 얼마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읽어봐야만 명확한 특징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육체적인 피곤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있고 뭔가 수줍고 어색해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기괴함도 느껴지게 된다.

 

존 르 카레의 다른 대표작들을 통해서 그가 만들어내고 그가 생각하는 세상이 무척 궁금해지게 된다.

 

그의 소설들은 회색빛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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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시대 한길그레이트북스 14
에릭 홉스봄 지음, 김동택 옮김 / 한길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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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대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965807934

자본의 시대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979712261

 

 

 

 

혁명 100주년

경제가 속도를 바꾸다

제국의 시대

민주주의의 정치

세계의 노동자들

휘날리는 깃발 - 민족들과 민족주의

누가 누구인가? 부르주아의 불확실성

신여성

변화된 예술

손상된 확실성 - 과학

이성과 사회

혁명을 향하여

평화에서 전쟁으로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에 이어 장기 19세기의 끝자락을 다루고 있는 에릭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는 이중혁명으로 이름 붙여진 산업혁명-자본주의 혁명과 정치혁명-민주주의 혁명의 확산과 확대가 유럽 일부 지역과 국가들만이 아닌 세계적인 파급력-흐름을 보여주는 과정을 다뤘던 혁명의 시대이후 어떤 식으로 계속적인 발전과 변형 그리고 문제점들이 생겨났으며 그 확산과 확대의 끝이 어떤 식으로 1차 세계대전이라는 파국과 파멸로 향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1875년부터 1914년이라는 시기 속에서 어떤 변화와 갈등 그리고 다양한 사건들이 일어났으며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되돌아 봤을 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있어서 어떤 중요한 순간-지점들이 있었는지를 포괄적-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혀졌지만 어쩐지 집중하지 못하고 읽어서 여러 부분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분도 든다.

 

인류 역사상 천재지변이 아닌 짧은 기간 동안 인간이 인간에게 엄청난 죽음들을 만들어냈던 첫 번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며 지금 현재에도 우리 삶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하나씩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무척이나 많은 얘기들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에릭 홉스봄은 자신이 살펴보고자 하는 방향과 틀 안에서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논의들을 가려내는 것에 꽤 애를 먹었을 것 같다.

 

그동안의 발전과정에서 새로운 도약이 일어나던 시기였고 그 도약 이후 급작스러운 갈등과 분열 그리고 파국과 파멸로 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에릭 홉스봄의 논의도 어떻게 파국과 파멸로 향했는지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으며 그 이후로도 이어지는 비극들(2차 세계대전 및 냉전 등등)을 말하며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비관적인 입장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희망과 긍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며 자신의 장기 19세기에 대한 논의를 부족함 없이 마무리하고 있다.

 

에릭 홉스봄의 말대로 과거의 토양으로 돌아가 우리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뿌리를 추적하고 있으며 역사의 나열이 아니라, 응집된 전체로서의 과거를보여주려고 했고 충분히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말은 지금 현재와 비슷하게 과거와 같은 국가들과 지역들이 그리고 세계가 단절되어 있고 나눠져서 있는 것이 아닌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기였으며 그런 의미에서 세계시장과 국제사회를 말할 수 있는 최초의 시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유럽 강대국들이 무차별적인 점령이 이뤄지기도 했기 때문에)은 큰 틀에서는 틀리지 않다는 생각이고, 미국혁명 100주년과 프랑스혁명 100주년이라는 기념의 의미를 통해서도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여러 방식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에릭 홉스봄은 이런 계속되는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는 시대의 세계는 한편으로는 인구적으로는 더 커지고 지리적으로는 더 작아지고 더 지구화된 모습을 다양하게 살펴보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가 가능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으로 기술 혁신을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으며, 도시화와 농업 생산력의 발전, 노동자의 급격한 증가와 조직화, 중간관리자의 등장,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 민주주의의 증대 등 수많은 변화들 중에서 특히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알려주며 그 시대에 어떤 변화들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런 급격한 변화들 때문에 기존과는 다른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런 변화들 속에서 그 시대가 견뎌낼 수 있는 변화의 흐름이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폭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도 설명해주고 있다.

 

더디기만 했던 경제의 속도가 지금과 같은 수준은 아니지만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빠른 속도를 보여주게 되었고 국민경제라는 틀을 넘어서는 경제적 규모가 조금씩 눈여겨 볼 수 있게 되는 시기였으며, 그런 변화 속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좀 더 조직적으로 불만을 말하고 직접적으로 행동을 보여주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좀 더 강하게 목소리를 내게 되었으며 러시아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로 인해서 그 가능성을 직접 확인하게 되는 사건들도 일어나게 되는 시기였다.

 

노동운동, 사회주의 운동, 여성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여러 움직임, 사회개혁과 사회정의에 대한 요구 등등 각각의 국가들 내적으로는 무척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운 상황이 있었으며 그 혼란을 어떤 식으로 수습하고 타협하는 방식에 따라서 선거제도가 어떤 식으로 변화되었는지를 확인하면서 무척 심상치 않은 시대라는 것을 더욱 잘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어쩌면 파국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급격한 발전은 거대한 혼란을 만들어냈고 그 혼란의 끝은 1차 세계대전과 혁명이라는 2가지의 폭발을 만들어내게 된다.

 

거기에다가 민족주의가 서서히 등장하면서 불만과 분노를 좀 더 직접적이면서 무차별적으로 왜곡해서 폭발할 수 있게 만드는 가능성이 높아졌고, 계급적 구분이 기존의 구분과는 분명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된 상황 또한 그동안의 방식과 이해로는 제대로 된 이해와 설명이 어려워졌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만들었을 시대였다.

 

무척이나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시기였을 것이다.

 

여성들의 중요성과 사회진출은 높아졌지만 그들에 대한 대우나 사회적인 인식은 여전히 변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갈등과 부조리와 불합리가 있었는지를, 여성들은 또한 어떤 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예술의 변화에 대해서 과학이 어떤 식으로 흔들려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며 사회적인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동요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준 다음 에릭 홉스봄은 최종적으로 혁명과 전쟁에 어떤 식으로 가까워지게 되는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간다.

 

하지만 혁명과 1차 세계대전에 관한 논의는 되도록 짧게 다뤄내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한 이해를 위해서는 제국의 시대보다는 다른 책을 알아봐야만 할 것 같고, 에릭 홉스봄은 점점 균열이 일어나고 폭발과 파국이 어떤 식이었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만 살펴보고 있다.

 

에릭 홉스봄은 장기 19세기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게 되는지를 살펴보면서 그 끝에 있었던 혁명과 1차 세계대전이라는 극단적인 2가지 결말을 통해서 그 이후에 20세기는 어떤 식으로 19세기를 물려받았으며 21세기는 또한 어떤 식으로 넘겨받게 되는지를, 앞으로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좀 더 사회가 발전하고 좋은 세상을 위해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희망이 있는 미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결국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절망과 좌절이 아닌 낙관과 희망 그리고 긍정을 말하려고 하고 있다.

 

어떤 목적 속에서 역사가 흘러온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들은 과거의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이어져 온 이 역사의 흐름에 함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과거를 살펴보고 알아가며 보다 나아진 미래를 위해서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에릭 홉스봄은 그것을 절실히 느끼도록 장기 19세기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던 것 같고 그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감탄하고 감동하며 지금 현재와 과거를 계속해서 생각해보고 고민하게 만든다.

 

이제 시대는 극단의 시대로 향하게 된다.

 

 

 

참고 : ‘제국의 시대에서 니체는 무척 야박한 평가를 받고 있고, 케인스는 여러 가지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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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구마 겐고 - 나의 매일은 숨 가쁜 세계일주
구마 겐고 지음, 민경욱 옮김, 임태희 감수 / 안그라픽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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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구마 겐고의 원래 제목은 건축가, 달리다라고 한다. 책을 읽기 전에는 무슨 제목이 저래? 라는 생각이 당장 들었는데, 책을 읽은 다음에는 그 제목이 썩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원래 제목보다 ...’가 오히려 더 즉각적으로 읽어보고 싶도록 만들 것 같은데, 그건 구마 겐고가 스스로 책에서 언급했듯이 이제 구마 겐고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건축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쉽게 눈에 들어오는 한국식 제목 또한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다만, 그런 것 보다는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된 ,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한 쌍으로 묶어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크다.

 

제목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읽는 사람들이라면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에서의 구마 겐고의 의견들을 생각한다면) 구마 겐고 본인은 바뀐 제목에 대해서 그다지 흡족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지는 않다.

 

안도 다다오의 글도 그렇지만 구마 겐고의 글 또한 쉽게 읽히면서도 글쓴이의 생각에 깊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건축적 재능도 대단하지만 글쓰기 재능 또한 남다르다는 점에서 세상에는 여러 가지에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한편으로는 내 부족함을 다시금 확인하고 좀 더 노력하고 싶은 기분도 들지만 그러다가도 재능이 넘치고 타고난 사람들은 다르긴 다르다는 어떤 한계를 절감하게 되기도 한다.

 

쓸데없는 열등감이고 좌절감이겠지만.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구마 겐고의 ...’는 어떤 종지부를 찍고 마무리를 하는, 과거를 되짚으며 이런 저런 기억들과 추억들을 늘어놓는 자서전의 성격보다는 현재진행형 속에서 어떤 과정 속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는 느낌이 더 들게 된다. 지금까지 건축가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떤 다짐과 신념과 태도 그리고 자신만의 입장을 잘 정리해서 설명해준 다음 앞으로의 각오를 말해주는 내용이라고 (자서전에 비해서는 좀 더 약하다고) 말해보고 싶다.

 

이미 구마 겐고는 약한 건축을 통해서 알게 되기는 했지만 제목이 갖고 있는 색다름이 좀 더 기억나고 책을 읽었을 때에는 아주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를 통해서 좀 더 가깝게 알게 되는 기분이 들었고 깊고 치열한 고민과 여러 시행착오들 속에서 어떤 식으로 지금까지의 건축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마 겐고의 건축을 완성시키려고 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구마 겐고의 건축이 모든 건축의 답은 아닐지라도 그 고민과 고민에 대한 대답과도 같은 그의 건축은 구마 겐고의 생각들을 알아가며 확인하기 때문인지 생각 이상으로 감탄하게 되어버린다.

 

되도록 간략하고 알기 쉽도록 설명해주고는 있지만 그 대답을 내놓기까지의 과정과 고민은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는 구마 겐고 본인이 시차적응도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얼마나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거장의 여유 있고 느긋한 삶을 생각하던 사람들로서는 저렇게 무슨 수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될 정도로 쉴 틈 없는 삶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제대로 쉴 수 없고 앞만 보고 살 수밖에 없는 건축가의 삶이라는 것이 어쩌다가 그처럼 되었는지를 궁금증을 갖도록 하고 그 궁금함에 대해서 쉽게 대답을 해주고 있다.

 

무슨 과정 속에서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게 허겁지겁 바쁘기만 한 일상이 되어버렸으며 지금의 방식이 이전과는 어떤 점이 달라진 것이고 과거의 방식과 지금의 방식 그리고 앞으로의 방식이 갖고 있는 변화 그리고 문제점과 그럼에도 그 문제점 속에서 어떤 식으로 적응하고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건축을 이어나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설명해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건축이 있다.

 

책속에서는 클라이언트라고 적혀진 발주자들 중에서 최근 들어 가장 돈주머니를 쉽게 풀고 있는 중국 쪽의 경향-성향(혹은 특징)과 그들과의 작업이 갖고 있는 특이점과 어려우면서도 뿌듯하기도 했던 작업과정을 재미나게 들려주며 건축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온갖 복잡함을 간단하게 (그리고 간접적으로) 경험시켜주면서 구마 겐고는 자신의 건축에 대한 생각을 서서히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구마 겐고는 발주자들의 (국가별) 여러 특징들과 그들과 작업하는 과정이 갖고 있는 곤혹스러운 부분들, 그리고 문화적 인식적 실천적 차이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며 일본인이면서도 일본에 대한 일정한 비판적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고, 일본이 갖고 있는 어떤 한계()에 대해서 그리고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본과는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구마 겐고의 의견이 전부 다 옳지는 않을지라도) 직접 경험했던 내용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일본의 건축계에 대한 일종의 위기의식이고 경고이기도 한 설명과 꾸짖음 이후 과거의 영광을 이어받으며 진행했고 그 영광을 이어받으면서도 자신만의 생각 또한 덧붙여야만 했던 어려움으로 가득했던 2013년에 완공한 제5대 가부키극장 재건축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건축이 갖고 있는 곤란함과 이전의 가부키극장에 관여했던 역대 건축가(선배)들은 어떤 방식으로 완성시켰었으며 그 완성 속에 역사적인 중요성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를, 구마 겐고 본인 또한 역사적 흐름과 시대에 대한 인식 속에서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이어지도록 하려고 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건축의 과정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지만 구마 겐고는 그것만이 아닌 무언가를 알아가는 과정으로도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하고 깨닫고 그리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으로서 이해시켜주며 구마 겐고의 건축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그 깊이를 느끼게 된다.

 

구마 겐고는 근대 건축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내놓고 그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 또한 내놓고 있는데, 장소의 필요성을 무시한 (혹은 제거하려고 했던) 방식이 어떤 식으로 근대 시대를 그리고 근대 건축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미국식 방식으로 설명되는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 산업, 석유 중심의 사회 등 지금과 같은 근대 건축 방식이 가능하게 된 대표적인 계기-이유들을 지적하며 역사적 흐름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압력과 인식의 틀이 다른 방식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들게 했던 (혹은 그런 다른 생각들이 주변으로 밀려나도록 만든) 상황을 그리고 그런 식의 이해가 시대적 흐름에 따라 서서히 무너지면서 어떤 식으로 새로운 접근을 생각해보고 가능하도록 노력해보게 되었는지를 구마 겐고 본인의 건축가로서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해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좀 더 구마 겐고의 건축이 갖고 있는 특징을 그리고 구마 겐고가 어떤 식으로 기존의 건축과 거리를 갖으려고 했고 대안을 찾으려고 했는지를 더 상세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안도 다다오 이후의 세대라고 본인 스스로를 말하고 있는 구마 겐고이기 때문인지 안도 다다오를 자주 떠올려보게 되고, 안도 다다오가 바라보았던 세상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 이후 세대인 구마 겐고는 그 세상과 달리 보고 있는 것은 어떤 것들인지를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변화된 시대에 걸맞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보려고 애썼던 구마 겐고의 고민과 노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 장소가 갖고 있는 특징과 개성에서 벗어나 콘크리트와 철 그리고 유리로 대표되는 근대 건축과 분명하게 거리를 갖으려고 한 구마 겐고가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고 여러 건축적 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들을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건축을 어떻게 쌓아올렸는지를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여러 거장들의 건축을 받아들이고 한계들을 생각해내며 자신의 건축을 통해서 그 한계를 어떻게 뛰어넘으려고 했는지를 그들과는 다른 접근을 해보려고 했던 이유를 자신의 건축을 통해서 더 잘 이해시키고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사람이라는 중심을 어떻게 찾게 되었는지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설명해주고 있다.

 

근대 건축의 한계와 함께 그 한계가 더욱 절망적인 흐름을 향하게 만들고 있는 관리사회화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통해서 근대 건축 그리고 구마 겐고의 말을 그대로 활용하면 20세기 건축을 넘어서고 다른 접근을 해보자는 제안은 한편으로는 그리 특별하지 않게 들리기도 하지만 스스로 겪었던 어려움들과 여러 시행착오들 끝에 완성된 건축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들리지 않고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건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면서 그 고민과 생각 속에서 완성한 건축들이 어떤 이유와 입장 속에서 완성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고 비관과 절망 그리고 수많은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낙관과 긍정을 찾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2011311일에 일어났던, 우리들에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더욱 깊이 기억되는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한 이후 건축에 대한 더 깊은 물음과 고민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자신만의 나름대로의 대답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려고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내용에서 기존의 건축이 영원불멸을 말했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의 건축은 불멸이 아닌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말해줘야만 한다는 결론은 건축이 아닌 철학에 대해서 글을 읽는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가 느끼지 못했고 알아채지 못했던 건축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결론에 대한 간결한 설명과 같은 약한 건축이라는 구마 겐고만의 건축에 대한 입장과 그 생각을 건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고 자신의 약한 건축에 대한 입장을 꾸준히 수정하고 보완하고 있어 보인다.

 

건축의 주류에 있으면서도 항상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빠져나가 반주류에서 머물려고 하는 나는...’의 저자 구마 겐고의 반골기질은 특별히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런 성격과 기질 속에서 자신의 건축을 어떻게 만들었고 완성시켰는지를 흥미롭게 말해준 ...’는 단순히 건축을 좀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넘어서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을 더 생각해보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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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x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경제학
마크 레빈슨 지음, 김동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꽤 오래 전 헌책방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뒤적거리던 중에 박스라는 책이 우연하게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어쩐지 제목도 내용도 흥미가 있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구입은 다음으로 미뤘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보니 결국 누군가가 이미 가져간 다음이었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책이 사라져 아쉬움은 느꼈지만 어차피 읽을 것들은 천지이니 크게 신경 쓰진 않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읽고 내놓은 책들을 고르다가 누군가가 내버린 책들 중 박스가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번에는 놓치기 싫어 다른 책들에 앞서 손에 쥐게 되었는데, 읽혀지기는 쉽게 읽혀지면서도 이런 저런 바쁜 일정 때문인지 혹은 바쁘다는 핑계 때문인지 생각보다는 긴 기간 동안 읽게 되어버렸다.

 

저자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고 있는 바도 없고 어쩌다가 컨테이너가 눈에 들어와 그것을 통해서 무역과 경제적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살펴보게 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해지기도 했는데, 언론 쪽에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인지 불필요하거나 장황한 설명 없이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컨테이너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고 컨테이너가 어떤 식으로 무역과 경제에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를 미쳤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단순하고 너무 단순해서 어떤 흥미도 느껴지지 않는 직육면체의 네모난 쇳덩어리인 컨테이너가 등장하기 전과 그 이후가 어떤 식으로 (처음에는 그리고 점점 더 활용도가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어떤 사건과 이야기들이 있었으며 별의별 갈등과 좌절 그리고 뜻밖의 상황으로 변화가 더뎌지기도 하고 급격하게 속도를 내기도 하는 등 순식간에 일어난 획기적인 변화가 아닌 길고 긴 과정 속에서 여러 소란스러움 끝에 어떤 식으로 컨테이너가 비주류에서 주류로 자리를 잡게 되고 새로운 방식에서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고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컨테이너가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삶에 그리고 무역과 경제에 엄청난 영향과 변화들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이야기가 방대해지고 산만해질 수도 있었지만 저자는 컨테이너 그 자체를 중심에 놓으면서 여러 변화들과 중요한 순간들을 살펴봄으로써 자칫 어수선할 수 있는 내용을 집중력 있고 흐트러짐 없이 묶어내고 있다.

 

쉽게 생각한다면 이전의 물건을 옮기던 방식에 큰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는 컨테이너의 등장은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고 여러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물건의 이동이 있었던 것을 기계를 통해서 자동화를 통해서 합리화와 효율화를 통해서 단계별로 진행되던 방식을 단번에 진행하고 불필요한 과정을 제거할 수 있게 만드는 효과를 만들어냈으며 좀 더 거대해지고 그 이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규모가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게 되었다.

 

어쩌면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컨테이너의 등장은 필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본주의라는 것이 끊임없이 규모를 키우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고 나눠져 있고 드넓기만 한 세계를 규격화시키고 동일하게 하나로 합쳐지도록 만들고 더욱 가깝도록 압축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을 때 컨테이너는 어떤 식으로든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다만 박스는 그런 필연성 속에서 살펴보는 것이 아닌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그것이 어떤 문제의식과 관심 속에서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운송비와 운송시간을 얼마만큼 줄여주게 되었는지를, 고용의 변화와 운송방식(, 자동차, 비행기, 기차 등등)에는 어떤 변화들을 만들었는지, 세계경제에는 지역경제에는 무슨 식으로 개입되었는지 등등 밋밋하고 심심하게 생긴 네모난 직육면체 쇳덩어리가 세상을 어떻게 크게 변하도록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분야의 변화를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재미나고 술술 읽혀지게 된다.

 

기존의 화물운송 방식과 그 방식에서의 여러 문제점들 때문에 말콤 맥린은 어떤 식으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방식을 고안하게 되었는지, 그 해결책으로 등장한 컨테이너가 만들어낸 새로운 어려움들은 어떤 것들이며 수많은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과정 끝에 간신히 컨테이너에 대한 대략적인 모양새가 잡혀지게 되는 앞얘기 뒷얘기를 알아본 다음 항만 노동자들의 격렬한 반대가 컨테이너로의 전환에 어떤 식으로 걸림돌이 되었고 기존의 운송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업계의 느슨함이 어떻게 지지부진한 변화를 만들었는지를 살펴보면서 단순한 쇳덩어리의 등장이 아닌 거대한 변화와 다시는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획기적 전환이라는 것을 좀 더 실감나도록 이해시켜주고 있다.

 

이후 표준화의 과정에서 어떤 마찰과 잡음이 있었고 교묘한 알력다툼과 권력다툼이 일어났는지를, 온갖 문제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을 하나씩 해결해내는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걸림돌들은 또 어떤 것이었는지를 소상히 알려주고 있다.

 

표준화 이후 컨테이너가 드디어 제대로 된 등장을 하게 되었지만 아직 시대적 인식의 한계로 여러 조건의 한계로 인해서 부분적으로만 사용되는 상황 속에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내다가 베트남 전쟁이라는 예상하지 않던 사건이 어떤 식으로 컨테이너가 본격적으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돌파구가 되었는지를, 거대해져만 가는 세계경제가 더욱 거대한 규모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 넓기만 국가들 세계들 그리고 동떨어지고 거리감을 느꼈던 세상이 컨테이너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급작스럽게 밀접해지며 가까워질 수 있게 되었는지를, 컨테이너가 각각의 지역들을 어떤 식으로 하나로 통합시켰고 그 과정에서 컨테이너가 차지한 역할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본 다음 컨테이너의 등장으로 인해서 기존의 항구들이 어떤 식으로 재편성되고 재구성되는지를 다루는 내용까지 알아가면서 세계경제가 지금처럼 되었던 것이 컨테이너의 등장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지금과 같은 세계경제의 재편성을 위해서 컨테이너가 중요한 실마리로 등장한 것인지 어떤 전후관계 속에서 일어난 것인지를 다시금 되짚어보게 되기도 한다.

 

한 개인의 혹은 몇몇 영웅들의 의지가 큰 변화의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소수의 노력과 능력으로 인한 혁신 이후 오르락내리락 하는 과정 속에서 과연 어떤 이들이 이득을 얻었고 손실을 얻었는지, 누군가가 올라섰으며 어떤 이들이 몰락하고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면서 인간에 의해서 컨테이너는 등장했지만 결국 컨테이너에 우리 모두가 지배당하게 되기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세계의 경제 질서를 새롭게 바로잡은 컨테이너의 등장은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흐름이 보다 거대해지고 더욱 급격해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세계화가 비로소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게 되었다.

 

과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래에도 컨테이너가 지배하게 될 것인가?

 

궁금증은 커지지만 아직 뾰족한 대답이 떠올려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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