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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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pril Bookclub

2022년 1월 12일 수요일


코스모스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지 1년 반이 넘었다. 이정도는 당연히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분량이 있으니까 전달 선정도서를 줄 때 같이 줬다. 그런데 책을 받아든 모임원의 압도적인 표정. 나도 손에 잘 잡히지도 않고, 잡아도 진척이 없었다. 논문 작업 한답시고 아무것도 못 하는 것도 겹쳤다. 그런 상태에서 매일 읽어도 모자랄 책을 선정했으니, 한달은 커녕 일년이 걸려도 못 읽을 책이 되어버렸다.

 

코스모스란 무엇일까? 정의는 내려졌는데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그러다가 일본의 원자폭탄이라든가 하는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을 저자가 이야기할 때에서야 읽힌다. 유시민은 이 책이 그리 좋았다고 했는데, 신영복은 좋은 책을 여러번 읽는 것이 다독이라 했는데, 왜 나는 이 책을 여러번은커녕 한번도 읽기 어려운 거지. 우주란 미지의 세계인 것처럼 내 생각에도 항상 미지로 남아 있고 싶은가보다.

 

내년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하고 소회를 마쳤는데, 그 말을 하고 두렵다. 내년이면 벌써 올해이지 않은가. . 끔찍하다. 심지어 이미 읽은 분들의 리뷰도 보기 싫을 정도다. 그래도 얕은 지식을 내뱉어 보면 다음과 같다.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줄까?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노예 제도의 야만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별 세계의 비밀을 캔다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 이 말은 우리가 학문을 해야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사유할 줄 알아야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 당장 밥 먹고 사는 게 급한 현실에서 책을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과 같다. 전쟁이 터져서 사람이 죽네 마네 하는데 예술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말과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개나 돼지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추구하는 이상이 있다는 것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아유슈비츠 포로 수용소에서, 위안부에서 그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삶에 끈을 놓아버리지 않은 것도 어쩌면 한 맥락이지 않을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아가는 것, 그리고 삶의 저편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견디게 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호전성, 그릇된 관습,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이방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개심같이 오랫동안 유전돼 온 못된 요소들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 유전 쪽에서 보면 유전이 아닌 것이 없다. 심리학에서는 진화심리학이라고 한다. 비만도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사람이 먹어서 지방으로 축적하고자 하는 것은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 그래서 배가 부른데도 먹고 있다는 것은 나를 거슬러 거슬러 또 거슬러 그렇게 계속 올라가다 보면 조상들이 지속적으로 가난에 굶주려서 살기 위해서 있을 때 먹어두자는 식으로 계속 먹어대다가 축적된 배불러도 음식이 있으면 일단 먹어야 된다는 유전적인 세포가 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격렬한 분노는 아주 먼 옛날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져서 아직도 우리 머리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파충류의 뇌, 소위 뇌의 R-영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 살인 행위를 한다는 건 파충류의 뇌 시기의 충동성을 발현하는 것인가.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뇌의 부위와도 같겠군.

 

[피부 접촉의 단절에서 겪게 되는 애정 결핍은 사람에게 깊은 고통을 안겨준다. 유아기에 피부 접촉을 통한 애정 표현이 발달된 문화일수록 폭력을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회들은 주로 육체적 쾌락을 박탈당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유아 체벌이 성행하는 사회에서는 노예 제도, 잦은 살인, 고문, 심지어 원수의 수족을 절단하는 행위 등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여성 학대가 극심하고, 하나 또는 여러 가지의 초자연적 존재가 개인의 일상을 간섭한다고 철저히 믿는다. 인류의 미래에 공헌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의 아이를 자주 껴안아 주라.] : 심리학 학부생이면 이미 닿도록 접하는 것이 할로 부부의 원숭이 대리모 실험이다. 아기 원숭이가 우유병이 매달린 철사 구조물을 선택할 것인가. 천으로 감싸 옷을 입힌 구조물을 선택할 것인가를 실험했는데, 원숭이는 우유를 먹고 천으로 감싸 옷을 입힌 구조물에 가서 안긴다. 이것을 보울비는 접촉, 따뜻함에 대한 욕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접촉을 통한 애정 표현이 결여된 상황에서는 파충류의 행동 양식이 권장될 것이다.

 

[우주에는 각종 원자들이 별들의 중심에서 합성되고, 매 초마다 태양과 같은 별들이 수천여 개씩 태어나며 여기저기 막 태어난 행성들에서는 중심별에서 방출된 빛과 하늘을 가르는 번개가 물과 대기에 새로운 생명의 불꽃을 댕기고, 수천억 개에 이르는 은하들 하나하나에서는 생명의 진화를 가능케하는 원료 물질들이 별의 폭발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퀘이사가 있고 쿼크가 있으며 눈송이와 개똥벌레가 함께 살아 숨쉬는 코스모스인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용기는 자신의 편견이 밖으로 드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또 찾아낸 결과가 자신의 희망과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코스모스의 조직과 구조를 끝까지 탐구하여 그 깊은 신비를 밝혀내려는 이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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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 -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일상인문학 5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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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지음/문항심 옮김

 

아는 말인데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모르는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글로 읽히지 않는다는 게, 분량이 적은데도 쉬이 나아가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 사색을 하게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라는 것에 씁쓸함이 남은 책이었다. 왜 짧고 어렵지 않은 문장들이 이해되지 않고 눈으로만 읽힐까. 그럼에도 집중해서 읽고 밑줄 긋고 그렇지. 그렇지 하기도 한다. 그런데 뒤돌아서서 내가 방금 뭘 봤나 싶은. 생각나는 게 없다. 그래서 정리도 안된다.

 

왜 그런지 알았다. 아무리 읽어도, 부분이 좋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자기 결정, 자기 인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어떤 부분에는 꽂혀서 읽었지만, 그것이 정작 자기 결정이나 인식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냥 그 문장으로서 생각해볼 만한 것이었다. 그래서 과연 자기 결정이나 자기 인식은 무엇인가.

 

자기 인식: 인정하기: 자신에 대한 이해

 

만일 우리 자신 속으로 계속 깊게 파 들어가서 사고와 감정의 정체가 누워 있는 바닥에 닿는다고 해요. 이러한 생각은 자기 인식이라는 것이 표면과 심층을 분리하여 우리가 원래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에 있다는 사고방식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허수아비로 만들거나 조종함으로써 존엄성을 빼앗는다면 존엄성의 상실은 자기 결정의 상실과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기만은 이익이 동기가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착각이지요. 자아상의 인물처럼 생각하고 바라고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에요. 그러면서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그려놓습니다. 특히 도덕적으로 의미 있는 사고와 소망과 감정이 관여할 때 더욱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만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앞에서도 거짓말을 하며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폭로하지 못하도록 이를 악물고 지켜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덕: 잔인함과의 싸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만일 외부 권위와 그것이 주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우리는 자기 결정의 상실을 경험할 것입니다. 도덕적 친밀성이 부재하면 타인을 나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단이자 도구로만 보는 것이지요. 살아가는 동안 타인의 시선을 받음과 동시에 그들과 다양한 교류를 나눈다는 사실은 그들의 이익이 나의 이익과 상반될 경우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자신이 하는 행동의 동기에 대한 이해가 적을수록 잔인함으로 치우칠 위험은 높아집니다. 반대로 나에 대한 타인들의 투사를 알아차리고 그들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하고 교류 가능한 감정들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대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좀 더 살아있고 세심하며 재미가 있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념적 분화입니다. 내게 파고드는 이 불편한 감정은 두려움인가, 아니면 짜증과 분노인가? 사람들 앞에서 나서려 할 때 느끼는 이 감정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가, 아니면 억눌려 있다가 급기야 폭발할지 모르는 다른 감정에 대한 두려움인가? 그리고 그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짜증이나 분노라고 했을 때 정확히 누구 또는 무엇에 대한 분노인가? 몇 년 전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니며 삶을 힘들게 하는 이 충동, 이것은 화려함을 향한 갈망인가 아니면 단순히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욕구인가, 혹은 인정받고 싶은 더 깊은 차원의 갈망인가? 자신의 거짓과 사기가 실패하거나 까발려지는 것을 미리 막아내고자 하는 과열되고 부단한 열망은 아닐까? 우리의 삶과 감정이 더 이상 서로 맞지 않을 때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위기를 극복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새로이 보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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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마녀 길벗어린이 문학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위니 겝하르트 가일러 그림, 백경학 옮김 / 길벗어린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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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마녀

 

오트프리트 프로이슬러 지음 백경학 옮김

 

아이가 일곱 살입니다. 그림책 위주에서 글밥이 많아지는 책들도 접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하나 둘 사고 있습니다. 우연히 선물 받은 노래기야 춤춰라를 아이가 일고 싶다고 해서 봤는데, 집중력이 대단합니다. 나는 조금 읽고 오늘은 여기까지 쉬고 싶은데, 아이는 끝장을 보려고 합니다.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에요. 그날 다 읽어야 후련하게 잠을 자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꼬마 마녀도 편하게 골랐습니다.

 

이런 책들 어떻게 알고 고르냐고요? 글 읽는 분들이 추천하는 것도 참고하기도 하고, 서점에서 고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점점 고르는 눈이 높아져서 그런지 읽어 보면 다 그런대로 재미있습니다(저 눈 높은 사람이에요. 하하).

 

꼬마 마녀는 마녀 중에서는 꼬마인 127살 마녀입니다. 마녀들은 나쁜 짓을 해야 마녀이지요. 나쁜 짓을 하기는 하지만, 마녀들의 규칙은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꼬마 마녀는 규칙을 어기고 마녀들이 모여 노는 곳에 발을 들입니다. 그러다가 벌을 받게 되고, 일종의 유예기간을 거쳐 평가받게 되기에 이릅니다. 꼬마 마녀는 이 기간 동안 착한 일을 하면서 지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괴롭힘을 당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죠. 땔감이 필요하면 나무에서 가지를 우수수 부러뜨려주기도 하고, 손이 빨개지도록 물건을 팔려고 장에 있는데 안 팔리면 팔 수 있게 해 주고,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으면 혼쭐을 내주고 말입니다.

 

그것을 룸품펠 고모에게 다 들키고, 여왕 마녀에게도 다 알려지지요. 그래서 뛰어난 마법을 부림에도 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꼬마 마녀는 모든 마녀의 마법 책을 불태워버립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마녀가 되지요. 그래서 세상에는 이제 착한 마녀만 있으니, 읽는 아이들도 무서워하지 않고 즐겁게 책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집단이 어떤 일을 행하는지도 모르고 무분별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집단의 행위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집단에 녹아들지도 못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 반발하지도 못하는 어디에도 끼지 못한 그립자입니다. 그런데 그림자이면 어때요. 나는 알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요. 집요하게 정리하고 싸울 준비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잘못된 집단 속에서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들 속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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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짝꿍 최영대 나의 학급문고 1
채인선 글, 정순희 그림 / 재미마주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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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짝꿍 최영대

 

채인선

 

 

채인선 작가의 글이라서 샀습니다. 일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이와 읽을 책을 고를 때,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종종 고릅니다. 아이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이 서로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라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4월의 어느 날 아침, 더벅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4월의 어느 날 아침, 더벅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4월의 어느 날이라니, 더벅머리의 한 남자아이라니, 첫 문장부터 가슴에 무언가 몽글한 게 올라옵니다. 시작을 알리는 때에 함께 등장하는 아이라는 존재, 싱그럽지요. 그런데 더벅머리입니다. 뭔가 정갈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존재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실문 너머의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면서 지내게 될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이는 말이 없고, 놀림을 받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놀림에도 반응이 없자, 괴롭힘은 더 거세어져 갑니다.

 

[그래도 영대는 울지 않았어요. 웃지도 않고요. 몇 번 노려 보긴 했지만 그것으로 다예요. 그래서 더 바보 소리를 들었어요. 남자아이들은 걸핏하면 영애 가방을 빼앗아 교실 밖으로 던져 버렸어요. 또 어느 때는 우유를 먹는 시간이었는데 일부러 그 애 팔을 흔들어 우유를 다 쏟게 한 일도 있어요. 그러고는 선생님께 이르는 거예요.

선생님, 영대가 우유를 엎질러 제 책상이 다 젖었어요. 혼내 주세요. ”

선생님. 영대를 복도로 쫓아내요. 냄새가 나요.”

하지만 영대는 가만히 있었어요. 그래서 더 바보 소리를 들은 거예요.]

-그래서 더 바보 소리를 들었다고?. 가해자의 시선은 항상 잔혹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더 괴롭히라는 것이 아닌데. 가해자가 가해자가 아닌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피해자인 척하는 가해자, 아니면 그냥 가해자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가해자일지도 모르겠어요. 씁쓸합니다.

 

그러다가 경주로 단체여행을 가게 되는데, 냄새나는 영대와 같이 가고 싶지 않았겠지요. 가서

 

이 애요. 엄마 없는 바보 말이에요라는 큰 소리에 어둠 속에서 으앙!”하고 울어버립니다. 그때에도 뭔가 잘못됐음을 아는 정도였지요. 시간이 흘러도 울음이 멈추지 않자, 겁도 나고 미안해집니다. 그 뒤로 아이들은 영대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도와줍니다. 그리고 영대도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지요.

 

이 글에서 사회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사회에서 피해자는 죽습니다. 회사, 조직, 집단을 그만두거나 벗어나면 다행이에요.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면 다행이에요. 그런데 죽습니다. 가해자가 자신이 가해자인 것도 모른 채 살다가 갑자기 피해자가 나타나고 현실에서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릴 때쯤에는 어느 것 하나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꾸어 버리면 너무도 무서운 일입니다. 사실은 내가 피해자였는데, 가해자가 나를 계속 괴롭히는 것으로 모자라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해자가 자신이 피해자라며 죽어버리기까지 한다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곳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얼른 놔야 합니다.

 

직장생활을 십 년 넘게 하다 보니, 이곳도 정치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갑니다. 역시 정치는 모르는 게 낫다 싶으면서, 정치하는 것들이란 하고 욕하다가 당하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렇게 안 살 거야라고만 한 채 당하고만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도망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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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다른 말 서정시학 시인선 166
홍우식 지음 / 서정시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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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다른 말

홍우식 시집

서정시학 시인선 166

 

뭐지?

각자의 시에 유사한 이이갸가 연이어 나온다. 그런데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냥 같은 소재들의 향연.

...

여러 시인의 음성을 짜깁기 해놓은 것도 같고.

거울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나와서 이상에 매료됐나 싶기도 하다.

근황이라는 시는 오타도 있다. [집중하데 된다.] 라니...

시적 표현이기보다는 그냥 서술이다. 시적 서술이기보다는 그냥 서술.

내가 홍우식이라는 시인을 몰라서 그런가?

어느 한 편도 소개하지 못하겠다. 다시 여러 번 읽어보아도 소개할 게 없다.

제목도 별로고.

어디 한 구절이라고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을 찾고 싶은데,

이게 안되면 해설 보면서라도 아하 하는데, 해설이 더 못 썼어.

왜 이렇게 적이 많이 나와.

첫 문장에만 직관적, 구체적, 존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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