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적시민권과 섹슈얼리티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던진 질문들

SBS에서 방송중인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드라마 안팎으로 소동을 겪고 있다. 드라마 내에서는 사랑에 빠진 두 명의 게이 커플이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해서 눈물을 쏙 빼놓더니 이젠 금방이라도 결혼식을 올릴 분위기이고, 드라마 밖에서는 동성애를 미화하는 드라마를 당장 중단하라는 요구와 함께 이 나라의 청소년들을 게이로 만든다는 비난 광고가 일간지에 실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방송에서 게이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국민 드라마라고 불릴 만큼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던 <주몽>에서도 게이로 의심되는 캐릭터가 등장했지만,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지는 않았다. <개인의 취향>에서는 아예 남자주인공이 게이인 척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를 오해한 다른 남자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지는 않았다. 비록 여자가 남장을 했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그에게 사랑을 느낀 남자주인공들이 모두 자신이 동성애자인건 아닌지를 고민하다가 결국은 남자라도 좋다고 결론을 내리고야 마는 <커피프린스 1호점>이나 <성균관 스캔들>과 같은 드라마도 있는데, 왜 유독 <인생은 아름다워>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전 드라마들과 <인생은 아름다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게이 커플인 태섭과 경수가 이미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사이라는 점과 이 드라마가 가족드라마를 표방한다는 부분에 있다. 성정체성을 모호하게 에두르고 있거나 자신이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를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단계도 아니다. 그들은 이미 결혼도 했다가 이혼을 택했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커밍아웃을 할 만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확고하다. 이런 두 사람이 시청자들에게 들이미는 것은 단지 ‘나를 동성애자로 인정해주세요’ 정도가 아니라 ‘우리들의 사랑을 인정하라’는 매우 구체적인 요구다. 이성애자 여성들의 친절한 게이 친구로서가 아니라, 예술적 재능과 지략이 넘치는 게이 보좌관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당신과 나란히 앉아 함께 숨 쉴 바로 그 옆자리를 요구한다. 이러니 김수현 작가에게 태섭과 경수가 나오면 순간 시청률이 떨어진다며 둘을 외국으로 보내면 안 되냐고 했다는 방송국의 요청은 농담이 아닐 것이다. 이들 게이 커플의 요구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저 조용히 채널을 돌려 회피할 수밖에. 아니면 입 닥치고 다시 얌전히 벽장 안으로 들어가라고 종용하거나. 
 


그동안 우리 사회는 동성애를 재현하는 것 자체를 회피해왔다. 그렇기에 재현된 동성애를 회피하는 경험조차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허구임을 뻔히 아는 드라마에서의 설정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드라마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현실을 과연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거리에서 오다가다 어깨를 부딪치고 집에서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현실 속 동성애자들을 대체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 동성애자는 특정 순간에만 잠시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비루하게든 고상하게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 것을 그토록 오랫동안 몰랐던 것일까. 2010년, <인생은 아름다워>는 한국 사회에 성적시민권을 이렇듯 불쑥 던져 놓았다.


동성애자로서 시민이 된다는 것

성적시민권(Sexual Citizenship)이란 단어는 사실 좀 낯설다. 그리고 왜 시민권이란 말로 모두 포괄할 수 없는지 궁금할 수 있다. 이것을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은 장면을 떠올려보면 된다. 동성애자를 비난할 때 사람들이 가장 잘 쓰는 표현은 ‘이성애자답지 못하다’라든지 ‘이성애자가 되라’와 같은 말이 아니다. 흔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거나 ‘인간답게 행동해라’와 같은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이런 무의식적인 반응은 이성애를 동성애와 대립되는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접근하고 있지 않음을 반영한다. 이성애는 철저한 자기 증명 없이도 안전하게 자신의 정상성 여부를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위치에 간단히 등극하고, 동성애는 처절하게 인간/비인간의 격전지로 내몰린다. 즉 시민권은 보편적 인간을 상정하고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다루는 외형을 취하고는 있지만, 동성애와 동성애자는 그 보편성에서 빗겨나가 있는 것이다.

앞서 시민권은 완전히 평등한 그리고 독립적인 개인이 (국민국가 안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가지는 권리와 의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이상적이고 이론적인 것일 뿐, 그냥 얻어지지는 않았다. 현실에서는 피부 색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출신 민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성별의 차이, 좀 더 정확하게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며 훼손당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권리 주체임을 인정받기 위해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성적시민권은 그동안 무시되어 왔던 섹슈얼리티와 시민됨을 부각하고 더욱 본격적으로 연결하는 개념으로 등장했다. 1993년에 데이비드 에반스(David T. Evans)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고, 이후 영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게르트 헤크마(Gert Hekma)는 “성적시민권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이어주고, 성적 표현의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성적인 프라이버시는 개방된 성문화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동성애자에게 사귀는 애인이 있을 경우, (성관계는 분명 자신의 침실에서 갖겠지만) 그 애인을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인터넷과 신문, 잡지와 같은 미디어나 술집과 거리 등의 공적 공간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 몸의 자율성, 제도적 포함의 권리를 비롯한 공간에 대한 주제까지 모두 성적시민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유로운 성적 표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 하면, 종종 그나마 (관용의 마음으로) 차이를 포용하려던 사회 주류의 인내심에 대한 도발로 오해하곤 한다. 특정 섹슈얼리티는,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특정 섹슈얼리티를 제외한 모든 섹슈얼리티는 사회적 범죄와 종교적 죄악 사이에 놓여 있다. 위험하거나 타락한 그 무엇으로 동성애, 양성애, 그리고 성전환 등이 언급되었고, 감시와 처벌, 통제와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성적 실천은 곧 사회적 무질서로 받아들여진다. 그리하여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사회적 윤리를 세우고, 건강한 이웃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실천으로 명분을 쌓는다. 그런 까닭에 성적시민권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일은 격렬한 논쟁의 미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성적시민권은 또한 매우 분명하게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시민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성애의 가치를 믿는 것과 이성애 중심적인 규범을 세워 놓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공공연하게 모욕과 저주를 퍼붓는 일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이런 문제제기는 어떤 가치관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살 것인가, 그 사회는 시민들의 어떤 삶의 결을 담아낼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으로까지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성적시민권은 단지 성적 시민이 되기 위한 인정 투쟁이 아니다.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만큼의 시민이 되게 해달라는 주문도 아니다. 동성애자로서 시민이 된다는 것이 가장 먼저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 확실히 ‘이성애자로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성애자인 척해서 얻는 것은 필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것은 시민됨에 있어 강력하게 작동하는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저항과 해체를 의미한다.


*


참고문헌

esac, <레즈비언은 시민인가-한국 사회의 성적시민권에 관한 논의>, 미간행자료집 Gert Hekma, Sexual Citizenship, 2007.
http://www.glbtq.com/social-sciences/sexual_citizenship.html (검색일: 2010년 10월 1일)
서동진, “성적 시민권과 비이성애적 주체”, <한국의 소수자, 실태와 전망>, 한울아카데미, 2004.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1-05-20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성애자 자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정의 고민은 이웃의 눈이 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