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매매 하는 여자들에 대한 지칭과 여성주의 정치학

 

나는 성매매 하는 여자들에게 관심이 많다. 이러한 관심은 일차적으로 여성주의적 연대 의식의 발로일 수 있다. 나에게 여성주의적 세계관은 무엇보다 여자들을 ‘성녀’와 ‘창녀’로 나누는 가부장적 정치학을 감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용한 색안경이다. ‘아버지의 질서’를 거부한 여성들에게 언제든 ‘창녀’의 낙인을 찍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세상에서 ‘창녀’는 동일시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곧 나 자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매매 하는 여자들은 이렇게 신화 속에만 존재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이러한 관심은 내가 아는 언니들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내가 성매매 집결지에서 살지 않았다면, 그들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이 없었다면, 나는 그들의 이름에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마주친 적도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성매매 하는 여자들은 야한 옷을 입고 붉은 불빛 아래 서 있는 ‘익명의 누군가’라기보다는, ‘텍사스라는 가게에서 장사하는 목소리 큰 제니 언니’, ‘남도의 한 티켓 다방에서 일했던 지영’, ‘동네 언니들 돈 떼어 먹고 도망가서 행방이 묘연한 진희 언니’같이 특정한 사람들이다. 일상 속에서 제니 언니, 은양, 마담 언니, 아가씨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 타인에게 어떻게 불리는가 하는 문제는, 이들이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으로, 어떤 사람으로 재현되는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다.  


예를 들자면 요새는 이들을 성매매 여성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여기엔 ‘윤리가 땅에 떨어진(倫落) 여자들’로 문제화하지 말고 ‘자본주의적 질서에 의해 성(性)이 매매(賣買)되는 고리에 놓인 여자들’로 인식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마찬가지로 윤락녀, 성매매 피해 여성, 성노동자와 같이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이론적, 실천적 입장에 따라 채택되거나 폐기되면서 경합해왔다. 
 

이 글에서 나는 인용의 맥락을 따르는 경우가 아니면 성매매 하는 여자들을 성판매 여성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성판매 여성이란, 말 그대로 자신의 성(섹슈얼리티)을 팔고 있는 여성이라는 의미다. 이들의 지칭에 대한 고민을 하는 글인 만큼 사고에 방해가 되지 않는 가장 사실적인 용어라 판단한다. 또한 그들의 저편에 그것을 사는 남성이 있다는, 젠더 역학 관계를 드러내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이는 남성 젠더 권력이 남성 구매 권력(구매력)과 일치하는 성매매에 한정해서 다루겠다는 제한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정에 따라 성매매 집결지를 둘러싼 경제를 도식화해본다면, 최초의 돈은 남성 고객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성을 구매할 수 있는 권력은 남성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말단의 시장(end market)에서 이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은 성판매 여성들이다. 이러한 구매력을 중심으로 한 젠더 관계가 바로 성매매에서의 주요한 축이라고 상정한다. 하지만 이때 엔드 마켓이라는 연쇄의 의미를 암시하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 두 젠더를 둘러싼 또 다른 시장의 가능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성매매 집결지에는 이들 여성들의 소득과 소비에 의존한 여러 사람들이 살아간다. 예를 들어 업소의 업주나 손님을 호객해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성판매 여성의 수입을 나눈다. (물론 업주나 호객 일을 해주는 사람이 따로 없이 성판매 여성이 ‘독장사’를 하는 업소도 있다.) 또한 업소 주변에는 여성들에게 옷이나 화장품 등의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있고, 이들에게 담배를 파는 가게도 있으며, 밥을 파는 식당도 있다. 이 경우 성판매 여성들은 당연히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여성들과 함께 지내던 시절 이들이 집결지 주변에서 무엇을 살 때나 택시를 탈 때,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이때마다 “왜 허튼 곳에 돈을 낭비 하느냐!”라며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 언니들은 귀찮다는 듯 찡긋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는데 어느 날 나이가 아주 많은 한 언니가 “우리 같은 여자들은 이래야 편해”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몸을 파는 여자’라는 낙인이 ‘소비자’라는 비교적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정체성도 쉽게 따라붙지 못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혹은 ‘쉽게 돈을 버는 여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심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무언의 압력일 수도 있다. 물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언니 스스로 몸을 낮춘 행위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성판매 여성들을 향한 낙인과 편견의 시선이 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이 간혹 골치 아픈 사건, 사고에 연루되었을 때 나는 (혹은 나 역시) 이들을 ‘성매매 피해 여성’이라고 전략적으로 호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매매 피해 여성’이라는 범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성매매에,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고리가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 의도이다. 최소한 내가 만난 성판매 여성들은 신체가 구속되어 ‘강제로’ 일을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오래전부터 성산업 주변에 산재한 불합리한 구조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피해는 성매매 하는 여자들에 대한 낙인과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은 보호막이 없는 거리의 여자로 인식되어 크고 작은 범죄의 표적이 된다. 남성 구매자와 1대 1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폭력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몸을 파는 여성들에 대한 환멸감을 느낀 나머지” 11명의 출장마사지사 여성을 살해한 후 암매장한 유명한 연쇄 살인범 소식에 당시 광주의 다방 골목이 들썩였던 기억이 난다. 여관으로 커피를 배달해달라는 전화가 오면 서로 “네가 나가라”며 몹시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또 성매매 하는 여자들에 대한 낙인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은 아니나 성산업 주변에 널리 퍼진 불법 대부업으로 인한 피해도 일상적이다. 최근 성매매방지법 제정 이후 성매매를 조건으로 업주가 성판매 여성들에게 지급하던 선불금이 불법화되자 많은 일수업자들이 성매매 집결지 깊숙이 들어왔다. 업소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옷이나 화장품을 사거나, 방을 구하는 등 돈이 들어갈 곳이 많은데 이들은 동네 일수업자에게 돈을 빌려 이를 해결하고 있다. 일수업자들의 엄청난 고리대금으로 인한 피해는 성판매 여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일수업자들에게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성적으로 모욕을 당하기 일쑤이다. 일수업자들은 자신의 돈을 빨리 갚으라고 ‘투잡을 뛸’ 또 다른 업소를 알선해서 여성들이 잠도 못 자고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피해는 대로변의 번듯한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 ‘번듯하지 못한 사람들’이 짊어져야 하는 피해와 같은 종류의 것이기도 하다. 물론 성판매 여성들이 일수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것을 꼭 경제적, 계급적 이유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이것은 성매매 집결지의 일상,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어떤 여성들은 특별히 돈이 필요하지 않아도 매일 번 돈을 허투루 써 버리지 않기 위해 목돈을 빌리고 매일 일수 돈을 갚아 나가기도 한다.  


최소한 나에게 성매매 피해 여성이라는 명명은 성매매 깊숙이 자리한 구조적 피해나 상황적 피해를 지적하려는 실천이다. 이들 여성을 둘러싼 성적 낙인과 제도의 불합리성, 성매매 집결지 문화로 인해 이들은 상황적으로 피해자가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성매매 피해 여성이라는 지칭은 상황적 피해를 강조하기보다 이들 존재 자체가 내재한 피해자성이 강조되는 방식으로 유통된 것이 보통이다. 성매매 하는 여성들은 빚을 갚지 못해 오지로 팔려가거나 감금된 채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여성들로 인식되었다. 이렇게 인신매매된 여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인식이 대중화되고 보편화되었던 시기에 이들이 노동을 통해 꾸려나가는 삶의 실제 모습은 주목받을 수 없었다. 이들이 왜, 어떻게 노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차단해버린 것이다. 이들은 특정 경제장에서 중요한 소비자로서 소비의 경향성을 주도하기도 하며, 때로는 억척스럽게 아이를 교육시키는 극성 엄마이기도 하다. 
 

‘이들을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들의 삶과 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경합의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는 이들의 행위를 어떻게 의미화하거나 문제화할지, 나아가 이들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게 된다. 성매매는 여성의 성적 등급화에 대한 문제, 여성의 노동에 대한 문제, 여성 내부의 계급 차이에 대한 문제, 혹은 계급과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등과 관련이 있다. 물론 이들을 둘러싼 현실의 무게를 보다 ‘사실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담론을 다시금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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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qks 2010-08-27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성판매 여성이라 지칭함이 가장 사실적인 표현이라는 것에 공감이 갑니다.
다음 글이 기대되네요. 일상과는 멀리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 온 성판매 여성, 그리고 성노동에 대한 이해하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햇볕냄새 2010-08-2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성노동 여성들에게 관심이 많이 가더라구요, 글쓴이가 던지는 질문이 궁금해서 긴 글을 읽게 됐습니다. 글에 쓰신 것처럼, 많은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현실인거 같아요...

서커스걸 2010-09-06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읽었어요 다음글이 기대되는군요 왠지 무섭고 멀리있다고 생각한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수있는 계기가 될수있었음 좋겠어요

청단∂ 2010-09-23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비로그인 2011-01-2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이슈였네요. 주어지는 글을 통해 배우고 생각해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