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당신은 환자이니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 사회 의료화, 젠더 규범화

 

다른 한편, 현미경의 발명과 세균의 발견은 의학이 인간 생활을 구체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보이는 것은 곧 사실이며, 사실은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는 근대의 시각 경험은 질병을 볼 수 있어야 했다. 즉 질병은 어떤 형태로든 모습을 갖췄을 거라고 가정했다. 현미경의 발명은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을 뿐만 아니라, 세균의 구체적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바뀌었다. 이전까지 질병에 대한 치료는 이상한 냄새를 제거하자거나 쥐를 없애면 된다는 식의 다소 막연한 언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세균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눈에 보이는 세균을 박멸하는 데 화력을 집중”(신동원 2002, 347)하자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질병은 세균으로 생기므로 세균을 관리하면 질병을 관리할 수 있다는 세균설은 생활양식의 변화를 초래했다. 세균설의 영향력은 2009년, 한국 사회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를 휩쓸었던 신종플루만 떠올려도 쉽게 알 수 있다. 신종플루로 몇 명이 죽었다는 식의 기사가 연일 언론에 보도됐을 때 대책으로 나온 것은 예방 접종과 함께 위생 용품 및 항균 제품을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위생 용품과 항균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많은 건물들이 건물 입구마다 이 제품을 비치했다. 어떤 곳은 입구에 항균 제품으로 손을 씻기 전에는 출입할 수 없다는 경고문을 걸어두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모두 구체적인 형태의 세균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세균을 죽이면 병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밑절미 삼는다.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이미지.
현미경과 촬영 기술의 발달은 질병을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세균의 모습으로 재현한다.
이미지 출처: http://henseed.co.kr/customer/channel_read.asp?page=3&idx=16 2010.11.08. 접근
 


현미경의 발명과 세균설은 물의 위생, 주거 위생, 화장실의 청결, 도시의 생활 상태 등 모든 부분에 의료가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관리되지 않은 지저분함은 전근대의 상징이었고, 청결과 위생은 근대의 상징이었다. 이런 인식은 1800년대 후반의 조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외국 사람이 (……) 말하기를 ‘조선은 산천이 비록 아름다우나 사람이 적어서 부강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도 사람과 짐승의 똥오줌이 길에 가득하니 이것이 더 두려운 일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어찌 차마 들을 말인가? (김옥균, 신동원 2006, 102에서 재인용)

 
   

  

사실 이전까지 조선의 거리에서 똥오줌이 가득한 모습은 특별할 것 없었다. 이것은 조선만이 아니라 근대 이전 사회의 일상 풍경이었다. 하지만 세균설이 전 세계(식민지?)로 퍼지고 위생과 청결이 질병을 예방하는 필요조건이 되면서 이전의 관습은 불결과 구습, 전근대의 징표로 재해석되었다. 그것은 타파해야 할 악습이었다. 그래서 공중 화장실을 만들었고 노상방뇨를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보고 계몽했으며, 가가호호 위생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위생 경찰 제도를 만들었다(신동원 2002, 351). 더러움은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 낙인이었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위생과 청결을 충분히 관리하지 않은 무지와 게으름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 인구 관리 정책과 함께했다. 건강한 몸을 유지해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여 국민국가를 재생산하는 것이 주요 과제인 사회에서 청결은 인구 정책의 핵심이었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는 것을 막아야 했다. 따라서 청결과 위생에 국가의 개입은 필연이었다. 유길준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정부가 위생에 관한 법을 정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고, 만약 소홀한 자가 있을 때에는 엄한 법으로 다스려서 도로와 집안을 청결하게 하면, 충분히 전염병의 유행하는 형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신동원 2006, 112에서 재인용)

 
   

  

위생과 청결은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하는 일이었으며, 위생 경찰은 집집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위생 상태를 확인했다. 위생 경찰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위생 상태가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그것을 국가의 존립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로 보았다. 개인의 건강은 곧 국가의 건강이며, 불결한 위생 상태는 곧 국가에 위해를 가하는 반역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런 식의 개입은 주로 여성의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 집이 너무 습하거나 지나치게 건조하면 세균이 쉽게 번식한다는 말, 화장실 변기, 주방, 욕조 등에서 세균이 많이 산다는 식의 언설은, 성역할을 자연 질서로 삼는 사회에서 여성의 행동을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건강한 국민 재생산 역시, 여성의 출산권을 관리하는 기획이었다. 다른 말로 위생과 청결은 여성의 몸을 관리 통제하는 동시에 성역할을 강화하는 장치기도 했다. 과학적(의학적) 가사 노동이나 ‘과학적’ 출산이란 말은 모두 이런 기획의 다른 판본이다. 즉 가사 노동이 과학적인 노동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위생과 청결을 요구하는 과학적 방법에 따라 가사 노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국가는 의료화/과학화를 통해 집안 곳곳에 개입했고, 여성을 ‘집안의 천사’로 머물도록 했다.

이런 논리는 정확하게 프렉을 향한 혐오, 퀴어나 자위행위를 향한 혐오와 동일하다. 프렉이나 퀴어는 그 자체로 병든 몸이자 병을 보유하고 있는 몸으로 해석되었다. 퀴어나 프렉은 사회에 위협을 가할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 재생산에 기여하지 않거나 못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나치가 독일 아리안 민족의 남성성을 강한 남성으로 형성하는 과정에서 동성애자 남성, 여장남자 혹은 트랜스젠더 여성을 박해한 것은 일종의 수순이었다. 비규범적인 존재, 퀴어가 병든 몸으로 형상되는 상황에서 퀴어는 독일 민족의 구성원일 수 없었다. 따라서 나치의 폭력은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 국민국가 윤리에 따른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의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에서 동성애를 비난하고,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발화를 하며, ‘우리’를/나를 인간의 범주에서 추방하려 한 시도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나치가 독일 민족 범주를 구성하고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서구 근대 제국주의 국가가 호모섹슈얼리티/퀴어를 ‘원시인/나약한 몸’으로 취급하며 정신병원으로 추방한 것처럼, 규범과 비규범이라는 구분은 근대 이래 꾸준히 나타난 현상이다.  

 

3-3. 젠더를 관리하라, 외부 성기를 보호하라
   

   
 

자기의 생명과 몸을 정직한 방법으로 보존하며, 남의 방해를 막아내고 불법 침범을 피해, 건강하고 안락한 상태를 보존해 가지는 것 (……) 신체의 권리는 국법을 범하지 않았을 때 자유롭게 행동하며, 밖으로부터 오는 상해를 방비할 수 있을 따름 (……). (유길준, 신동원 2006, 110에서 재인용)


현대 사회에서 의사는 개인의 질병을 관리 통제하고, 한 개인이 정말 아픈지를 판단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 의사는 자신을 찾은 고객의 말을 듣고 그 말의 진정성을 따져 묻는다는 점에서 형사/검사 역할을 하고, 그 말을 바탕으로 처방한다는 점에서 재판장 역할을 하며, 고객이 회복을 위해 환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감시자 역할을 한다. 의사는 개인의 건강을 판단하는 최종 결정권자로서의 지위와 권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실천한다. 이것은 근대 의학이 과학적 지식임을 입증하는 데 성공하며 얻은 성과이자, 근대 국가가 자신의 존립 근거를 의료 지식에 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의학이 결정하는 것은 건강만이 아니다. 현대 의학은 사람들이 의사 역할이라고 여기는 범위 너머로 제 영역을 확장했다.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하는 모든 행동을 의학이 관여한다. 당신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혹은 다른 어떤 범주인지를 판단하는 것 역시 의학의 역할이다. 실제로 근대 이후의 의학은 퀴어/호모섹슈얼리티를 병리화한 것처럼, 소위 정체성이라고 불리는 젠더 범주와 섹슈얼리티 범주를 의학의 진단 범주로 포섭했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그것은 의학에서 당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며,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젠더는 타고난 것이지 의학과는 무관하다’고? 그렇다면 (당신이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는 가정하에서, 현재의 몸으로) ‘나는 주민등록번호상의 젠더가 아니라 다른 젠더다’라고 주장하며, 해당 관청에 가서 성별 변경을 요청하면 된다. 결과는? 아마도 정신병원에 구금되거나 트랜스젠더라는 진단서를 요청받게 될 것이다. 젠더는 의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며, 젠더를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의료 진단서 제출이다. 그리고 의학의 맥락에서 젠더의 핵심은 외부 성기다.

근대 의료 기술이 프렉이나 퀴어 등을 정신 병리화하며 표준적인 몸을 만들려고 애쓸 때 핵심은 외부 성기였다. 최소한 1800년대 중반부터 개인의 젠더를 결정할 때 의사가 확인한 신체 부위는 외부 성기였다. 물론 시대에 따라 난소가 있으면 여성, 없으면 남성으로 판단하거나, 출산할 수 있으면 여성, 출산할 수 없으면 남성으로 판단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규범적 이성애 남성 성행위(즉 삽입 섹스)를 할 수 있는 음경이면 남성, 그렇지 않으면 여성으로 판단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의학에서 젠더를 판단하는 기준은 외부 성기, 더 정확하게는 음경이다. 정신과 의사가 트랜스젠더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mtf라면 음경에 대한 감정을, ftm이라면 월경과 가슴에 대한 감정과 음경 선망을 묻는 것이다. 이 테스트에 통과하려면 기존의 ‘성적’ 기관에 대해 강한 혐오를 표현해야 하고, ftm은 음경을 강하게 바라야 한다. 표현 강도가 강할수록 진정성도 강하게 확인된다. 한국의 대법원 역시 공부상의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요건 중 하나로 외부 성기 재구성 수술을 규정하고 있다.
  

 

존 머니(John Money).
그는 데이비드 라이머를 진단한 의사일 뿐만 아니라, 인터섹스의 젠더 결정과 관련한 의료 지침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게서 젠더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외부 성기 형태와 양육 환경이었다. 그는 이성애 남성으로서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외부 성기를 지니면 남성, 그렇지 않으면 여성으로 결정하는 지침을 만들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2.hu-berlin.de/sexology/GESUND/ARCHIV/GIF/C_MONEY.GIF 2010.11.16. 접근
 


데이비드 라이머가 겪은 사건은 이런 맥락에서 발생했다. 라이머가 여성으로 살아야 했던 이유는 사실상 음경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의사 존 머니는 라이머를 여성으로 살도록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라이머의 의중은 무시되었다. 아니, 라이머의 의중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라이머의 주장이 아니라 의사인 머니의 주장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후 라이머가 다시 남성으로 재성전환 수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의중 때문만은 아니었다. 태어난 직후 남자로 지정받은 라이머였기에 가능했다. 라이머가 머니에 의해 젠더를 재지정받은 경험이 없었다면, 즉 태어났을 때부터 여자로 지정받았다면 그때도 라이머의 성전환 결정이 그렇게 빨리 받아들여졌을까?

라이머의 경우처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젠더를 인정하는 주체는 ‘내’가 아니라 의사다.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점을 증명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정신과 의사가 나의 이름 옆에 “성 주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 GID)”라는 정신질환 진단 편람의 항목을 기재한 진단서를 제시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아파서 결석/결근해야 할 때,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진술이 아닌 병원 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의료 식민화된 삶이며 우리의 몸은 의료화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읽을 수 없는 몸이다.(젠더-외부 성기-의료 기술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루인의 근간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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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5-22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료 식민화가 된 줄 몰랐네요. 그저 전국민이 건강노이로제에 걸린 것만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