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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찰스 디킨스 지음, 이기석 옮김 / 어문각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거의 10년간 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언제까지나 "두도시 이야기"였다고 대답할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가장 감동을 받으며 읽었던 책이라고 들어서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뒤로 절판이 되었는지 발간 된 책도 없었고 헌책으로도 구할 수 없었다.
간혹 찾아내면 영화 "두도시 이야기"를 번역한 대본이거나, 원서였다. 이런 식이니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쉽게 포기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읽을 수 있을 날이 올 것 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뭐, 솔직히 못 읽어도 별다르게 후회는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 "두도시 이야기"가 재번역 되었다는 소식을 책방에서 접하고 번역된 책을 보면서 구입을 당연히 하게 되리라 생각하게 되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스운 일이지만 막상 구할 수 있게되니 그 희소성이 떨어져서 별다르게 구입하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름대로 욕망을 이룰 수 있게 되면 그 욕망은 더이상 욕망이 아니거나 한없이 미루게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쨌던 번역된 책은 구하지 않고 오히려 약속을 정해서 만나기로 했던 자리에 가다가 우연히 시간이 남아서 들린 헌책방에서 90년대 초반에 번역된 책을 구하게 되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크게 번역의 문제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에(그다지 문제삼으며 읽을 정도로 대단한 독자는 아니다) 가볍게 구입하게 되었고 1년이 넘은 시간 뒤에 이렇게 읽게 되었다.
감상은?
물론 당연히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너무나 많은 상상과 기대를 하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심드렁하게 읽히게 되었고 결말까지 조금은 느린 구성과 디킨스 특유의 하층 계급의 모습을 장황하게 설명하고(예전에는 흥미롭게 읽혔는데 "두도시 이야기"는 이상하게 흥미롭지 않고 애정어린 시각보다는시궁창에서 뒤엉킨 모습들로 묘사하는 것 같다. 조금은 실망하는 듯한 시각이랄까?) 그답지 않은 무거운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흐르기 때문에 요즘의 감각적이고 유머넘치는 책들을 읽는 사람들은 정떨어지게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게다가 번역도 그다지 잘 했다고 볼 수 없어서 중간 중간에 다시 앞장을 훑어보는 수고를 해야만 했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집중해서 읽지도 않았고.
줄거리는 특별히 설명하고 싶지 않다.
검색으로 실컷 알 수 있을테니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프랑스 혁명시기를 다룬 소설 중에서 손꼽히고 혁명에 대해서 애매한 위치에 있는 듯한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그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지만 그들의 벌인 이후의 행동과 광기에 대해서도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디킨스는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추가를 하자면 디킨스의 작품 중에서 "위대한 유산"을 제외하고 가장 감동어린(희생어린) 사랑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말로는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적다(솔직히 없다).
하지만 작품은 진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과정을 감동어리게 묘사한다.
뭐, 짝사랑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주인공 카터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는 치기어린 감수성일지 몰라도 진지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 대목은 곱씹어서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완전 낚였다! 라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런 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받고 눈물을 글썽이는 소녀였다는 것이 조금은 색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작품 자체보다는 그런 다양한 감정이 오고가는 시간이 더욱 많았던 작품. 하지만 디킨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그렇게 나쁘지 않은, 그의 매력을 충분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지적하듯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짜임새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동안의 그의 작품은 막판에 가면 다들 가족이었고, 숨겨둔 자식이나 애증어린 관계였다는 식의 (한국 드라마 식의) 결말은 아니었으니까.
간만에 고전을 읽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더욱 나답지 않은 책을 읽는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