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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상
에드워드 파머 톰슨 지음, 나종일 외 옮김 / 창비 / 2000년 1월
평점 :
근대 사회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계급’이 갖고 있는 의미는 가볍게 생각한다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특정 집단 혹은 구성원들을 뜻하는 것에 그칠 수 있을 것이고,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면 좀 더 상세하게 파고들어 사회 구성원들이 어떠한 구분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각각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보이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로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든지 ‘계급’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더 이상 사회 구성원들을 계급(관계 및 구조)으로서 이해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얻고(호응도 얻고)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계급’을 통해서 사회를 이해하려는 방식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하지 않기 보다는 여전히 혹은 좀 더 말을 해야 하고 논의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전과 같은 경직된 이해와 분석 속에서 논의하기 보다는 좀 더 유연하고 정교한 이해가(모순된 말인 것 같지만)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 관한 광범위한 검토를 하고 있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E. P.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영국에서의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을 파악하려고 하는 위대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근대사회로의 전환과 자본주의 발달 과정이 모든 국가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국가에 따라 노동계급의 등장과 형성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는 영국에서의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을 통해서 어떤 차이를 갖고 있는지와 유사성을 갖고 있는지를 비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준점과 문제에 대한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명확하게 느껴지는 제목과는 다르게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은 내용에서는 그다지 명확하게 혹은 구체적으로 노동계급을 다루지 않고 있고, 무척 아리송하고 불투명하게 이해되고 있고 헷갈려지도록 의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동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을 상세하면서도 모호한 느낌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려고 하고 있고 추적하고 있다.
읽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이런 복잡함 혹은 난해함고 난감함은 E. P. 톰슨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산업 및 상업의 노동자들에 대해서 파악함으로써 노동계급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것으로서 단순명쾌하게 노동계급의 형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게 되는 곤혹스러움과 어려움일 것 같고, E. P. 톰슨의 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이해와 논의는 무척 장황하게 느껴지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혹은 확대된 이해와 해석을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머리말에서 본인 스스로 주장하듯이 E. P. 톰슨은 계급이라는 것이 하나의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거나 구조화-범주화 된 모습을 처음부터 보이고 있었기 보다는 역사적 과정-흐름 속에서 나타난 ‘어떤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E. P. 톰슨은 노동계급이 노동계급으로서의 자기 인식 혹은 계급 인식이 있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혹은 불합리함에 대한 불만을 인식하고 표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런 (포괄적인 의미에서) 저항의식에 대한 반대 작용(억압, 제재, 통제, 착취, 탄압 등)이 일어났는지를 다루면서 그 갈등과 대립 그리고 대결과 충돌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계급이 형성되고 스스로에 대한 하나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집단으로의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고, 그 이해와 인식의 과정과 전환의 과정을 무척이나 세밀하고 상세하게 검토하고 있고 분석하고 있다.
이런 이해 방식이 어쩐지 역사학계에서의 최근의 (아날 학파 혹은 심성사로 대표되는) 분석 방식과 무척 유사한 느낌을 갖게 되기도 하는데, 이렇게 떠올려진 생각은 나중에라도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 P. 톰슨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과정 초기에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등장)이라는 외부적 사건과 영국 내부의 종교에 관한 다양한 측면(감리교 및 각 종파 사이의 갈등과 기타 등등)에 관해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데,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등장이라는 외부적 사건과 변화가 영국 내부에서 저항과 갈등 그리고 변화에 대한 의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반대로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 또한 만들어 급격한 변화의 가능성을 혹은 흔히 말하는 밑으로부터의 / 아래로부터의 거센 변화에 대한 요구를 제압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종교를 통해서 일반인들이 갖고 있었던 다양한 정서적인 변화들과 좌절감과 분노들이 어떻게 관리-억제될 수 있었는지를 너무나 복잡하게 분석하고 있어서 무슨 의도로 분석하고 있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또한 E. P. 톰슨은 근대 사회 혹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조건의 생산관계 및 노동조건과 노동형태(장인, 선대제 등과 같은 기존의 방식에서 분업과 기계의 등장)로의 전환과 이런 전환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생성되기 시작하는 계급으로서의 인식과 기독교적인 죽음 이후에 대한 믿음에서 현실에 대한 인식으로의 정서적이고 심정적인 또한 행동과 기타 다양한 미세한 변화들을 주목하고 있고 그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이해야 말로 노동계급으로서의 자기 인식과 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E. P. 톰슨은 이런 급작스럽기 보다는 서서히 변화되고 미세한 차이들이 발생되는 일련의 변화의 과정과 계급인식에 관한 과정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파악하고 있고,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그 과정들을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
읽던 도중에는 도대체 무슨 논의를 하려고 이런 세세한 내용들을 검토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짜증스럽게만 느껴졌지만, 생각해보면 하나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나고 형성되는 것이 그저 단순하고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모든 것을 쉽게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반성도 읽다보면 생겨나는 짜증 때문에 쉽게 잊게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하권에서는 좀 더 이해를 하면서 E. P. 톰슨의 논의들을 따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