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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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윤옥 옮김

 

이 글이 나에게 다가온 의미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 번째는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성실하게 대할 것, 두 번째는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할 것이다.

 

글쓰는 작업은 한마디로 [한없이 개인적이고 피지컬한 업]이다.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쓰는 것], 그것이 글쓰기이다.

 

새벽에 일어나 6시간 정도 글을 쓰고, 마라톤을 하는 일상을 가지고, 근면 성실을 모토로 달려온 작가다. 그런 작가가 쓴 에세이가 재미있을리 만무하다. 고리타분하다. 그런데 이 고리타분함이 소설가라는 직업과 맞닿아 있어, 애잔함마저 풍긴다. 바로 수없이 반복하고, 미련하게 몸으로 직접 습득하는 일이다. 장기적인 일을 할 때 규칙성이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는가. 그래서 비단 소설가로서의 직업을 이야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많은 의미가 전해지는 것이리라.

 

정해진 시간 동안 마주하는 책상, 정해진 분량. 하나하나 들인 시간의 퀄리티가 작품에 대한 납득성으로 이어지는 것. 그리고 혹독한 비판에도 할만큼 했다는 실감이 의연하게 해주는 것. 이 일을 30년이 넘게 해나가는 것.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이다.] 그것이야 말로 삶에 대한 자세이다. [시간을 소중하고 신중하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은 곧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일을 해나가기 위해 [오후에는 낮잠을 자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 책을 읽기도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아무래도 운동 부족에 빠지기 쉬워서 날마다 한 시간 정도는 밖에 나가 운동을 한다. 그리고 다음 날의 작업에 대비한다. 날이면 날마다 판박이처럼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매일 다섯시간에서 여섯시간, 의식을 집중에서 집필한다]와 같이 피지컬한 업을 함께 해 나간다.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어서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육체적인 운동과 지적인 작업의 일상적인 조합은 작가가 행하는 종류의 창조적인 노동에는 매우 이상적인 영향을 끼친다].

 

[혹한의 아침에, 혹서의 한낮에, 몸이 나른다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자 힘을 내서 오늘도 달려보자라고 따스하게 격려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듯 일상을 해 나간다. 아마도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강함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신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마음의 강인함을 유지하기 위한 체력을 증강하고 관리 유지하는 것이다.

 

흔들림 없는 의지와 자신에 대한 적절한 긍정성이 이 사람의 모습이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부분이다. 글을 쓰는 일에 신뢰롭게 예의를 갖추고 매일을 대하고 있다.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분량을 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해서라기 보다는 예의다. 사랑한다는 것은 예의를 갖춘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가장 기본은 나의 건강을 체크하고 돌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새벽까지 폰을 보고 있는 것은 나의 몸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행동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어떡해 해야하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를 사랑하는 행동을 해야 내안의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곧게 갈 수 있다. [그 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이다].

 

다음은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어쨌든 불평 불만 없이 열심히 한다. 문장을 만드는 일의 기분 좋음, 즐거움은 변함이 없다. 뭔가를 써내는 것을 고통이라고 느낀적은 한 번도 없다. 다양한 표현 작업의 근간에는 늘 풍성하고 자발적인 기쁨이 있어야만 한다. 오리지낼리티는 바로 그러한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제약 없는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생생한 그대로 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충동이 몰고온 결과적인 형체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즐기면서 한적이 있나?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란 아무리 살아봤자 별로 즐겁지 않다]. ...... ‘글을 쓰고 싶다/논문 써야지하는 생각민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나를 보며 매일이 괴로웠고, 지금도 괴롭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되는데 왜 괴로울까. 원인은 능력에도, 마음 상태에도 있을 테다. 몇주 논문 쓴다고 마음만 갈팡질팡하고, 정작 논문을 본 시간은 얼마되지 않고, 글도 한자 안쓰니, 이거 원 글쓰는 것도 까먹는 거 같다. 그런데 그런 거 재껴두고, 그저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는게 중요하다. 재미없어 보이는 사람의 일상이 사실은 자신의 인생에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제일 재미있게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사랑을 매일 하고 있는 사람이니.

 

[사람들 마음의 벽에 새로운 창을 내고 그곳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고 싶다. 그것이 소설을 쓰면서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이고 희망하는 것이다. 이론 따위는 빼고, 그냥 단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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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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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이창희 옮김

 

2021813

The April Bookclub

 

열역학 1, 2 법칙으로 지구의 모든 현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법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 법칙을 이해한다고 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는 항상 한시 앞도 보지 못해 끙끙대지 않던가.

 

그럼, 열역학 법칙을 간단하게 보자.

 

열역학 제 1 법칙: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따라서 창조될 수도 없다. 단지 그 형태만 바뀔 뿐이다. 우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

 

열역학 제 2 법칙: 일명 엔트로피 법칙.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고 규정한다. 즉 유용한 상황에서 무용한 상태로, 획득 가능한 상태에서 획득 불가능한 상태로, 질서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한 상태로만 변한다.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엔트로피는 더 이상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측정하는 수단이다. 어떤 시스템 내에서 존재하는 무용한 에너지의 총량.

 

세상이 점점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지고 있다. ?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일정한 구조와 가치로 시작해서 무질서한 혼돈과 낭비의 사태로 나아가니까. 이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에너지는 창조될 수 없다.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사람들은 적절한 기술만 개발하면 우리가 소모해버리는 것을 거의 모두 재생하여 재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다. 고립된 시간과 장소에서 엔트로피 과정을 역행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전체 환경의 엔트로피 총량은 증가한다. 재생이라는 것은 유용한 에너지원을 희생하고 전체 환경의 엔트로피 총량을 증대시키는 대가를 치러야만 가능하다. 미래의 생명체에게 유용한 물질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다.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된다.

 

사유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도 모두 포함된다. 사람이 죽는 것도 엔트로피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유용에서 무용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에너지를 모두 쓰면? 죽음에 이른다. 그러면 사고로 갑자기 죽게 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지? 또 병으로 요절하는 것은 그 사람의 에너지 총량이 거기까지 였던 것이라는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먹이사슬 구조도 엔트로피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먹는 것. 결국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내가 살아남는다는 것. ... 내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어야 한다는 생존의 법칙이 엔트로피로 설명되니, 다시금 뜨끔해진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모두 다른 사람의 희생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굉장히 철학적이고 현학적이어진다.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를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데 있다. 소유와 소비는 계속 열악해져 가는 세계의 일시적 현상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려 삶을 어지럽힐 뿐이다. 우리가 소유하는 것들은 결국 우리를 소유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거기에 집착한다. 소유물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졌는가에 따라 스스로를 판단한다. 바가바드 기타(흰두교의 경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물질에 대해 생각하면 인간은 거기에 집착한다. 집착함으로써 갈망이 생기고 갈망함으로써 분노가 탄생한다. 분노함으로써 망상이 생기고 망상은 기억을 지워버린다. 기억을 잃으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분별력이 없어지면 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은 자연과 화해하고 생태계와 협동하며 살아가려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다. 바로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안겨준 숙제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생각도 [덕분에 자연이 좀 쉴 수 있겠군. 그동안 계속 못살게만 굴었으니]

 

과학이란 결국 우리 세대의 가장 어리석은 사람조차 지난 세대의 천재보다 앞서갈 수 있는 학문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잘 나가려고 부단히 애쓰기보다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데 도움되는 노동에서 가치를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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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 - 6년의 연애, 세 번의 입원 그리고 끝나지 않는 사랑의 기록
마크 루카치 지음, 박여진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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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가 정신병원에 갔다

마크 루카치 지음

 

하루아침에 당신의 아내가 조현병 환자가 된다면? 한순간도 사랑해 마지 않았던 연인이자 아내가 새로운 회사에 나간 뒤 지나치게 확인하는 작업, 불안으로 인해 일을 전혀 하지 못한다. 이어 우울, 환청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발생하면서 정신질환자 가족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글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 내 의료환경과 많이 닮아있음을 발견했다. 정신과 환자가 입원하는 것에 대한 힘듬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정신질환자를 가족으로 둔 이들은 알 것이다. 입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그런데 겨우겨우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치료는커녕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한다면? . 생각만 해도 싫다. 심지어 현 시국 속 작은 단위의 정신병원은 코로나 검사를 하고 집에서 기다렸다가 음성 판정이 나오면 입원하라고 한다. 입원 병상이 있는 것에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판국이다.

 

얼마 전 환자 한 명을 검사하기 위해 4명의 성인이 동반했다. 얼마나 힘들게 병원에 왔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검사자는 검사에 협조적이지 않다고 검사 도중 돌려보냈다고 한다. 보호자도 지적장애 3급이었다. 보호자는 다시 와서 검사할 수 없다고 울먹였으나, 검사자는 단호했다. 지적장애 1급 환자가 재진단을 받기 위해 왔는데, 착석이 되지 않는다고 돌려보내고 진단도 받을 수 없게 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정작 검사자는 이전에도 계속 그래왔고, 진단도 나갈 수 있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편법을 말한 것이 아니다. 장애등급법에 나와 있는 대로 검사를 진행하고 그들이 다시 재검사를 받으러 오거나, 서류를 떼러 오는 것을 방지해 주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잘못된 거라며,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든다며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니, 의료 현장의 모습이 더 쓸쓸하게 다가왔다.

 

외래에서 예약을 잡아달라고 전화가 왔다. 환자가 많은 상황으로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3주 이내에 해야 한다며, 입원해서라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환자 상태를 확인하러 가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점심도 거른 채 검사를 했다. 간단한 색깔이나 숫자를 아는 것은 아예 안되고, 언어적 표현도 안될 뿐 더러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었다. 자리에 착석하는 것도 힘들었다. 스물이 넘은 자신의 아이의 장애를 인식하고 함께 살아온 엄마의 세월을 바라보며 검사를 마쳤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해서, 세상을 편한 대로 바라보는 태도에 신물이 난다. 내가 잘못을 했고 안했고의 문제를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환자를 사람으로 바라보고 늪에서 나올 수 있게 얼마나 마음을 쓰는지가 중요하다. 이것을 알 길 없는 현실이 참담하다.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이는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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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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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억한다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코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책은 별점으로 평가하기가 죄송스러울 정도였으나, 소개해준 이에게 경멸을 담아 별 하나를 과감히 뺐다.

 

수십 년 전의 이야기부터 거슬러가면서 쓰는데, 마치 어제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나와서, 무서웠다.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상세하게 풀어쓴 저자의 힘에 반했지만, 개인적인 나로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심지어 전공도서에 가까운 책을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가독력도 좋다.

 

트라우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트라우마를 뇌로 바라보기, 애착 문제가 있거나 성폭력 노출된 아동이 성인이 돼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렇다면 트라우마로 인한 흔적은 지울수 없는 상처로 새기면서 살아야 하나?/회복의 방법은 어떻게 될까. 이런 순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면밀히 나타내고 있어,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워 눈물이 났다. 수많은 곳이 기억해야 할 문장들로 넘쳐났다. 그 중 기억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대목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기억. 나도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고, 엄마도 현실이 아닌 기억으로 고통받고. 기억은 현실을 넘어 고통을 가져온다.

 

다이애나 포샤의 말을 남기며 책 읽은 소회를 마친다.

[회복력의 바탕은 자신을 사랑해 주고 맞춰 주는 듬직한 사람에게 이해받는다는 느낌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사람의 생각, 가슴속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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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극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동물이 아니기에, 관계가 필수다. 각자의 속도를 가진 채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속도의 차이가 간극을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속도에 치여 버거워하고, 누군가는 답답해 하기도 한다.

 

친구가 이마에 주름이 생겨서 고민이라고 했다. 친구가 슬쩍 보톡스 이야기를 꺼낸다. 그래서 피부과에 가서 보톡스를 맞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군가 이마에 주름을 없애려고 보톡스를 맞았는데 눈을 뜨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망설여진다거나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은 없는 이야기다.

나도 피부과에 갈 일 있으니까 갈거면 같이 가자고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그러면 듣는이는 다른 사람은 보톡스를 맞고 부작용이 있지만 나는 이마의 주름이 더 신경 쓰여서 시술을 받아야겠다는 말로 알아듣게 된다. 다음날 보톡스를 언제 맞으러 갈거냐는 이야기가 나오니 내년에 집을 이사하고 맞겠단다. 그러면 아직도 네 달이 넘게 남았다. 네 달 이후에 할 일을 왜 지금 말하는 거지?

 

직장동료는 더하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도 진행중이다. 아직도 그것을 방금 한 것처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더 대단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그리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냥 프로젝트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진다.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지만 내실은 없는 창피한 노릇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계속 다른 일을 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시간의 간극이다.

 

한 사람이 너무 급하다 싶으면 조금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고, 느리다 싶으면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 한 템포 업시켜 가면서 우리는 그 간극을 줄여나가야 한다. 문제는 자신의 속도를 고수할 때 온다. 상대방이 당신의 속도에 대해 언질을 주었다면 그건 오래전부터 생각해 두었다가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을 때까지 온 것이라 여기고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 받아주세요라고만 하지 말고 노력의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은 어떨까. !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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