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남자는 이런 유형의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사람은 ... 피로에 지친 간부였다

 

 

 

 

그동안 존 르 카레의 작품들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고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생각으로만 머물고 있을 뿐 계속해서 미루고 있었다.

 

어쩐지 다가가기가 어렵게 느껴지고 뭔가 피하고 싶은 기분이 컸다. 긴장감 보다는 느슨하고 지루할 수 있다는 평을 많이 접해서 읽기가 머뭇거려졌다.

 

그나마 존 르 카레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경우는 (영화라는 이점 때문에) 부담 없이 찾아볼 수 있었지만 어쩐지 책을 통해서 접하려고 하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어쩌면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짓눌린 피곤과 지쳐 있는 모습들을 읽어내기가 싫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모스트 원티드 맨을 읽어봤고 영화와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였고 이야기도 영화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되진 않았지만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존 르 카레를 추켜세우는지를 잘 알 수 있었고 읽어볼만한 작가라는 것에 동의하게 됐다. 그리고 다른 대표작들도 읽고 싶어졌다.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는 존 르 카레가 작가로서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후의 대표작들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소박하고 허전하게 느껴지는 완성이지만 존 르 카레 특유의 글쓰기 특징들과 (전체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많은 점에서 그만의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것을 잘 느낄 수 있었고 음미할만한 되새겨볼만한 감수성으로 가득했다.

 

존 르 카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비관적이면서 피곤함과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런 점에 매력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꾸준하게 존 르 카레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점점 더 늘기만 하진 않을까?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 또한 많을 것 같다.

 

존 르 카레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 중 그의 첫 소설인 죽은...’에서부터 등장하고 있고 그의 여러 소설들에서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 (작가가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애착을 느낄만한) 조지 스마일리가 등장하는 죽은...’은 전체적으로는 스파이 소설이라는 모양새를 보여주지만 이야기 구성이나 진행에 있어서는 스파이 소설의 특징보다는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의 분위기가 더 많이 묻어나고 있다.

 

스파이 혐의가 있는 외무부 직원과의 면담 이후 외무부 직원의 갑작스러운 자살과 그 이후 전체적인 상황을 적당하게 정리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자살의 동기와 이유에 대한 의심이 커져가고 그런 의심 때문에 진실을 뒤쫓던 중 연이어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찾아지면서 사건의 배후를 파헤쳐 간다는 줄거리의 죽은...’은 마치 추리소설과 범죄소설처럼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조금씩 파고들면서 점점 더 거대한 음모와 숨겨졌던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특징과 개성을 잘 만들어내고 있고 느슨한 진행이기는 하지만 여러 반전들을 배치하는 등 대중소설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표현과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의 내면적 갈등과 독백을 통해서 냉전시대의 사람들의 일그러지고 불안감으로 가득한 정신 상태와 너무 예민하고 민감해서 정신적인 피로로 가득한 황량한 내면의 풍경을 잘 이해시켜주고 있다.

 

이야기가 갖고 있는 재미와 매력도 부족함 없지만 역시나 존 르 카레의 글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다림에 지쳐버린 것 같은, 잔뜩 피곤해서 뭐든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어지기만 하는 정서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고 있는데, ‘죽은...’에서도 영국 정보부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의 무덤덤하면서도 무표정한 겉모습과는 다른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있는 정신적 피곤함과 불안감을 흥미롭게 다뤄내고 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는 항상 느슨하게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갑작스럽게 속도를 내도록 만들어 집중하지 않고 읽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죽은...’도 마찬가지로 지루한 진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대충 읽다보면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빠른 진행을 보여서 조금은 어리둥절해지게 될 수 있으니 등장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사건을 접근하게 되는지 잘 확인하면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렇게 느껴지게 되는 이유는 사건의 진행과정 속에서 등장인물들(‘죽은...’에서는 조지 스마일리)을 통해서 여러 감정적 복잡함과 정신적이고 정서적은 혼란들, 사건 외에도 자신에게 놓은 여러 개인적 복잡한 사정들을 사건과 함께 다뤄내고 있기 때문에 사건 자체에 대해서 집중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촘촘한 진행과 긴장감 가득하고 속도감 있는 진행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라면 존 르 카레의 글에서는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많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중심 줄거리가 갖고 있는 재미들도 충분하지만 보다 복잡하고 잔뜩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등장인물들이 전달하는 짙은 피곤과 패배감으로 가득한 모습들에 더 관심을 가게 되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구성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죽은...’에서는 영국 정보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보원들이지만 우리들의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들을 알려주기 보다는 관료사회에서 서류더미와 온갖 절차적인 문제들에 피곤해 하는 모습들을, 진실을 밝혀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게 적당하게 처리하려는 모습과 내부적으로는 주어진 권력을 잃지 않으려고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골몰하는 모습들 등 어떤 화려함을 확인하기 보다는 회색빛으로 채워진 지루함이 스며들어 있는 모습들로 읽혀지게 만든다.

 

아마도 그게 더 현실적인 모습일 것이고 그 당시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지만 스파이 소설이라는 장르로서 생각한다면 조금은 엉뚱하고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라 환상을 (철저하게) 깨트려놓기도 한다.

 

끈질긴 기다림과 조그만 빈틈을 통해서 파고들어가는 모습들이 진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겠지만 좀 더 자극적이고 박진감 있는 상황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무 밋밋해서 읽기 싫어진다는 말도 할 것 같다.

 

스파이 소설이기 보다는 다니기 싫어도 월급 때문에 다니고 있는 피곤 가득하게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될 정도지만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팍팍하고 지루한 일상을 담고 있다지만 그들이 정보부 사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관여하는 사건이 조금은 특별해지고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긴장과 불안함을 더욱 강조되는데,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은 더욱 황폐하고 황량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계속되는 기다림과 틈새라도 찾아내려는 집요함 그리고 계속되는 긴장과 불안은 멀쩡한 사람도 강박과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냉전이라는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시대였음을 독특한 방식으로 존 르 카레는 폭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은 존 르 카레의 글을 얼마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읽어봐야만 명확한 특징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육체적인 피곤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있고 뭔가 수줍고 어색해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기괴함도 느껴지게 된다.

 

존 르 카레의 다른 대표작들을 통해서 그가 만들어내고 그가 생각하는 세상이 무척 궁금해지게 된다.

 

그의 소설들은 회색빛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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