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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철학에 대해서 그리고 니체에 대해서 별다른 지식이나 관심이 없을지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혹을 들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니체 철학의 정수를 담고 있지만,
철학적인 혹은 논리적인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니체의 전형적인 방식인 잠언(아포리즘)의 형태로 써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서는 소설 혹은 장문의 시와 같은 형태로 되어 있는 글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으며 접근과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거나 반대로 전혀 가까워지지 못하고 멀어지게만 되는 책으로도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지금껏 읽은 책들 중 가장 아름다운 혹은 영감을 주는 책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읽어내는 동안 영감은 고사하고 무슨 논의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어떤 내용으로 이뤄진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글들에 떠다니는 느낌만 들었을 뿐이다.
아마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철학에 대한 모든 것은 담겨져 있지는 않을지라도 그에 대한 많은 것들은 담겨져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접근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곤혹스럽게 읽혀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니체 자신을 상징하는 짜라투스트라를 통해서 일종의 방랑기 혹은 여행기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가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서 그리고 철학적 / 정신적 몰락(방황)을 통해서 새로운 아침 / 정오를 맞이하는 방식으로 써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가 자주 비판의 대상으로 삼던 신과 신을 추종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최후의 인간, 초인(최근에는 원문 그래도 ‘위버멘쉬’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도)덕, 선과 악, 영원회귀 등 니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그가 이전부터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외에는 자신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던 몰락, 정오, 초인(위버멘쉬)와 반복과 같은 기존의 인간에서 초극되어야 함과 초극되어야 할 존재 그리고 끝없는 운명의 굴레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워낙 다양한 은유가 가능하고 복잡한 의미들로 가득한 내용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그가 의도하고 있는 방향으로 제대로 읽어낸 것인지 아니면 그저 무언가를 읽었을 뿐인지는 여전히 의문이고 솔직히 그다지 매끄럽게 읽었다고 자신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저 누구나가 한번쯤은 들어보았고,
누구나 한두번쯤은 인용하게 되는 책을 읽었을 뿐인 것 같다.
항상 그렇듯이 니체는 자세히 읽었다고 해도 개운한 느낌을 주지 않고, 그저 읽었다는 것으로만 만족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몰락해야 하는 것일까?
조금 더 초극되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