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성, 노동, 가족, 그리고 성노동


 

인간의 활동을 노동이라고 명명하는 일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제이다. 일찍이 리카도는 인간의 노동이 교환가치의 척도일 뿐만 아니라 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원천이자 기원이라고 했고, 마르크스는 노동이 인간이 행위를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 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한 과정이라고 한 바 있다. 노동을 통해 인간은 동물적인 존재 양식을 넘어서는 삶의 의미를 증명할 수 있었으며, 노동은 인간의 지위를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하지만 모든 지식과 언어는 그것이 만들어진 사회의 역사적 배경과 분리될 수 없다. 성별 분업 구조가 뚜렷한 사회에서 노동은 남성의 영역으로 인지되기 쉽다. 이에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노동은 여성의 지위를 설명하는 데도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엥겔스는 그의 저작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생산 수단이 공동 소유가 되어 노동이 갖는 사회적 가치가 평등해지면 여성의 지위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때 여성의 노동은 성별 노동 분업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가족이라는 단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가족이란 제도가 언제 기원했고 어떻게 지속되고 있으며 왜 문제라는 것인지 엥겔스의 논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대해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특히 모오간의 저작 <고대 사회>에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추적한다. 고대 사회의 씨족적 조직에 이어 자녀들의 재산 상속제를 수반하는 부권제가 등장하면서 한 가족에 의한 재화의 축적이 조장되었고 가족이 씨족에 대항하는 하나의 세력으로 만들어졌다. 이 가족은 사회의 성별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국가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한다. 즉 씨족 제도는 화폐경제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발전해가는 재산 획득의 새로운 형태를 승인할 제도로, 유산 계급이 무산 계급을 착취할 권리를 영구화할 국가가 만들어진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등장으로 여성의 필연적 종속이 예고되며 이러한 종속은 여성의 노동과 관련이 있다.

엥겔스의 논의는 개인의 사적 시간을 공적 영역에서 사용하는 노동을 통해 인간이 비로소 사회적 성인이 된다는 아이디어를 근간으로 한다. 문명사회에서 공적 영역은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며 여성의 가사 노동은 남성의 생필품 획득을 위한 노동에 비해 의미가 평가절하된다. 하지만 생산 수단이 공동 소유로 되면서 ‘사사로운 집안 살림’은 사회적 산업이 되고 아이들을 돌보며 교육시키는 것은 공공사업이 된다. 노동이 갖고 있는 사회적 가치가 평등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책 전반을 통해 가족 이전의 ‘완전한 일부일처’의 상태에 대한 엥겔스의 노스텔지어적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여성의 지위 상승은, 남성의 간통과 매음으로 보충되는 가족 내 관계가 ‘완전한 일부일처’로 회귀하는 것과도 관련 있다고 설명된다. 쉽게 말해 남성이 성매매 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해야 부인으로서 여성의 지위가 상승한다는 말이다. 성매매가 젠더 불평등한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만, ‘일부일처’라는 이성애 중심적 매칭이 해방의 징표로 제시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개인이 차별 없는 평등한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이 인류 해방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의는 자칫 성판매 여성들의 존재에 반대하는, 그들이 없어져야 가정과 사회에 평화가 온다는 주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성매매에 기원을 문제 삼는 것과 성판매 여성의 존재를 반대하는 것은 다르다. 마치 빈곤을 문제화하는 것과 빈곤한 사람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엥겔스는 성매매가 없어질 가능성에 대해 생산 수단이 사회적 소유로 되면서 임금 노동도 프롤레타리아트도 소멸하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일정한 수의 여자가 돈을 받고 몸을 팔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주장은 경제 발전 과정으로 역사의 진보를 설명하고자 할 때 발생하는 오류다. (성)문화의 효과를 예로 들어 반박이 가능하다. 저자의 논의에 동의하려면 매춘부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만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성판매 여성들의 노동 서사에는 경제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다양한 이유, 욕망의 역사가 공존한다. 또한 임금 노동자만이 성구매를 하는 주체는 아니다.

무엇보다 엥겔스의 아이디어에서 가장 문제적인 부분은 성매매를 문명 시대의 가족이 진정한 일부일처를 이룰 수 없도록 만드는 장치로 간주하면서 결과적으로 매춘 여성의 존재를 가족이라는 단위와 완전히 분리된 ‘위협적인 개인’으로 분류했다는 점이다. 성판매 여성들의 존재는 흔히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없는, 울타리에서 벗어난 여자라고 상상된다. 하지만 실제 성매매 공간에서 많은 여성들은 가족들 때문에 노동하고,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동하고, 가족과 함께 노동한다.

성매매 공간에는 아이를 부양하는 여성들이 많이 있으며, 그곳에서 이상적인 남편감을 만날 것을 꿈꾸는 여성들도 있다. 매춘 여성이 신화 속에만 등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듯 ‘기둥서방’도 문학 작품 속에만 등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활동하던 동네에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10명이라면 기둥서방은 9명이었다. 이들은 동네 언니들과 법률혼 관계에 있거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고 모두 언니들이 ‘이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왜 성판매 여성들이 ‘미혼’ 여성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일까?

관념적으로 가족 내 여성에게 허용된 섹슈얼리티는 오직 출산과 관련된 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성판매 여성들은 흔히 ‘거리의 여자’라고 일컬어지며, ‘기둥서방’은 변변한 ‘서방 노릇’을 하지 않는다. 가족이 없을 것이라고 상상되기 때문에 이들의 가족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없다. 가족과 관련된 서사는 성판매 여성 스스로 봉인하든, 가족이 은폐하든, 드러나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여성들의 존재를 ‘어머니’와 ‘창녀’라는 이분법에 의해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이들이 어머니로서 성노동을 지속하며, 어머니 때문에 성노동을 지속한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피난 당시 중매로 현 남편을 알게 되어 교제 중 그냥 동거를 계속하여 3남매를 낳고 살고 있다. 남편은 도박이 심하여 직장에도 충실치 못했고 늘 외박이 잦고 어떤 때는 계속해서 10일간이나 외박하는 때도 있으며 아직도 그렇다. 직장을 그만두고는 장사를 하겠다고 하여 집의 가구와 제 옷을 팔아서 주었더니 그것도 도박을 했고 저의 가정은 형편없이 되어 애들까지 굶게 되어 살기 위해 저는 빠에 나가서 그날그날 살아왔다. 어떤 날은 수입이 많고 어떤 날은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손님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여 저는 매춘부 노릇을 한 적도 있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더러운 여자와 못 살겠다고 하기에 제가 집을 나갔으나 남편은 제게 생활책임을 지게 한 것이 미안했음인지 다시 들어오라기에 들어갔다. 제가 벌어온 돈은 도박장에서 흘리고 애들은 헐벗고 폭행과 욕설이 갈수록 심하니 도저히 그와 살 수가 없어 헤어지려는데 무슨 방법이 없는가.
―“법률상의”, <여원> 1963년 1월호, 379쪽; 이임하(2004), <여성, 전쟁을 넘어 일어서다> 148~149쪽에서 재인용

 
   



위 글은 1963년 1월, 여성지 <여원>의 상담 코너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머니, 아내이기 때문에 성노동을 했지만 이 때문에 남편에게 더욱 억압당한다. 60년대와 다를 바 없이 현재에도 많은 성판매 여성들은 ‘기둥서방’을 먹여 살리고 있지만 이들로부터 ‘더러운 여자’라며 모욕과 폭행에 시달린다. 이 여성들은 ‘기둥서방’에게 돈도 벌어주고, 화풀이의 대상도 되어준다.

여성, 노동, 가족이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가족 내 분업이라는 고리를 통해 서로 연결 되었다는 논의와 관련해서는 루이스 틸리와 조앤 스콧의 <여성, 노동, 가족>을 참고할 만하다. 역사가 전 산업화 시기의 가족경제에서 산업화 시기의 가족임금경제로, 그리고 또 가족소비경제로 변화하는 동안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일생에 걸쳐 생산 활동과 재생산 활동을 번갈아가면서 한다. 낳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농사를 짓고, 다른 집의 하녀가 되고, 매춘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차리고, 방직 공장에서 일하고, 전화 교환수로 일하고, 타자를 친다. 책을 읽다 보면 쉴 새 없는 이들의 고된 노동에 숙연해질 정도이다.
 



책의 서문에서 스콧은 “우리는 임금소득이 경제적 조건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개인성을 완성시키는 동시에 시민권 획득에 기여할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해방적 성격을 가질 것이라는 관념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책 전반에 걸쳐 저자들은 임노동이 여성의 지위를 개선해주었다는 1970년대 초반 주요 노동 연구 결과를 반박한다. 노동이 여성으로 하여금 집안에 억압적으로 감금되고 가족에 종속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의 노동 유형은 지배적인 가족 출산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는다. 한 사회의 생산과 재생산 체계가 가구 안에서 상호 작용함으로써 취업 가능한 여성의 공급에 영향을 미치며, 경제와 생산 양식의 특성과 조직의 규모, 그리고 기술은 노동자로서 여성에 대한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여성의 노동이 가구 생산 양식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이러한 주장은 성노동의 경우에도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을 당연히 가족이 없는 ‘거리의 여자’로 간주하며 사회에서 배제시키려는 음모, 정치학이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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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qks 2010-09-0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이론과 현실에 대한 대비가 인상적입니다.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성매매라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분, 그리고 그것이 비단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배우게 되네요.

서커스걸 2010-09-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훔...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글이었어요..흥미롭기도 했구요..
저도 그들에게 가족이란 단어는 왠지 생소햇었거든요...좀더 생각해봐야겠어요..

비로그인 2011-01-29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노동을 하면 집안에서의 존재의 가치와 지위와 발언권이 향상된다는 것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