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의 정신 병리학 프로이트 전집 5
프로이트 지음, 이한우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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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활을 하다가 자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실수’ 혹은 ‘착각’ 등을 하게 된다. 그것이 특별히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상생활의 정신 병리학’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말로써 혹은 행동으로써 실수나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단순히 우연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영향 때문에 그런 행동과 착각(혹은 망각)을 하게 된다고 프로이트는 말해주고 있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들을 말해주며 우리들에게 설득시키려 하고 있다.

 

프로이트와 무의식 그리고 정신분석의 논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프로이트의 주장에 큰 이견이 없었겠지만, 프로이트는 자신의 논의를 처음 접하거나 부정적인 입장의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자료로 내용을 채워 넣은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정신 병리학’은 어떻게 보면 정신분석과 무의식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무의식과 정신분석이라는 것이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고 그 영향력을 우리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수많은 사례들을 나열하며 무의식이 일반인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보이는지 말해주고 있는 ‘일상생활의 정신 병리학’은 아마도 프로이트의 주요 저작에 비해서 특별히 새롭거나 중요한 논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첫 시작으로는 가장 무난한 선택이 될 것 같은 책일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저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하게 되는 실수나 착각 그리고 의도하지 않는 행동에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당신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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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창비신서 128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 창비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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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이 이곳 저곳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는 그가 주창하는 ‘세계체제’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 우리가 어떤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소재를 통해서 풀어내고 있다.

 

그는 그의 주저인 ‘근대세계체제’에서도 집중되게 다뤘던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에서 벗어나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저개발과 인종차별 그리고 성차별 등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지 일부 국가나 지역에서 발생하는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역적이고 국가 단위의 분석에서 벗어나 범위를 넓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이 이뤄져야 보다 적절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한 분석을 위해서 그는 맑스(마르크스)와 페르낭 브로델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고 기존의 관행적으로 받아들였던 다양한 학문들의 논의와 결과들에 새롭게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설에도 논의되었듯이 문제제기로 끝나고 논의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월러스틴의 논의는 충분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자주 지적하는 대학의 교육과정과 분과에 대한 비판은 ‘오리엔탈리즘’의 사이드의 지적과 공유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보다 관심을 갖게 만든다.

 

월러스틴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학문은 19세기의 패러다임에 종속되었고 그것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과 패러다임으로 바라보아야 보다 적절한 시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그는 맑스(마르크스)와 브로델의 시각을 강조하고 있으며, 보다 분석의 범위를 넓혀 세계체제로서 분석을 해야 적절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국제적인 불황과 침체국면에서 그의 의견은 꽤나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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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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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얼마 뒤에 자신의 삶이 끝을 맺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가족이나 소중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남기려고 한다. 그것이 삶의 지혜이든 허세와 자만심으로 가득한 장광설이든 재산이든 무언가를 남기고 혹은 전해주고 싶다는 것은 동일한 감정일 것이다.


짧은 한마디로 혹은 과거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을 마감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유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언’을 남기며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췌장암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들에게서 떠나야 하는 랜디 포시의 경우는 자신의 학자로서의 마지막 강의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랜디 포시가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긴 선물을 함께 들으며 삶을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의 경우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비슷한 입장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삶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졌고, 그는 그 소중한 시간을 충분히 의미있게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삶을 긍정하기를 바라며 강의에 임하고 있다.


랜디 포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우리들에게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는 진실되게 말해주고 있다. 물론, 유머를 좋아하는 미국인답게 적당한 유머를 곁들여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그 유언은 강의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것이지요.


그가 절실히 삶을 긍정하기를 하듯이, 삶을 긍정하려는 사람들만이 장벽을 넘어서 그가 말하는 삶의 의미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강의라고 말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그 삶 속에서의 교훈들을 알려주고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 교훈들은 때로는 눈물 흘리게 만들고, 때로는 웃게 만든다. 그리고 그의 삶에 대한 교훈들에서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그는 약간은 거만하고 지나치게 솔직함으로 인해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는 하지만 좋은 아버지이고 좋은 아들이고 좋은 동생이고 좋은 남편이고 교수이자 동료의 모습으로 랜드 포시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부터 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지금의 아내와의 만남 그리고 죽음까지 때로는 담담하고 때로는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다. 물론, 때로는 슬프고 눈물짓게 만들기도 하다. 그는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골몰하기 보다는 생각의 방향을 바꿔서 얼마나 삶이 다채롭고 풍성한지를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눈앞에 다가온 죽음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의 모습을 보자면 그것은 지나치게 빨리 찾아온 것이지 누구에게나 다가올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우리는 얼마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궁리하기 보다는 지금 이순간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고, 자신의 삶의 목표를 정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해주고 있다.


봐,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 거야.

진심으로 당신과 함께 행복하고 싶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러면 당신 없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야.


그의 말은 마치 친구처럼 혹은 친한 아버지나 삼촌이 말해주듯이 어렵지 않고 쉽게 다가오면서도 큰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당신의 친구에게 그가 죽을 때 당신의 일부도 같이 죽어

어디든 그와 함께 간다고 말해주세요.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당신도 같이 가게 된다고요.

그는 혼자가 아닐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혼자가 아닐 것임을 압니다.


그는 학자로서는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없겠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그리고 삶에 관해 통찰력을 제공하는 사람으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존재일 것이다. 물론...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버지로 남기를 바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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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위한 변명 한길그레이트북스 10
마르크 블로크 지음, 고봉만 옮김 / 한길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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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무엇에 쓰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은 위대한 역사학자가 말해주는 역사에 대한 최대한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역사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글일 것이다.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저서 ‘봉건사회’는 중세 봉건사회에 대한 서적들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의 글에 관심을 갖고 있던 중 그가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내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 역사에 대한 회의가 가득한 시절에(1차 세계대전의 고통이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세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과연 누가 반성과 역사를 통한 성찰이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까?) 마르크 블로크는 그러한 회의와 냉소를 거부하고 역사를 옹호하며 지금과 같은 시대야 말로 역사를 알아야 하며 지금까지 오해되고 있는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글을 써내려가는 중에 삶을 마감하게 되어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모두 접할 수 없게 되었고, 그가 전쟁터에서 짬짬이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글을 썼으며, 특별한 자료 없이 자신의 생각으로만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말로 충분한 시간과 자료가 허락했다면 보다 좋은 결과물이 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애석함을 느끼게 된다.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르크 블로크의 글을 읽으며 자신들이 역사에 대해 보다 많은 호기심과 함께 단순한 호기심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관심을 갖게 될 수 없도록 만들게 하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도 역사에 대한 많은 이들의 냉소와 회의 속에서 역사를 옹호하고 당시의 시대와 이후의 시대에게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사려 깊은 논의에 한번쯤은 관심을 갖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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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퀼로스 비극 - 희랍어 원전 번역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단국대학교출판부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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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래스의 비극 작품들을 읽고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비극 책들을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다. 이전에 구입하고 계속 미루었던 ‘아이스퀼로스 비극’도 관심을 갖고 있을 때 몇 권 더 읽자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몇 개 읽지 않은 비극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완성도는 소포클래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스퀼로스의 비극 작품들도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을 충실히 옮긴 번역서 덕분에 아이스퀼로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는 하지만 고대 그리스 비극에 대해서도 그렇게 박식하지도 않고 인명, 지명, 그리고 신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해박하지 않기 때문에 읽는데 조금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무식하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가멤논의 비극적인 죽음과 그의 아들의 복수, 그리고 재판을 통한 구원을 그린 삼부작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따로 말할 것은 없을 것 같지만, 읽다보면 소포클래스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해설에서도 지적되고 있지만 아이스퀼로스는 이야기의 흐름을 전반부에는 느슨하게 진행시키고 후반부에 빠른 전개를 보이는 방식이어서 초반에는 조금은 지루하게 읽혀지는 단점이 없지 않고 후반부는 지나치게 빠른 이야기 완결을 보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과 중요한 사건이 너무 빨리 지나치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당시에는 어떤 평가를 받았고,

지금도 연구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모르겠지만...

 

비극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일종의 복수극이라고 보는 것이 더 쉽게 다가올 것 같은 ‘아가멤논’과 ‘코에포로이’는 자신들의 행동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것에 비극적인 방식을 보이고 있으며, 어머니를 살해한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점에서 당당함을 보이고 있는 ‘자비로운 여신들’의 경우도 ‘숙명’과 그로인한 비극이라는 아이스퀼로스의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미래와 형벌을 알면서도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을 담은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 보다 흥미를 느끼게 되기도 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운명과 괴로운 고통을 작품의 인물들은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겨내려 한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삶을 살아가며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는 우리의 삶에 고대 그리스 인들의 비극은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잠시 선사해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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