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저 괴물에 맞서기 위해 우리에겐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 : 화학적 거세와 몸 관리

 

화학적 거세법으로 알려진 법의 정식 제명은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다. 이것은 지난 2010년 6월 29일 국회에서 통과되었을 때의 제명이며, 발의 당시에는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이었다. 법안을 발의한 2008년 9월 8일의 제명과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제명 어디에도 화학적 거세라는 표현은 없다.  

이 법이 화학적 거세법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9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두순 사건에서 비롯한다. 당시 판사는 음주 상태를 ‘정상 참작’하여 가해자 조두순에게 검사의 구형을 감형해서 선고했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론은 들끓었고, 화학적 거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보다는 지지하는 의견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 법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이 법의 ‘제1조(목적)’와 관련이 있다.   

 

   
 

제1조(목적): 이 법은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상습적 성범죄자 중에서 비정상적인 성적 충동이나 욕구를 억제하기 어려운 성도착증 환자로 판명된 자에 대하여 화학적 거세 치료 요법 및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법제사법위원회 2010, 41. 법안을 제출했을 당시의 목적) 

 
   


  
첫 법안 발의자인 박●식은 “잠재적인 피해자인 우리 어린이들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하여 아동 성폭력범에게는 ‘처벌보다는 치료’를 해주거나 양자를 병행하는 것이 재범률을 낮추는 데 효과가 있다”라며 이 법을 제안했다(법제사법위원회 2010, 2). 그러면서 화학적 거세의 법제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 법은 최초 발의 당시인 2008년 9월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2009년 조두순 사건이 발생하면서 화학적 거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김길태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그 후 김수철 사건이 2010년 6월 초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달 말 통과되었다.     


 


여론 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http://www.realmeter.net)에서 2010년 6월 17일 19세 이상 성인 남녀 700명을 가구 전화 자동 응답으로 조사한 결과.
이 결과에 따르면 물리적 거세(38.3%)와 화학적 거세(37.3%)를 합쳐 75.6%가 거세에 찬성하고 있다.
이미지 및 자료 출처: http://goo.gl/ZSv7G 2010.11.16. 접근 

 

이 법의 공식 약칭은 “성충동 약물치료법”이다(법무부 블로그 참고). 이유는 최초 발의안과 국회에 통과한 법안 사이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두드러진 차이는 ㄱ. 피해 경험자의 나이를 13세에서 16세로 확장한 것, ㄴ. ‘화학적 거세 치료 요법 및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성충동 약물치료’로 변경한 것, ㄷ. 가해자의 동의 조항을 삭제하고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 또는 감정 의견만으로 화학적 거세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점이다. 동의 조항은 이 법을 검토했을 당시 중요한 이슈였고, 동의 조항이 있어 법안이 헌법의 한계 내에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나는 아동 성폭력 가해자에게 화학적 거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을 때부터 크게 다섯 가지 이유로 반대했다. 첫째, 화학적 거세를 하면 성폭력을 줄이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은 남성의 성욕과 성폭력의 원인을 생물학적 필연이라고 가정한다. ‘남성의 성욕은 너무도 강하고 그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따라서 화학적 거세 조치라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남성 성욕 신화의 결정판이자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하는 논리다.  

둘째, 화학적 거세는 소위 ‘여성’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약물을 투여한다. 이는 여성은 무성적이거나 호르몬 비율상 ‘여성’호르몬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성욕이 없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비난하고 금기하는 논리와 동일하다.  

셋째, 성관계의 측면에서, 화학적 거세는 발기불능 상태를 지향하는데 이것은 남성 주도의 삽입 성행위만을 정상적인/규범적인 섹슈얼리티로 가정한다. 남성의 성욕/(이성애적) 성관계만을 규범으로 삼는 논의다. 그렇다면 흡입을 욕망하는 남성은 성폭력 가해를 하지 않을까? 이런 식의 논의는 성폭력의 의미를 매우 협소하게 가정하며, 성기를 매개하지 않는 많은 종류의 성폭력을 은폐한다.  

넷째, ‘여성’호르몬 투여를 통한 남성의 성욕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면, 그리하여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면 mtf/트랜스젠더 여성은 화학적 거세 논의에서 어떤 존재가 되는 걸까? mtf는 성욕이 없다는 것일까? 아울러 호르몬 조치/화학적 거세는 성폭력 가해를 의료 질병으로 이해하는데, 이런 이해는 트랜스젠더를 치료해야 하는 대상으로, 성전환을 질병 치료 과정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mtf/트랜스젠더는 결국 화학적 거세를 당한 남성, 성욕을 잃은 남성, 그리하여 여전히 남성이란 뜻일까?  

다섯째, 이것저것 다 떠나 남성 성욕의 신화가 여전하고 위계 권력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화학적 거세가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없다(관련해서는 김현영의 글이은심의 글을 참고해도 좋다, 이 글에서 다루지 않고 있는 이슈를 잘 다루고 있다).

나는 이 법과 관련해서 위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정도의 이유 중, 특히 네 번째에 대해 집중해서 고민했다. 화학적 거세와 트랜스젠더 이슈는 어떤 관계일까? 이 법을 시행하게 되면, 트랜스젠더는 어떻게 되고, 무엇을 보호받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앞서 길게 논의한 내용이 화학적 거세 논의와 관련 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는 이 깨달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풀어가고자 한다. 덧붙여 법안의 정식 명칭과 공식적인 약칭이 “성충동 약물치료법”임에도 나는 이 법을 화학적 거세법으로 부르고자 한다.  

법안 심사 보고서에 따르면 화학적 거세를 성충동 약물치료로 수정한 이유가 “수치심과 거부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법제사법위원회 2010, 17). 하지만 수치심은 누구에게 주는 수치심일까? 이 법의 대상인 성폭력 가해자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다는 것인지, 성폭력 가해자와 동일한 외부 성기를 가진 남성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거부감 역시 마찬가지다. ‘성충동 약물치료’라고 용어를 변경했다는 것이 화학적 거세를 하지 않고 다른 방안을 찾겠다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나는 공식적인 약칭과는 별도로, 이 글에서는 이 법을 화학적 거세법으로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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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2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폭력범죄자처럼 타인에게 평생 고통스러운 피해를 가하는 자들에게 화학적 거세 찬성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