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여걸 열전]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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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여걸열전 - 우리 민족사를 울린 불멸의 여인들
황원갑 지음 / 바움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여걸, 여자 등이 들어간 제목을 가진 역사 책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 속 여성들의 힘이나 위치가 얼마나 미약했는지를 보여준다. '여걸'이 나올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서 그나마 이름 몇자라도 남겨 후대까지 전해진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해도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 그래서 그들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아는 것도 단편적일 수밖에.
생각해보라, 누가 신화 속 웅녀의 삶을, 왕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도미 부인의 삶을. 남자 못지않게 성리학에 통달했던 임윤지당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고 생각할 것인가. 그나마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소서노, 선화공주, 문정왕후, 황진이 등은 대중적인 인지도나 크지, 물론 드라마 속 그들의 삶도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불과하나 그나마 그렇게 현실 속에 살아나 이름자나 남겨 대중들에게 각인되는 것이나마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서 이들의 삶을 총정리한 백과사전 같은 이 책이 더더욱 고맙고 그 가치가 크게 느껴진다.
일단 책은 600쪽이 넘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편집이나 텍스트의 분량도 대학 전공서적처럼 딱딱하기 그지없다. 내용도 그렇게 술술 읽힐 정도로 마냥 쉽지만은 않다. 사진 설명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그렇다고 정통 역사책처럼 어려운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선 논리정연하게,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된 이야기 부분에서는 흥미와 스릴이 느껴지는 것이, 기자와 소설가를 지낸 저자의 필력이 돋보인다. 저자는 역사적 배경과 논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일단 접어두자며 융통성을 발휘한다. 정통 역사책이 아닌 이상 여걸들의 삶에 대해 조명하면 됐지 결론 나지도 않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끝까지 파고드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역사에서 이름을 떨친 27명의 여걸이 시대별로 등장한다. 그나마 기록이 한두 줄이라도 남아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을 망라했는데 그것이 고작 27명이다. 백제 도미부인이나 왜장을 안고 강에 몸을 던진 주논개, 뛰어난 기생 황진이 정도나 일반 백성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왕족이라는 것은 기록의 한계 때문이다. 왕족이 아닌 상류층 여인으로는 백제 미인 한주, 자유연애주의자 박어우동, 빼어난 예술가 신사임당, 최초의 여장군 연수영 등이 있다. 익히 이름만 들어본 이들의 삶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통해 다시 보게 된 점이 많다. 신화 속 인물에 불과했던 웅녀나 허황옥의 존재, 우리 역사에도 연수영이라는 걸출한 여장군이 있었다는 뿌듯함, 남편이 바람 피워 질투했다는 신사임당의 모습에선 슬며시 웃음이 났다.
이 책은 여걸열전을 표방한 한국사 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풍부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그들 모두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갔기에 그 시대에 대해 할 말이 많았으리라. 정말 몇 줄 되지도 않은 그들의 삶을 재구성한 작가의 능력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때로는 역사책 같은 진중함이, 때로는 소설 같은 박진감이 묻어나는 한국사 여걸열전. 이렇게 방대한 자료와 분량으로 구성한 또다른 여걸열전이 나올 수 있을까. 더 이상의 여걸열전은 없을 것이라 감히 자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