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 2 : 쾌락의 활용 나남신서 411
미셸 푸코 지음, 문경자.신은영 옮김 / 나남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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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헌책방에 별게 다 들어온다.
이걸 헌책방에서 구입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ㅎㅎ 어려운 책이라 머리에 쥐가 나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푸코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이상한 소리겠지만,
푸코에 대해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의 역사 1 - 앎의 의지' 이후의 푸코에 대해서는 극히 거리감을 두는 것 같다.
 
푸코에 관한 책들에서도 '앎의 의지' 이후에 대해서는 거의 말해주지 않고 단지 그가 기존과는 달리 분석의 방식을 전환하고 맹렬하게 작업에 임하다가 장렬히 최후를 맞았다는 식으로 넘겨버린다(알다시피 AIDS로 인해 사망했다).
때문에 그가 죽기 진전까지 작업을 했던 성의 역사 4, 5권은 출판되지 못했고, 그가 몇번의 탈고를 거듭한 결과물만이 존재한다(출판을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했으니, 출판이 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혹시 스미스 씨처럼 불태워달라고 해서 불태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던 '쾌락의 활용'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분석을 했다.
'앎의 의지'에서 어느정도 자신이 그동안 끝없이 얘기했던 '권력'이나 기타 많은 것들을 직접 설명해주며 어느정도 자신의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면, '쾌락의 활용'도 기존처럼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은 여전하지만(말 그대로 뒤집어서 생각하게 만드는데는 도가 튼 인간이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권력이나 감시 등등을 얘기하며 거대한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묶여버리는(그리고 보는 자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정성일 씨의 말대로 밑에서 위를 보도록 만들거나 위에서 밑을 보게 만드는) 그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보다 뜬금없어 진다.
이해했을리 없겠지만 그가 '쾌락의 활용'에서 말하는 것은 이전의 작업들이 어떻게 휘둘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였다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너가 너로서 판단하고 지배할 것인지(이것 말고도 얘기를 하지만 큰 줄거리는 이거라고 생각된다) 말하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지배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는,
삽입되지 않고 삽입하는.... 등등등
 
푸코야 읽어도 읽은게 아니기 때문에 말하기는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충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쾌락의 활용' 부터는 푸코를 무시하고 모르는 척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푸코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항상 '광기의 역사'나 '감시와 처벌' 등등을 끝없이 얘기하면서도 절대 '쾌락의 활용'과 '자기에의 배려'는 얘기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에서 말년의 두 작품에 대한 한마디 촌평을 한것이 내가 읽은 두작품에 대한 평가가 전부이다. 그외에는 그는 관점을 달리 했고 그 결과물이 그것들이다 정도일 뿐이니까.
 
고대 그리스 시대의 성에 대한 관념과 남성애와 부부관계 및 연애술 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며 당시는 어떤 생각과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다루었는지를 얘기하고 그것을 말하며 지금을 다시금 돌아보는 방식을 취한 푸코는 확신에 찬 느낌이라기 보다는 보다 곤혹스러운 느낌으로 말을 하는 것 같다.
 
너무 끊어서 읽었기 때문에 제대로 읽지 못한 느낌이었고,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이렇게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이 못난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되는 단순한 인간이기에 이렇게 수다를 떨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면 떠오르게 되는 사람이고,
무언가를 판단할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도록 권하도록 만든다.
 
 
 
간만에 책장에 묵혀둔 '감시와 처벌'을 끄집어 내게 만들도록 했는데...
이걸... 어쩌나? 다시 집어넣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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