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세기는 끝났다
이블린 폭스 켈러 지음, 이한음 옮김 / 지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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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본성과 양육"에 비해 좀더 자세히 유전자공학을 설명한것 같은데 재미가 없다. 

유전자가 뭔지도 아리송 해 졌다는 실상의 재 확인인데 재미가 없다. 

뭔가 옛날 생물 교과서 같은 흑백의 불명확한 그림들로 헷갈리는데다가 재미 마저 없다. 

"헷갈리는데다가"는 띄어쓰기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리뷰쓰기 마저 재미없다.  

책 표지며 생김새도 재미가 없다. 

재미 알라딘에서 샀는데도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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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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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정의란 무엇인가?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인가 옳은것 자체인가? 옳다는 것은 누구에게 옳다는 것인가? 옳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성적으로 수긍이 가는것일까 아니면 정해진 법이나 사람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순응인가? 등등의 껌종이 생각은 누구나 하는법. 역시 인기있는 넘은 무슨말을 하든지 쉽게 설명한다. 가식적이거나 학식있는 척 하지 않는다. 주제전달에 충실하다. 열정과 순수함이 느껴지면 변태일까? 어쨋든 그래서 열띤 토론도 가능.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질문할 좋은 주제들이다.

행복, 자유, 미덕
많은 사람이 최대로 행복하기 위해선 개인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공리주의-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에 반해서 개인의 권리를 무엇보다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주의). 그런데 개인의 권리 추구야 말로 결국에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길이라는 주장은 공리주의인지 자유주의인지? 밀의 공리주의적 자유주의는 공리를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타협점을 찾았고 칸트의 의무론적 공리주의는 인간의 순수이성에 기초해서 공리를 찾는것이라고 인터넷에 써있네? 공리하면 역시 붉은 수수밭. 그니까 동성애는 차별해서는 안되는 비정상 그룹이라고 저자도 말하는게 제자도?

칸트의 순수이성
가언명제가 아닌 정언명제만이 우리가 지켜야할 명제이며 자연법이 아닌 우리가 정한 선택과 결정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하는데… 그러한 명제와 논리의 당위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유전자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자유로운 명제가 가능한 이유는?

권리와 자격
이 책과 매트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을 읽는다면 개인의 자격됨을 주장하는 건 무지 쪽 팔린 일이지.

결론
크리스챤은 하나님에서 정의를 찾는다. 그건 미덕에서 정의의 기준을 삼는것과 비슷. 하지만 진멸법 (가나안 족속은 양 새끼 까지 모두 죽이라는)을 생각하면 그냥 미덕과는 글쎄… 신앙이란 무엇일까?란 질문이 정의란 무엇일까 보다 크리스챤에겐 얼핏 먼저 인듯 싶지만 결국 그게 그것. “하나님을 믿는게 결국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다. 하나님을 믿을때 비로서 개인의 자격회복과 권리충족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만이 참된 미덕이다. 그래서 난 하나님을 믿는다” 라고 누가 주장한다면? 당장 인간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이 먼저라고 한다. 그리고 “난 그딴거 몰라요. 주님이 날 사랑하니까요”라고 하면 참 은혜로우면서 진부하지? 게다가 정의를 말하는데 바로 사랑 타령으로 넘어가는게 힘없는 권세없는 기독교다. 왜 하나님을 우선시 하는지 궁금해지시는 분들께 매트리들리식 해답을 드린다면. 사랑과 정의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통한 정의 실천과 정의를 통한 사랑이 이루어져야 참된 기독교다란 말장난이 가능할듯. 그니까 정의로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순종할 수 밖에. 점점 껌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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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윤리 우리시대의 신학총서 3
윌리엄 슈바이커 지음, 문시영 옮김 / 살림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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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도덕을 이야기 할때 신의 존재를 당연시 한다. 존재증명에 연연하지 않고 논리를 시작하는 현명함을 보인다. 저자에게 있어서 존재론은 비존재론과 논리상 같은 의미를 가지므로 그 증명에 시간을 뺏기지 않고 각 이론이 실제 삶에 미치는 영향을 논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재이며 도덕이란 인간이 만든 허상이라는 도덕 비실재론은 환원주의에 갖힌 세계이다. 이 물질세계, 자연세계만이 존재하는 전부라는 가정하에 그 허상으로 보이는 비실재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힘이라는 환원주의 해석이 팽배한 이 시대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이다. 

     짜임새 있는 책의 구성이다. 1부는 포스트모던 시대현상을 2부는 이에 반하는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도덕실재론의 입장을 그리고 3부는 1부와 2부를 아우르는 현상과 그 해석에 관한 기독교적 입장을 통하여 삶의 통전성을 이루고자 한다. 그러면서 또한 각 부의 장들 역시 첫장은 현상을 두번째장은 설명을 세번째장은 앞의 두장을 묶어서 결론을 내는 구성으로 되어있다. 구성은 좋지만 말이 너무 어려운듯. 특히 통전성...
     저자에게 있어서 도덕비실재론이란 결국 허무주의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자기모순적이며 궁극적으로 삶의 통전성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비실재를 실재로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힘, 자연의 힘이라는 입장과 하나님 이라는 입장사이에는 화해의 여지가 없다. 해석에 따른 도덕적 책임과 삶에의 적용에 따라 두 입장의 가치는 달라진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재한 힘의 논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실재의 범위를 자연주의에 국한시킬 근거는 없다. 우리는 초자연성, 하나님의 타자성, 도덕적 실재를 인정 할 수 있다. 아니 인정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본성과 양육에서 인간을 유전자와 환경의 산물에 국한시키는 관점은 흡사 도덕 비실재론과 비슷한것 같다. 그곳에는 하나님이 존재할 틈이 없다. 뇌에만 존재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하나님이 접촉하실때 그것이 진정한 영원성에로의 통로인지 아니면 갇힌 세계에서 그냥 벽에 그려져 있는 문인지는 부딪히며 열려고 해봐야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삶의 통전성을 향한 길이다. 그리고 그 부딪힘은 어떤 사람에게는 한 순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 평생 계속되는 부딪힘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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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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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사선 가속기는 물리학 출신들이 주로 다루지만 그 응용분야는 생물학까지 다양했다. 물리학 관련 beamline들은 불경기가 와서 힘들어 해도 생물학 쪽은 꾸준히 돈이 모이는 듯. 실제로 몇몇 물리학 관련 Beamline이 생물학 그룹으로 넘어갔다. 그래서인지 물리학자들은 생물학자들을 은근히 질시/무시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그건 마치 자동차 수리공과 벤츠 주인과의 관계라고나 할까? 그래도 돈이 되는건 생물학인가 보다. 쉬뢰딩거도 생물학에 관심이 있었다니 (물리학 만큼의 업적은 없는듯. 생물학계의 쉬뢰기?) 천재는 다른듯.
     어쨋든 생물학 특히 유전공학분야가 내게 비친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실은 지네들이 하는짓이 뭔짓인질 모르고 헤매고 있다는 흥미로운 내용의 책이다. 소위 창조과학자에겐 씹기 좋은 재료로 사용될듯.
     “한 유전자가 한 단백질 형성이나 한 질병, 한 성격형성에 관여하니까 유전자 조작을 위해 질병을 고치고 성격을 고칠수 있다”는게 다 뻥이란건 다 알려진 사실. 여러 DNA들이 복잡하게 관련되어 있어 게놈지도가 완성된 오늘날 생물학 종사자들의 할 일만 더욱 많아졌다는 지자랑? 또라이 라는 생각이 들게 한 저자의 주장 하나는 진화를 가져오는 유전자의 불안정성은 은근슬쩍 당연시하고는 문제는 종의 유지를 가져오는 안정성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려운 이슈라나 뭐라나. 거기다 결국 생물학을 넘어 심리철학까지 넘보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는 없다란 말을 하고 싶어서 안달. 인간이 뭔가를 결정할때 유전자의 영향과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전부라는 환원주의를 벗어나긴 쉽지 않은듯. 그래도 흥미로운 썰은 많은 책. 가령  

- 좋은 부모가 좋은 아이를 만들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좋은 아이가 좋은 부모를 만들 수 있다. --> 혹시 자기 자식 자랑?   

- 같은 인종내의 유전자 편차는 인종간의 편차 보다 크다 --> 도대체 무슨 편차인지 자세히 좀 말해 주지…   

- 양육에 대한 기회균등한 평등한 사회란 결국 선천성에 좌우되는 또다른 불평등한 구조를 가져온다. --> 그럼 공부할 필요 없겠네?  

- 거대한 유전자풀에서 비슷비슷한 유전자들을 활성화 시키는 효소들의 작용순서와 작용범위에 따라 어떤건 짚신벌레가 되고 어떤건 인간이 된다 --> 이건 내가 또라이라 잘못 이해한거지 설마 이런말을 했겠어?   

- 양육이 유전자에 영향을 주고 유전자는 양육환경에 따라 반응하는데 이는 순환적인 것으로 어느것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모른다 --> 결국 뭐야? 닭이 먼저야 알이 먼저야 했더니 “이~ 우주의 원대한…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알에서 나온 닭은 알을 낳죠” 하는 꼴  

- 자유의지는 없다--> 그럼 예정설이 맞네?

어쨋든 황우석 같은 넘들에게서 보듯이 뭔짓을 하던 유전공학하면 한동안 밥줄 걱정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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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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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4장 이후 나머지 장들은 대충 읽었는데 더이상 리뷰할 가치를 못 느낀다. 제발 저자가 현존하는 최고의 무신론자중 하나이길 바랄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신앙인으로서 무척 고무적인 책이다.
저자가 말한 “주제넘은 낙관론”은 사실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책을 펼칠 때 종교를 가졌던 독자들은 책을 덮을 때면 무신론자들에게 좀더 자신있게 전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에 반론으로 예를 든 TTSS는 그 자체가 환원불가능한 복잡하고 파워풀한 설계의 증거라 하겠다. 나중에 따로 정리하자.

넘의 주장: 생명의 기원은 인본 원리로 설명하고 진화는 자연선택의 점진성으로 설명한다. 생명의 기원 발생 확률을 무한한 우주들을 가정함으로써 해결한다. 탄생한 생명은 자연선택의 점진성으로 설명된다. 설명 안되는 간격은 과학으로 채워질 것이다고 한다.

소설을 써라 차라리. 간격의 하나님 대신 간격의 과학을 들이대는 순간 초장의 이성적 호소가 무색해 진다. 토크쇼 진행자가 차라리 적합할 듯 하다.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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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유
보잉 747과 고물 야적장|각성제로서의 자연선택|환원 불가능한 복잡성|틈새 숭배|인본 원리: 행성편|인본 원리: 우주편|케임브리지의 막간극

4장이 핵심이라니 앞의 1,2,3장들의 말장난을 읽어줘야 했다. 말장난 좋아하는점은 닮은것 같다.
기억나는 넘의 말장난
1. 신이 없어야 하는이유
신은 항상 무엇보다 놀라운 일을 한다. 존재함으로 창조하는 것보다 비존재함으로 창조하는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따라서 신은 비존재한다.
-->내 말장난: 맞는말이다. 따라서 신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Nothing is greater than God)

2. 신이 전능하지 못한이유
신은 전지전능하다. 즉 자신이 무엇을 할 지를 알고 있다. 따라서 전지함을 벗어나서는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행동을 바꿀수 없으므로 전능한것은 아니다.
-->내 말장난: 능력이 있다고 다 행하는것은 아니다. 동물과 섹스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도킨즈가 연구는 안하고 이상한 짓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전지의 능력을 조절하실 수 있을 것이다. 신이 도킨즈의 유한성에 갇혀 있다면 맞는말이다. 하지만 무한한 선택의 자유를 알고 있다면 무한히 선택을 바꿀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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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평점이 내려간다. 사실 서론 읽을땐 “음 내공이 좀 있나본데” 했다. 공포영화를 보기전의 떨림이라고나 할까? 근데 아무리 읽어도 계속 서론이다. 그리곤 "에게게 겨우 이정도.." 마치 오즈의 마법사같다. 오지랍은 넓은듯.
신은 없다. 자연선택이 답이다. 왜 그런지 명쾌한 설명이 있을줄 알았다. 4장이 이 책의 핵심이란다. 4장도 처음부터 잡소리가 많아서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돌팔이 만병통치약 선전도 아니고. 계속 한다는 소리가 신도 답이 아니고 지적설계도 답이 아니고 자연선택 그거 무지 훌륭한건데 좋은거고 중얼중얼…논리나 데이타는 없고 싸구려 대중선동꾼도 아니고 남들 이야기나 인용하고.
동물학자라 길래 지적설계의 환원불가능성에 대한 멋진 반론을 기대했었는데 동물학자의 한계인가? 마치 이 서평처럼.

넘의 자연선택에 대한 핵심주장은 다음과 같은거 같다.

1. 자연선택의 점진성을 무시하고 그 점진성으로 만들어진 최종결과물 만을 가지고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따지는건 무식한 짓이다.-->점진성이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그것의 방향자체가 설계 아닌가? 점진성이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설계의 흔적아닐까? 또 우연이라면 가능하지 않다고 하지않던가?

2. 최종결과물이 갑자기 생기는것은 불가능 하지만 작은 단계들로 나누면 가능성이 높아져서 점진적으로 최종결과물로 이루어진다. 즉 1%날개도 1%의 유효성이 있다면 2%로 발전 될수 있다-->
a. 임계점이란게 보통 있던데… 즉 살아남기 위해선 1% 유효성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경우 말이다. 즉 실 생활에선 35%가 되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경우. 천적이 34% 빨라서 35%는 되어야 쓸모가 있는 경우 말이다.
b. 그 거북이랑 달리는 영웅의 예에서 보듯 (지가 그것이 극한값의 개념으로 풀수 있다 해 놓고선) 0.000…1%의 처음 진화가 가능했다고 해도 그건 결국 0이다.

내가보기엔 이 무한히 잘개 쪼개진 점진적 단계들이 순서대로 짜맞춰져서 진화하는게 굴드의 불연속적인 괴물이론보다 더 황당한것 같다.

3. 앞에서 보면 절벽이지만 뒤로는 자연선택의 계단이 있는것이다-->그 계단이 있다는것 자체가 설계래두. 그리고 계단이 왜 위로 가느냐 말이다. 뒤로 가보니 계단이 그냥 밑으로 갈수도 있고 옆으로 갈수도 있는데 왜 하필 위로 가느냐 말이다. 우연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뒤로가보니 장애자도 갈수 있는 잘 꾸며진 보도가 나 있다면 그게 설계지 자연선택인가?

4. 유용한 중간단계의 진화물이 있을수 있다. -->50% 눈이란 누구 눈이 기준인가? 각 생명체의 눈은 나름대로 필요한 완벽한 기능을 하고 있다. 생명체마다 눈의 특성이 다르다고 그것이 꼭 중간 단계라고 할 수는 없지않은가? 그리고 그 생명체의 눈과 내눈의 관계를 알 수 가 없다. 눈을 공유하는 관계도 아니고. 도대체 flatworm의 눈이 내눈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Flatworm의 눈이 내눈의 50%란 근거도 모호하지만 그래서 Flatworm이 50% 더 진화하면 사람이 된다는 말인가?
눈은 다 완벽한 눈이고 날개는 다 완벽한 날개인거다. 동물학자면 다 무신론자인줄 아나부다.

5. 자물쇠가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는 유용한 기능을 한다면 효율적으로 다음 단계로 진화한다-->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는 그 기능이 바로 설계라자너.  

6. 다윈이 생명의 복잡성을 경이롭게 이야기한 후 이어서 진화의 자연선택을 잘(?)이야기 했다는데 첨것만 인용하고 그 잘(?)설명한 자연선택의 인용이 없는건 무슨 이유인가?

7. 지적설계는 간격의 하나님일뿐 별 도움이 안된다. -->지적설계 추론의 유용성은 생물연구에 따른 역방향 엔지니어링 (reverse engineering) 의 활발성에서 잘 나타난다.

8. 지적설계는 증거가 없다-->뎀스키는 지적설계의 추론을 통한 증거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9. 캠브리아기의 화석폭발과 진화와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했던 말은 사실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 횡설수설-->누가뭐래? 지발저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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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갈 수록 실망감이 커진다. 소문난 잔치라고나 할까?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에 대한 반박은 오히려 뎀스키의 "지적설계"에서 더 정확하고 설득력있게 소개하고 있다. 오래된 신 존재 증명논리에 아직도 연연하는 자세가 아쉽다. 거기다가 개인적 경험은 다 뇌작용 때문이라지만(그거 누가 모르나?) 그 뇌 작용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무엇인가는 언급하지 않고 지가 어릴적에 헛것을 본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신약성경의 과학성, 역사성을 반박하는 근거로는 달랑 책 3개 읽었나보다. 난 최소한 "예수 사건"에 인용된 증거에 대한 반박정도는 있는줄 알았다. 교육수준이 높고 IQ가 높을수록 무신론 경향이 크다는 통계자료 제시는 코미디에 가까운데 마치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범죄율의 증가율이 비슷하다고 온도라는 요소를 무시하고 아이스크림 판매량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넘같다. 하지만 돈주고 샀으니 끝까지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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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자를 사랑해야 겠다. 원수자너.
무신론자가 떳떳이 자신을 무신론자임을 밝히는건 좋은 현상이다. 자신이 크리스챤이라고 믿고 살다가 심판때 아닌게 드러나면 억울하자너요.
크리스챤인척 하며 이득을 챙기는 이땅의 정치인, 종교인, 경제인, ...몽땅 다 등등에게도 해당하는 말이겠다.
그래그래 물론 나에게도 해당한다. 너에게도요.

다 밝힙시다. 자신의 가치관을. 그럼 전도 하기 쉬울텐데.

역시 진화론자의 괴수답게 설득력이 넘침니다. 싸구려 저널리즘과 유치한 위트로 유신론을 비꼬며 무신론을 전도합니다.(전도..ㅋㅋ 도킨즈가 싫어하는 말이겠지?). 페이지마다 지적 교만함이 넘쳐흐르는데 불쌍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근데 사이비 기독교를 비난하는건지 종교자체를 비난하는건지 좀 헷갈린다. 그냥 둘 다 싸잡아 비난한다고 이해해 주었다.)

넘의 주장1. 뭘 주장 하려면 증명해야한다. 증명되기 전에는 그 주장은 틀렸다고 가정해야 한다.
나의 딴지 걸기1. 일단 기독교는 하나님이 존재함을 증명 (우씨 아래댓글의 날카롬 땜에 "주장
"에서 "증명"으로 말 바꾼다) 하려는게 아니다. 그냥 사실로 받아들이는 거다. 그래도 증명하라고 들이대면서 과학 실증 주의로만 증명해야만 된다는 건데 그럼 도킨즈는 지 자식을 사랑한다는걸 뭘로 증명할까? 그건 증명할 필요 없다고? 그럼 기독교도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분왈 “나는 나다”라고 하시자너.

넘의 주장2. 미국에는 많은 종교옹호 단체가 무신론자의 자유를 돈으로 억압하고 있다.
나의 딴지 걸기2.미국에는 많은 진화론지지 단체가 창조론의 자유를 돈으로 억압하고 있다. 게이 옹호 단체는 돈 더 많다. 권력도 더 세다.

넘의 주장3. 표현의 자유가 남에게 피해를 줄경우 제한되지만 그 표현이 종교의 자유라고 하면 종종 허락된다.
나의 딴지 걸기3. 좋은 지적이다. 이제 기독교는 표현의 자유보다는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창조론등을 주장하자. 근데 미국학교에선 십자가 목걸이도 못걸고 다닌다. 밥먹을때 기도하면 주의편지 날라온다. 뭐 저자가 미국서 아이들 학교 보내 봤어야지. 미국을 넘 과대 평가 하는건지 아님 엄살인지.

넘의 주장4. 미국의 건국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닌 세속주의자들이다. 유명한 과학자들도 기독교 아닌 넘들이 많았다. 미국이 기독교화 된건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본주의 경쟁체제하의 살아남기 (왜 딴 종교는 못 살아남았는지 모르지만)거나 건국이념과 달리 엉뚱한 넘들이 지배세력의 통제수단으로 사용한거다.
나의 딴지 걸기4. 그러게

넘의 주장5. 세속주의자들은 사실 많다. 게이들 처럼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이익단체 결성하여 자주통일(?) 아 아니다 세계평화 이룩하자.
나의 딴지 걸기5. 제발좀. 저자 말대로 숨어있는 세속주의자들은 어차피 뒤로 세속주의 신념으로 나라 망치고 있다. 기독교 국가란게 있나? 좀 밝은데로 나와서 가릴넘들은 좀 가리자.

그리고 신의 존재가 증명되도 그게 고도의 지능을 가진 생명체지 신은 아니다라고 우길것 같다.

아 나머지 다 읽으려면 아직 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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