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분류하고 범주화(목록화 혹은 그룹화 등등) 시키며 살아간다.
사회학을 공부 좀 했다고 까불면 계급과 정치적 성향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살림살이에 눈을 뜨면 세탁용 빨래와 손빨래 그리고 세탁소에서 드라이 크리링하는 식으로 옷가지를 분류한다.
우리는 어렵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끝없이 무언가를 나누고 또 나눈다.
자신의 하드디스크에 있는 mp3와 avi 파일들을 입맛대로 나누고,
작성한 문서들과 여러 파일들도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각각의 폴더를 만들고 나눈다.
이렇게 나누고 또 나누는 과정속에서 우리는 항상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바로 그것은 '기타 혹은 등등(?)'이라는 범주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따로 관리하자니 뭔가 찜찜한.
바로 그런 범주가 언제나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대면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전형적인 '계륵'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또다른 선택을 강요하게 된다.
그것을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대답하게 되고 이 책은 바로 그 대답이 생각보다 만만한게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혹은 질리게... 이제 몇 페이지짜리 책인줄 아는가?) 알려준다.
농담과도 같지만 우리가 자주 대면하는 저 기타등등 들을 저자들은 마치 푸코가 말해주었던 타자들과 라깡을 읽다가 알게 되는 (다른건 다 까먹게 되는데 유일하게 기억하게 되는) '실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책을 읽게 되면 이들은 생각보다 진지하고, 그리고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들이 의외로 누군가의 삶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구한(땡스~!) 두꺼운 이책은 알쏭 달쏭한 제목처럼 내용도 펼친 다음에는 과연 이것을 읽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저자들은 맑스, 정신분석, 기능주의, 민속방법론, 아날학파, 푸코, 구조주의, 최신 미국 사회학 이론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한 몇몇 지식들, 의료체계 등등 별의별 잡지식들에 통달하고 위의 이론들에 대한 부분적인(어쨌던 대충은 알아먹을 수 있는) 지식들이 있어야만 책을 보다 수월하게(혹은 뭔소리인지 제대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게 만들 정도로 이론적으로도 탄탄한 사람들이고, 다양한 사례들과 자료들을 뒤적거리면서 이론으로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위의 이론들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와 같은 독자들도 꾸우욱~ 참으면서(읽다가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읽어나갈 수 있도록 만든다.
첫장은 우리가 자주 실제 생활에서 이뤄지지만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류'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다음으로 역사적으로 분류에 관한 가장 자료가 충실히 보존되고 있는 ICD라는 의료분류에 관한 단체에서 그들이 어떻게 분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와 시대적 변화와 함께 분류의 기준이 어떻게 변화하였고 어떤 새로운 것들이 등장했으며 그러한 기준과 분류가 등장하며 벌어졌던 갈등과 정치적 이해관계, 지역적인 견해차이에 대해서 말해준다.
이후 내용은 비슷한 결핵에 대한 분류와 인식의 변화를 설명해주고,
단순하고 각자의 필요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분류가 실제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 것인지 가장 극단적인 경우의 하나인 남아프리카 인종분류에 대해서 논한다.
이후의 내용도 간호사들에 관한 업무분류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지루한 공방전과 그로 인한 업무에 대한 각자의 견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려주고, 마지막은 자신들의 논의를 정리하며 마무리를 짓는다.
책에 대한 설명을 듣는 사람들은 이건 이미 푸코가 광인과 임상의학, 권력의 감시와 처벌에 대한 논의들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 아닌가? 라는 반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푸코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이론들을 실제 사례들에 적용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나도 이런 생각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생각하며 읽으면 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보다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푸코와 다른 것은 보다 논의를 깊게 들어가고(푸코는 권력의 시선으로 옮겨가고 어떻게 권력이 작동하는 것인지 보여준다) 그 심연으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하부구조'라는 생각지도 못한 구조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문제는 생각보다 더 복잡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만들어준다.
그것은 더이상 권력의 망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보다 난해해지고 주객은 전도되게 만든다.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결국 시스템에 먹히는 (베버가 말한 그 지긋지긋한 철장을)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저자들은 결말로 향하며 지극히 비관적인 예상을 하며 자신들의 글을 마치지만... 솔직히 이들이 생각하는 비관주의가 지식인들이 느끼는 실천없는 비관으로만 느끼기 힘든 것은 우리의 일상이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 고정관념처럼 변화하기 힘들게 되었기 때문에 낙관적으로도 보기 힘들게 만들었다.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책을 읽은 것 같다.
역시나 사람은 자신이 읽기에 적정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만든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거의 소개되지 못했던(푸코, 라깡, 데리다, 들뢰즈 사총사 덕분에 한국은 완전 프랑스 / 독일 철학과 이론들만이 먹히게 된 것 같다), 최근의 미국 사회학계의 관심분야 중 하나를 알게 된 것 같다.
나중에라도 뒤적거리게 될 것 같은 소중한 책이었다.
아쉽게도... 음미하지 못하고 맛도 제대로 못 느낀 것 같지만...
프랑스 / 독일의 머리속에서 빙빙빙 돌기만 하는 알아먹기도 힘들도 말하기도 힘든(말 더럽게 어렵고 길기는 왜 또 그리도 긴 단어들이 많은지) 이론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오게 만드는 책이고, 사회학을 공부하거나 공부를 한 뒤에 생활속의 실천이나 단체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최근의 현실과 밀접하게 다가오는 이들의 관심과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참고 : 좋은 책이지만 아쉽게도 오타가 몇군데 있다. 읽는데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지만(그런 수준이라면 내가 찾아내지 못한다. 원서를 읽은 사람도 아닌데 번역이 이상하다는 식의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다) 그래도 좋은 책에서 이런 부분은 신경을 조금만 더 썼으면...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내가 찾은 부분들을 메일로 보내서 재판을 발행하면 수정을 하기로 했는데.... 과연 이게 재판이 나올 수 있으려나? 괜찮은 책이기는 한데, 누구도 자신들과 상관없는 책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읽게 되는 이들이 자신들의 책이 도서관 분류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공상과학으로 분류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데,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