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일 : 9월 16일
영화를 보면 좋을 사람 : 설레는 연애 감정을 느끼고픈, 적당한 농담에 즐거워하며 기분 좋아질 영화를 찾는다면!
거의 백만년 만에 영화관을 찾을 것 같다. 눈에 띈 영화가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다. 기분 울적하고 마땅히 볼 만한 게 없을 때는 로맨틱코미디가 딱이다. 그래서 선택했고, 잘 봤고, 후회 없다. 울적한 기분은 사라지고, 몇 시간 동안은 즐거웠으니. 10월 말까지인 지금까지도 영화는 잘 되고 있는 듯. 내가 재밌으면 다들 재밌는 거다. 난 단순하니까. ㅎㅎ
시라노. 배고픈 연극쟁이들이 만든 연애대행사다. 짝사랑에 괴로워하는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준다. 의뢰인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상대방과의 대사, 상대방의 뇌리에 강한 인상 남기기, 적절한 밀고 당기기, 갑자기 연락 끊기, 우연한 만남 등 모든 것은 철저히 각본에 의해 이루어진다. 영화의 초반부터 한 의뢰인의 의뢰로 한 커플을 탄생시키는 시라노 구성원들의 움직임과 작업 스타일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등장한 펀드 매니저 상용(최다니엘). 상용은 교회에서 만난 희중(이민정)과의 사랑을 이루어달라고 의뢰하는데, 희중은 시라노의 대표 병훈(엄태웅)과 오래전 헤어진 여인. 병훈은 떨떠름하게 의뢰를 맡지만 작전을 사사건건 방해하며 위기로 몰려 간다. 하지만 병훈의 잘못된 작전이 제대로 먹혀 들어 상용은 희중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병훈은 희중과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희중은 상용과 병훈을 만나며 새로운 사랑과 옛사랑 사이에서 잠시 갈등을 겪고, 병훈은 희중에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병훈은 프랑스 유학 시절, 희중을 믿지 못해 이별을 고했고 그로 인해 상처받은 희중은 병훈에게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이런저런 곡절 끝에 병훈은 희중을 보내주는 것이 가장 큰 사랑임을 깨닫고 상용과 희중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한다. 시라노는 해체되고 다시 극단의 연출자로 돌아간 병훈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다가온다. 이것이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다.
영화는 초반에 한 의뢰인의 의뢰를 진행하면서 스피디하게 진행되어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만들지만 중반 즈음에서는 조금 늘어지는 감이 있다. 특히 병훈을 좋아하는 민영(박신혜)이 카페에 나타나서 병훈의 애인 행세를 하며 희중과 대립하는 장면에선 꽤 지루해져서 저 지루한 장면이 언제 끝나나 싶기도 했다. 그 이전까지는 희중과 병훈의 연애시절 회상과 현실이 교차되는 편집이나 묘한 감정선 등이 잘 그려졌다 싶었는데 그 카페 신은 왜 그렇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시라노는 <시라노 드 벨쥬락>이라는 프랑스 희곡에서 따왔다. 연극으로도 공연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극중 병훈이 극 마지막에 연출한 연극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으로 대신 연애편지를 써주는 시라노에 대한 이야기로, 병훈의 캐릭터와 잘 겹쳐진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지만 정말 희중을 사랑하는 상용의 진심을 알게 된 후 그를 도와 희중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해주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계속되는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지리라 기대했건만 예상과는 다른 결론. 나라면 다시 만난 사랑을, 헤어진 후에도 계속 가슴에 남는 사랑을 다시 놓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영화에서도 <시라노 드 벨쥬락>의 결론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는다. 결론이 무엇이냐는 상용의 질문에 직접 영화를 보라고만 할 뿐. 그래서 나 역시 아직 결론을 모른다. 굳이 찾아보지도 않았다. 마음 한켠에 궁금증을 남겨두고 나중에 내가 직접 확인하려고.
각 배우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살려냈다. 엄태웅, 드라마 <마왕>과 <선덕여왕>에서 조금은 오버액션하면서 진지했던 역할이 영화에서도 잘 살아난다. 적당히 제멋대로이고, 다혈직적인 병훈의 역할에 잘 어울렸다. 이민정, <꽃보다 남자>에서 처음 본 배우인데 이 여인네가 이렇게 예뻤던가 싶을 정도로 너무 예쁘게 나온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그녀의 얼굴이나 미소가 너무 아름다워 눈을 떼지 못할 지경. 하지원의 뒤를 잊는 로맨틱코미디의 얼굴이 될 듯하다. 최다니엘, 어벙하면서도 사랑에 서툴고 다혈질인 상용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다음에는 스릴러나 범죄 영화 쪽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재된 다른 모습을 잘 살려낸다면 배우로서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을 듯하다.
조연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박철민, 내가 좋아하는 배우. 그의 코믹한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도 제대로 먹혀 들어간다. 권해효, 정말 우정출연 정도의 분량으로 출연하지만 그다운 넉살과 코믹함으로 악덕 사채업자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김지영, 와인 바 사장으로 나와 핵심을 찌르는 대사 몇 마디 하며 주인공들의 맘을 좌지우지한다. 묘하게 코믹하고 진지한 모습이 김지영과 잘 어울린다. 송새벽, 그를 처음 보는데 이미 많이 알려진 얼굴이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해서 큰웃음을 안겨준 얼굴. 더듬더듬 책을 읽는 듯한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정말 배꼽 잡고 쓰러졌다.
이렇게 다양한 얼굴과 캐릭터들이 버무려낸 유쾌한 로맨틱코미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웃자.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