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아빌루] 서평을 올려주세요
발라아빌루 - 어부 나망이 사막 소녀 랄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화영 옮김, 조르주 르무안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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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르 클레지오의 소설 <사막> 중 일부분을 그림책으로 엮은 이야기다. 불어를 알지 못하니 원작의 묘미는 순전히 번역자에게 맡겨야 하는데, 이 책의 번역, 정말 예술이다. 번역한 문장이 원작보다 낫지 않을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매끄럽고 아름답고 묘사가 뛰어나다.

사막에 사는 아이들은 어느 날 어부 나망이 들려주는 발라아빌루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 속 이야기 구조다. 옛날 옛적 가뭄으로 저주받은 왕국에서 그 저주를 풀기 위해 공주를 제물로 바친다. 하지만 공주를 사랑하던 청년이 자신을 포기하고 새로 변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공주를 구해낸다. 그 청년의 이름이 발라아빌루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마법 이야기와 이야기를 좀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일러스트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멋진 책.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눈을 감고 풍경을 떠올려본다. 사막이 펼쳐진다. 하지만 메마른 공간이 아니다.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촉촉한 풍경이다. 해가 질 무렵 여기저기서 불을 피워 올린다. 늙은 어부는 바닷가에서 불을 피워놓고 낡은 배를 수리한다. 고요하고 아름답다.

이야기가 끝난 후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바닷가, 소녀는 마지막 불이 사그라드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모닥불이 활활 타오를 때는 옛 이야기 속에 빨려들어갔다가, 불이 꺼지고 어둠이 내리자 비로소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떠난 고요한 바닷가의 풍경을 끝으로 책을 덮는다. 이야기가 끝나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던 랄라처럼 나도 한동안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르 클레지오의 소설을 그림책으로 구성하여 문체가 아름답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사막>. 이 책의 원작. 이 책에서 맛본 그의 문장이 원작에서 얼마나 더 수려할지 꼭 읽어보고 싶다.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리디아의 정원>.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도시로 나온 리디아가 정원 옥상에 꽃씨를 심으며 희망을 가꾼다는 이야기.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 모두의 마음이 따뜻하게 해줄 동화책.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묘사한 문장을 이해할 수 있고 옛 이야기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가볍게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불은 마법과도 같아서 달리고 소리 지르고 웃어 대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만듭니다. 그 순간 불꽃은 높이 솟아오르고 밝게 피어나며 요동치고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춤을 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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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신 엄마가 만든다] 서평을 보내주세요
수학의 神신 엄마가 만든다 - 수학으로 서울대 간 공신 엄마가 전하는 수학 매니지먼트 노하우!
임미성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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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이라곤 백점 한번 받아본 적 없고, 대입 시험에서도 수학은 한 문제도 풀지 않고 모두 때려맞춘 나로선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가 아직 어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이 커서 날 붙들고 수학에 대해 질문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벌써부터 하고 있다.

수학은 여자, 특히 문과 계통의 전공자들에게는 거의 쥐약이나 다름없는 과목이다. 학창시절에 그렇게 치를 떨 만큼 당했는데 졸업 후에 무슨 애정이 있다고 수학을 쳐다보고 싶을까. 헌데, 어쩔 수 없이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때가 있으니, 바로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 같던 지긋지긋한 수학을 애 때문에 또 보게 되다니! 헌데, 어쩌랴. 아이는 질문을 해대는데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순 없지 않나. 어쩔 수 없이 아이랑 함께 수학책을 보고, 틀린 문제에 대해선 나름 논리정연한 설명을 해줘야 하는 엄마의 의무를 실행해야 할 터, 이 책은 그런 면에선 구세주와 같다.

저자는 사교육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사람이자 아이를 수학영재로 만든 엄마다. 그래서 현장에서의 경험과 자신의 아이를 가르친 방식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아이가 수학영재에다 민사고 졸업생에 서울대 입학까지 했으니 일단 많은 사람들의 귀가 솔깃할 듯하다. 자식을 저렇게 잘 키웠으니 얼마나 특별한 교육을 시켰을까, 그 경험담 우리도 한번 배워보자고 달려들 만큼 저자의 배경이 매력적이다.

저자는 아이가 어릴 때는 놀려야 하지 않나 하는 나 같은 엄마들에게 유아 때부터 하루에 일정 시간이라도 앉아서 집중하는 버릇을 들여야 공부습관이 잡힌다고 일침을 가한다. 수학영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머리 좋은 아이들도 공부를 안 시켜서 못 하는 것이라고, 매일 반복해서 문제를 풀면 실력이 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이 책에는 유아 때 수학 교육을 어떻게 시작하는지부터 초등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수학 교과 내용과 지도법을 잘 소개하고 있다. 또 수학 교재별 특징과 재미있는 수학책 등도 소개하여 학부모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주고 있다. 아직 아이가 어려 모든 내용을 구체적으로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이의 초등 수학교육에 대한 맥락을 잡고픈 엄마들에게는 좋은 책임이 틀림없다. 또 수학이라는 특정 과목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공부 계획을 잡는 법, 공부 습관 다지는 법, 문제집 활용법, 오답노트 만드는 법 등은 어느 과목에 적용해도 통용되는 전반적인 공부법을 설명하여 유익한 내용이 많다.

물론 부모마다 교육관이 다 다른지라 저자의 생각과 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든 분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이 책을 선택했다면 수학만큼은 스스로 지도하겠다는 의지가 명백할 것이니 이 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마음에 들 것이다. 특히 아직 아이가 어린 부모라면, 아이의 호기심에 귀를 기울이고, 생활 속에서 수학적인 재미를 찾게 해주라는 유아수학 지도법은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싫어한다고 아이가 수학을 접할 기회까지 빼앗아선 안될 것이니 이제부터라도 아이가 생활 속에서 수학을 가깝게, 재미있게 여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초등 수학과정에 대해 고민하는 엄마들에게 구체적인 지도 지침을 전해준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일찍부터 아이의 공부습관을 바로 잡고 싶은 부모, 아이의 수학을 직접 지도하려는 부모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1,2학년 때 너무 점수에 연연하면 아이를 망치는 수가 있습니다. 엄마가 점수에 연연하면 수학적 감각을 쌓기보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외우다시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통하는 시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아이를 대해야 합니다. 나중에 요령으로만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수학에 질려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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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딸]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히틀러의 딸
재키 프렌치 지음, 공경희 옮김, 기타미 요코 그림 / 북뱅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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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낯선 제목의 동화책 [히틀러의 딸]. 히틀러라고 하면 흔히 떠올려지는 전쟁, 유대인, 수용소, 나치가 아닌 '딸'이 들어간 제목에서부터 굉장히 호기심을 생긴다. 히틀러의 딸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에게 딸이 있었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소설이니.

이 책은 초등학생 4명이 이야기게임을 통해 히틀러의 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야기 속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날 등교길에서 만난 초등학생 4명이 가상의 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게임을 하게 된다. 

안나는 히틀러에게는 하이디라는 숨겨진 딸이 있었고, 그 아이가 전쟁 중에 어떻게 생활하고, 생각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이야기해준다. 하이디는 아버지가 어떤 인물인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가정교사에 의지해 자란다. 그러다가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집 안 일을 해주는 라이브 부인을 통해 유대인들이 잡혀 간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을 위해 음식과 탈출장소를 마련하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가정교사도 떠나고 혼자 전쟁의 한가운데 남겨지지만 피난을 가는 한 가족을 따라가 새로운 이름을 얻고 새 삶을 살게 된다.

마크는 안나가 해준 히틀러의 딸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이후 전쟁의 책임과 어른들의 잘못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에게는 부모가 나쁘면 그 자식도 나쁜지, 그들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학살을 했을지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부모님에게는 고조할아버지가 원주민에게서 농장을 빼앗은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냐는 등의 질문을 던진다. 어른들은 마크의 질문에 귀찮아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마크의 궁금증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몰랐다.

이 책은 단순히 전쟁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람들은 옳은 일을 해야 하지만 자기가 옳은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알 것이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틀렸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등 마크가 궁금해했던 것들을 함께 생각해볼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아직도 지구촌 곳곳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 누가 누구를 단죄하는지, 누가 선이고 악인지 분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다툼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아이들은 무엇이 옭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지난 전쟁을 통해 현재를 살펴보며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평화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아이들이 전쟁에 대해 생각해보고, 전쟁이 무엇을 남기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된다.

-어른들의 입장에선 아이들이 어떤 관점으로 전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지 알게 되며 아이와 함께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왜 전쟁을 할까>
'작은 철학자' 시리즈. 전쟁에 대한 동화책을 읽은 후에는 이 책을 통해 좀더 전쟁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전쟁은 왜 사라지지 않는지. 정당한 전쟁은 있는 것인지 등 전쟁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히틀러의 딸]을 읽은 후 관련 도서를 검색해보다가 알게 된 책. 나치 치하에서 저항조직을 꾸리고 활동한 학생들의 이야기다. 광기 어린 전쟁의 이면에는 그 전쟁의 부당함을 알리고 맞서 싸운 이들도 있다는 것을,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전쟁에 반대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부당한 것에 맞서 싸우는 것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전쟁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초등학생 고학년 이상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바로 독일 사람들이 그랬잖니? 그들은 히틀러에게 동의하지 않았어, 아니 그가 저지르는 모든 짓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 하지만 그냥 지냈어. 그러다가 너무 늦어버렸지. 그들은 눈을 감고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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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여걸 열전] 서평단 알림
한국사 여걸열전 - 우리 민족사를 울린 불멸의 여인들
황원갑 지음 / 바움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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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걸, 여자 등이 들어간 제목을 가진 역사 책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 속 여성들의 힘이나 위치가 얼마나 미약했는지를 보여준다. '여걸'이 나올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서 그나마 이름 몇자라도 남겨 후대까지 전해진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해도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 그래서 그들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아는 것도 단편적일 수밖에. 

생각해보라, 누가 신화 속 웅녀의 삶을, 왕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도미 부인의 삶을. 남자 못지않게 성리학에 통달했던 임윤지당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고 생각할 것인가. 그나마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소서노, 선화공주, 문정왕후, 황진이 등은 대중적인 인지도나 크지, 물론 드라마 속 그들의 삶도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불과하나 그나마 그렇게 현실 속에 살아나 이름자나 남겨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것이나마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들의 삶을 총정리한 백과사전 같은 이 책이 더더욱 고맙고 그 가치가 크게 느껴진다.

일단 책은 600쪽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편집이나 텍스트의 분량도 대학 전공서적처럼 딱딱하기 그지없다. 내용도 그렇게 술술 읽힐 정도로 마냥 쉽지만은 않다. 사진 설명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정통 역사책처럼 어려운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선 논리정연하게,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이야기 부분에서는 흥미와 스릴이 느껴지는 것이, 기자와 소설가를 지낸 저자의 필력이 돋보인다. 저자는 역사적 배경과 논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일단 접어두자며 융통성을 발휘한다. 정통 역사책이 아닌 이상 여걸들의 삶에 대해 조명하면 됐지 결론 나지도 않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끝까지 파고드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에서 이름을 떨친 27명의 여걸이 시대별로 등장한다. 그나마 기록이 한두 줄이라도 남아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을 망라했는데 그것이 고작 27명이다. 백제 도미부인이나 왜장을 안고 강에 몸을 던진 주논개, 뛰어난 기생 황진이 정도나 일반 백성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왕족이라는 것은 기록의 한계 때문이다. 왕족이 아닌 상류층 여인으로는 백제 미인 한주, 자유연애주의자 박어우동, 빼어난 예술가 신사임당, 최초의 여장군 연수영 등이 있다. 익히 이름만 들어본 이들의 삶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통해 다시 보게 된 점이 많다. 신화 속 인물에 불과했던 웅녀나 허황옥의 존재, 우리 역사에도 연수영이라는 걸출한 여장군이 있었다는 뿌듯함, 남편이 바람 피워 질투했다는 신사임당의 모습에선 슬며시 웃음이 났다.

이 책은 여걸열전을 표방한 한국사 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풍부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그들 모두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갔기에 그 시대에 대해 할 말이 많았으리라. 정말 몇 줄 되지도 않은 그들의 삶을 재구성한 작가의 능력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때로는 역사책 같은 진중함이, 때로는 소설 같은 박진감이 묻어나는 한국사 여걸열전. 이렇게 방대한 자료와 분량으로 구성한 또다른 여걸열전이 나올 수 있을까. 더 이상의 여걸열전은 없을 것이라 감히 자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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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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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도 제목이지만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란 부제에 더 끌렸다. 대표 작가 18인이라, 누굴까? 설핏 보니 아는 이름보다 모르는 이름이 더 많다. 한 권의 저서라도 읽어봤어야 그의 집필 세계가 궁금할 터인데 모르는 이름이 더 많으니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없겠다 싶어 리스트에서 제외. 하지만 이참에 몰랐던 작가의 집필 세계도 살펴보면 좋지 않나 싶어 결국 구입했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한국의 글쟁이들은 어떻게 살까?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리지 않고선 먹고 살기 힘들다. 인세 수입으로 생활해야 하는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출판 시장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특히 미술 과학 철학 분야처럼 전문 분야의 글만 써서 먹고 산다는 건 아닌 말로 손가락 빨고 지낸다는 의미와 같다.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게 많은 세상에서 누가 그런 고리타분한 책들을 보냔 말이다. 나만 해도 그런데. 그래서 더더욱 그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이 책은 각계각층의 저술가 18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는 한비야 같이 의외의 인물도 있고, 공병호 구본형 이인식 김용옥 이덕일 같이 자기 분야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이들도 있고, 정재승 정민 같이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이들도 있다. 교수라는 탄탄한 직업을 바탕으로 대중과 호흡하는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학식은 뛰어나지만 배타적인 교수 세계에 편입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전업 작가가 된 이들도 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전업 작가들의 생활이었다. 김용옥 같이 앞날이 보장된 교수직을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가 된 이들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전업 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 진즉 알았지만 한국의 교수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배타적인지, 대중과의 소통을 무시하는지, 인문학의 위기 운운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은 잘 모르는지를 이 책을 통해 좀더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전업 작가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글을 쓰는 이들과 달리 오로지 글을 써서 버는 수입만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인세 수입이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다. 이른바 전문 서적으로 분류되는 책들이라 대중적인 관심도 덜하고 인지도도 떨어져 판매 수입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글을 쓰고 있다. 평생 그 분야만 연구해왔기에 끝까지 가는 것이다.

전업이냐 아니냐는 나에게 중요한 분류 기준일 뿐 이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니다. 그저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고, 독자들과 소통해서 행복하고, 다음 책을 준비할 수 있어서 행복할 뿐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안타깝다.

강의보다 글 쓰는 게 행복해서 학교를 뛰쳐나온 김용옥 같은 이는 생존을 위해 방송을 해야 하고,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까지 할 수 있는 어학능력으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원전을 직접 읽고 글로 쓸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미술사학자인 노성두 같은 이의 한 해 인세 수입은 2천만 원 안팎이란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니 누가 ‘나는 글만 써서 먹고 살겠소’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이들이 존경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번역서로만 가득했을 출판 시장에, 우리에게도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의 훌륭한 책이 있다는 것을 소리치게 해줘서 고맙다. 잘 팔릴 책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글을 써주는 그들이 고맙다. 그들의 노력만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내가 얼마나 독서 편식이 심한지 새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좋아한다 자부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이 생겼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양질의 책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소개받으니 가슴이 뿌듯하다.

이 시대 최고의 저술가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저서가 담긴 이 책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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