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에세이 - 개정4판 동녘선서 1
조성오 지음, 이우일 그림 / 동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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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변화가 질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황당무개한 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흔히 말하는 개똥철학의 교과서라고나 할까?

이 책땜에 '운동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꾕과리에 막걸리 부어 마시는 담배연기 자욱한 학회지하실과 변증법적 유물론이란 단어가 겹치면서 짜증이 엄습한다. 놈현의 이미지가 이와같은 이유일까? 

달나라에 아무리 공을 쌓아논들 무게땜에 질변화가 오나? 중요한건 무게라는 질 또는 특성에 있는거지 양이랑 질이랑 개념자체의 혼선을 개정판에서는 좀 바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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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잡신 2019-01-0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암요 야훼믿으라는 SF소설<성경>이야 진정한 개똥철학의 교과서라고 할까나?ㅋ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 양장본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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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궁금하긴 한데 그때 기억으론 개나 소나 읽었던, 정말 유행하던 책이었던것 같다.

기억 나는건 읽다가...뭐야 껌종이 소설이자너 했던 내 취향이 전혀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취향이 바뀌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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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 완역판 세상을 움직이는 책 34
장 자크 루소 지음, 민희식 옮김 / 육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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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윤리였나 세계사 시간이었나. 제목과 저자만 외우고 실제내용은 궁금한 책 중 하나였다. 실제로 함 읽어볼 기회가 많았던 대학생 시절에 성경 다음으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책 같다.

루소의 자유분방함이 참 부러웠던것 같다. 지금 또 읽으면 어떨까?

후에 루소는 친자식을 에밀은 커녕 탁아소에 맡겼다는 충격적일법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사람이 뭐 다 그렇고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 있는건 뭐야 게을러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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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게리 윌스의 기독교 3부작 3
게리 윌스 지음, 김창락 옮김 / 돋을새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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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부터 한국의 신앙풍토에선 바울신앙이 크게 예수님의 복음을 망쳐 놓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걸로 안다. 그러니까 책 제목 좀 오버다. 읽다 보면 누가 뭐래? 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누가의 사도행전에 딴지거는건 좀 눈에 거슬린다.
읽다 말았다. 넘의 주장. 도대체 이게 왜 중요한지 모르것다. 한가지 예만 들고 그만두자.
1. 누가는 사도 행전에서 바울에 대해 뻥 많이 쳤다. 그런 거짓말 장이 누가가 썼을 수도 있는 누가복음은 믿을만한 책이다.
2. 바울은 텐트메이커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3. 시시콜콜 딴지걸기… 별 중대한 이유나 이에따른 신앙생활에 끼칠 영향 제로.

그럼 그가 주장하는 석연치 않은 점들을 이유로 누가의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진술은 거짓이라고 하는데 확실한 이유가 아닌 석연치 않은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1. 갈 1: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달랑 이 한구절로 시종일관 사도행전의 누가 서술과는 달리 바울은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란 주장을 한다. 대단한 믿음이다.
근데 21절은 다음과 같다.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니까 22절의 유대교회들은 수리와와 길리기아 지방의 교회를 말한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지방에선 별로 악명도가 높지 않았을 수 도 있고 또 그때 뭐 동영상 인터넷 있던때도 아닌데 소문은 들었어도 얼굴로는 알지 못했거나 사적으로 인연이 있는자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도 될꺼 같은데...누가의 주장을 뒤엎기엔 넘 부족한 근거가 아닌가 싶다.
13절 14절에 도 바울 자기말로 박해를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2. 바울 자신은 자기소개때 유명한 가말리엘의 제자라고 한적이 없다는데 누가가 뻥친거다.
내가 만나본 서울대 출신중에 지가 먼저 지입으로 난 서울대 출신인데 라고 말한넘 못 만나 봤다. 그냥 배울만큼 배웠죠 그런다. 그런 사람들은.

3. 바울자신이 아나니아에 대한 언급을 한적이 없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의 다음 주장과 아나니아를 만난 사실은 모순이란 거다.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근데 아나니아를 만나도 그것이 그리스도의 계시를 따른것이지 아나니아란 사람을 따른것은 아니잖는가? 바울이 아나니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그게 사람덕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인가? 물론 사람을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그리스도가 촛점임을 강조하는 입장이라면 왜 모순이 되는지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4. 유대를 통치하던 로마가 왜 말썽많게 유대교를 통한 바울같은 자에게 그리스도인들을 잡을 권한과 사형의 권한 까지 주었는가? 그리고 그러한 권한의 관할 영역이 터무니 없이 넓다.
글쎄. 로마의 통치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복한 그 지방의 자치권을 어느정도 인정하지 않았나도 궁금하고 예수님이 돌로맞아 죽을뻔한 간음한 여자를 구하는걸 봐서는 제도적 사형제도가 아닌 인민재판식의 사형이 로마를 무시한체 종종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로마는 유대인의 종교에 별 간섭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 그게 아닌가?

뭐 위와 같은 의문점이 드는데 책에선 그런 의문을 없앨만큼의 설득력 있는 증거제시는 없다.

거기다 번역수준을 의심하는 한 구절.
“디아스포라에는 5백만에서 6백만명의 유대인이 살았는데….” 디아스포라라는 대도시가 발견되었나보다. 아 이 부분 읽고는 내가 계속 번역본을 읽어야 하는지 환불요청을 해야 하는지.
어쨋든 이건 원저자 잘못은 아니니까 넘어가자. 꼬우면 원서 봐란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름대로 참신 했지만 근거는 빈약한 주장들 –그래도 이용가치가 있는점들
1. 바울 서신은 복음서보다 일찍 씌여졌으며 복음서 기자들이 오히려 바울 서신을 참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뭐 어쨌든 신약의 신뢰성을 사건발생일과 저작시기의 시간간격으로 따진다면 바울서신이 주후 20년 정도라는 주장은 신약의 신뢰성에 훌륭한 변증근거가 될 수 있겠다.
2. 바울서신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기는 커녕 가장 올바르게 전했다. –바울 서신 믿을만 한 거다
3. 골로새서, 에베소서, 데살로니가 후서, 디도서, 디모데 전후서는 널리 알려진대로 바울꺼 아니다란 주장. –글쎄 뭐 자기 주장이니까 그렇다 치고. 하튼 진정서신이라 주장하는 데살로니가 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고린도 전후서, 로마서는 바울꺼가 맞단다

아뭏튼 책 소개에 책 서문만 읽어도 도움이 된다고 했든데 정말 그렇다. 책 서문만 읽고 덮어도 전혀 지장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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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go 2011-08-24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예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게리 윌스의 기독교 3부작 3
게리 윌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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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단 자신의 논리근거를 정경에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다른 외부증거 자료등은 정말 가뭄에 콩나듯 나온다. 그니까 자기주장의 근거를 자신의 성경해석에 두고 있다. 장점은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맘것 펼칠수 있다. 단점은 경박함이다. 미국 기독교 수준 알만 하다.

논리의 경박함에도 불구하고 성경해석의 나름대로의 자유분방함으로 책을 팔 수 있음이 부러울 뿐이다.
주장은 좌익과 우익의 신앙을 왔다리 갔다리 하는데 다음과 같은 주장은 심히 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1. 내 자식이 게이여도 난 아무문제 없다.
2. 예수를 판 유다는 회개하고 자살한 훌륭한 성자다.
3.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빨리 죽은건 원래 좀 유약한 체질땜이다. 채찍질은 십자가벌에 따라오는 부록이므로 옆의 강도들보다 먼저 죽거나 자기 십자가를 못들고 쓰러질 특별한 이유가 없다. 체질외엔. (아예 무슨 비타민 광고를 하지 그러나 싶다. 쓰러지시는 예수님...그리고 뜨는 멘트. 허약체질엔 게리표 비타민이 좋습니다. 맬 깁슨 영화보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형과는 별개였던 채찍형까지 맞고 빨리 죽게 됐는가가 나와 있다.)
4. 손에 못이 아니라 손목에 못이다. 왜냐하면 손이 찢어지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못하므로 (위 영화보면 손목 묵고 손에 못질 해도 된다는거 안다.) 근데 중요한가?
1,2번은 뭐 이런넘인가 부다 해도 3,4번은 좀더 객관적 접근이 아쉽다.

요즘엔 하도 예수를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마치 붕어빵 뒤집듯 2000년 동안 진짜 예수에 대한 의견이 하도 분분해서 왠만한 논리론 사람들 시선 못끈다. 그래서 개개인이 갖고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가 참 다양한것 같다. 효자 예수, 순둥이 예수, 대패질 하다 베어도 “음 아프네” 하며 웃으시며 상처를 치유하실것 같은 예수, 중세벽화의 예수 같은 이미지를 좀더 생동감있는 예수, 역동적인 예수로 볼수 있다. 좌익의 예수를 그린 책 치고는 중도 온건 좌익이라고나 할까?

추천 드리고 싶은 분들
1. 자기가 속한 성경공부 인도자가 넘 예수를 미화하거나 좀처럼 교회비판 같은걸 용납하기 싫어하는 꼬라지가 좀 비위에 거슬려서 함 곤란한 질문이나 다른 성경구절을 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나하고 꼬투리 잡고 싶은 분
2. 위에 언급한 성경공부 인도자 (미리미리 대비할 수 있다)
3. 돈과 시간이 남아도시는 분 (난 제목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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